圓의 비밀17(작성자; 손진길)
간밤에 늦게 잠자리에 든 윤하선이다. 그러나 그는 오래 침대에 누워있을 수가 없다. 기간은 짧고 풀어야 할 문제는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용히 첩보용 전화기 ‘호크마 21’을 깨워서 서울에 있는 절친 송우성에게 전화한다.
마침 송우성이 바로 응답한다. 그는 새벽에 윤하선이 전화하자 약간 놀라는 음성으로 말한다; “그래, 일본의원들의 은밀한 대미로비에 관한 꼬리는 잡은 것이냐? 누구를 통하여 미국정계에 줄을 대고 있던가? 좀 밝혀진 게 있어?”.
윤하선이 짤막하게 대답한다; “응, 그래 우성이 너의 충고가 많이 도움이 되었어. 일본국회의 도서관에 가서 의원친선협회의 대미활동을 검색했더니 두 인물이 연결책으로 떠올랐어. 하나는 미국에 등록이 되어 있는 정식 일본인 로비스트이고 또 한사람은 미국에 있는 일본계 펀드의 매니저야”.
송우성이 말한다; “하선아, 축하한다. 네가 꼬리를 잡았구나. 그래 무슨 이야기들을 나눈 것으로 추측이 되냐?”. 윤하선이 대답한다; “일본의 대외정책에 대한 은밀한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보여. 지난달부터 발생하고 있는 일본정부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와 경제제재에 대하여 미국정부의 이해와 협조를 구한 것으로 보인다”.
잠시 말을 끊었다가 윤하선이 훨씬 깊숙한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하지만 미국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의 자본을 관리하고 있는 펀드 매니저가 반드시 그 자리에 합석을 했다고 하는 것이 이상해. 그것은 틀림없이 일본계 자본의 힘을 빌려서 미국의 정계인사들에게 정치적인 압력을 넣은 것으로 볼 수가 있어. 그래서 내가 우성이 너에게 한가지 부탁을 하고자 한다”.
송우성이 순간 긴장한다. 중요한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용하게 묻는다; “하선아. 내가 무엇을 도와주면 되는데?...”. 윤하선이 말한다; “미국에 있는 일본사람들의 자본의 힘이 정치적으로 미국의 지도자들에게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가 있는지를 말하고 있는 논문 같은 것이 없을까? 그런 것이 있으면 지금 일본정부가 하고자 하는 일의 현실적인 타당성을 한번 짐작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송우성이 갑자기 웃음기를 띠면서 대답한다; “하선아, 네가 알고 싶은 것이 그것 뿐이냐?”. 윤하선이 엉겁결에 대답한다; “그래, 우선 그것만 알면 된다”. 그러자 ‘호크마 21’을 통하여 활기찬 송우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선아, 너 오늘 참 일진이 좋다. 그 대답을 한국에서는 내가 가장 잘할 수가 있거든... 왜냐하면, 내가 마침 그 문제를 주제로 하여 박사학위논문을 작성하고 있는 거야…”.
윤하선이 깜짝 놀라서 묻는다; “우성이 너는 국회사무처 국제국에서 근무하느라고 무지하게 바쁠 텐데 어떻게 박사학위공부를 하고 있니?”. 그 말을 듣자 송우성이 대답한다; “그래 바쁘기는 하지. 하지만 우리 회사는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실무적으로 돕기 위하여 박사학위를 가진 전문가를 필요로 하고 있어. 그래서 시간을 쪼개어 학위를 취득하려고 하는 직원들을 격려하고 도와주지. 내가 그 혜택을 받고 있는 거야”.
윤하선이 알아들었다. 그래서 급히 묻는다; “그래 우성아 잘 알겠다. 그러면 내가 무슨 자료를 찾아보면 되는데?...”. 송우성이 조리 있게 설명한다; “내가 카톡으로 2장의 그림표를 보내어 줄게. 하나는, 1997년 ‘IMF 사태’ 이후 일본의 경제성장율이 어떻게 떨어졌는가?를 말해주고 있어. 일본에서는 ‘거품이 빠진 것’이라고 20년 동안이나 주장하고 있지만 내가 볼 때에는 그것이 아니야. 그 사이에 일본의 부자들과 자본이 엄청나게 해외로 빠져나간 거지”;
송우성이 신나게 말한다. 자신의 전공분야를 설명하는 것이 기분 좋은 모양이다; “또 하나는, 그때부터 일본의 개인당 국내총생산이 얼마나 후퇴를 하고 있으며 한국의 경우에는 어떻게 상승하고 있는가를 함께 보여주고 있어. 그 두 장의 그림표를 깊이 묵상해보면 하선이 네가 알고자 하는 해답을 능히 얻을 수가 있을 거야”;
송우성이 마지막 설명을 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렇게 일본 땅을 떠난 자본이 지금 미국에서 정치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일본계 펀드의 크기라는 거야. 일본계 펀드의 위력을 알기 쉽게 말하자면, 유태인에 이어 두번째이지. 예를 들어, 미국의 유태인들의 지원을 받은 미국의 대통령이 그 대가로 그 위험한 예루살렘으로 미국대사관을 옮겨준 것으로 볼 수가 있어…”.
