왕의 비밀(손진길 소설)

王의 비밀5(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0. 25. 13:57

王의 비밀5(작성자; 손진길)

 

예나 지금이나 국경을 탈출한다고 하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국가의 사절로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경우에는 국경수비대가 그 길을 안내해준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조국을 버리고 다른 나라로 들어가는 것이므로 불법행위이며 단속의 대상이 된다.

조상들의 땅 고려를 버리고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 여진의 땅으로 들어가고자 계획하고 있는 서우진과 이린은 일생일대의 모험을 감행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준비가 철저할 수밖에 없다.

열흘동안 이린은 재산을 모두 정리했다. 파주골에 숨어서 5년간 살아온데 불과하기에 크게 정리할 재산이 없다. 그래도 오래 손때가 묻은 것을 버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마치 야반도주를 하는 것과 같으므로 살던 초가집은 남에게 팔지도 못하고 그대로 남기고 떠나기로 한다;

서우진은 무예선생 김숙번과 함께 지난 8월 초순에 이린의 집을 떠나면서 보름만에 다시 찾아온다고 약속했다. 정말 열 닷새가 지나자 약속대로 무예선생 김숙번과 절친 서우진이 이린의 집을 방문한다.

어느덧 8월 하순에 접어들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마지막 무더위 속에 한줄기 서늘한 바람이 때로 불고 있다. 서우진과 김숙번을 초조하게 기다렸던지 이린 부부가 크게 환대를 한다.

그런데 이린과 문나옥은 서우진이 데리고 온 서애령을 보고서 깜짝 놀란다. 처음보는 처녀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고서 서우진이 그녀를 일동에게 소개한다; “린이 너는 5년전에 개경을 떠나왔으므로 내 친척인 서애령이를 처음 보겠구나. 그때쯤 고향에서 고아가 된 애령이가 문중 어른들의 권유로 내 집에 와서 나와 같이 살게 되었지... “.

당시 고려사회에서는 개경에서 출세를 한 친척의 집에 몸을 의탁하고 있는 친척들이 더러 있었기에 그렇게 서우진이 변명하더라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기야 권문세가에서는 재주가 있는 선비나 무인이라고 하면 자기집에 오래 식객으로 두고서 손발로 삼고 있는 시대이므로 쉽게 이해가 되는 것이다.

어저께 개경에서 먼저 무예선생 김숙번을 만났을 때에도 서우진이 서애령에 대하여 그렇게 설명했다. 그러자 김숙번이 단번에 고개를 끄떡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허허, 일가친척이 아니라고 한다면 우진이와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인데 그것 참 아쉽게 되었다… “.

그러자 서애령이가 당돌하게 말한다; “고려에서는 사촌도 결혼하는데 그게 무어 그리 대수가 될까요?... “. 그 말을 듣자 김숙번이 하하라고 웃는다. 그 틈에 서우진이 말한다; “우리 서애령은 무예를 상당히 잘 한답니다. 그래서 이번 길에 저를 도와주겠다고 해서 함께 온 것입니다. 나중에 스승님께서 그 실력을 한번 평가해주시기 바랍니다하하하”.

그렇게 당돌한 면이 있는 서애령이 무술까지 잘 한다고 하니 무예선생인 김숙번이 좋아한다. 그러므로 파주까지 동행하면서 김숙번이 마치 자신의 조카딸처럼 그녀를 잘 돌보아 준다. 이제 파주골에서는 이린의 아내인 문나옥이 서애령을 보고서 그렇게 좋아한다.

둘이서 한참 수다를 떨다가 어느 사이에 나이가 몇 살 많은 문나옥을 서애령이 언니라고 부른다. 그러자 문나옥이 서애령을 자신의 동생으로 삼았다면서 일행에게 소개한다;

 

그 말을 들은 남자들이 모두들 박수를 치면서 좋아한다.

그때 서우진이 말한다; “우리 애령이는 참 복이 많구나. 개경에서 일찍부터 재녀로 소문이 난 재상 문극겸의 딸과 여형제가 되었으니 말이다… ”. 그리고 서애령에게 특별히 말한다; “애령아, 너는 문나옥 언니를 잘 돌보아 주도록 해라. 국경을 넘는 일이니 힘이 많이 들 것이다… “.

