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년 손진길 목사 설교문

도성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하였는데 어째서 그 나라 앗수르는 멸망을 당하고 메시아 시대에 비로소 구원을 바라보게 되는가(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8. 24. 08:56

제목; “도성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하였는데 어째서 그 나라  앗수르는 멸망을 당하고 메시아 시대에 비로소 구원을 바라보게 되는가?”(3:4-10, 나1:1-8, 25:29, 19:22-25)

설교일; 주후 2021829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824일 화요일 작성)

 

인류 최초의 고대문명은 주전 4,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기이하게도 그 연대는 창세기 제5장과 11장 그리고 열왕기상 제61절에서 계산하여 얻은 결과 곧 아담의 탄생시기 주전 4,114년과 상당히 일치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그 계산의 방법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노아 홍수(B.C. 2458)로부터 아담 탄생의 시기까지는 계산 방법이 노아 600(7:6), 라멕 182(5:28), 므두셀라 187(5:25), 에녹 65(5:21), 야렛 162(5:18), 마할랄렛 65(5:15), 게난 70(5:12), 에노스 90(5:9),  105(5:6), 아담 130(5:3) 더하면 됩니다계산의 결과를 보면,  B.C. 4114년에 아담이 탄생한 것입니다.

둘째, B.C. 4000년은 아담 114세이며 다음 16 후에 셋이 출생하게 됩니다 때가 바로 인류 최초 문명 메소포타미아시대의 시작 시점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창세기 11장을 가지고 연대를 계산해보면홍수 심판과 바벨탑 사건은 언제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요? 먼저, 구약 연대측정의 기초가 되고 있는 대목은 “왕상6:1”입니다. 그 이유는 출애굽  480년이 B.C. 966년에 해당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노아의 홍수시기를 계산해보자면다음 햇수를 모두 합산해야 합니다 기원전 966년은 출애굽후 480년이 경과한 여기에 애굽 체류기간 430년을 더하고(12:40-42)  야곱이 애굽에 왔을  130(창47:9)  이삭 60세에 야곱 탄생(25:26)  아브라함 100세에 이삭 탄생(21:5)  데라 70세에 아브람 탄생(11:26)  조상들의 자식 생산 나이는나홀 29(11:24), 스룩 30(11:22), 르우 32(11:20), 벨렉 30(11:18), 특히 에벨 34(11:16, 벨렉 탄생한 해에 세상이 나뉘는 이른바바벨탑 사건 있었음, 10:25), 그리고 셀라 30(11:14), 아르박삿 35(11:12),  100(11:10, 아르박삿 탄생 2 전에 홍수). 이제 위의 계산법을 따라가면서 노아의 홍수 시기를 먼저 계산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B.C.966+480+430+130+60+100+70+29+30+32+30(바벨탑)+34+30+35+2=B.C.2458년입니다. 그리고 바벨탑 사건 B.C.2357 단군기원 B.C.2333년보다 24년이 앞서며 구체적으로 홍수심판  101 만에 발생한 것입니다;

 

 한편, 메소포타미아는 두 강 사이라는 의미인데 그것은 서쪽의 유프라테스 강과 동쪽의 티크리스 강이 만나 형성하고 있는 엄청나게 비옥한 땅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와 유사한 경우를 찾아보자면 애굽 문명권과 중국 문명권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이디오피아에서 시작되고 있는 청()나일 강과 빅토리아 호수에서 발원하고 있는 백()나일 강이 만나 애굽 지역에 비옥한 땅을 만들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회수와 양자강이 만나는 중원 지역에 비옥한 땅이 형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도성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하였는데 어째서 그 나라  앗수르는 멸망을 당하고 메시아 시대에 비로소 구원을 바라보게 되는가?입니다. 그것은 티크리스 강 상류의 성읍 니느웨에서 시작된 앗수르 제국의 융성과 멸망 그리고 구원에 관하여 선지자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먼저 알아보고 그 메시지를 성도의 삶에 교훈으로 삼고자 하는 것입니다.

먼저 니느웨 사람들의 회개에 대해서는 선지자 요나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소선지서 요나의 내용을 참조하면 그 요지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1-2장의 내용을 살펴보면, 주전 8세기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번영기인 여로보암2세의 시대에 변방 갈릴리의 선지자 요나가 여호와의 명령을 받게 됩니다. 당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여로보암2세가 그 옛날 다윗대왕이 차지했던 동쪽의 영토를 크게 회복하여 티크리스 강의 상류 니느웨로 가는 길이 열린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요나에게 이제는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 성읍으로 가서 이방인에게 여호와의 메시지를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1:1-2).

