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년 손진길 목사 설교문

아미스이거나 핫초아림이거나 세상을 이기는 비결이 똑같다(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9. 14. 15:20

제목; “아미스이거나 핫초아림이거나 세상을 이기는 비결이 똑같다”(13:7, 14:20-21, 2:23-25, 28:36, 54:14)

설교일; 주후 2021919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914일 화요일 작성)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 곧 천국의 복음을 백성들에게 전파하기 위하여 이 땅에서 36개월간 공생애를 살아가십니다. 그때 예수님을 따르는 소수의 무리가 있으며 그와 달리 천국의 복음을 외면하고서 살아가는 많은 백성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을 영접하느냐? 아니면 배척하느냐?의 기준에서 바라보게 되면 분명히 세상사람들이 두 부류로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창조주 하나님의 영생구원이라는 복음의 혜택이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중에 그를 따르는 무리들 곧 그의 제자들과 사도들에게만 적용되고 있는 일종의 특혜일까요?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 500여년 전 곧 주전 6세기 말의 선지자 스가랴의 글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된 자(아미스)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핫초아림)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13:7);

그 예언의 말씀을 풀이하자면 의미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목자로 세우시는 분은 훗날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메시아의 복음사역 말기에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치십니다. 그 결과 예수님께서는 유대교지도자들에게 체포를 당하시고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게 됩니다.

본문의 내용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 곧 이 세상을 구원하는 천국복음을 만민에게 선포하시는 그리스도를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동역자인 이라고 부르시면서 도리어 그 짝을 칼로 치신다고 하는 이상한 예언으로 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만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구세주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속죄의 제사를 아버지 하나님께 드려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영역본이 다음과 같은 NIV’(new international version)입니다; “’Awake, O sword, against my shepherd, against the man who is close to me!’ declares the Lord Almighty”(zechariah13:7a). 요컨대, 목자 그리스도가 바로 여호와의 가까운 짝입니다.

둘째로, 본문에서 이라고 하는 용어는 하나님의 동역자인 그리스도라고 보기 보다는 공생애 기간 중 예수님을 다윗의 후계자인 메시아로 알고 따라 다니던 그의 제자나 사도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와 같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 영역본이 KJV’(king James version)입니다; “Awake, O sword, against my shepherd, and against the man that is my fellow, seith the Lord of hosts”(zechariah13:7a).

 그렇게 본문에서 의 의미를 my fellow’라고 풀이하게 되면 그 다음의 예언의 말씀에 대한 풀이가 쉬워집니다;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13:7). 그 이유는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그 대목을 정확하게 그대로 인용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13:7),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26:31);

셋째로,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참조하여 을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로 보는 경우 선지서 스가랴에 기록되어 있는 히브리어 아미스’(עֲמִיתִ֔י)가 빛을 발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질 때에 비로소 주님께서는 온 세상 만민을 구원하는 전면적인 복음의 역사를 강력하게 주장하시게 되기 때문입니다(28:18-20). 그것도 이 세상에서 여호와를 모르고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는 하찮은 소자들을 우선적으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16:22-24, 거지 나사로와 같은 소자, 10:46-52, 바디매오와 같은 거지 소경);

그와 같은 맥락에서 스가랴 제13장 제7절 하반부에 나타나고 있는 작은 자들이라는 히브리어 핫초아림’(הַ צֹּעֲרִֽים)이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마태복음 제25장에 기록되어 있는 주님의 말씀이 다음과 같기 때문입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25:40);

요컨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던 무리들 곧 그 제자와 사도들이 처형장으로 가시는 스승님을 버리고 뿔뿔이 흩어진 이후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을 다시 찾아오셨을 때에 비로소 그들이 선민구원사상과 현세적인 구복신앙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영생의 복음을 온세상에 전파하는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고 사도 요한이 기록하고 있습니다(21:15-19). 그와 같은 영적인 사실을 의사 누가 역시 그의 복음서 말미와 사도행전 첫머리에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24:44-53, 1:8).

넷째로, 그와 같이 스가랴의 예언의 말씀을 풀이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두가지 사실을 더불어 알 수 있게 됩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따라다니면서 초기의 12사도들처럼 현세적인 선민의 제국의 성립을 희구하며 그 영광을 함께 누리고자 하면 그때에는 크게 실망하여 주님을 떠나게 된다는 것입니다(10:35-45, 14:50).

또 하나는, 선민만의 구원과 현세적인 복을 추구하는 대신에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세상에 전파하는 경우에는 하찮은 백성에게 베푸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에 참여하게 되는 은혜가 주님의 제자들에게 풍성하게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22:28-30).  

