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의 비밀7(작성자; 손진길)
무예선생인 김숙번의 집은 개경의 서부지역에 자리를 잡고 있다. 서문에 해당하는 오정문이 가까운 지점이다. 그 문을 통과하여 개경을 벗어나게 되면 두문동으로 들어가는 산길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옛적에 서우진과 이린이 김숙번을 사부로 모시고 무예를 배울 때에 두문동 산지에 들어가서 수련을 많이 했다;
2달만에 제자인 서우진이 개경에 돌아와서 사부인 자신에게 경과보고를 하자 김숙번이 그렇게 좋아한다. 특히 서우진은 이린과 함께 고려의 국경을 무사히 통과하여 의주성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사형 조금강 성주를 만났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린이 성주의 정보참모가 되어 그곳에서 살게 되었다는 보고까지 한다. 그러자 김숙번이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서우진이 생각한다; “사부는 제자들을 마치 자신의 아들처럼 아끼고 있구나. 그러니 이린 내외가 무사하다는 말씀을 듣고서 저렇게 기뻐하는 것이지… 좋은 사부이다… “. 문득 김숙번이 서우진에게 묻는다; “우진이 너를 개경으로 들여보낸 것을 보니 성주인 조금강이 고려의 조정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매우 궁금한 모양이구나. 그래 정보수집은 좀 했느냐?... “.
서우진이 솔직하게 답변한다; “제가 들은 정보는 청년장군 경대승이 군부의 협의체인 중방의 세력을 약화시키면서 동시에 국왕을 잘 보필하도록 문신의 수를 늘리고 무신과의 균형을 취하도록 정치개혁을 하고 있다는 정도입니다. 그러고 보면 26세의 청년장군 경대승이 보통인물이 아닌 모양입니다… “.
그 말을 듣고서 고개를 끄떡이던 김숙번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대승은 보통인물이 아니지. 특히 그의 부친인 경진이 재상 아래 벼슬인 중서시랑평장사를 지냈어. 경진은 아들 경대승이 무예에 뛰어난 사실을 일찍 간파하여 그를 15세에 조정에 추천하여 교위로 삼았지… “;
제자인 서우진이 굉장히 흥미를 보이자 김숙번이 신이 나서 설명한다; “무예선생인 나는 고려의 무반에 대하여 많이 아는 편이야. 그 가운데 경대승은 진짜 청년장군이 된 인물이지. 왜냐하면, 무예에 뛰어난 경대승이 출사한지 10년만인 작년에 25세의 젊은 나이로 일약 장군으로 승진하였거든… “.
잠시 말을 끊었다가 김숙번이 이어서 설명한다; “그런데 출세가 너무 빠르니 군부의 견제를 받은 거야. 그가 지방의 분규를 해결하는 사심관의 일을 제대로 못했다는 이유로 그만 중방에서 그의 옷을 벗기고 말았어. 그것이 작년말의 일이지. 그러자 경대승은 고향인 청주로 낙향하여 군부의 권력기관인 중방에 불만이 있는 젊은 세력을 끌어 모았어… “.
정말 흥미진진한 이야기이다. 서우진이 눈도 깜박이지 아니하고 경청한다. 그러자 김숙번이 상세하게 설명한다; “허승과 김광립이 이끄는 무사단 30여명을 동원하여 경대승이 정중부 부자를 암습하여 살해하고 일시에 정권을 차지했어. 그것이 지난달인 금년 9월의 일이야... “;
김숙번이 경대승의 정치개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는 영리하게도 국왕의 권력을 되찾아준다는 명분으로 중방의 위세를 누르고 문관을 대거 등용하여 무관과 균형을 취하게 했어. 그것이 정치개혁이지. 그런데 지난 9년간 권력 맛을 본 군부가 계속 소장파를 대표하는 경대승에게 눌려서 지낼 것으로는 보이지가 않아. 그것이 앞으로 고려의 가장 큰 문제거리일 거야… “.
이어서 김숙번이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그리고 정변을 일으킬 때에는 서로 동지가 되고 협력을 하지만 막상 권력을 쥐게 되면 하나뿐인 대권을 서로 차지하기 위하여 내분에 휩싸이게 되지. 경험이 부족한 경대승과 그의 친구들도 그러할 것으로 보여. 그러므로 청년장군 경대승의 경치개혁이 그 열매를 얻기가 힘들 것으로 나는 보네“.
그 말을 듣자 서우진이 말한다; “사부님의 경륜을 빌리자면, 경대승이 곧 내분에 휩싸일 것이고 그 와중에 그의 숭고한 정치개혁은 한계상황을 맞이하고 만다는 것이군요. 그렇다면 경대승을 중심으로 고려의 조정이 일치단결하여 고려의 내정을 쇄신하고 국방을 튼튼히 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는 말씀이군요”.
