圓의 비밀18(작성자; 손진길)
윤하선은 간밤에 잠을 많이 자지 못했다. 일본내각의 지시를 받고 있는 정보부 요원들에게 끌려가서 안가에서 조사받고 늦게 귀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절친 송우성과 통화하기 위하여 새벽 일찍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30세의 젊은 윤하선이지만 동경에서 오사카로 가는 신칸센 열차 안에서 그만 깊은 잠에 빠지고 만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옆자리의 유끼꼬는 속으로 웃고 있다. 두가지의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나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잠이 들어 있는 윤하선이 마치 아기와 같이 귀엽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유끼꼬 자신의 품이 편안하다고 느끼는 윤하선으로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만약 윤하선이 유끼꼬를 믿지 못하고 있다면 심적으로 불안하여 편하게 그 옆에서 그렇게 깊은 잠을 자지는 못할 것이다.
사실 자기 옆에서 깊이 잠을 자고 있는 윤하선을 바라보고 있는 유끼꼬의 마음은 두가지로 복잡하다; 첫째, 윤하선이 한국사람이 아니고 ‘일본 청년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볼수록 똑똑하고 행동거지가 올바르다.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알고 신중하게 처신한다. 참으로 유끼꼬 자신의 마음에 드는 청년이다.
둘째, 그러나 애석하다. 유끼꼬는 윤하선의 국적을 바꿀 수가 없다. 결국 윤하선은 유끼꼬 자신이 감시하고 그의 일거수일투수를 윗선에 보고해야만 하는 관찰대상자에 불과하다. 유끼꼬는 부친 하세가와 교수가 원하는 그 일을 수행해야만 한다. 조상들이 서울 명동에 두고 온 재산을 되찾으라고 후손들에게 유언을 했기에 그 유훈을 명심하고 지켜야 한다.
이제 일본정부가 경제제재에 이어 내밀하게는 군사력으로 한국을 다시 점령하고자 한다. 그 일에 협조하여 가문의 재산을 수복하는 것이 하세가와 집안의 직계 자손인 그녀 유끼꼬의 숙명인 것이다. 그래서 유끼꼬가 겉으로는 윤하선이 마음에 들어서 깊은 잠을 자고 있는 그를 보면서 기분이 좋아 웃고 있지만 그 마음속은 아쉬움만이 가득한 것이다.
영원히 자신의 것일 수가 없는 윤하선이다. 이제 2주가 지나면 그는 서울로 돌아가게 된다. 한성고등학교 국사선생인 윤하선은 일본에서 삼촌 윤치국 특파원을 찾든지 못 찾든지 여름방학이 끝나기 전에 서울의 직장으로 복귀를 해야만 하는 처지인 것이다. 그때까지 유끼꼬 자신이 일본의 정보부 요원이라는 사실을 몰랐으면 좋겠다고 그녀가 내심 바라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윤하선을 몰라도 한참 모르고 있는 유끼꼬 자신만의 생각에 불과하다. 윤하선은 벌써 유끼꼬의 정체를 눈치채고 있다. 그리고 하세가와 교수가 겉으로는 한국과 친한 지한인사이지만 은밀하게는 그것이 아닐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일본에서 윤하선이 하세가와 교수의 저택에 머무르면서 오로지 유끼꼬와 동행하여 삼촌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는데 일본의 정보요원들이 자신의 행동을 거울같이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하선은 오사카에 도착하여 자신만의 시간이 생기면 하세가와 교수에 대하여 철저하게 조사를 해볼 생각이다. 분명히 그가 변심을 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도대체 그가 일본정부와 정보기관에 내밀하게 협조하고 있는 그 속사정을 밝혀야만 한다. 그래야 그들이 적인지 아군인지 최종적으로 확인이 된다.
