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비밀(손진길 소설)

王의 비밀8(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0. 27. 07:59

王의 비밀8(작성자; 손진길)

 

서우진은 지금까지 자신이 수집한 정보 가운데 어느 정도 사실임을 확신할 수 있는 것들만 추려서 체계적으로 알기 쉽게 종이에 붓으로 기록한다. 그 요지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젊은 경대승 장군은 정중부가 이끌고 있는 중방의 노장파에 의하여 크게 불이익을 당한 바가 있다. 지방의 분규를 해결하는 사심관으로서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다는 중방의 질책으로 그만 장군의 직에서 물러나게 된 것이다. 그것은 15세에 출사하여 10년만에 장군으로 진급한 경대승의 높은 자질과 고속성장에 노장파의 군부가 시기심과 두려움을 느끼고 미리 숙청한 결과이다.

둘째로, 고향 청주로 낙향한 경대승은 자신처럼 중방의 노장파에 의하여 크게 불이익을 당한 소장파 무인들을 규합하기 시작한다. 허승김광립을 동지로 삼고 30여명의 무사들을 지휘할 수 있게 되었을 때에 경대승은 개경으로 들어와서 불시에 정중부 부자를 기습하여 척살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의 부하는 소수이고 중방의 노장파가 이끌고 있는 군사의 수는 무진장 많다.

셋째로, 경대승은 영리하게도 국왕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왕명을 빌려서 중방의 노장파 세력을 억누르는 한편 대거 문신을 등용했다. 조정에서 문무가 함께 국왕을 보필하도록 정치개혁을 단행한 것이다. 그러한 그의 복고정책은 두가지 점에서 일단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가 된다;

(1)  첫째, 무신정권이 1170년에 시작되어 11799월 현재 아직 만 10년이 되지 않았다. 따라서 그 옛날의 왕정시대가 더 좋았다고 회상하는 문신들과 백성들이 더 많은 것이다.

(2)  둘째, 고려의 왕인 명종은 자신의 권력을 되찾아준 경대승을 충신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경대승의 부하들을 구국의 영웅이라고 치켜 세우고 있다. 그러므로 당분간 청년 장군 경대승의 천하가 될 것으로 본다.

 넷째로, 하지만 경대승의 천하는 두가지 약점을 지니고 있다;

(1) 하나는, 그의 세력은 약하고 중방의 노장파의 세력은 크다는 것이다. 지금은 고려의 왕이 적극적으로 경대승을 충신이라고 칭찬하고 있기에 그가 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경대승의 약한 세력이 노장파의 군사들에 의하여 밀리게 되면 국왕은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그를 버릴 공산이 크다. 명종은 어차피 군부가 업어서 왕으로 만든 왕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 또 하나는, 군부의 노장파가 오래 권력 맛을 보았기에 그 맛을 잊지 못하고 반드시 권토중래를 노릴 것이다. 게다가 이제 권력 맛을 보게 되는 경대승의 부하들이 초지일관하지 못하고 부패하고 말 것이다. 그것이 소장파의 약점이다. 그러므로 결론은 경대승의 천하가 오래 가지를 못하고 내분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다섯째로, 소관이 직접 경대승의 저택을 탐지한 결과 그 집은 이중삼중으로 호위무사들에 의하여 겹겹이 싸여 있다. 그것은 청년장군 경대승이 신변의 위협을 크게 느끼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렇다면, 그는 불안에 휩싸여서 외로운 고투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인내와 극복의 시간이 과연 얼마나 오래 갈 것인가? 큰 정변에는 기습적으로 성공했지만 적의 세력이 여전히 강하고 호시탐탐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으니 그 무거운 중압감과 위기감을 이겨 내기가 참으로 힘들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러한 형편이므로 경대승 장군이 국경 쪽으로 눈을 돌리기에는 여력이 없는 것으로 소직은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위와 같은 첩보를 이제 서우진이 애령이 편으로 의주성에 살고 있는 이린 부부에게 보내고자 한다. 만약 그의 비밀서신이 고려의 군사들의 손에 들어가게 되면 그때에는 자신과 애령의 목숨이 위험하다. 뿐인가? 그 첩보를 받게 되는 의주성의 성주와 그 부관들의 목숨도 위험하다.

서우진은 애령이 혼자만 보낼 수가 없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서우진은 애초의 생각을 바꾸어 자신이 애령이와 함께 의주성으로 가고자 한다. 서우진이 애령에게 지시한다; “애령아, 의주성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말 두 필을 준비하도록 해라. 내일 아침에 일찍 출발하도록 하자꾸나”.

애령은 서우진이 자기와 함께 의주성으로 동행한다고 하니 너무나 기분이 좋다. 자신이 좋아하고 있는 주인나리 서우진이다. 그러니 20세 처녀 애령의 가슴에 갑자기 훈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지극정성으로 말을 돌보고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할 준비를 철저하게 한다.