선민 이스라엘의 선지자인 요나는 여호와의 명령을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의 말씀과 율법은 선민만의 것이므로 그것을 이방인에게 전달한다고 하는 것은 전통적인 선민사상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지자 요나는 여호와의 명령을 이행하지 아니하기 위하여 동쪽 니느웨가 아니라 서쪽 끝 스페인의 다시스 항으로 도망치고 있습니다(1:3);

그 결과 요나가 탄 배가 난파의 위기를 당하게 되고 그는 선원들에 의하여 바다에 던져지게 됩니다.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기적적으로 숨을 쉬게 되자 마침내 여호와의 뜻을 깨닫고 회개하게 됩니다(1:17, 2:1-10);

둘째, 3장에서 선지자 요나는 무려 800km의 길을 걸어 니느웨 성읍에 도착합니다. 참고로, 그 거리는 부산에서 신의주까지의 거리에 해당하고 있습니다. 요나가 전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은 회개하지 아니하면 창조주 하나님의 진노로 40일후에 니느웨 성읍이 무너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선지자 요나가 부르짖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은 이방인 니느웨 사람들의 심정을 상하게 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요나는 죽음을 각오하고 그 메시지를 외친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니느웨 성읍을 한바퀴 돌자면 3일이 걸리는데 단 하루만에 그 메시지를 들은 이방인 왕과 신하들이 백성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회개의 마당으로 나아오고 있다는 것입니다(3:5-10);

셋째, 니느웨 성읍의 왕과 귀족들 그리고 백성들이 선지자의 메시지를 듣고 여호와 앞에 자신들이 죄인임을 고백하면서 용서를 구하는 광경을 보고서 요나가 기뻐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4장의 내용을 보면 선지자 요나가 도리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엄청 화를 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선민에게만 주어지는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여호와께서 이방인 니느웨 사람들에게 베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요나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니느웨 동쪽 외곽의 높은 구릉지에 초막을 짓고서 장차 니느웨 성읍이 어떻게 되는가를 지켜보고 있습니다(4:5). 왜냐하면, 이방인 니느웨 사람들이 일단 회개하고 멸망을 모면하고 있지만 멀지 아니하여 다시 여호와 앞에 죄를 범하고 죽임을 당할 것으로 짐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삐뚤어진 선지자 요나의 선민구원 이방인 멸망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요나 선지자를 질책하십니다;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12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그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4:11).

이상과 같은 선지자 요나의 기록에서 알 수 있는 두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은 선민만의 구원자 여호와가 아니시고 이방인까지 모두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민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구원을 자신들만 누리고 그 대신에 이방인들에게는 진노와 멸망을 내려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잘못된 선민우월주의 사상입니다.

또 하나는, 주전 8세기에 선지자 요나의 메시지를 듣고서 회개한 니느웨 성읍의 왕과 백성들이었지만 그들이 역사 가운데 완전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일단 여호와의 진노와 멸망의 위기를 한번 벗어났지만 그 다음의 행보가 구원을 계속 누리기에 적합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역사 가운데 앗수르 제국이 니느웨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평정한 후에 앗수르는 서토(西土)정벌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 빌미를 주전 8세기 후반 유다왕국의 통치자인 아하스 왕이 제공하고 있습니다(왕하16:7).

아하스 왕은 반()앗수르 동맹을 결성하자고 하는 북조 이스라엘과 아람왕국의 요청을 단칼에 거절합니다. 그 때문에 이스라엘과 아람의 연합군의 공격에 직면하게 됩니다. 위기에 처한 유다의 아하스 왕은 앗수르제국의 황제에게 구원을 요청합니다.

전쟁의 명분을 얻은 앗수르의 황제는 대군을 이끌고 와서 주전 733년에 아람왕국을 멸망시키고 주전 722년에는 북조 이스라엘 왕국마저 정복하고 맙니다. 이리를 피하려다가 호랑이를 끌어들인 어리석은 유다왕국은 마침내 앗수르제국 산헤립 황제의 침입을 두차례 허용하고 마는 것입니다;

주전 701년 선지자 이사야의 시대에 유다왕 히스기야는 예루살렘 성에 갇혀서 결사적으로 항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요청한 애굽의 구원병마저 산헤립 황제의 지략으로 궤멸을 당하고 맙니다(왕하18:21, 19:8-9). 절대절명의 순간에 히스기야 왕이 신하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서 참회하는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합니다.