일행이 파주골을 벗어난다. 겉으로 보면, 이사를 가는 봇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로 보인다. 이삿짐이 많은 경우에는 우마차를 이용하겠지만 그렇지 아니한 경우에는 남부여대로 길을 떠난다. , 여자들이 짐을 머리에 이고 남자들은 어깨에 봇짐처럼 잘 싸서 크게 지고서 그렇게 이사를 떠나는 것이다. 참고로, 훗날 김홍도의 그림을 참조하면 다음과 같다;

 

파주골에서 개경 근방까지는 50리길에 불과하다. 그래서 한나절만에 그 근처까지 당도한다. 그러자 서우진이 무예선생인 김숙번의 짐을 벗겨서 자신이 대신 짊어진다. 여기서 헤어져야 하는 것이다. 김숙번이 나머지 제자들과 그 가족에게 아쉬운 작별을 고한다.

개경집으로 되돌아가고자 헤어지면서 김숙번이 제자들에게 당부한다; “북방에서 자리를 잡는 대로 연락을 주게. 훗날 나도 한번 방문을 하고자 하네. 나의 1대 제자인 조금강, 채고수, 그리고 김영웅 등도 보고 싶거든… “. 그의 2대 제자인 서우진과 이린이 똑같이 말한다; “,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부님… “.

개경에서 의주까지는 천리길이 조금 넘는다. 그 길을 봇짐을 지고 걸어서 가자면 20일이 족히 걸릴 것으로 보인다. 무거운 이삿짐을 지고서 그 먼 길을 가는 것이 고역이다. 그래서 서우진이 개경 근방에서 무예선생인 김숙번과 헤어지자 다른 방도를 사용하고자 한다. 그가 소달구지를 구해서 온 것이다;

서우진이 일행에게 말한다; “그래도 개경 인근이라고 이렇게 돈을 주니 황소와 달구지까지 판매하고 있군요. 소여물도 아예 많이 사서 실어 놓았으니 이제 소달구지에 짐을 싣고 이동합시다. 그것이 먼 길 가기에 편할 거예요… “. 벌써 저녁이 되었으므로 그들은 개경의 교외마을에서 주막집을 찾아 하루 묵고자 한다.

주막에서 일박을 한 후 일행은 소달구지를 몰고서 북쪽으로 이사를 간다. 개경에서 의주 남쪽 50리 지점까지 당도하는데 무려 18일이나 걸린다. 우마차가 다니기에 도로사정이 좋지가 않아서 하루에 그저 50리 남짓 이동한 셈이다;

 

 그런데 이제는 국경을 통과해야 하는 난관에 봉착한다. 그래서 주막에서 하룻밤 묵으면서 4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다.

먼저 서우진이 말한다; “의주성에 진을 치고 있다고 하는 장수 조금강에 대하여 제가 미리 알아본 바를 먼저 말씀 드릴께요. 그는 3년전에 숙부 조위총을 도와 평양성인 서경을 지키다가 그만 중방의 실력자 정중부가 보낸 토벌군에 의하여 대패를 당하고 의주성으로 피신했지요. 그런데 묘한 것은 그가 의주성을 지키면서 고려의 토벌군으로부터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

이린과 문나옥 부부 그리고 서애령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들이 생각해도 그 점은 이상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서우진이 설명한다; “문제는 금나라의 태도이지요. 금나라는 조위총의 원군요청을 거절하고 반대로 고려의 토벌군이 서경을 점령하는 것을 용인했어요... “.

서우진이 잠시 숨을 돌리고서 말한다; “하지만 지금 금나라는 압록강 하류에 위치하고 있는 의주성을 완충지대로 사용하고 있어요. 직접 여진의 장수와 고려의 장수가 국경에서 맞붙는 것을 예방하고 있는 조치입니다. , 조금강과 그를 따르는 고구려의 장수들을 활용하여 의주성에서 쉽게 고려의 북진을 막고자 하는 것이지요… “;

 

일단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어째서 꼭 조금강 장수가 그 일을 맡아야만 하는가? 금나라의 변방인 압록강 유역에도 여진족 장수들이 많이 있을 터인데?... ‘라는 생각 때문에 여전히 일동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을 보고서 서우진이 조그만 목소리로 말하고자 한다.

그가 은밀하게 설명한다; “여진족의 금나라는 벌써 거란의 요나라와 한족의 북송을 전부 집어삼키고 중원의 절반인 북쪽의 영토를 모두 다스리고 있는 그야말로 대국입니다. 여진족 장수의 수가 그렇게 많지 않는데 그 넓은 영토를 금나라가 지키자고 하니 인력난이 심각합니다. 그러므로 고려장수 가운데 믿음직한 자가 있다고 하면 국경수비를 맡기는 것이 상책이지요… “.

