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비밀(손진길 소설)

王의 비밀4(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0. 25. 13:43

王의 비밀4(작성자; 손진길)

 

무예선생인 김숙번과 그의 제자인 서우진 및 이린이 맛있게 아침식사를 마치자 숭늉을 가지고 이린의 아내인 문나옥이 사랑방으로 들어온다. 이제 3사람이 숭늉을 다 마시고 나면 문나옥이 조반상을 들고서 부엌으로 나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자 김숙번이 대뜸 문나옥에게 말한다; “부인께서는 잠시 사랑방에 앉아서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을 남편과 함께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두 분의 신상에 관한 말씀이기 때문이지요… ”. 스승인 김숙번이 제자의 아내인 문나옥에게 하대를 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그녀가 재상인 문극겸의 딸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귀를 기울이고 있자 김숙번이 담담하게 말한다; “어제 우리 3사람은 사제지간에 밤 늦게까지 앞날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결과 이린이 더 이상 이곳 파주골 외딴집에 숨어서 지내는 것이 아니라 북방 여진족의 땅으로 들어가서 큰 꿈을 한번 펼치는 것이 옳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문나옥은 남편 이린으로부터 간밤에 들은 이야기와 같은 것이므로 놀라지를 않는다. 그러자 김숙번이 이어서 말한다; “그러므로 부인은 남편과 함께 이곳의 재산을 정리하여 간편하게 품에 품고 먼 길을 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 나와 서우진이 함께 개경으로 돌아갔다가 보름후에 다시 여기로 올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북행길에 나서도록 하지요…”.

이제는 서우진이 보충설명을 한다; “저는 린이와 함께 여진 땅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부인이 함께 동행하는 걸음이므로 저도 여인을 한사람 같이 데리고 오겠습니다. 스승님께서는 여기서 개경 근방까지만 동행하시고 다시 송악으로 돌아가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진 땅에서 자리를 잡는데 필요한 재물은 제가 마련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상당히 치밀한 계획이다. 그래서 김숙번과 이린 그리고 문나옥이 동시에 고개를 끄떡인다. 충분히 알아 들었다는 표시이다. 그 모습을 보고서 김숙번이 일동에게 말한다; “생각은 길어야 하지만 일단 결정이 되면 행동은 빨라야 합니다. 그러니 저희 두사람은 이제 개경으로 되돌아가고자 합니다. 정확하게 보름후에 이곳에서 다시 만나도록 하지요”;

 

문나옥은 집안에서 배웅을 하지만 이린은 동구밖까지 따라 나오려고 한다. 그것을 보고서 서우진이 만류한다; “린아, 너는 이곳에서 신분을 숨기고서 살고 있는 처지이니 그만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려무나. 괜히 우리를 배웅하다가 동네사람들의 눈에 뜨이게 되면 좋을 것이 없다. 정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각별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 ”.

이린이 아쉽게 사립문에서 손을 흔든다. 서우진은 김숙번과 함께 잰 걸음으로 이린의 집을 벗어난다. 그리고 초가집들이 몰려 있는 마을을 지날 때에는 느릿느릿 마치 유람객처럼 행동한다. 언뜻 보면, 파주의 감악산에서 내려오는 여행객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급하다. 빨리 송악으로 돌아가서 이린을 도울 채비를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개경의 성문을 들어서자 김숙번과 헤어진 서우진이 북쪽 궁궐 동편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곧장 가지를 않는다. 서우진이 걸음을 되돌려 성문 가까이에 자리를 잡고 있는 남촌마을로 들어간다.

