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비밀(손진길 소설)

王의 비밀3(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0. 25. 02:11

王의 비밀3(작성자; 손진길)

 

서우진은 절친인 이린과 눈빛교환을 한 다음에 무예선생인 김숙번에게 질문한다; “스승님, 만약 저희들이 고려 땅을 벗어나 북방으로 가서 큰 뜻을 펴고자 한다면 먼저 변방의 사정에 정통한 인물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저희들이 누구를 찾아가면 좋겠습니까?”.

그 말을 듣자 김숙번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대답한다; “옳은 말이다. 시행착오를 줄이자면 현지사정에 밝은 사람의 도움을 먼저 받는 것이 상책이지. 내가 아는 사람이 고려의 세력이 닿지 아니하고 있는 북방에 3명이나 있다. 너희들은 그들의 신상에 대하여 한번 들어보겠느냐?”.

의외의 말씀인지라 서우진과 이린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린은 5년전 송악을 탈출하기 전까지 5년간이나 김숙번 사부로부터 무예를 배웠지만 일언반구도 그러한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다. 더구나 서우진의 경우에는 2년 전까지 무려 8년 동안이나 김숙번으로부터 무예를 배웠으며 그 후에도 자주 문안을 드리고 교류를 계속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처음 듣는 이야기이므로 긴장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그렇게 의문에 싸여 있는 제자들의 표정을 보면서 김숙번이 빙그레 웃고 있다. 그러면서 서서히 무거운 입을 떼고 있다; “나는 너희 두사람을 제자로 거두기 전에 이미 3사람의 인물에게 오래 무예를 가르쳐서 고려의 장수로 만들었다. 그들의 이름이 조금강, 채고수, 그리고 김영웅이다. 그런데 그들은 무신정변이 있은 후에 모두 고려를 떠나고 말았다…”.

그 말을 듣자 역사에 밝은 기재 서우진이 날카롭게 질문한다; “무신정변은 지금으로부터 9년전인 1170년입니다. 그때는 동갑인 저나 이린이 16세로서 스승님에게 벌써 1년간 무예를 배우고 있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저나 이린은 그 세분의 동문 사형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했을까요? 그것이 좀 이상합니다”.

갑자기 김숙번이 으음하고 신음소리를 내면서 대답한다; “나는 그 3명의 제자에게 고려의 북진정책을 크게 돕는 뛰어난 장수가 되라고 가르쳤어. 그들은 나의 그러한 뜻을 받들어 5년간 나의 문하에서 열심히 무예를 익힌 후에 약관의 나이에 무과시험에 나란히 합격하여 고려의 장수가 되었어. 그것이 벌써 12년 전의 일이다”.

김숙번이 옛날 일을 회상하는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 다음에 이어서 설명한다; “하지만 문신들이 군권을 장악하고 있는 고려의 군부에서 그들은 제대로 뜻을 펼 수가 없었어. 더구나 문약해진 고려의 조정은 북벌을 단념한지 오래 되었지. 그들이 3년간 고려의 장수로 생활하고 있을 때에 무신정변이 발생했지… “;

 

잠시 숨을 쉰 다음에 김숙번이 계속 말한다; “그때 그들은 그래도 고려의 왕씨 왕조를 지키겠다고 정변을 일으킨 장군들에게 맞섰어. 그 결과 패전을 하고 하나같이 북쪽 국경 바깥으로 탈출하고 말았지그 가운데 조금강은 평양성인 서경으로 들어가서 숙부인 조위총을 도왔어. 왜냐하면 조위총이 1174년부터 1176년까지 서경에서 무신정권과 맞서고 있었기 때문이지“;

 

조금 뜸을 들인 다음에 김숙번이 이어서 설명한다; “조위총은 고려에서 병부상서와 서경유수를 겸임하고 있었기에 당시 군부의 실세였지. 하지만 자신의 허락도 없이 무신정변이 발생하자 발끈했어. 그래서 송도를 떠나 아예 서경으로 들어가서 기회를 엿본 거야. 마침내 동계와 서계 40성읍의 지지를 얻어 1174년에 반란을 일으켰으나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어... “.

