圓의 비밀32(작성자; 손진길)
‘장하응’으로 불리고 있는 윤하선이 뉴욕의 오피스텔에서 며칠 머무르고 있는 사이에 ‘장병국’으로 가장한 그의 막냇삼촌 윤치국 특파원과 강수재 과장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강수재 과장은 여전히 워싱턴 DC로 가서 일본계 로비스트인 나카무라 겐죠를 미행하고 있다.
나카무라가 정기적으로 라스베가스에 가서 도박을 즐기고 있기 때문에 그를 따라 강과장이 그 먼 곳까지 미행에 나선다. 나카무라는 도박에 정신이 팔려서 강과장이 자신을 뒤따르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이번에도 그가 도박 빚을 왕창 지고 있다. 그러자 나카무라가 그 중국인 ‘왕쩌둥’을 찾는다. 역시 비싼 값으로 고급정보를 팔려고 하는 것이다.
그 장면을 멀리서 지켜본 강수재 과장은 쾌재를 부른다. 이곳 서남부의 라스베가스까지 경비를 들여서 쫓아온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과연 어떤 일본의 기밀을 왕쩌둥에게 팔고 있는 것일까? 궁금하여 강과장이 이틀을 더 라스베가스에 머무르면서 왕쩌둥의 애인인 한국계 제시킴에게 접촉을 시도한다.
제시킴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몸매가 빼어나다. 그녀는 ‘짐나지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짐’에서 함께 운동하고 있는 여자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모델처럼 그녀의 몸매관리가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시킴은 중국어와 영어가 모두 유창하다. 그래서 그녀를 만나기 위하여 강수재 과장이 그 ‘짐’을 들락거린다;
강과장이 지난주에 그녀로부터 고급정보를 얻은 바가 있기에 그가 그녀에게 반갑게 인사한다. 그러자 제시킴이 상냥하게 마주 인사한다. 그녀는 자신이 이렇게 중국인의 애인 노릇을 하면서 이곳에서 살고 있지만 그래도 조국을 위해서 무언가 공헌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속으로는 그것이 좋은 모양이다.
강과장은 제시킴이 운동을 마칠 때까지 그 옆에서 괜히 ‘런닝머신’을 이용하고 여러가지 운동기구를 사용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강과장이 옆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고서 제시킴이 대충 운동을 마감하고 맥주나 한잔 하자고 제의한다. 그 말을 강과장이 참으로 기다리고 있었기에 금방 고개를 끄떡인다.
그녀가 차를 몰고서 앞장을 선다. 그 뒤를 강과장이 자신의 차로 뒤따른다. 제시킴이 차를 멈춘 곳은 라스베가스에서도 이러한 골목이 있는가 싶을 정도로 특이한 곳이다. 화려함과는 전혀 반대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곳 좁은 골목에 카페가 하나 있다. 그 이름이 ‘하프 문’이다;
골목입구에 차를 두고서 제시킴이 골목 안에 있는 ‘하프 문’까지 걸어간다. 강과장도 그녀를 놓치지 않으려고 똑같이 행동한다. 제시킴이 먼저 그 카페로 들어가고 뒤따라 강과장이 들어간다. ‘하프 문’카페는 여러 개의 밀실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비밀이야기를 나누기에 참으로 적합한 곳이다.
제시킴이 제일 안쪽에 있는 밀실로 강과장을 인도한다. 함께 자리에 앉자 웨이타가 메뉴판을 가지고 온다. 제시킴이 영어로 말한다; "미스터 강, 나는 스파게티를 먹고자 합니다. 당신은 무엇을 먹고 싶습니까?”. 강과장이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말한다; “나도 스파게티가 좋습니다”. 제시킴이 웨이타에게 메뉴판 2개를 돌려주면서 ‘투 씨푸드 스파게티’라고 주문한다;
음식이 나올 동안에 제시킴이 말한다; “지난주에 강선생이 짐에서 저에게 접근하여 왔기에 제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그 부근에 있는 ‘커피 전문점’에서 만났지요. 그런데 그곳은 사실 위험합니다. 중요한 비밀이야기를 나누기에 적합하지가 않아요. 그래서 오늘은 제가 잘 알고 있는 밀실을 가진 여기 ‘하프 문’ 카페로 멀리 온 것입니다”.