그 남촌마을에는 북촌 고관대작들의 식읍을 관리하고 있는 마름들이 주로 살고 있다. 서우진의 식읍은 철원에 있는 천석지기 전답이다. 그것을 서우진을 대신하여 관리하는 마름이 천서방인데 그가 그 동네에 살고 있는 것이다. 오후 늦은 시간이라 마침 천서방과 그의 아내인 철원댁이 집에 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자신의 집을 찾은 젊은 주인나리이다. 그래서 천서방 내외가 무슨 일인가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깍듯하게 맞이한다. 서우진이 천서방 내외에게 말한다; “나는 사부님을 모시고 설악산 유람을 좀 다녀오려고 합니다. 가는 걸음에 우리 달성 서씨의 고향인 달구벌도 한번 찾아보고 오려고 합니다. 그러니 한두 달 걸릴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천서방이 걱정스럽게 서우진에게 여쭙는다; “한두 달 장기로 출타를 하시면 가을걷이가 끝나야 개경으로 다시 오실 텐데, 그렇다면 금년 추수는 어떻게 처리를 할까요?... “. 서우진이 시원하게 대답한다; “평소 하던 대로 천서방이 책임을 지고 추수를 감독하고 소작료를 받아 곡간에 잘 저장을 해두세요”.

천서방이 알아 들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떡이는데 그 옆에 서있던 그의 아내 철원댁이 말한다; “주인나리, 그러면 저택에는 애령이가 남아서 그 사이 혼자서 집을 돌보게 되는 것입니까?”. 서우진이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한다; “마침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철원댁이 잘 물었습니다… “.

서우진이 정확하게 말한다; “이번에 나는 애령이를 데리고 함께 여행에 나서고자 합니다. 장기간 여행이라 지고가야 할 짐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수고스럽겠지만 철원댁이 우리집에 자주 들러서 잘 관리를 해주세요. 그 수고비는 나중에 내가 넉넉하게 드리겠습니다… ”.

그 말을 듣자 철원댁의 입에 웃음기가 어린다. 천서방도 좋아한다. 왜냐하면, 평소 후덕한 지주로 소문이 나 있는 서우진이다. 그는 식읍인 철원의 전답을 부치고 있는 소작농들에게 소작료를 남들보다 적게 거두어들인다. 그러니 그의 마름인 천서방이 처가동네의 소작농들에게 덩달아 인심을 얻고 있는 것이다.

그의 아내인 철원댁도 친정과 일가들에게 좋은 일을 하고 있는지라 고향에 가면 칙사대접을 받고 있다. 그런데 또 지주인 서우진이 자신의 저택관리를 잘해주면 그 보상까지 주겠다고 약속하니 참으로 기분이 좋은 것이다. 그렇게 조치를 한 다음에 서우진이 들린 곳은 송도의 상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중부의 동네이다;

그곳 상점가에서 큰 싸전을 경영하고 있는 오서방을 찾는다. 40대 중반인 그는 돈을 많이 벌어서 그런지 좋은 옷을 입고 있다. 그를 만나자 단도직입적으로 서우진이 말한다; “여보게 오서방, 이번에 내가 필요해서 그러니 맡겨 놓은 돈 가운데 은화로 100냥을 주게나”. 오서방이 깜짝 놀라면서 되묻는다; “그렇게 큰 돈이 금방 필요하십니까?’.

서우진이 고개를 끄떡인다. 그러자 오서방이 말한다; “나리께서 수년간 저의 싸전에 맡겨 둔 곡식이 은화로 따지면 천냥 정도 됩니다. 그 가운데 10분의 1이니 제가 빨리 마련하여 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정말 오서방은 그 상점골목의 큰손이다. 반시진도 지나지 아니하여 그 큰 돈을 마련하여 온다.

자신의 집에 들린 서우진을 애령이 반갑게 맞이한다. 그러자 서우진이 애령에게 사랑방으로 잠시 들어오라고 말한다. 다소곳이 사랑방 문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애령에게 서우진이 말한다; “애령아, 네가 나와 함께 생활한지가 벌써 5년이나 된다. 그동안 나는 너의 정체에 대하여 한번도 질문을 한 적이 없다. 그렇지 않느냐?”.

애령이 갑자기 긴장한다. 평소 그러한 말씀을 한 적이 없는 서우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그만 목소리로 그냥 , 나으리라고 말한다. 그러자 서우진이 말한다; “내가 개경 상점가에서 너를 처음 만났을 때에 너는 거지꼴을 하고 있었고 나에게 이름이 단지 애령이며 15세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20살의 처녀이겠구나 그렇지?... “.