서우진은 보름 정도이면 고려의 국경을 뚫고 의주성을 말로 다녀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마름인 천서방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고 길을 떠나고자 한다. 이제 11월 중순이므로 차가운 가을 날씨가 느껴진다. 특히 말을 타고서 달려가니 그 추위가 상당하다. 그렇지만 그에 구애 받지 않고 서우진과 애령이 급히 말을 몬다.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 4일만에 국경지대에 도착한다. 이제는 말을 갈무리하고 주막에서 일박을 해야 한다;

 

서우진이 주막주인에게 웃돈을 주고서 말 두 필을 한 5일정도 잘 먹이고 돌보아 달라고 부탁한다. 자신들은 국경지대에 장수로 근무하고 있는 친구내외를 찾아볼 생각이라고 말한다.

다음날 새벽 일찍 어스름한 지경에 서우진과 애령이 국경을 탈출하려고 한다. 한두 달 전에 지나갔던 그 산길을 애령이 용하게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번보다 진행속도가 더 빠르다. 한 시진 반이 지나자 애령이 말한다; “저 아래쪽에서 여진사람들의 말씨가 일부 들리고 있어요. 벌써 의주 지역에 들어온 것입니다… “.

그 말을 듣고서 산 아래를 보니 멀리 의주성 근교의 마을이 보인다;

 

서우진이 애령과 함께 제법 큰 길로 나선다. 벌써 해가 떠서 환하다. 한참을 진행하니 사람이 많이 살고 있는 촌락이 나타난다. 의주성 교외지역이 맞다. 두사람은 급히 의주 성문이 있는 곳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먼저 이린 부부가 살고 있는 집에 들린다;

한달 만에 서우진과 애령을 만나자 마침 집에 있던 이린 부부가 깜짝 놀란다. 이린이 먼저 서우진에게 말한다; “두 달쯤 지나야 애령이 편으로 소식이 올 줄 알았는데 벌써 온 거야? 그렇게 정보수집을 빠르게 한거니? 그리고 우진이 네가 함께 온 것을 보니 급박한 일이 있는 모양이구나무슨 일이지?... “.

그 말을 듣자 서우진이 대답을 하지 아니하고 이린과 그의 아내인 문나옥에게 말한다; “그래 두 사람은 잘 지냈어요? 우리는 개경에서 그동안 정보수집을 하느라고 굉장히 바쁘게 지냈답니다. 애령이가 언니를 빨리 보고싶다고 눈치를 주어서 내가 이렇게 서두르게 되었지요하하하… “.

서우진이 웃는 모습을 보고서 이린 내외가 안심을 한다. 그 사이에 애령은 문나옥에게 가서 언니라고 부르면서 포옹을 한다. 여느 자매보다 더 정이 깊은 모양이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재상의 딸인 문나옥은 고려에서 쫓기는 신세가 되어 있고 여진족 추장의 딸인 애령은 멸문지화를 당한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다가 방문을 잠그고 서우진이 품에서 첩보보고서를 꺼낸다. 그것을 이린에게 주면서 말한다; “조금강 성주에게는 내가 직접 이 서찰을 가지고 왔다고 말하지 말고, 린이 네가 애령이 편으로 정보를 받은 것으로 보고를 해다오. 그리고 나는 애령이를 데리고 곧바로 개경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오래 집을 비우고 있을 수가 없어서 그래. 그리고 수집할 정보가 더 있기도 하고알겠지?.. “.

이린이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면서 급히 첩보내용을 읽어본다. 체계적으로 벌써 정리가 되어 있는 좋은 보고서이다. 그대로 조금강 성주에게 보고를 해도 될 것 같다. 그래서 이린이 서우진에게 말한다; “그래, 개경의 상황이 급하게 돌아가고 있는 모양이구나. 이 정도의 보고이면 일단 성주가 만족할거야. 그러면 두 달 후에 또 소식을 전해 다오. 부탁한다, 우진아… “.

헤어지기 전에 서우진이 이린에게 딱 한마디만 묻는다; “이곳 의주성에서는 그 사이 별다른 일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내가 꼭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있어?... “. 이린이 대답한다; “고려에서 몇 명의 장수가 국경을 넘어와서 합세를 한 것 말고는 아직 별다른 변화가 없어. 혹시 무슨 변화가 발생하면 다음 번에 애령이가 이곳에 왔을 때 내가 몇 자 적어서 우진이 너에게 보내 줄께”.

서우진이 애령이와 함께 이린 부부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은밀하게 그 집을 빠져나온다. 그리고 다시 고려의 국경으로 통하는 험하지만 빠른 산길을 찾아서 그 능선을 탄다;

 

여러 번 비밀리에 다닌 길이라 이제는 제법 눈에 익는다. 그래서 낮인데도 불구하고 군사들의 눈을 피하여 쉽게 월경을 하고 있다.