강과장이 대답한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제가 라스베가스에 이러한 골목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제시킴이 말한다; “저는 한국에서 여대를 다니다가 10년전에 미군장교와 눈이 맞아서 미국에 오게 되었지요. 그런데 그가 내게 해준 것은 영주권 뿐이었지요. 미국서 그는 사회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를 못하고 끝내는 알코올 중독이 되어 나를 버리고 말았지요…”.
제시킴이 엔간히 한국인 친구가 없는 모양이다.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아니한 강과장에게 신상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러하다. 그녀의 신세타령이 이어진다; “그에게 버림을 받은 나는 미국 서부지역에서 앞이 캄캄했지요. 그와의 사이에 자식이 없었으니 미국정부에서 보조를 받을 일도 별로 없었어요. 그 상태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이곳 라스베가스로 옮겨와서 이를 악물었지요…”.
그 말을 하면서 제시킴의 눈에 이슬이 맺히고 있다. 그러면서 울먹이는 듯이 말한다; “지난 7년간 제가 라스베가스에서 생존하려고 발버둥친 세월은 제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끔찍한 것입니다. 저는 부끄러워서 한국사람과는 아예 인연을 끊고 살아갔지요. 이곳에서 주로 홀 서빙을 하면서 지내다가 우연한 기회에 돈이 많은 중국인들과 친해진 것입니다”.
제시킴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한다; “그들은 마카오에서 온 중국인들이었어요. 중국의 ‘삼합회’와 관련이 되어 있는 인물들이었지요.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같은 동양인이라고 저에게 잘 대해주었기에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중국어까지 개인적으로 학원에서 배웠답니다. 그리고 그들의 현지처 노릇을 하면서 많은 돈을 보수로 받았지요…”.
그녀가 씁쓸하게 웃는다. 그 웃음이 허무하게 느껴진다. 그 웃음 끝에 그녀가 딱 한마디만 한다; “마지막으로 만난 중국인이 나이가 50이나 된 지금의 그 사람입니다. 그의 정체는 확실하게 알 수가 없지만 ‘삼합회’는 아닌 것만 같아요. 자꾸만 중국의 ‘공산당 간부’라는 생각이 들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행동을 조심하고 있답니다…”.
강과장이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불쌍한 여인이다. 나이는 자신과 비슷해 보이는데 그 겪은 일이 처참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설픈 위로를 한다; “그러한 파란만장한 세월이 있었는 줄은 몰랐습니다. 한국사람을 가급적 만나지 않으려고 하는 제시킴인 줄 모르고 제가 접근하고 또한 애국심에 호소를 했군요. 미안합니다…”.
그러자 제시킴이 말한다; “아닙니다. 한국에 돌아가서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있는 딸이지만 그래도 고향사람들을 위해서 무언가 가슴 뿌듯한 일을 한 가지나마 할 수가 있어서 저는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사정을 딱 한사람 강수재 선생에게는 털어놓고 싶었습니다. 한사람의 한국친구는 가질 자격이 아직 저에게 있지 않을까요?...”.
강수재 과장이 그녀를 똑바로 보면서 고개를 크게 끄떡인다. 무한 긍정의 표현이다. 그때 웨이터가 김이 나고 있는 해물 스파게티 두 그릇을 양손에 들고서 밀실로 들어온다. 그러면서 말한다; “술은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제시킴이 백포도주 두 잔을 주문한다.
웨이터가 백포도주 두 잔을 가지고 오자 그녀가 강수재에게 말한다; “제가 강선생님께 여쭈어 보지도 아니하고 백포도주를 시켰어요. 그 이유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운전이 가능하도록 약한 포도주를 시킨 거예요. 또 하나는, 제가 어렸을 때에 친척이 저의 부친에게 ‘마주앙’을 한 병 선물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지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강수재가 이번에도 고개를 끄떡인다. 그녀가 어떠한 마음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그 백포도주를 주문하고 있는지를 알 것만 같아서이다. 그래서 강과장이 쾌활하게 웃으면서 자신의 포도주 잔을 들고서 제시킴에게 제안한다; “오늘은 모든 일을 잊고 백포도주로 우리 ‘위하여’를 한번 합시다”.