이번에도 애령이는 , 그래요라고 간단하게 대답만 한다. 그러자 서우진이 말한다; “나는 그동안 보지 않는 척하면서도 애령이 너의 행동을 주시했다. 그 결과 몇가지 사실을 내 나름대로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네가 여진족의 말과 행동에 익숙하다는 것과 상당한 무예를 익히고 있다는 것이다. 내 말이 맞지 않느냐?...”.

그 말을 듣자 애령이 서우진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대답한다; “나으리, 그 말씀이 모두 맞습니다. 본래 저는 여진족 추장의 딸이고 어려서부터 고려말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무예도 익혔습니다. 그래서 5년전 상점가에서 나리의 돈주머니를 채어가는 소매치기를 손쉽게 제압했지요. 그 결과 나리의 눈에 들어 지금까지 이집에서 나리를 모시면서 호위무사의 일까지 맡고 있습니다”.

서우진이 웃으면서 말한다; “그래, 처음으로 너의 신분에 대하여 내가 묻고 있구나. 그동안 애령이 너에게 무심한 척 대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고아와 다름이 없는 나는 애령이 너를 친동생처럼 여기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러니 차제에 내게 말해다오. 어째서 15세의 처녀가 거지꼴이 되어 5년전에 개경에 나타난 것이냐?”.

이번에는 애령이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한다; “저의 이름은 야율애령입니다. 부친이 개마고원 일대에 큰 세력을 떨치던 야율 족장이었지요. 그런데 북송을 쳐부순 금나라가 만주 변방으로 군대를 보내어 기타 여진족을 규합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저의 부친이 대항을 했다가 멸문지화를 당했지요. 저는 겨우 도망을 쳐서 개경까지 남하를 한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서우진이 잠시 눈을 감고 깊이 생각한다. 그러더니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렇다면 좋다. 내가 애령이 너의 신분을 바꾸어 주겠다. 그것이 앞으로 네가 이곳 고려에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거야. 너의 이름을 이제부터 서애령이라고 부르겠다. 그리고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친척 오라비인 나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는 재종 여동생이라고 남에게 소개하겠다. 그렇게 알고 앞으로 나와 오누이처럼 행동을 같이 하겠느냐?... “.

그 말을 들은 애령이 맹랑하게도 미소를 띄고서 서우진을 깊숙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면서 한마디로 야무지게 대답한다; “저는 나리를 모시고 이집에 살면서 벌써 한가지 결심을 하고 있습니다. 평생동안 주인님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제가 모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종이 되었든지 먼 친척 여동생이 되었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나으리 옆에서 평생 함께 살 수만 있게 해주세요… “.

그 말을 듣자 서우진이 아차한다. 애령이 벌써 20세의 완전한 처녀인 것이다. 시집을 가고도 남는 나이이다. 그런데 한번도 그녀가 자신의 혼사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다. 그리고 어쩌다 서우진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미 종의 시선이 아니라 여인의 시선인데 그것을 서우진이 애써 외면하고서 살아온 것이다.

그래서 서우진이 후유라고 한숨을 쉬면서 말한다; “애령아, 내가 너에게 새로운 신분과 이름 서애령을 준 것은 평생 네가 원한다면 내 곁에 귀족의 일가로 두기 위한 것이고 또 만약 네가 원한다고 하면 나의 친척 여동생으로서 좋은 곳에 혼처를 마련해주기 위한 것이다. 그 가운데 네가 나를 선택했으니 내가 앞으로 그렇게 알고 너를 대하겠다. 그래도 되겠느냐?... “.

이제 서애령이 된 그녀가 대답한다; “나으리께서 아직도 결혼하지 아니하고 혼자서 지내시는 이유를 소녀는 알 것만 같습니다. 그것은 그 곁에 제가 있기 때문이지요. 나으리의 마음이 그렇다고 하면 저는 평생 그 옆자리에 함께 있기를 원합니다. 저도 이곳 개경에서 나으리만큼 제 마음에 드는 남자가 없습니다. 그러니 처첩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좋습니다. 그냥 옆에서 모실 수만 있게 해주세요. 호위무사로도 좋습니다… “.