조금 생각을 하다가 송우성이 말한다; “그렇다면, 장차 미국에 있는 일본인들의 지원을 받게 되면 미국의 대통령이 어떠한 결정을 할지 몰라. 그것은 틀림없이 일본에게는 무진장 이익이고 한국에게는 무지하게 불리한 것일 게야.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하선아 내게도 꼭 알려다오. 그러면 하선아, 빨리 일을 끝내고 서울에 와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자. 수고…”.
잠시 후에 카톡으로 두 장의 그림이 도착한다. 그것을 윤하선이 오래 들여다본다. 그리고 나름대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는다;
첫째로, 평균 4.2%이던 일본의 경제성장율이 1990년대 중반부터 평균 0.8%로 떨어진다. 평균 3% 이상의 경제성장율이 사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20년 동안 그 정도의 경제력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은 일본정부가 변명하고 있는 ‘거품이 빠졌다’ 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것보다는 송우성이 주장하고 있는 그대로 ‘일본의 자본과 부자들이 일본을 버리고 미국 등 이민국가로 떠나갔다’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둘째로, 그렇게 볼 수 있는 또다른 그림표가 바로 한일간의 개인당 ‘GDP’ 곧 국내총생산을 보여주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일본의 소득은 계속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그래서 꼭지점이 늘 $42,000불 정도이다. 그에 비하여 한국의 경우에는 계속 상승하고 있다. 그 결과 $12,000불이 놀랍게도 $32,000불로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를 참조하면, 일본이 제대로 경제성장을 계속했다고 하면 개인당 $80,000불 소득을 향유하고 있어야 한다. 어째서 그러한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있을까? 그 합리적인 이유는 역시 일본의 자본의 절반 정도가 일본 열도를 떠났기 때문이다.
셋째로, 일본을 떠난 일본인들의 자본이 주로 머물고 있는 곳이 어디일까? 그것은 미국이 주도적으로 돌보고 있는 국제펀드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군사력이 뒷받침이 되어야 국제펀드가 개발도상국에 투자하여 두자리수의 높은 이익을 얻는 한편 돈을 떼이지 아니하고 과실을 무사히 얻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1868년 명치유신 이후 근대화와 산업화를 강력하게 추진했다. 그 정책은 ‘탈아입구’의 염원을 실천하고자 한 것이다. 극동의 변방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이 못사는 대륙 아시아를 벗어나서 잘 사는 대륙 구미지역으로 가고자 하는 욕망이다.
한편, 19세기의 동양에서 유일하게 근대화와 산업화에 성공한 일본제국은 1894년에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1904년에는 러시아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했다. 일본제국이 1941년 12월에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결과 미국에게 패함으로써 일본사람들이 미군정시대를 겪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미국을 섬기는 습성을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일본의 부자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IMF 사태’를 경험하면서 주저함이 없이 일본보다 강한 패권국 미국으로 자본을 가지고 은밀하게 탈출하고 마는 것이다. 세월이 지나자 그 탈출자본이 이제는 일본정부를 도와서 미국의 정계를 움직이는 협상력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역사를 전공한 윤하선이 오래 상고한 결과 찾아내고 있는 나름대로의 결론이다.
그러한 자신의 연구결과를 윤하선은 유끼꼬에게 말하지 않는다. 물론 하세가와 교수 부부에게도 비밀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의 정체를 어느 정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아주 자연스럽게 하세가와 교수의 저택을 빠져나가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윤하선이 유끼꼬와 더불어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조반을 하세가와 교수 부부와 함께한다. 겉으로는 그저께와 조금도 표정변화가 없다. 그것이 일종의 ‘포커 페이스’이다. 일본사람들은 본래 ‘다떼마에와 혼네’라고 해서 자신의 내심을 깊이 감추고 얼굴에 드러내지를 않는다. 마치 인형의 얼굴을 보는 것과 같다. 그래서 그들의 미소도 ‘플라스틱 스마일’이라고 불린다.