참으로 기분 좋게 제시킴이 자신의 백포도주 잔을 들고서 강과장의 잔에 살짝 부딪친다. 그리고 그냥 입술로 가지고 간다. 그것을 강과장이 제지하면서 말한다; “에이, 그렇게 밋밋하게 마시면 어떡합니까? 저하고 ‘러브 샷’을 한번 하셔야지요”. 강수재가 포도주 잔을 손에 쥐고서 자신의 팔을 그녀의 팔 사이로 밀어 넣는다. 술잔을 쥔 팔이 어긋나게 하여 밀착한 상태에서 정식으로 ‘러브 샷’을 한다;
그러자 예상외의 반응이 나타난다. 갑자기 제시킴이 ‘어머머’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수재가 속으로 생각한다; “이곳 미국 땅에서 살아 남으려고 혼자서 발버둥만 치고서 살았구나. 그리워하는 고향도 가지를 못하고 아직도 홀몸이구나. 그래서 청춘남녀가 정답게 ‘러브 샷’을 하는 것도 모르고 살았구나. 가련한 여인이다…”.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하고 여전히 겉으로는 미소를 보이고 있는 강수재이다. 맛있게 해물 스파게티를 먹고나서 입가심으로 남은 백포도주를 마시면서 제시킴이 말한다; “제가 여기 ‘하프 문’까지 강선생님을 데리고 온 것은 정말 남의 귀에 들어가면 안되는 이야기를 그 중국사람에게서 제가 최근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강수재가 정색을 하고서 경청한다. 제시킴이 소리를 낮추어서 은밀하게 말한다; “일본측에서 미국측에게 비밀리에 북한의 ‘서안만 석유’를 전적으로 미국이 차지하는 조건으로 중국이 북한을 점령하는 것을 용인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가 강과장을 쳐다본다. 강과장이 깊이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서 그녀가 ‘후유’라고 한숨을 쉬면서 말한다; “저는 그 정보를 중국인 애인에게서 들으면서 속으로 화가 났어요. 어떻게 한반도에 있는 석유를 저희들끼리 서로 주고 받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우리 한민족은 그것도 모르고서 남북간에 그리고 내부에서도 서로 권력투쟁이나 일삼고 있으니 더 화가 나요. 지금이 국제정세에 백치였던 조선시대도 아닌데 어떻게 또 그런지 모르겠어요…”.
그 말을 듣자 수재로 소문이 난 강수재 과장도 딱히 대답할 말이 없다. 그래서 역시 ‘후유’라고 한숨을 내쉰다. 그 모습을 보고서 제시킴이 말한다; “제가 그 정보를 드리는 것은 이제라도 강선생님이 그 사실을 윗선에 보고하여 제대로 대응책을 마련하라고 하는 거예요. 제가 비록 이곳 라스베가스에서 몸을 팔아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나이가 들면 제가 돌아갈 고향은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강수재가 그녀 앞에 고개를 숙이면서 말한다; “제가 제시킴의 바램 그대로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그 옛날 일본이 조선을 쳐들어왔을 때 왕과 귀족들은 모두 도망을 치고 왜병들과 싸운 사람들은 그들 왕족과 귀족들로부터 사람취급을 받지 못하던 백성들이었지요. 지금도 그런 셈이군요. 그러니 저와 제시킴이 한번 조국을 살리기 위해서 옛날처럼 적들과 투쟁을 해보도록 합시다”;
그 말을 듣자 제시킴이 만족한 미소를 보인다. 강수재는 자신이 어째서 그러한 말까지 그녀 앞에서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는 묘하게도 그녀와 말을 나누면서 강한 동지의식을 느끼고 있다. 너무나 막강한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이라고 하는 강대국을 은밀하게 상대하고 있는 처지라 그러한 동지애가 샘 쏟고 있는지 모른다.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 카페의 바깥에서는 한여름 강렬한 태양의 열기와 사막의 열기가 서로 이글거리며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아마도 사막의 열기가 이길 것만 같다. 왜냐하면, 태양이 먼저 지고 나서야 사막의 열기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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