김숙번이 웃으면서 대답한다; “어떻게 우진이 너는 나보다 더 결론을 잘 내리고 있구만. 그래 그것이 바로 내가 내다보고 있는 앞으로의 고려의 정치에 대한 전망이야. 이제 경대승 장군에 대한 공부가 충분히 되었겠지?... “. 그 말을 들은 서우진이 허리를 굽혀서 사부에게 사의를 표한다. 김숙번의 정세판단이 상당히 예리하기 때문이다. 역시 병서에 밝은 사부이다.
무예선생 김숙번을 만나고 집에 돌아온 서우진이 깊은 생각에 빠진다. 그는 ‘어떻게 하면 사부가 말한 내용을 검증할 수가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검증이 되어야 정보를 기록하여 의주성으로 보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자면 경대승의 지휘를 받아 반란에 성공한 무사를 은밀하게 만나는 것이 상책이다. 그래서 다음날부터는 그 일에 매어 달릴 생각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개경의 상점거리에 나가서 서우진이 한바퀴를 돌고서 주막에서 국밥을 시켜 넓은 평상에서 먹고 있을 때에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주위에서 크게 들린다. 한사람의 날렵하게 생긴 무사를 중심에 모시고 여러 무인들이 그에게 잘 보이고자 애를 쓰고 있다.
그러자 그 무사가 자기자랑을 늘어지게 한다; “내가 지난달에 큰 공을 세웠어. 경대승 장군도 이제는 나를 무시하지 못할거야. 정중부의 아들 정균을 치는데 나도 한칼을 보탰거든… 내 칼에 맞고 볏단처럼 정균이 쓰러졌지… 뭐, 별것이 아니더구만… 하하하… “.
천하의 권력자인 정중부의 아들 정균을 자신이 쓰러뜨렸다는 주장이다. 주위의 무인들이 그 말을 듣고서 그 무사의 솜씨를 마치 자신들이 본 것처럼 칭찬하고 있다. 세태가 그런 모양이다. 난세가 되면 승자의 편에 붙어서 출세를 꿈꾸는 자들이 부지기수이다.
그 모양을 옆에서 지켜보던 서우진이 큰소리로 한마디를 한다; “허허, 노형이 그 정도로 빼어난 무술실력을 지녔다고 하면 어떻게 무인들이 당신의 명성을 그동안 듣지를 못했을까요? 나는 그 점이 이해가 되지를 않습니다. 그렇게 대단한 공을 세운 당신의 대명은 도대체 무엇이요? 그 이름을 알아야 우리가 경대승의 부하들에게 가서 당신 말이 사실인지 물어볼 것이 아닙니까?”.
서우진의 말을 듣고 그 무사가 참지를 못한다. 그래서 큰 소리로 말한다; “어느 놈이 감히 경대승 장군의 실세가 된 나를 욕보이고자 하느냐? 내 이름이 허적이다. 그래 경대승 장군의 집에 가서 누구나 붙들고 물어 보아라. 모두들 나를 알 터이니… 그러면 너는 나하고 같이 지금 당장 경대승 장군의 집으로 함께 가자꾸나”;
그 허적이란 인물은 말도 빠르지만 행동도 기가 막히게 날렵하다. 당장 서우진에게 쇄도를 하더니 어느 사이에 멱살을 잡는다. 그리고 완강한 힘으로 당긴다. 서우진이 반항을 하지 아니하고 그에게 몸을 맡긴 채 끌려간다. 그 모습을 보고서 주위의 무인들이 박장대소를 하면서 말한다; “이제 저 사람 큰 일이 났구만. 우리 허적 성님의 비위를 건드렸으니 말이야... 우리 따라가서 구경이나 하자고… “.
개경 중부에 있는 상점거리에서 북촌 초입 동편에 있는 경대승의 저택까지는 크게 먼 거리가 아니다. 그렇지만 멱살을 잡힌 채 끌려가고 있는 서우진의 입장에서는 곤욕이다. 그러나 그는 반항하지를 않는다. 어차피 그 허적이란 무사가 진짜 경대승의 30여명의 부하 가운데 하나인지를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경대승의 저택의 주위에는 두겹으로 무인들이 둘러싸고 있다. 마치 철옹성과 같다. 그 모습을 보고서 끌려가는 중에도 서우진이 생각한다; “벼락치기로 정변에 성공을 하기는 했지만 그 세력이 약한 것이다. 그래서 경대승 장군이 신변의 위협을 느껴서 이렇게 호위무사들을 수없이 배치하고 있다. 이거 정치개혁이 쉽지가 않겠는데… “.
