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년 손진길 목사 설교문

그 밤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3가지 말씀의 깊은 의미(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10. 5. 13:07

제목; “그 밤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3가지 말씀의 깊은 의미”(13:30-35)

설교일; 주후 20211010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105일 화요일 작성)

 

흔히 예수님의 공생애는 36개월이라고 말합니다. 그 기간은 누가복음 제3장 제1절 말씀을 참조하면 태양력으로 AD 29년부터 32년까지입니다. 계산의 방법은 AD 14년에 로마제국의 제2대 황제로 즉위한 티베리우스가 15년째 통치를 하고 있던 시기 곧 AD 28년에 세례 요한이 요단 강가에서 선지자 활동을 예수님보다 먼저 시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3:1-6);

그러자 세례 요한보다 6개월 늦게 태어나신 나사렛의 예수님이 나이 30세가 되자 역시 자신의 공생애를 시작하고자 요단 강가의 세례 요한을 방문하여 물세례를 받습니다(1:36, 3:21-23). 그때가 태양력으로 AD 29년 초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그해 4월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내실 때까지 여러 달의 활동이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물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 먼저 40일간 금식을 하신 다음에 유대 광야로 가서 마귀의 시험을 받습니다(4:1-2). 그 다음에 안드레를 제자로 삼아 고향이 있는 갈릴리로 가셔서 베드로, 빌립, 나다나엘,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제자로 삼으시고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이적을 행하십니다(1:40-2:11, 1:16-20);

그 후 제자들과 함께 남행하여  예루살렘에서 그해 4월 유월절을 지내시는데 그 기간에 최초의 성전청결운동을 벌이시고 있습니다(1:40-2:23). 그리고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6개월은 AD 31년 가을 초막절에 예루살렘으로 오셔서 다음해 AD 32년 봄 유월절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무덤에서 부활하시고 40일 후에 승천하신 과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엄밀하게 말하자면 6개월 더하기 40일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의 기록을 살펴보면, 3년간의 행적에 대한 것이 제1장부터 제6장까지의 기록이고 마지막 6개월간의 기록이 제7장부터 그 말미인 제21장까지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공생애 가운데 마지막 6개월 동안의 비중이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그 비중이 큰 것일까요? 계량적인 방법으로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계산할 수가 있습니다; 전체 공생애 기간 36개월 가운데 마지막 반년 곧 전체의 7분의1에 대한 기록이 요한복음 총 21장 중 15장 곧 7분의5를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마지막 반년 동안의 행적이 5배의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제7장 첫머리의 기록을 참조하면 예수님의 마지막 공생애 6개월의 시작 시점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셋째해에 찾아오고 있는 10월 초막절이 가까워지자 고향이 있는 북쪽 갈릴리 지방에서 형제들을 먼저 남쪽 예루살렘으로 떠나 보내고 자신은 은밀하게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7:2, 10).

예수님께서는 그때부터 다음해 봄 4월 유월절이 될 때까지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서 복음사역을 하시다가 마침내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게 됩니다. 그 기간 동안에 베다니의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려내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유월절 밤에 최후의 만찬을 가지신 것입니다;

그리고 유월절 만찬을 마치신 그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하신 후 유대교지도자들이 보낸 무리들에 의하여 체포를 당하십니다. 더구나 그날 새벽에 전격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산헤드린 대공회에서 정죄가 되시고 로마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지게 됩니다.

같은 날 골고다에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고 3일후 주일 새벽에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갈릴리에 집합시키십니다(28:6-10). 40일간 그들을 재교육하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셔서 인근 감람산에서 승천하시는 것입니다(24:44-51, 1:3-12);

그와 같은 대사건을 목전에 두신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유월절 밤에 제자들에게 유언삼아 가장 중요한 말씀을 하시고 계시는데 그 내용이 오늘의 성경 본문 곧 요한복음 제13장 제30절에서 제35절까지에 의미심장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피가 있는 성경책을 보면 본문에 대한 소제목을 새 계명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제목을 붙이고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수가 그 대목에 그대로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풀이를 해보자면,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되었으니 이제는 남은 인생을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실천하는 인생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서로 사랑하고 만민을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거듭난 인생을 모두가 살아가야만 한다는 주님의 당부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짧은 여섯 절의 말씀 가운데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구약의 율법에 따른 제례의식 곧 3가지 성전제사가 온전히 완성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 점을 잠시 살펴봅니다;

첫째, 속죄의 제사가 완성되고 있습니다; 레위기 제4장에서 말하고 있는 속죄제는 고의로 하나님의 뜻을 어긴 범죄행위를 용서받기 위한 제사입니다(4:2). 그런데 매년 유대인들의 종교 달력으로 710일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지성소까지 들어가서 희생 제물인 가축의 피를 뿌리면서 드리고 있는 속죄의 제사로는 백성들의 지나간 일년의 죄를 그날 대속할 따름입니다(16:29-30, 9:7).