이제는 그들에게서 배웠는지 몰라도 윤하선의 얼굴이 그러하다. 그렇게 조반을 마치고 차를 한잔 마시면서 윤하선이 하세가와 교수에게 말한다; “저는 오늘 유끼꼬와 함께 삼촌이 근무하던 ‘한양신문사 동경지국’을 다시 방문해보고자 합니다. 그 동안에 어떤 다른 소식이 들어와 있는지 확인하고자 합니다”.
하세가와 교수 부부는 윤하선이 유끼꼬를 데리고 행동을 하겠다고 하므로 아무 의심을 하지 아니하고 좋다고 말한다. 그래서 윤하선은 무사히 유끼꼬를 데리고 오전에 신문사 지국에 도착한다. 여전히 아무런 소식이 들어온 것이 없다. 그러자 윤하선이 지국장에게 묻는다; “혹시 저의 삼촌이 실종이 되기 전에 취재차 만난 인물이 없습니까?”.
그 말을 듣자 지국장이 자신의 무릎을 탁 치면서 대답한다; “아차, 내가 어째서 그 생각을 진작에 못했을까? 윤치국 특파원이 없어지기 전주에 오사카를 다녀왔어요. 그의 말로는 조총련과 북한과의 관계를 취재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어요. 그곳에서 중요한 제보자를 만난다고 말했는데…”.
지국장이 갑자기 자신의 수첩을 뒤진다. 그러더니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기에 그에 대한 기록이 있어요. 윤특파원이 오사카에 가서 ‘고현중’이라고 하는 사람을 만난다고 말했어요. 그 인물이 조총련을 탈퇴하고 성명을 발표한 적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에게 일본과 북한과의 관계에 대하여 물어볼 말이 있다고 했어요”.
중요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윤하선이 급히 물어본다; “혹시 오사카 어디로 가면 그 고현중이라고 하는 사람을 만날 수가 있을까요?”. 지국장이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한다; “저도 기자 출신이라 기록 하나는 끝내 주게 합니다. 여기 윤치국 특파원이 그때 제게 말해준 그 사람의 전화번화가 있어요. 제가 메모해줄 터이니 가지고 가세요. 그를 만나서 인터뷰를 해보면 분명 윤기자를 찾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뜻밖의 수확이다. 윤하선이 유끼꼬와 함께 먼저 신문사 지국을 들린 것이 다행이다. 그래서 윤하선은 유끼꼬와 함께 하세가와 교수의 저택으로 돌아와서 얼른 여행용 가방을 전부 챙긴다. 혹시 자기가 머물던 그 손님방에 남긴 것이 없는지 꼼꼼하게 점검한다. 그리고 유끼꼬에게도 며칠 오사카에 머물 준비를 하라고 말한다. 그녀도 얼른 여행용 가방을 챙긴다.
윤하선이 가벼운 마음으로 유끼꼬에게 말한다; “부모님께도 사정말씀을 미리 드려야지요. 아무래도 오사카에 가서 며칠 머물면서 삼촌의 행방을 추적해야만 할 것 같아요. 한 일주일 정도 걸릴 예정이라고 미리 말해 두면 좋겠지요. 그 안에 돌아올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유끼꼬는 마음이 들뜬다. 개인적으로 윤하선에게 마음이 끌리고 있는 그녀이다. 둘이서 오사카까지 가서 일주일 정도 여행을 한다고 생각하니 그것이 인생의 보너스로 여겨진다. 그래서 부모에게 아주 잘 말씀을 드리고 허락을 받아낸다. 그렇게 동경역에서 신깐센을 타고서 오사카로 직행하는 두사람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과연 윤치국 특파원을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윤하선은 당장은 호랑이 굴에서 무사히 빠져나온 것처럼 마음이 가볍다. 그래서 기분 좋게 열차여행을 한다. 그리고 자신의 옆에는 아름다운 일본 처녀 유끼꼬가 동행하고 있다. 비록 일본내각 정보부의 비밀요원이라고 하더라도 지금은 자신과 여행을 함께 떠나고 있는 연인이 아닌가?...
그녀가 자신을 감시하는지 몰라도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윤하선이 오히려 그녀를 감시하고 있는 입장이다. 그렇게 동상이몽의 연인 두사람이 즐겁게 신칸센으로 오사카에 가고 있다. 그들은 그곳에서 어떠한 행보를 보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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