그 말을 듣자 서우진이 결단을 내린다;; “좋다. 그러면 애령이 너는 지금부터 직책을 나의 호위무사로 하고 족보는 여진족이 아니라 나의 먼 일가로 하자꾸나. 남에게 내가 그렇게 소개를 시키마. 그리고 내가 열흘쯤 후에 이곳 개경을 떠나서 장차 북방 여진족 땅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그러니 그렇게 알고 나와 함께 행동할 준비를 하려무나… “.

그 말을 들은 애령이 질문한다; ‘나으리, 그러면 이 저택의 관리는 그 사이 누가 맡게 되나요?”. 서우진이 웃으면서 대답한다; “성문 가까이 살고 있는 천서방 내외에게 벌써 말해 두었다. 그들이 이 집을 잘 관리해 줄 것이니 걱정하지 아니해도 된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움직일 여비는 내가 벌써 충분히 구해 놓았으니 걱정하지를 말고 여행 차비를 가볍게 꾸리도록 해라”.

애령이 잘 알겠습니다, 나으리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서우진이 애령이를 방에서 내보내고 자리에 눕는다. 피곤이 몰려온다. 파주골에서 개경까지 걸어오고 또한 두가지 볼일까지 하루만에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애령이에게 중요한 이야기도 하였으니 그것으로 급한 준비는 끝낸 셈이다.

서우진은 보료에 누워서 한가지 생각을 한다; “나는 애령이의 행동을 주의 깊게 그동안 살펴보았다. 그녀가 야간에 마당에서 무술연마를 하는 것을 여러 번 훔쳐보았다. 그녀는 벌써 상당한 경지의 무술을 익히고 있으며 그 연습을 매일 거르지 아니하고 있다. 그 이유는 부모와 부족의 원수를 갚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 “;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있다; “복수심에 불타는 애령이를 이번에 여진 땅으로 데려 가는 것이니 그 훗날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녀 앞에서는 내가 무술을 크게 잘하지 못하는 것으로 계속 위장을 하는 것이 좋을까?... 애령이를 속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쓰이지만 그래도 나의 실력을 절반만 사용하고 진짜 실력을 숨기는 것이 옳을 것이다. 내 실력을 모두 펼치게 되면 사람들이 놀라게 될 것이니… “.

서우진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그가 개경의 고서점에서 발견한 한가지 기이한 책자 때문이다. 그 고서에는 호흡을 하는 방법과 근육을 강화하는 방법 그리고 순간적으로 무서운 힘을 발휘하는 방법 등이 소상하게 설명이 되고 있다. 그렇지만 한가지 주의사항이 적혀 있다; “이 방법대로 수련하는 자는 남에게 상당부분의 실력을 숨기는 것이 좋다. 모두 공개하게 되면 이 책자를 얻고자 하는 무인들의 공적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실로 광오한 주의사항이 붙어 있기에 7년전에 그 책자를 구한 서우진이 진짜 그러한 실력을 가질 수 있는지 궁금하여 혼자서 산을 찾아가 은밀하게 연습을 계속했다;

 

그 결과 7년이 지난 지금은 자신이 스스로 놀라고 있다. 무서운 공력이 무술을 통하여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우진은 스스로 자신의 실력의 절반까지만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특히 애령이 앞에서는 별로 무술을 못하는 샌님처럼 행동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은 무술의 습득이 느리기에 8년간이나 무예선생 김숙번을 찾고 있는 것으로 그녀에게 둘러대고 있다. 그 말을 듣고서 애령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나으리는 자신이 지켜주어야 안전하다고 그녀가 믿고 있으며 그 일을 더 잘하기 위하여 밤마다 무술수련에 정진하고 있는 애령이다. 그러한 저간의 사정을 다시 생각하다가 그만 서우진에 곤한 잠에 빠지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