서경반란의 상세한 사정을 들으면서 서우진과 이린이 큰 관심을 기울인다. 그것을 보고서 김숙번이 계속 말한다; “그래서 조위총은 북방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에게 지원을 요청했는데 그것마저 허사가 되고 말았어. 금나라가 조위총보다는 고려의 무신들과 결탁을 했기 때문이야”;

김숙번이 서경반란의 결말을 말한다; “그 결과 그만 1176년에 서경이 함락되고 조위총도 죽고 말았지. 그러자 조금강은 서경을 탈출하여 고려와 금나라의 국경지대에 자리를 잡았어... 조금강은 고려와 거대한 금나라에 원수를 갚겠다고 절치부심하고 있어. 지금 그는 의주지역에서 사병을 가진 호족으로서 자신의 세력을 한창 키우고 있는 중이야…”;

 

처음 듣는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그래서 서우진과 이린은 숨소리조차 내지 아니하고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김숙번이 이어서 말한다; “역시 30대 초반인 채고수김영웅은 멀리 북방 여진의 땅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금나라의 변방이라 아직 토호들의 세력이 강해. 내가 최근에 그들의 소식을 들었는데 채고수는 백두산 남쪽 개마고원의 여진 땅에서 군벌이 되어 있다. 그리고 김영웅은 두만강 남쪽 함경도 지역에서 여진족을 정벌하고 나름대로 조그만 나라를 세우고 있다고 한다…”;

 

그 말을 듣자 서우진과 이린이 깊은 생각에 빠진다; “함경도 지역에서 무위를 떨친 김영웅 사형은 벌써 그곳의 여진족을 정복하고 자신의 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왕이 되어 있다고 한다. 비록 여진족을 다스리고 있지만 그들 여진은 본래 발해의 백성인 말갈족의 후예가 아닌가? 그렇다면 그 옛날 고주몽이나 대조영과 다름이 없는 영웅이 바로 사형이다… “;

 

그래서 서우진이 무예선생인 김숙번에게 말한다; “비록 김영웅 사형의 나라가 규모는 작다고 하더라도 그가 하나의 왕국을 세운 것은 사실이군요. 그렇다면 그는 그 옛날 발해를 세운 대조영과 같은 일대 영웅이며 왕국의 창건자가 아닙니까? 환언하면, 사형의 김씨 왕조가 함경도 여진의 땅에서 벌써 세워진 것이군요.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일까요?”.

김숙번이 웃음기를 띄면서 대답한다; “무신정권이 만약 그 사실을 고려의 귀족과 백성들에게 곧이 곧 대로 알리게 된다고 하면 큰 혼란에 휩싸이고 말 것이다. 고려의 무신정권에 반대하는 백성들이 야반도주를 하여 북방 김영웅의 왕국으로 갈지도 모를 일이야. 지금도 고려의 장수들이 암암리에 의주의 조금강의 군대에 계속 합류하고 있는데 동북면의 백성들마저 그렇게 떠나가게 되면 고려의 안보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거지…”.

마침내 김숙번이 결론을 내린다; “그러니 고려의 조정은 사력을 다하여 그 사실을 귀족들과 백성들에게 숨겨야만 하는 거야그 결과 고려의 귀족과 백성들은 의주지역에 조금강의 세력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을 자세히 모르고 그저 압록강 이북에는 여진족의 거대한 금나라가 있으며 두만강과 압록강 유역은 전부 여진족의 땅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는 거지… ”.

그 말을 듣자 이린이 딱 한마디를 한다; “그들도 저와 마찬가지로 우물안의 개구리와 같은 신세이군요. 하지만, 이제는 깊은 우물을 빠져나와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야만 할 때인가 봅니다. 스승님 고맙습니다. 그 말씀에 제자의 안목이 비로소 넓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저도 파주골이라고 하는 은신처를 탈출하여 북방으로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이린의 말을 들은 서우진이 자신의 결심을 밝힌다; “이린이 스스로 무신정권이 다스리고 있는 고려의 국경 북쪽으로 탈출을 하겠다고 하면 그의 절친인 제가 당연히 그를 도와야 하지요. 함께 가겠습니다. 그러니 스승님께서 의주의 조금강 사형에게 저희들을 부탁한다는 서신을 적어 주십시오”.

그 말을 듣자 김숙번이 반갑게 말한다; “그야 당연한 일이지. 그리고 차제에 내가 너희들에게 두 통의 서신을 더 적어주마. 하나는, 개마고원의 군벌인 채고수에게 전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여진족 작은 나라의 왕이 된 김영웅에게 주는 것이다. 그 서신을 잃어버리지 말고 부디 사형들의 도움을 아낌없이 받도록 해라. 나중에 인연이 있으면 나도 그들을 찾아보고자 한다… “.