그 말을 듣자 이린이 질문한다; “그렇다고 하면, 조금강이 금나라와 연줄이 있고 그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는 것인데, 그 방법이 무엇일까? 혹시 그에 대하여 들은 바가 있어?... “. 서우진이 웃으면서 대답한다; “역시 린이가 예리하구나. 그래 맞아. 조금강 사형은 충분히 그런 인연이 있지… “.

서우진이 이어서 말한다; “내가 은밀하게 개경에서 그를 잘 아는 사람에게서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는 9년전에 무신의 반란을 진압하다가 실패하여 23세의 나이로 평양인 서경으로 피신하였는데 그때 이미 아내가 있었다고 해. 그 부인이 놀랍게도 여진족 명문가의 여식이야. 그 부인의 외교술로 의주성을 지키는 장군으로 금나라의 인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

그제서야 일동이 고개를 끄떡인다. 그것참 묘한 인물이다. 조금강 장군은 고려와 금나라 사이에 있는 완충지역 의주성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키우면서 생존하고 있는 것이다. 금나라에서는 그를 우군으로 보고 있지만 그의 속내가 어떠한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은 나중의 문제이고 당장은 서우진과 이린의 일행이 어떻게 고려의 국경을 은밀하게 통과하여 의주성으로 들어가느냐? 하는 것이다. 그 문제를 두고서 서우진과 이린은 국경 가까운 주막에서 벌써 이틀을 지체하면서 국경지대의 경비상황을 면밀하게 살피고 있다.

그런데 사흘째가 되는 날 돌발변수가 발생하고 있다. 갑자기 국경지대에 있는 군사들이 대거 남쪽으로 이동을 시작하고 있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 11799월에 고려의 개경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한 것일까?’, 그 의문이 곧 풀리고 있다. 청주출신의 청년장군 경대승이 은밀하게 정중부 부자를 습격하여 암살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중부를 지지하고 있는 중방의 장군들이 국경지대의 성주들에게 경대승 반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군대를 이끌고 개경으로 급히 들어오라고 지시를 했다고 한다. 서우진과 이린의 일행은 그 결말을 볼 여유가 없다. 지금 국경수비가 허술해진 틈에 빨리 고려를 탈출하여 의주 성을 차지하고 있는 조금강 장군에게 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국경지대의 주막에서 나흘을 머물고 그날 밤 그믐을 틈타서 봇짐을 나누어 이고 메고서 국경을 넘는다. 소와 달구지는 진작에 국경지대에서 헐값에 처분한 다음이다. 그런데 여진족의 땅으로 들어가는데 있어서는 서애령의 도움이 대단하다. 그녀가 산을 타고서 은밀하게 국경지대를 건너가면서 들리는 병사들의 소리를 예리하게 듣고 있다;

 

서애령의 뒤를 서우진과 이린 그리고 그의 아내인 문나옥이 무거운 짐을 지닌 채 조용히 따라간다. 그렇게 두 시진 정도 진행을 하자 산길 건너편에서 서애령이 은밀하게 말한다; “지금 들리고 있는 소리는 여진족의 말입니다. 고려병사들의 말소리가 일체 들리지 않고 있으니 산으로 하여 벌써 고려 땅을 벗어난 모양입니다… “.

그렇지만 서우진이 신중하게 대답한다; “애령아, 좀더 귀를 기울여보아라. 혹시 고려말이 들릴지도 모르니까?... “. 서애령이 대답한다; “제가 이 근방을 한번 정탐해 보겠어요. 확실하게 여진족의 병사인지 아닌지 파악을 해야지요”. 한식경을 기다리자 정탐을 나간 서애령이 돌아와서 말한다; “확실하게 의주성의 병사들이 맞아요. 이제는 큰 길로 나가면 되겠어요”.

마침내 서우진과 이린 일행이 의주성에 도착하게 된다. 그들을 만난 성주 조금강이 크게 기뻐한다. 서우진이 내민 무예선생 김숙번의 서신을 그가 읽었기 때문이다. 같은 무예선생에게서 배운 후배이다. 무예에 능한 장수가 더 많이 필요했는데 때마침 서우진과 이린이 잘 찾아와준 것이다. 믿을 수 있는 장수들이 찾아와 주었으니 조금강이 너무 좋아서 작지만 잔치까지 벌인다.

조금강은 서우진과 이린을 자신의 참모로 삼는다. 고려 쪽의 상황에 밝은 그들의 도움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참모인 그들에게 거처할 작은 집을 각각 제공한다. 이제 서우진과 이린은 의주 성에 일단 자리를 잡게 된다. 앞으로 그들의 앞날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