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OBS교재(손진길 작성)

요한계시록 제1과(1:1-3)(손진길 작성)

손진길 2021. 10. 22. 23:11

요한계시록 제1(1:1-3)(손진길 작성)

|OBS22-1|

 

Q1. 다 같은 종말 예언인데 왜 다니엘의 예언은 고전적인 헬라 어를 사용하여 묵시(apocalypse)라고 부르고 사도 요한의 예언은 현대어로 번역하여 친근하게 계시(revelation)라고 부르고 있는가?

 

l  다니엘의 종말 예언을 구태여 묵시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예언의 시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전이므로 그 구체적 구원 내용을 봉함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으로 볼 수 있음(12:4, 9). 그러므로 확실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알지 못한 채 막상 다가오는 종말의 운명을 예언한다고 하는 것은 두렵고 떨리며 무시무시한 것일 수 밖에 없음. 이것이 고전적인 묵시가 주는 공포감일 것임.

l  이에 비해서 사도 요한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가 그리스도의 오심부터 함께 동행하였기에 다니엘이 봉함했던 내용 중 상당 부분이(24:15) 예수님에 의하여 설명되어지고 또한 현실화 되는 것을 이미 경험했던 인물이었음. 따라서 그는 곧 재림하실 예수님이(9:1, 21:22, 1:7) 미리 알려 주시는 종말의 비밀을 임박한 구원을 말하고 있는 계시의 형태로 받으며(1:1) 기록할 수 있는 입장에 설 수 있었던 것임.

l  요컨대, 다니엘에게 있어서는 종말의 예언이란 만민 구원에 대한 구체적 내용 보다는 악한 제국과 적 그리스도에 대한 역사 심판이 더 앞서고 있었으나 사도 요한에 있어서는 주님이 직접 약속하신 구원의 때인 종말을 소망하며 기다리고 있는 심정이 가득한 것임. 그러므로 심판의 두려움 가운데 받은 다니엘의 묵시는 상당 부분이 봉함되었고 구원의 소망 가운데 받은 종말 예언인 계시는 요한계시록에 의하여 오늘 날 개방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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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그렇지만 다 같이 종말에 관한 비밀을 담고 있는 내용이므로 그 해석에 있어서 어떠한 주의 사항이 공통적으로 주어지고 있는가?

 

l  첫째로, 종말에 관한 내용은 진실로 알기 어려운 것이므로(벧후3:16) 억지로 풀 것이 아닌 것임. 따라서 ①성경 지식에 밝고 신앙심이 굳건한 자가 ②하나님의 감동하심을 받아서 비로소 그 내용과 해석에 접근하는 것이 옳다는 것임(벧후1:20-21, 3:16-18).

l  둘째로, 완전 계시는 어디까지나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그리스도의 주관하에 속해 있는 것이므로(11:27) 주님이 가르쳐 주시고 이미 설명해주신 하나님의 의도와 말씀 취지의 범위 내에서 종말 예언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임. 예수님의 생각을 벗어나거나 그 분의 제자된 위치를 이탈하게 되면 종말 예언은 많은 사람을 혹세무민하는 이단성을 띄게 되는 것임.

l  요약해 보면, 다니엘서에서 봉함된 묵시의 구체 내용 중 상당 부분이 요한계시록에서는 주님의 계시로서 이미 개방되어 있음. 그러나 그 계시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는 여전히 주님의 가르치심과 교훈의 취지를 생각하면서 그 테두리 안에서 공부하고 묵상하는 것이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자세인 것임(22: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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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하나님이 주님의 종말 계시를 사도 요한에게 먼저 알려주고자 그 천사를 보내어 주고 계시는데(1:1) 이와 같이 종말 계시를 먼저 받을 만큼 사도 요한은 주님 보시기에 그 동안 어떠한 생애를 살아오고 있었다고 스스로 진술하고 있는가?

 

l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이미 다 증거하였다.라고(1:2) 기술하고 있음.

l  이 말은 그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삼년 반 동안 동행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제4복음서를 저술하였으며 또한 미처 복음서에 수록하지 못한 내용 가운데 성도들의 신앙 성숙을 위하여 꼭 전해주고 싶은 내용을 별도 서신으로 작성하여 여러 교회에 공람 시킨 바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임.

l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기록이 요한복음서나 그의 서신서인 요한1,2,3서 보다 더 후에 이루어진 것임을 암시해 주고 있는 것임. 실제로, 계시록의 기록 시기는 AD 95년경인데 이 때 사도 요한은 로마 황제 도미티우스에 의해서 에베소 서남쪽 바다에 위치하고 있는 밧모 섬에 유배되어 있었음(1:9).

l  사도 요한은 AD 70년 이후 그의 말년을 에베소에서 보내면서 그 곳 지역 교회들을 돌보았는데 주일 설교는 물론 특히 복음의 정확한 내용을 가르치고 이를 널리 전하고자 저작 활동을 한 것으로 볼 수 있음. 그런데 일반적으로 그의 저술의 시작은 10년쯤 지난 시점으로 보고 있음. 그 이유는 공관 복음서와 달리 제4복음서는 헬라 철학과 학문의 바탕 위에서 저술되고 있는 책이므로 사도 요한이 이 책을 저술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십 년 정도 에베소에서 이와 같은 학문을 별도로 그리고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기간을 가졌을 것으로 보아지기 때문인 것임. 이에 따라 AD 80년경에 요한복음서를 작성하기 시작했으며 AD 90년경에는 서신서들을 작성했다고 보고 있는 것임. 그리고 그가 AD 95년 밧모 섬에 유배가기 전에는 이미 서신서까지 모두 작성되어 지역 교회 공람까지 끝난 것으로 보이는 것임.

l  이와 같은 상태였으므로 이제 하나님께서 주님의 종말 계시를 천사를 통하여 사도 요한에게 전달해 줌으로써 이를 기록하여 그의 주님의 복음에 대한 저술 활동을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계시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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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사도 요한이 AD 70년부터 10여년간 60세가 넘은 노구(老軀)를 이끌고서 스스로 그 어려운 헬라 철학과 학문을 공부하여 제4복음서를 저술하고 또한 여러 서신서를 작성하여 소아시아 여러 교회의 성도들에게 공람시킨 이유는 무엇인가?