따라서 그 다음 일년 동안 지은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또다시 이듬해 710일에 대제사장이 행하는 큰 속죄의 제사가 필요합니다. 그와 같은 불완전한 속죄의 제사를 어떻게 하면 영원한 것으로 만들 수가 있을까요? 그 방법이 바로 독생자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스스로 대속의 제물이 되시는 것입니다(7:24-28, 9:11-15);

그렇게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원하고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셨기에 십자가 대속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무덤에서 부활하시고 천하 권세와 더불어 하나님 독생자의 영광을 다시 얻으시는 것입니다(13:31-32, 7:21-8:2, 28:18).  

둘째, 속건의 제사가 완성되고 있습니다; 레위기 제5장에서 규정하고 있는 속건제는 고의가 아니라 과실로 인하여 여호와 하나님은 물론 이웃에게 잘못을 범하고 있는 백성이 자신의 허물을 용서받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리고 있는 제사를 말하고 있습니다(5:15-19);

 

그와 같은 속건의 제사가 매우 중요한데 그 이유는 사도 바울의 설명에 따르면 유대인들이 범하고 있는 잘못된 율법의 해석과 적용 때문입니다.

선민이라고 자랑하고 있는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이기적인 율법해석에 따라 하나님 보시기에 패역을 일삼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피조물을 사랑하여 그 생명을 모두 살리고자 하시는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자 하시는 그리스도를 유대교인들은 그들의 종교적인 열심으로 그만 십자가에 처형하고 만 것입니다(10:1-4). 그와 같은 선민 유대인들의 잘못에 대한 속건의 제사를(53:10) 본문에서는 작은 자에게 주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표현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3:33).    

셋째, 화목의 제사가 완성되고 있습니다; 레위기 제7장에 따르면 화목의 제사는 여호와의 은혜에 감사하여 자발적으로 바치고 있는 제사입니다(7:15-16). 그 제사의 결과 백성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고 이웃과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의 의미를 성도들이 깊이 이해하게 될 때에 선으로 악을 이기며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2:1-2, 14-21). 그 점을 본문에서는 새 계명을 실천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13:34-35).

그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각 구절을 풀이하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3대목으로 나누어서 그 의미를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30. 유다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이러라. 31.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32.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13:30-32);

(1)  유월절 만찬은 본래 해가 지고나서 시작하게 됩니다(12:8). 그러므로 최후의 만찬을 즐긴 다음에 유다가 스승이신 예수님을 배신하고자 다락방을 나서고 있는 시점은 시간적으로 밤이 이미 시작되고 난 후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본문 제30절에서는 유다가 스승을 팔고 대제사장 편이 되고자 문을 나서는 그때를 이라고 사도 요한이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의미는 물리적인 시간보다는 영적인 시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기본적으로,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쪼이고 있는 성도들은 낮의 빛 가운데 행하고 있는 자들입니다(8:12, 9:5);

 

 그와 반대로 가룟 유다처럼 주님을 배신하고 해치고자 하는 흉계를 꾸미며 체포조를 보내고 있는 그때는 영적으로 캄캄한 밤입니다. 더구나 종교재판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정죄하고 로마총독의 권한을 빌려서 십자가에 처형하고 있는 그때는 절망적인 암흑의 시간입니다(27:45). 한마디로, 흑암을 지배하고 있는 악한 영이 득세하고 있는 시간인 것입니다(6:12).  

(3)  가룟 유다가 떠나고 나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참으로 이상한 예언의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사람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드렸으므로 이제는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이 영광을 얻을 때가 다가오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13:31-32). 문맥상으로 보아, 예수님께서 스스로 체포를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희생이 되시는 그 대속의 제사를 통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을 이루어 드림으로써 크나큰 영광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4)  십자가의 고난을 통과한 후에 얻게 되는 부활과 승천의 영광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강조하기 위하여 특이하게도 본문 제31절과 제32절에서는 4차례나 영광이라는 헬라어 δοξά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참고로, 그 용어가 변형되어 사용된 헬라어 성경을 보면 다음과 같이 영광을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무려 5차례나 그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ον τε ξλθεν λέγει ησος· Νν δοξάσθη  υἱὸς το νθρώπου, κα  θες δοξάσθη ν ατ”(13:31 저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인자가 영광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 얻으셨도다)

ε  θες δοξάσθη ν ατ, κα  θες δοξάσει ατν ν ατ, κα εθς δοξάσει ατόν”(13:32 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 주시리니 영광주시리라)

(5)  그렇지만 예수님과 성도들이 영생의 나라에서 얻게 되는 영광은 이 세상에서 세상사람들이 주고 있는 환난과 고난을 통과한 다음의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재삼 강조하고 있는 사도 바울의 글이 다음과 같습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8:16-18);

(6)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의 은혜를 믿고 그 앞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성도들은 누구나 하나님으로부터 칭의의 은혜를 얻고 거듭난 영적인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됩니다(7:21-8:2). 따라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희생의 제사는 율법의 규정에 의거하고 있는 속죄의 제사의 완결판이라고 하겠습니다. 영생의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더 이상의 희생제사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들은 이제 자신의 세상적인 욕심을 내려놓고 자신에게 맡겨진 가벼운 작은 십자가를 지고서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갈 따름입니다(16:24, 11:28-30).  