윤하선은 진작 깊은 잠에서 깼다. 그러나 여전히 깊이 잠든 것처럼 눈을 감고서 코를 적당하게 골고 있다. 그러면서 속으로 두가지를 생각하고 있다; 하나는, 새벽에 서울의 절친 송우성과 비밀통화를 하면서 들은 이야기를 다시 머리속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또 하나는, 오사카에 가서 문제의 인물 고현중을 만나서 질문할 내용들이다.
고현중을 만나게 되면 윤하선은 자신의 삼촌인 윤치국 특파원과의 관계부터 물어볼 것이다. 그리고 윤치국에게 어떤 말을 전했기에 그가 실종이 되고 있는지 그 점을 밝혀야 한다. 그 과정에 일본의 정부가 내밀하게 추진하고 있는 정한론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그 증거를 확실하게 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윤하선은 송우성과의 전화통화의 결과를 다음과 같이 다시 마음속으로 정리해본다;
(1) 이른 아침에 윤하선이 서울에 있는 절친 송우성에게 호크마 21로 전화를 걸었다. 윤하선이 송우성에게 일본의 의원친선협회가 미국 로비를 할 때에 반드시 일본계 펀드 매니저가 동참하였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일본계 펀드의 영향력이 미국정계에 어느 정도인지를 물어본 것이다.
(2) 송우성은 자신이 여의도에서 가까운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지금은 논문 작성 중에 있는데 일본지역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침 일본의 미국정계에 대한 로비현황과 그 영향력에 대한 대목을 작성하고 있다고 한다.
(3) 송우성은 두개의 그림표를 보내어줄 터이니 그것을 한번 살펴보라고 말했다. 그 그림표에 일본사람들이 미국으로 자본을 가지고 건너간 규모가 엿보인다고 한다. 그 규모는 놀랍게도 미국에서 운영이 되고 있는 펀드 가운데 제2위의 크기라고 한다. 첫째가 유태인이고 둘째가 일본인이다.
(4) 유태인들의 자본이 미국 대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그 힘으로 당선이 된 미국 대통령이 조야에서 그렇게 반대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있는 미국대사관을 구태여 예루살렘으로 이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본인들의 국제펀드의 자본력이 극동에서 엄청난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그것이 한국을 일본의 영향권 아래 두는 것일 수도 있다.
(5) 송우성의 말을 들은 윤하선은 등골이 서늘하다. 그는 현대 이스라엘 국가가 주변의 아랍국가들과 전쟁을 치를 수 있는 능력이 미국에 살고 있는 600만 유대인들의 자본과 미국 정계에 대한 영향력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익히 알고 있다. 이번에는 미국에 있는 일본인들의 자본이 일본정부와 함께 동북아에서 새로운 판을 짜고 있다. 장차 그 일에 투자를 하면 그들의 펀드가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얻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이에 대처해야만 하는가?
(6) 한국사람들은 지금 눈에 보이는 일본 열도의 일본만 상대할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그만큼의 경제력을 지니고 있는 또 하나의 일본이 미국땅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건너간 일본인 부자들과 그들의 돈줄이 일본의 한국침략정책을 비밀리에 돕고 있다. 막강한 자본력으로 미국의 정계를 움직여서 그 일을 성사시키게 되면 막대한 이권을 한국 땅에서 얻을 수가 있을 것으로 그들이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7) 구체적으로, 한국에 두고 온 조상들의 재산을 되찾을 수가 있다. 그리고, 일본과 한국 사이를 해저터널로 연결하여 하나의 땅으로 만들게 되면 두가지의 큰 이익이 발생한다; 첫째로, 일본은 더 이상 섬나라가 아니다. 극동에서 유럽으로 가는 고속철도와 고속도로의 출발지이다. 그렇게 육로로 물량을 수송하게 되면 해양수송에 비하여 시간과 경비가 엄청 절감된다. 곧 막대한 이익이 발생하는 것이다. 둘째로, 일본사람들이 지진과 방사능으로 불안한 땅 일본 열도를 탈출하여 안전한 땅 한반도에서 살 수가 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땅값이 오를 것이다. 미국에 있는 일본계 펀드는 그 땅을 미리 사서 떼돈을 벌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윤하선은 자는 척하면서 그 사이에 자신이 파악한 정보를 다시 머리속으로 정리하여 그 정도로 체계화한다. 그 작업이 내밀하게 끝나자 그때서야 기지개를 펴면서 눈을 뜬다. 자신의 옆에는 유끼꼬가 딱 붙어 있다. 예쁘고 상냥하며 영리한 아가씨이다. 그녀가 일본정부의 밀정이 아니라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윤하선도 속으로는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
윤하선은 눈을 뜨자 마자 유끼꼬를 보고서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싱그러운 청년의 미소가 처녀 유끼꼬의 가슴을 파고든다. 유끼꼬도 밝게 웃으면서 윤하선의 얼굴을 본다. 옆에서 누가 보면 참으로 다정하고 보기가 좋은 연인사이이다.