당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여호와의 말씀이 히스기야 왕에게 전달이 되고 있는데 그 내용이 이상합니다. 왜냐하면, 히스기야 왕과 백성들을 위하여 예루살렘성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와 다윗왕을 위하여 구원한다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왕하19:34, 37:35);

그 말씀의 뜻은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영광과 권능을 훼방하고 있는 산헤립 황제가 괘씸하여 신위적으로 앗수르 군대를 물리치고 예루살렘성을 구원하여 주겠지만 그것은 결코 히스기야 왕이나 유다의 백성들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유다의 왕과 백성들은 개과천선하여 그 옛날 다윗대왕처럼 여호와의 종으로 신실하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일단 위기에서 벗어난 히스기야 왕이 그러하지를 못합니다. 그는 적어도 4가지의 큰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 그는 자신이 기도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제나 구원을 베풀어 주신다고 하는 잘못된 기복신앙에 빠지고 맙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도구로 생각하는 우상 문화입니다.

둘째, 여호와의 구원을 온세상에 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랑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그 예가 바로 멀리 바벨론에서 온 사신들에게 유다왕국의 강성함과 자신의 위세를 마음껏 자랑한 것입니다. 그는 유다 왕국의 군대의 힘으로 앗수르 제국의 군대를 물리쳤다고 하는 잘못된 사고방식에 젖어 있습니다;

셋째, 그와 같은 히스기야 왕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 선지자 이사야에게 그는 매우 현세주의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당대에 영광을 누리면 그만이지 후대에 가서 나라가 망하고 후손들이 정복자의 종이 되는 것은 자신이 상관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후안무치한 말을 내뱉고 마는 것입니다; “당신이 이른 바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 하고 또 이르되, 내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 하니라”(39:8).

넷째, 히스기야 왕이 여호와께 기도하여 15년 목숨연장을 받은 것이 도리어 화가 되고 맙니다. 그 이유는 3년후에 태어난 왕자 므낫세가 그만 유다왕국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악한 왕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왕하21:1-16). 부왕 히스기야로부터 배운 것이 우상문화와 기복신앙 그리고 현세주의사상과 자기 자랑입니다. 그 때문에 손자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에도 불구하고 주전 586년에 마지막 선민의 나라 유다왕국이 지상에서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왕하25:1-7);

선민 유다왕국의 역사가 그렇다면 이방인 제국 앗수르의 역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 점을 역사적인 멸망이 임하기 전에 선지자 나훔이 그의 예언서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 니느웨에 대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 2.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3.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 여호와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의 발의 티끌이로다. 4. 그는 바다를 꾸짖어 그것을 말리시며 모든 강을 말리시나니, 바산과 갈멜이 쇠하며 레바논의 꽃이 시드는도다. 5. 그로 말미암아 산들이 진동하며 작은 산들이 녹고 그 앞에서는 땅 곧 세계와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들이 솟아오르는도다. 6.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그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니, 그로 말미암아 바위들이 깨지는도다. 7.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8. 그가 범람하는 물로 그곳을 진멸하시고(이는 큰 강 유역의 나라 메대와 신바벨론의 기습공격으로 티크리스 상류의 요새지 니느웨가 멸망을 당한다는 예언으로 볼 수 있음),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1:1-8);

역사적으로 보면, 주전 8세기 나훔 선지자의 예언 그대로 앗수르제국의 수도인 니느웨가 그만 주전 612년에 메대와 갈대아군대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적의 수중에 넘어가고 맙니다. 메대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신바벨론제국의 황제 느부갓네살은 주전 605년에 앗수르제국을 완전히 정복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앗수르제국을 정복한 느부갓네살은 그 여세를 몰아 주전 586년에 마지막 제사장나라 다윗왕조 유다왕국을 정벌합니다. 아울러 가나안 일대의 왕국들을 모조리 정복합니다.

