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년 손진길 목사 설교문

므나 비유와 달란트 비유가 말하고 있는 인간의 평등과 불평등(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8. 31. 02:17

제목; “므나 비유와 달란트 비유가 말하고 있는 인간의 평등과 불평등”(19:11-27, 25:14-30)

설교일; 주후 202195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831일 화요일 작성)

 

인간은 겉으로 보면 모두가 평등합니다. 그 이유를 창세기 제1장과 제2장에서 다음과 같이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1:26-29),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2:7);

위의 기록을 참조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다음과 같이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사람은 창조의 첫날부터 여섯째날 전반부까지 이루어진 모든 자연과 생물의 창조와는 그 격이 다릅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창조주 하나님께서 모든 신적인 능력을 총동원하여 마지막 걸작품으로 완성하신 창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목의 표현이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1:26)라는 구절입니다. 한마디로, 복수의 하나님의 위격이 총력을 기울여서 필요한 협의과정을 통하여 비로소 하나님의 청지기로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의미가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 인간에게 골고루 분배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기 쉽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여자를 창조하시고”(1:27).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남자에게만 일방적으로 부여한 것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차별하거나 불평등하게 취급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에서 어긋나는 행위입니다;

셋째로, 남자와 여자로 분류가 되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땅을 경작하며 하늘과 땅과 바다의 생물들을 전부 관리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1:28)는 구절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남자와 여자는 가정을 이루고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는 권리까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육과 번성이 불가능한 결합을 가정의 제도로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뜻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훗날 사도 바울의 지적이 통렬합니다(1:25-27).

넷째로, 사람들이 넉넉하게 먹을 것을 얻을 수 있도록 창조주 하나님께서 두가지를 제공하고 계십니다; “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1:29). 풀이를 해보자면, 하나가, 야들야들하고 맛이 좋은 채소류(vegetables)입니다. 또 하나가, 유실수에서 얻을 수 있는 과일들(fruits)입니다. 그것들은 가축류와 기타 동물들에게 먹거리로 주고 있는 풀(grass)과 비교할 때 엄청 영양가가 좋고 맛있는 식물들입니다(1:29-30). 그와 같은 특권을 인간이라면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누리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다섯째로, 사람이라면 누구나 천부적인 소중한 공통점을 하나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흙으로 지어져 있는 생물 가운데 사람만이 유일하게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호흡을 얻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흙으로 빗어진 인간이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을 영적으로 받아서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발휘할 수 있는 생령(生靈, living soul) 곧 살아서 움직이는 혼적인 존재가 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창세기 제2장 제7절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2:7).  

작은 결론을 맺어보자면 오늘날 민주국가에서 헌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소중한 인간의 기본권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 창세기 제1장과 제2장에서 위와 같이 웅변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보자면 의사 누가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가운데 귀하게 발견하여 그의 복음서에 기록하고 있는 므나의 비유’(19:11-27)가 인간의 천부적인 기본권의 평등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평등하게 한 므나 씩 얻고 있기 때문입니다(19:13);

애초부터 2므나 또는 5므나를 얻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시작은 그러한데 사람의 성취가 인생 가운데 그러하지를 못합니다. 자신의 생명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하여 열심히 일한 청지기는 5므나 또는 10므나의 이득을 얻어서 주인에게 돌려드리는 영광을 얻고 있습니다(19:16, 18);

그 결과 논공행상에 있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통치권의 분배를 받습니다. 그 대목이 5고을 또는 10고을을 맡아서 다스리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19:17, 19).

반면에 그와 같은 천국의 논공행상에 참여하지 못하는 불충한 청지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는 주인이 준 므나를 활용하여 주인에게 이득을 안겨드리고자 하는 생각이 없는 종입니다. 오로지 자기 마음대로 인생을 살아가고자 그 므나를 수건으로 싸서 보관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성경을 읽고서 창조주의 뜻을 깨달아 신실한 주님의 종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생각이 전혀 없는 불성실한 성도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불행한 일은 의사 누가의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청지기와 셈을 하기 위하여 인생 가운데 반드시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19:15).