윤하선이 먼저 말한다; “제가 한양신문사 동경지국장에게서 받은 전화번호가 있습니다. 먼저 오늘 만나야 하는 고현중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해보겠습니다. 언제 어디서 만나는 것이 좋을지 한국말로 알아보겠습니다”. 유끼꼬에게 말을 하면서 동시에 윤하선이 호주머니에서 자신의 핸드폰을 꺼낸다. 일본에 오기 전에 벌써 해외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한 전화기이다.
상대편의 핸드폰으로 신호가 가는 소리가 선명하다. 철거덕하고서 경쾌하게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린다. 고현중인 모양이다. 윤하선이 급하게 한국말로 말한다; “고현중 선생님이십니까?”. 상대방이 대답한다; “처음 보는 전화번호이군요. 제가 고현중입니다마는 누구십니까?”.
윤하선이 빠르게 말을 한다; “저는 한국에서 온 윤치국 특파원의 장조카가 되는 사람입니다. 이름이 윤하선입니다. 제가 최근 동경에서 실종이 된 삼촌 윤 특파원의 행방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그 일에 도움을 받고 싶어서 고현중 선생님을 만나고자 합니다. 지금 동경에서 오사카로 신칸센 타고서 가고 있는 중입니다. 언제 어디서 만날 수가 있을까요? 편리한 장소와 시간을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한꺼번에 말이 쏟아진다. 상대방이 좀 생각을 하는 눈치이다. 그러더니 천천히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열차편으로 오실 것이니 제가 얼굴을 아는 사람이라면 역으로 마중을 나가면 되겠지만 처음 만나는 사이라 그것이 어렵겠네요. 그러면 오사카에 도착하셔서 편하게 점심식사를 역부근에서 하시면서 제게 오후 2시 정각에 다시 전화를 주세요. 제가 장소와 시간을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윤하선을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중하게 처신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그는 오후 2시에 다시 전화를 받을 것인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상대방이 그렇게 말하고서 전화를 끊었기에 윤하선은 도리가 없다. 그래서 웃으면서 유끼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우리 보고 오사카에 도착하면 역 부근에서 식사를 한 후 정각 2시에 다시 전화를 하라고 말하네요. 그렇게 합시다”.
한국말이 유창한 유끼꼬가 말한다; “대충 통화하는 소리를 듣고서 저도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 역 근처에서 우리 맛있는 것을 먹도록 해요. 열차여행을 했더니 배가 고프네요”. 마치 다정한 연인과 같다. 윤하선도 그렇게 좋게 생각하기로 한다; ‘복잡한 미래지사를 모두 잊어버리고 이 순간은 유끼꼬를 연인으로 생각하자’.
그렇게 즐거운 연인으로 신오사카 역에 도착하는 그들 청춘남녀이다;
오늘따라 오사카의 하늘이 밝고도 맑다. 2019년 8월 8일 윤하선은 유끼꼬와 함께 오사카에 도착하여 두 팔을 벌리고 어깨를 한번 펴본다. 열차 칸에서 불편하게 잔 몸이 우지끈하고 기분 좋게 펴지는 것만 같다. 그렇게 그의 일도 잘 풀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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