그와 같은 의미에서 스가랴의 예언은 그리스도를 통한 창조주 하나님의 세상 구원의 뜻이 선민만의 좁은 구원이 아니라 만민에 대한 넓은 구원이며 현세적인 구원이 아니라 영생구원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울러 선민과 성도들만의 구원을 희구하고 있는 무리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면목을 알게 되면 크게 실망하여 주님의 곁을 떠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선민의 사회가 붕괴되고 성도들이 온세상에 흩어져야 비로소 세상 끝에서부터 남은 자들을 불러모으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성도들에 의하여 왕성해지는 것입니다(6:9-13, 11:11-12, 24:14, 11:29-36). 그와 같은 맥락에서 오늘의 주제 곧  아미스이거나 핫초아림이거나 세상을 이기는 비결이 똑같다는 말의 뜻을 파악하기 위하여 이제부터 이미 함께 읽어본 성경말씀들을 하나씩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스가랴 제1420-21절 말씀입니다; “20. 그날에는 말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있는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21.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 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가져다가 그것으로 고기를 삶으리라. 그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14:20-21). 다음과 같이 심오한 말씀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여호와신앙을 따르는 무리 곧 선민 아미스이거나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는 비천한 이방인 곧 핫초아림이거나 세상을 이기는 비결이 똑같은데 그것이 바로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것입니다(14:20);

출애굽기 제19장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이끌어낸 이스라엘 자손들을 선민으로 삼고서 그들에게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는 의무를 부과하십니다(19:4-6).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 앞에 이방인을 구원하는 제사장으로서 거룩한 인생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하지만 역사 가운데 그들 선민들이 그 의무를 저버리고 있습니다. 거룩한 패를 스스로 버려 버렸기에 여호와께서는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그 비결인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은혜를 이제는 모든 이방인들에게 개방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거룩한 소리를 이제는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의 거리에서 말방울소리처럼 크게 울리게 하겠다는 것입니다(14:20a).

둘째, 예루살렘성전에서 속죄제와 화목제의 제물을 삶을 수 있는 거룩한 솥을 모든 이방인들에게 개방하겠다는 말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솥에 제물을 삶아서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규칙을(29:31-34) 변경하여 이제부터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하겠다는 말씀입니다(14:21);

따라서 이방인들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입어 여호와께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화목제를 드리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그 점을 주님의 거룩한 희생의 제물을 그들의 주발에 담아서 영적인 양식으로 맛볼 수 있는 은혜가 주어지고 있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14:20b-21a).

셋째, 선민들이 구주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처단함으로 말미암아 선민과 이방인의 구별이 사라지고 맙니다.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자손들만이 선민으로 행세하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수가성의 여인에게 선포하신 말씀 그대로, 이방인 가나안 사람들이 예루살렘성전이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게 되는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는 것입니다(4:20-24);

 그 점을 선지자 스가랴가 그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14:21b)고 본문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먼저 출애굽기 제2장입니다; “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2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2:23-25).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제국에서 중노동에 시달리며 마치 노예와 같은 비참한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민족의 해방과 구원을 여호와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부르짖음에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귀를 기울이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이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24).

주전 21세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당시 북부 시리아 하란 땅에 머무르고 있는 아브람을 불러서 가나안 땅의 원주민들에게 여호와신앙의 모범을 보여주는 선지자로 삼고자 하십니다;

 만약 아비 데라의 엄청난 재산에 대한 상속을 포기하고 아브람이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되면 놀라운 축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12:1-3). 구체적으로, 자손의 번성, 이름의 창대함, 나그네길의 동행과 보호하심, 그리고 가는 곳마다 넘쳐나는 하나님의 축복 등이 언약 가운데 포함되어 있습니다(12:2-3). 그 언약이 대를 이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승계되고 있습니다.

 조상들과의 언약을 기억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보내어 신위적인 능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 광야로 이끌어 내십니다(12:37-42). 그리고 선민의 나라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여보내고자 하십니다. 그러나 출애굽한 기성세대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맙니다(14:26-32).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겉으로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마음속에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하는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진실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대제사장인 아론의 예복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그 점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십니다; “36. 너는 또 순금으로 패를 만들어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그 위에 새기되, ‘여호와께 성결(holiness to the Lord)이라 하고, 37. 그 패를 청색 끈으로 관위에 매되, 곧 관 전면에 있게 하라”(28:36-37).

셋째로, 스가랴 제14장에서 강조하고 있는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말씀은 이미 살펴본 그대로 대제사장 아론의 이마에 붙이고 있는 금패에 새겨지는 말씀입니다(14:20, 28:36). 히브리어 코데쉬 라 여호와’(קֹ֖דֶשׁ לַֽ יהוָֽה)라는 말씀을 명심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성결함을 끝까지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그 말의 뜻을 소급하여 찾아보면 창세기 제17장 첫머리입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창조주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7:1). 만약 아브라함이 자신의 인생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완전한 인생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여호와의 뜻대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에게 임하고 있기에 그의 인생이 영생의 구원을 얻기에 충분해지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하나님께 성결이라고 하는 코데쉬 라 여호와라는 용어의 뜻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주인의 뜻을 실천하는 종으로서의 인생을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들은 매사 생명의 창조주이시며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뜻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처럼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기도와 간구로 그 뜻을 실천하는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있어서는 선민 출신이거나 이방인 출신이거나 그 출신성분이 전혀 문제가 되지를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 임하는 여호와의 보호하심과 은혜가 다음과 같이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너는 공의로 설 것이며, 학대가 네게서 멀어질 것인즉, 네가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며, 공포도 네게 가까이하지 못할 것이라”(54:14);

그 뜻을 간략하게 풀이해보자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뜻을 이 땅에서 실천하는 성도들을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도와 주신다는 것입니다; 첫째,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구현하는 인생이 되도록 그 길을 인도하십니다. 둘째, 근거가 없는 적들의 비방과 핍박을 막아 주십니다. 셋째, 죽음의 공포와 상해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사전에 조치를 취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인생의 두려움과 어려움을 아버지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서 언제나 그 앞에서 주님처럼 신실한 종으로서의 일생을 끝까지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