저택의 대문에 대고서 허적이 외친다; “나는 경대승 장군을 모시는 무사 허적이다. 대문을 열어 주시오”. 그 말이 떨어지자 그 큰 대문이 서서히 열리고 있다. 그러자 허적이 여전히 서우진의 멱살을 잡은 채 그 대문안으로 성큼 들어선다. 그를 따라오던 무인들은 입장이 거부된다. 오로지 허적과 서우진 뿐이다.
마당에 들어서자 허적이 단숨에 서우진을 팽개친다. 그러면서 말한다; “여러 동지들, 오늘 개경 시내의 주막에서 이 사람이 나를 모욕했오. 지난 달 거사에 내가 아무 공이 없다고 이 자가 말한 것이요. 그리고 나 허적이 과연 공이 있는지를 경대승 장군의 저택으로 가서 한번 증명을 해보라고 나에게 야유를 한 인물이요. 동지들, 이 놈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소.. “.
그때 안방에서 문이 열린다. 그리고 젊지만 덩치가 큰 무사가 마당으로 나온다. 그가 나오는 것을 보고서 마당에 경비를 서고 있던 무사들이 모두 군례를 한다. 서우진이 보기에 이번에 거사를 한 인물 가운데 상당히 지위가 높은 것 같다. 그 인상이 지모도 있어 보이고 예리해 보인다;
그가 허적과 서우진을 보더니 큰소리로 말한다; “나는 경대승 장군과 뜻을 같이하여 이번에 역신들을 참한 김광립이요. 허적은 내 수하이며 지난번 거사에서 큰 공을 세웠오. 그는 곧 높은 벼슬을 얻게 될 것이요. 그런데 그러한 내 부하 허적을 깔보고 있는 당신은 누구요?... “.
서우진은 김광립의 이름자를 사부인 김숙번에게서 들은 기억이 난다. 그래서 얼른 마당에서 무릎을 꿇고서 사죄를 하면서 말한다; “아이쿠, 이거 제가 김광립 장군의 수하인줄 모르고 큰 실례를 했습니다. 요즈음 개경 시내의 주막집에서 자신이 지난번 거사에서 큰 공을 세웠다고 떠드는 허풍쟁이들이 하도 많아서 제가 그만 실수를 했습니다. 부디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
서우진이 두손바닥을 비비면서 구명을 위하여 애걸하는 시늉을 한다. 그 모습을 보더니 김광립이 ‘하하’라고 웃으면서 허적에게 말한다; “허적, 너는 진짜이지만 요즈음 개경시내에는 우리들의 이름을 도용하고 있는 가짜들이 많이 있는 모양이다. 그것이 인기이고 유명세인 모양이야. 그러니 이 자는 그만 용서를 해주도록 하려무나, 하하하… “.
통쾌한 웃음소리이다. 그 소리를 듣자 허적이 허리를 반쯤 굽히면서 말한다; “장군님의 분부를 받들어 제가 오늘은 이놈을 용서하겠습니다. 저의 공을 인정해 주시니 장군님께 이 허적은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으리… “. 김광립이 마당에 나온 김에 경비상황을 점검하고자 한바퀴 돌고자 한다. 그러자 허적이 서우진에게 한마디를 하고서 급히 그를 따라간다; “이놈 오늘 너는 참으로 운이 좋다. 그만 가도 좋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서우진이 서서히 일어나서 발걸음을 옮긴다. 그는 대문을 나서기 전에 경대승의 집을 한번 눈으로 둘러본다. 그리고 대문을 나서자 그 큰 저택을 둘러싸고 있는 두겹의 무인들을 다시 살펴본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가? 소장파를 대표하여 경대승이 소수의 무인들과 함께 노장파를 쳤으나 그 세력이 너무 약한 것이다.
그러한 처지이므로 국왕을 등에 업고서 정치개혁에 나서고 있다 그것은 문신들의 지지를 획득하고자 하는 책략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 맛을 크게 본 적이 있는 군부의 노장파 인물들과 이제 정변으로 권력 맛을 보게 되는 자신의 소장파 지지세력들이다. 경대승이 과연 무사히 그들을 정리하고 통제할 수가 있을 것인가?
만약 경대승이 내치를 안정시킨다면 국경 쪽으로 눈을 돌릴 것이다. 그렇지만 개경에서 권력내부의 문제를 수습하지 못하면 결코 외부로 눈을 돌릴 여유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서우진은 이제 몇달간 그 추이를 개경에서 지켜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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