둘째로, “33.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13:33);

(1)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에 참석한 제자들은 특별히 3년 이상 그리스도와 공생애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12명의 사도들입니다. 그 가운데 한 명 가룟 유다는 스승을 배신하고 대제사장의 편이 되고자 그 자리를 떠나고 맙니다. 이제 충성스러운 11명의 사도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두가지 말씀을 본문에서 하고 계십니다; 하나는, 그들에게 믿음이 작은 자들이라고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13:33a). 또 하나는, 유대인들처럼 그들도 예수님께서 가시는 그 길을 오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13:33b).

(2)  유대인들은 외세를 물리치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는 메시아를 오래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지금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라고 한다면 무엇보다도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에서 로마총독부를 몰아내고 동시에 갈릴리 지방과 그 주변에서 헤롯 왕가를 없애 버려야만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그들의 믿음과 예수님께서 가시고자 하시는 길이 완전히 다릅니다.

(3)  유대인들은 이기적인 믿음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언제나 자신들의 선민우월사상을 고수하면서 하나님께 여호와의 신위적인 능력으로 적들을 물리쳐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37:14-15, 35-36). 만약 다윗과 같은 메시아를 보내셔서 이스라엘 제국을 재건하여 주시면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착실하게 섬길 것입니다;

 

 그러한 그들의 소원을 이루어 주지 아니하면 그들은 다른 우상처럼 여호와를 버리고 말 것입니다.

(4)  그와 같이 이기적이고도 현세적인 이익을 탐하고 있는 믿음생활이 유대교의 특징이며 그것은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을 이 세상에서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으로 부르짖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풀이와는 정반대의 것입니다.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의 진정한 말씀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본문에서 작은 자들이라고 부르고 계십니다(13:33).

(5)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성물을 잘못 다루고 있는 유대인들의 과실이므로 제례의식에 따르면 속건의 제사가 필요합니다(5:15). 그 제사를 이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희생하여 대속의 십자가에서 지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 결과 부활하신 다음에는 제자들을 만나시고 그들을 재교육시켜 그리스도의 복음의 일꾼으로 삼고자 하십니다. 그와 같은 주님의 뜻이 본문 제33절에 깊숙하게 내재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국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속건 제사의 완성인 것입니다.

셋째로,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13:34-35); 예수님의 제자들을 포함하여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생각은 자신들의 선민사회 안에서 십계명을 비롯한 여러 율법을 사람들 보기에 온전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여기에 말씀하고 계시는 새 계명은 그와 다른 내용입니다. 그 점을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유대인 사회 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 사회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민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 사회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여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영생의 구원을 얻어야 합니다.

(2)  둘째, 하나님 앞에서 실천하는 신앙생활은 사람들 앞에서 하는 것과는 달라야 합니다. 사람들의 눈은 속일 수가 있지만 영이신 하나님의 눈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39:9, 4:13). 그러므로 그 심령속에서부터 여호와를 사랑하고 주인으로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여호와를 창조주로 인정할 때에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을 자신과 같은 피조물로서 제 몸처럼 섬기며 돌볼 수가 있게 됩니다(5:44-48).

(3)  셋째, 예수님께서는 생전에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12:30-31). 그리고 그것이 모든 율법과 선지자들이 전한 하나님 말씀의 본뜻이라고 설명하여 주셨습니다(22:36-40). 따라서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새 계명은 율법에 따른 화목제사의 완성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희생제사로 말미암아 더 이상 율법에 따른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가 사라지고 맙니다. 그리스도께서 독생자의 희생으로 영원한 제사를 지내신 것을 성도들이 믿을 때에 그 심령속에 성령께서 임재하시고 내주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4:23-24).

그때부터 성도들은 진리의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그리스도의 교훈과 생애에 비추어 올바르게 이해하고서 힘있게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비록 거듭난 인생 가운데 세상사람들의 핍박이 있을지라도 그 고난을 이기고 마침내 하나님 자녀의 영광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8:17-18, 35-39).

그와 같은 말씀의 은혜가 풍성한 본문입니다. 아무쪼록 자주 묵상하시면서 큰 힘을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