역시 20대 중반의 나이인 서우진과 이린은 아직도 몸이 뜨거운가 보다. 그들은 큰 야망을 청운의 꿈으로 품고 이제 먼 길을 떠날 결심을 굳히고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김숙번이 생각한다; “나도 불혹의 나이가 되지 않고 청년의 나이라고 한다면 벌써 그들처럼 결단을 내리고 북방 여진의 땅으로 들어가서 나의 나라를 세웠을 것인데이제는 그러한 용맹이 사라지고 없으니 그것이 안타까운 노릇이구나…”.

반면에 서우진과 이린은 그날 밤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다. 서우진은 그저 송도에서 편하게 귀족생활만 즐기고 있어서는 안된다고 이제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린은 더 이상 고려에서 도망자로 살지 말고 북쪽 여진의 땅에 들어가서 새로운 삶을 진취적으로 일구어 보고자 한다. 앞으로 어떠한 험한 일이 그들의 앞에 가로놓여 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대장부의 길을 가고야 말 것이라고 야무지게 마음을 다지고 있는 것이다.

그날 밤 이린은 잠자리에서 아내 문나옥에게 무예선생 김숙번에게서 들은 이야기와 자신의 결심을 밝힌다. 그리고 절친 서우진도 자신과 행동을 함께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문나옥이 말한다; “저는 당신 뜻을 따를 거예요. 제가 당신에게 시집을 오기 전에 친정 아버지가 벌써 말씀하셨어요. 당신의 관상이 거대한 일가를 이룰 상이니 그 뜻을 따르라고 그랬어요. 그러니 아무 염려마세요…”.

이린은 아내가 고마워서 꼬옥 껴안는다. 자신에게 시집을 와서 그만 도망자신세가 되어 5년간 시골 아낙네로 살아오고 있는 아내 문나옥이다. 재상의 딸로 태어나서 모진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 모두 이린 자신의 탓인 것만 같다. 이제 북방 여진족의 땅으로 들어가게 되면 또 어떠한 고생을 할 것인가? 하지만 아내를 두고 이린은 혼자서 그 길을 갈 수가 없다.

그들 젊은 부부는 아직도 자식이 없다. 6년의 세월을 함께 살았는데도 무자식인 것이 누구의 탓인 것일까? 이린은 자신의 탓인 것으로 생각되어 늘 아내에게 미안해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막상 북방으로 국경을 넘어 갈 생각을 하고 보니 그것이 오히려 다행으로 여겨진다. 슬하에 자식이 없으니 홀가분하게 부부가 월경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다음날 동이 트자 문나옥이 없는 살림이지만 한상 가득하게 차려낸다. 숨어서만 지내고 있는 자신들을 찾아와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도록 길을 안내하고 있는 무예선생 김숙번이 고마운 것이다. 또한 함께 여진의 땅으로 들어가겠다고 결심을 밝혀준 절친 서우진에게 감사하기 때문이다;

시골 밥상이지만 정성을 다한 그 조반을 들면서 김숙번이 말한다; “허허, 산이 깊은 파주골에서 이러한 상을 받고 보니 마치 생일상을 받은 것과 같구나. 우리 두사람이 이집을 떠나가고 나면 그때부터 젊은 부부가 며칠 굶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니 우진아, 네가 오늘 밥값을 넉넉하게 잘 치루도록 해라”.

그 말을 듣자 서우진이 얼른 대답한다; “스승님, 아무 걱정 마시고 많이 드십시오. 제가 노자돈을 두둑하니 챙겨 가지고 왔습니다. 은전꾸러미가 너무 무거워서 오늘 이집에 좀 풀어놓고 가볍게 송악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김숙번이 다시 말한다; “역시 돈 많은 귀족을 제자로 두고 있으니 이 무술선생이 호강을 다 하는구만, 하하하…”.

그 말을 들은 서우진이 하하라고 웃는다. 그러자 이린과 문나옥 부부가 하하, 호호라고 따라서 웃는다. 그렇게 조반을 잘 먹고 있는 이린의 외딴 초가집에 오늘따라 여름을 달구고자 하는 아침해가 벌써 떠올라 붉은 열기를 뿜어내고 있다;

 

그 식사가 끝나면 그들 3사람은 과연 어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