주막에 들린 서우진이 주인에게 맡긴 말 두 필을 달라고 한다. 주막주인이 양심적이다. 5일간 말을 맡는다고 하여 이미 사례비를 받았는데 일찍 왔으므로 차액을 돌려 준다. 서우진은 아무 소리를 하지 아니하고 그 돈을 받아서 허리춤에 단단히 차고 있는 주머니에 넣는다. 그리고 말을 타고서 남쪽으로 길을 떠난다.

서우진은 애령이와 함께 30리 이상 떨어져 있는 다음 마을에 들렀을 때에 비로소 주막에 들러 국밥을 사서 먹는다. 그것을 보고서 애령이가 묻는다; “오라버니, 어째서 국경마을에 있는 그 주막에서 조반을 하지 않고 이렇게 멀리 와서 늦게 식사를 하세요? 저는 배가 고팠는데… “;

그 말을 듣자 서우진이 대답한다; “만사가 불여튼튼이라고 한다. 모든 일은 조심스럽게 그리고 여물게 처리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국경마을에서 식사를 한다고 오래 지체하게 되면 사람들이 우리를 수상하게 보고서 국경경비대의 군사들에게 밀고할 가능성이 있다. 생각을 해보아라. 우리가 말을 두 필이나 주막에 맡기고서 사라졌다가 다음날 다시 나타난 것이 아니냐? 그것이 수상한 행적인 거다“.

그 말을 들은 애령이 배시시 웃으면서 말한다; “오라버니는 참 철저해요. 그렇게 자기 관리가 철저하니 처녀들이 함부로 말을 붙이지 못하지요. 사람이 좀 어설퍼야 매력이 있는데 오라버니는 그렇지가 못해요. 그래서 저 같은 처지의 처녀에게도 기회가 있답니다. 아세요? 호호호… ”.

서우진이 생각을 해보니 그것이 칭찬인지 아닌지 확실히 모르겠다. 하지만 애령이 자신에게 사랑고백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래서 서우진이 대답한다; “그래, 내가 곁에 항상 애령이와 같은 매력이 넘치는 여성을 두고 있으니 어떻게 다른 처녀에게 눈길을 주겠느냐? 그 말은 맞는 것 같다”.

그 말을 듣자 갑자기 애령의 목덜미가 자기도 모르게 붉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천하의 애령이도 서우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를 못하고 그만 고개를 숙이고 만다. 그러면서 조그마한 소리로 말한다; “오라버니는 뻔히 다 아시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모르는 척하고 잘도 지내시는 거예요?... 저는 다른 곳에 갈 수가 없어요. 오라버니의 집이 제집이고 오라버니의 옆자리가 항상 저의 자리랍니다. 그 점을 평생 잊지 마세요”.  

그 말을 들은 서우진이 크게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그래, 잘 알겠다. 그래서 내가 애령이 너에게 새로운 성을 준 것이 아니냐? 너는 나의 사람인 서애령이다. 너도 그 사실을 명심하고 항상 내 곁을 지키도록 해라. 앞으로 나는 어려운 싸움을 치러야 한다. 대업을 이루는 그 길에 두려움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그 길을 나는 너와 함께 헤쳐 나갈 것이다”;

거기까지만 말을 하고 서우진이 빨리 식사를 끝낸다. 그리고 애령이와 함께 다시 말을 달린다. 20리길을 달린 다음에 천천히 말머리를 나란히 하면서 서우진이 애령에게 남은 이야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서우진의 말이 다음과 같다; “아까 주막에서 말하려다가 주위의 시선 때문에 못한 말을 마무리하겠다. 내 말은 내가 장차 나의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면 애령이 너는 왕비가 된다는 말이다. 너는 그냥 보통 왕비가 아니다. 나를 대신하여 왕국을 다스릴 수 있는 그러한 여왕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부지런히 자신을 다듬고 실력을 키워라. 그것이 개경에서 애령이 네가 힘써서 이룩해야 하는 일이다. 알겠니, 애령아?... “;

 

애령이 그 말을 듣고서 비로소 생각을 가다듬는다; “주인나리인 오라버니는 야망이 대단한 인물이구나. 능히 자신의 나라를 건설하고 왕이 될 사람이다. 그를 돕자면 나도 여진족 야율 추장의 딸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새로운 왕국의 제2인자가 될 수 있는 자질과 실력을 가꾸어야 한다. 나도 개경에서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이 많구나… “.   

그러한 말을 주고 받으면서 북방의 국경지대에서 개경까지 천리길을 계속 말을 달리고 있는 서우진과 애령이 두사람이다. 과연 그들의 앞날이 고려에서 그리고 여진족의 땅에서 장차 어떻게 전개가 되는 것일까? 그리고 서우진의 절친인 이린의 가족은 또한 어떠한 파란을 겪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