 

l  AD 66년경 로마에서 네로 황제에 의하여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처형당하고 나자 소아시아와 유럽 땅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가르침을 권위있게 전해주고 성도들을 가르칠 수 있는 예수님의 직전 제자인 사도는 요한 만이 남아 있었다고 볼 수 있음. 왜냐 하면, 기타 사도들은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쪽으로 선교에 나섰는데 그 후 그들의 행적이 로마 교회에 알려지고 있지 아니하기 때문인 것임.

l  사도 요한은 AD 70년 예루살렘 멸망 후 소아시아의 중심지인 에베소로 옮겨와서 그 곳 교회들을 돌보는 한편 스승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치심과 행적을 나름대로 정리하여 후세를 위하여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한 것임. 그런데 그가 판단하기에 기존 사도들의 기록은 헬라 세계나 로마 제국의 지식인들이 읽고 묵상하기에는 너무 유대적인 것이었으며 학문적인 보편성과 논리적인 설명력마저 약했던 것임. 그래서 그는 스스로 헬라 철학과 학문을 공부하여 이와 같은 미흡한 점을 보완하고자 한 것임.

l  그 결과 제4복음서와 그의 서신서는 이미 하나의 기독교 신학으로서의 학문적인 체계를 갖출 수 있게 된 것임. 그러므로 초대 교회 기독교 신학의 체계를 세운 두 사람의 사도를 손꼽으라고 한다면 사도 요한과 사도 바울을 말할 수 있을 것임.

l  참고로,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이미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을 영적으로 만나는 충격적인 경험을 하였기에 그는 그 분의 메시아 되심과 구원주 되심을 거듭 확인하고자 구약에 나오는 선지자들의 환상과 계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취지를 다시 공부하였으며 사도들이 전하고 있는 나사렛 예수의 생애와 행적을 히브리 성경과 전승에 비추어서 다시 검토하였음. 이와 같은 공부와 깨달음에 기초하여 그의 신앙을 학문적으로 신학화 하였는데 학자들은 바울의 신학을 일반적으로 영적 기독론에 입각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음.

l  이에 비해서 사도 요한은 헬라 철학과 학문을 다시 공부하여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그의 가르침을 설명하고 있으면서도 내용상 인간의 상상력과 영적 지식을 초월하고 있는 창조주의 의지와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 그러므로 신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사도 요한의 신학을 로고스 기독론에 입각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엄밀하게 따지자면 요한의 신학은 헬라 철학적인 로고스의 개념을 훨씬 뛰어넘고 있는 신위적인 개념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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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 사도 요한은 주님의 종말 계시를 반드시 속히 될 일이며(1:1) 여러 성도들이 계시록의 기록을 읽고서 가까운 미래를 대비해야 할 것임(1:3) 강조하고 있는데 그가 이와 같이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l  개인적인 경험과 사도 시대 말기의 선교 현황 및 세계관으로 나누어서 그 근거를 추적해볼 수 있을 것임.

l  개인적으로 사도 요한은 스승인 예수와 이종 사촌 형제 사이이며(19:25, 15:40, 27:56) 큰 이모되시는 마리아를 에베소에 모시고서 그 노후를 보살펴준 예수의 친동생과 같은 인물이었음(19:26-27). 그를 친동생같이 여기는 예수는 그에게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두 차례 언급한 바 있음(9:1, 변화산상에 이르기 6일 전에, 21:22-23, 승천하시기 전에). 첫 번째 언급은 변화산상에 임하는 천국의 모습으로, 두 번째 언급은 밧모 섬 환상과 계시 가운데 임하는 천국의 모습으로(1:9-10, 21:1-8, 4:1-11) 나타나게 되는데 사도 요한은 이를 만민이 함께 볼 수 있는 종말과 심판으로 오인하고 있었던 것임.

l  사도 시대 말기의 선교 현황과 그들의 세계관을 살펴 보면, 주님의 재림이 임박할 것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었을 것임. 비근한 예로서 사도 바울은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머나(스페인)로 갈 때에 너희(로마 교회의 성도들)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15:23)라고 적고 있는 것임. AD 60년경 바울은 벌써 소아시아와 그리스 반도에서 선교를 끝마쳤으며 이제는 로마를 거쳐 스페인까지 선교하고 나면 세상 끝까지 선교하는 일이 거의 마무리된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임(24:14, 28:18-20, 1:8).

l  AD 66년경 사도 바울과 베드로가 순교 당한 후 다시 30 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AD 95 년경 사도 요한이 90세의 노인이 되어 밧모 섬에서 하나님의 지시로 주님의 종말 계시를 접하게 되자 그는 드디어 하늘 문이 열리고 주님이 구름 타고 재림하시는 순간이 임박한 것으로(24:30-31, 살전4:16) 지레 짐작했던 것임. 이것은 당시 상황과 분위기로서는 무리가 아니었던 판단으로 볼 수 있을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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