그렇지만 두려운 것은 창조주 여호와의 역사 섭리입니다.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있는 신바벨론제국은 물론 그 뒤를 잇고 있는 이방인 제국들 곧 페르시아제국, 헬라제국, 로마제국 등이 하나같이 여호와의 진노로 차례로 멸망을 당하고 만다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역사 가운데 그대로 성취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 제사장나라 유다왕국이 지상에서 사라지듯이 동일한 죄악을 범하고 있는 이방나라와 제국들이 차례로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주전 6세기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내 이름으로 일컫음을 받는 성에서부터 재앙 내리기를 시작하였은즉 너희가 어찌 능히 형벌을 면할 수 있느냐? 면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칼을 불러 세상의 모든 주민을 칠 것임이라 하셨다 하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5:29).

선민의 나라가 멸망하고 세상의 제국들이 차례대로 망하고 나면 인류의 역사는 끝장이 나며 모든 인류는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고 마는 것일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옛날 회개한 니느웨 백성들을 구원하여 주시듯이 피조물의 생명을 아끼고 회개하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와 같은 창조주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과 말씀의 뜻을 이 세상에 분명하게 드러내신 분이 바로 구세주 메시아로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구약시대 선지자들을 선민사회에 보내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전달하였지만(11:27) 선민들이 결코 이방인의 구원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나라로 또한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의 구원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선지자로 살아가지 아니하고 있습니다(19:6, 1:2-3, 12:39).

변방 갈릴리 가드헤벨의 선지자 요나에게 명령하여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했지만 선민사상에 젖어 있는 요나가 불순종합니다. 그를 신위적인 능력으로 회개시켜 니느웨에 보냈지만 이방인들이 회개를 하고서 구원을 받는 모습을 보고서는 요나가 여호와 하나님께 화를 내고 있습니다.

그 대목에서 여호와께서는 요나에게 자신은 선민 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까지 그 생명을 아끼고 구원을 베푸시기를 원하신다는 만민구원의 복음의 뜻을 드러내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선민 이방인 구별없이 누구나 여호와의 말씀을 외면하고 이기적으로 살아가게 되면 멸망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영접하고 그 제자로 그리고 여호와의 종으로 신실하게 살아가게 되면 영생의 구원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1:12-13, 3:16).

그와 같은 여호와의 뜻을 주전 8세기의 유다왕국의 선지자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기록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22.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주시리라. 23. 그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24. 그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25.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19:22-25);

결론적으로, 오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보고자 합니다;

첫째, 주전 8세기 요나 선지자가 전하는 여호와의 심판의 말씀을 듣고서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의 백성들이 국왕과 더불어 크게 회개를 합니다. 그 결과 멸망이 아니라 여호와의 구원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한 회개가 아니며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세월이 지나자 다시 옛날의 행실로 되돌아가서 엄청난 죄악을 범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둘째, 구체적으로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니느웨 사람들의 앗수르 왕국이 메소포타미아의 패권국이 됩니다. 그후 앗수르제국이 엄청난 죄악을 범하고 맙니다. 그들은 감히 선민의 나라 북조 이스라엘왕국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 10지파를 지상에서 사라지게 만든 것입니다(왕하17:5-6).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앗수르제국이 주전 7세기 말에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속히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셋째, 그렇다면 니느웨 사람들이 완전한 구원을 누리게 되는 것은 언제일까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 그대로 메시아의 오심으로 만민구원 영생구원의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새 언약 곧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대가 되면 선민 이스라엘을 괴롭힌 애굽은 물론 제사장나라를 멸망시킨 앗수르가 또한 회개를 하고서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온 세상의 복음화에 앞장을 서는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초대교회의 역사를 보면 시리아의 안디옥이 유다의 예루살렘 및 애굽의 알렉산드리아와 더불어 복음전파의 기지가 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성경이 해석되고 신학이 탄생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훗날 예루살렘교회의 전통을 로마의 교회가 잇고 있으며 시리아의 교회는 북방과 동방의 선교에 나서게 됩니다. 그 결과 고트족에 의하여 로마제국이 멸망을 당하지만 시리아인들의 선교로 기독교인이 된 고트족의 도움으로 로마교회가 역사적으로 살아남게 됩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중심으로 하여 앗수르와 시리아의 역사를 한번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세상의 종말이 시작되고 다시 오심으로 우리의 구원이 완성된다고 하는 하나님의 역사의 섭리를 바라보면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성도의 삶을 끝까지 신실하게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