그때 불충한 종이 다음과 같이 변명합니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19:21). 그러나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명령과 전혀 상관이 없이 제멋대로 살아간 자의 변명이 통하지를 않습니다(19:22-23). 그 결과 하나님이 주신 천부적인 권리를 모두 빼앗기고 비참한 운명에 처해지고 마는 것입니다(19:24-26);

이상과 같은 내용의 므나의 비유를 깊이 생각해보면 의사 누가가 강조하고 있는 두가지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은 누구나 동등하게 천부적인 권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위적으로 차별해서는 안됩니다. 만약 차별하게 되면 창조주의 형상과 모양을 동등하게 부여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갔느냐?에 따라서 훗날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그 대접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성경말씀 가운데 자신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청지기 사명을 깨닫고 신실하게 살아간 종은 칭찬을 받으며 주님과 함께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리는 면류관을 얻게 됩니다(22:28-30). 그러하지 못한 자는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특권마저 빼앗기는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을 살다가 보면 사람들이 반드시 창조주 하나님께 따지고 싶은 한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본적인 사람의 권리는 천부적으로 동등하다고 하더라도 개인이 가진 능력은 천차만별이라는 것입니다;

쉬운 예화를 하나 들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오래 전에 어떤 기술자가 하나님께 불평하는 내용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자신은 빌 게이츠와 나이도 비슷하고 공학을 공부한 것도 비슷한데 어째서 그 자는 세계적인 발명가가 되어 엄청난 부와 영광을 누리고 있는데 자신은 여전히 초라한 기술자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그것이 하나님께 불만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그의 불평에도 하나님께서는 귀를 기울이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의사 누가가 기록하고 있는 므나의 비유와 상당히 다른 주님의 비유가 사도 마태에 의하여 그의 복음서에 벌써 달란트의 비유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25:14-30).

달란트의 비유의 시작은 사람이란 그 타고난 능력이 다르다는 사실을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정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인이 하나님의 청지기가 되고 있는 종들에게 달란트를 나누어 줄 때에 5달란트, 2달란트, 또는 1달란트로 차별적으로 배분하여 주고 있습니다(25:14-15). 요컨대, 그것은 능력에 따른 천부적인 차이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이 돌아와서 종들과 셈을 하게 될 때에는 그 불평등이 마치 눈이 녹듯이 단숨에 해소가 되고 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놀랍게도 금화 5달란트에 해당하는 재능을 천부적으로 부여 받은 종에게는 5달란트의 이득을 요구하고 있고, 2달란트 받은 종에게는 2달란트의 이득을 남겼는가를 보고 있으며, 1달란트를 맡긴 종에게는 또 다른 한 달란트의 이익을 얻었는지를 살피고 있다는 것입니다(25:19-23);

그것은 각자 재능을 발휘하여 주인에게 한 배()의 이익만을 돌려드리면 된다는 것입니다. 주인은 청지기에게 같은 비율의 이익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주 공평한 요구사항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공평무사하게 셈을 하고 계시는 주인에게 종이 다른 핑계나 변명을 할 수가 없습니다(25:24-29);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공평하게 100%의 헌신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청지기인 성도들은 주님의 모범을 따라 온세상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며 나 먼저 복음을 실천하는 제자의 삶을 신실하게 끝까지 살아가면 됩니다. 그것이 소위 크리스천의 제자도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

그와 같이 신실하게 한평생 살아간 주님의 제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는 그대로 갚아 주십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는 각 사람이 행한대로 갚으리라”(16:27). 그 말씀을 의사 누가가 더욱 확실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22:28-30);

그러므로 아무쪼록 한평생 주님의 제자답게 살아감으로써 하나님나라의 논공행상에 기쁘게 참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