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년 손진길 목사 설교문

시험을 통과하면 걸림돌이 디딤돌로 바뀐다(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9. 7. 12:09

제목; “시험을 통과하면 걸림돌이 디딤돌로 바뀐다”(4:1-11, 21:33-46, 3:4-6)

설교일; 주후 2021912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97일 화요일 작성)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을 온세상에 전하는 자신의 복음사역 곧 36개월 동안의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유대 광야로 나아가서 마귀의 시험을 받고 있습니다(4:1-11, 4:1-13). 어째서 그 시험의 과정이 필요한 것일까요?

겉으로 보면, 그 시험의 내용이 심히 간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마귀의 세가지 시험을 물리친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40일간 금식한 다음에 영적인 놀라운 깨달음을 얻어서 그 시험을 통과하고 계시는 모습을 바라보게 되면 그러한 사실을 능히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가장 먼저 세례 요한을 찾아가 요단 강변에서 세례를 받습니다(3:13-17). 그리고 자신이 백성들에게 선포해야만 하는 아버지 하나님의 복음의 뜻이 무엇인지를 확고하게 체계적으로 정립하기 위하여 40일간 금식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 다음 그 영적인 깨달음을 가지고 마귀의 세가지 시험을 거뜬하게 통과하시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외면상 세가지 시험은 간단한 것 같지만 내적으로는 그 의미가 심오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믿음생활의 초석이 되고 있는 핵심사항이 그 가운데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약 그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실격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때는 성도의 삶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매사 걸림돌이 되고 말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고집대로 일을 처리하고 있지만 그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는 다르기에 그 시금석에 걸려서 그만 신앙생활에 있어 실족하고 마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 시험을 통과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때에는 성도들의 복음사역이 예수님의 공생애의 모습을 닮아가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시험을 통과한 성도의 경험이 믿음성장의 디딤돌이 되어 올바른 복음사역을 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있기에 성도의 삶이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제부터 마태복음 제4장에 기록되어 있는 마귀의 세가지 시험의 내용과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아울러 그 시험을 물리치고 있는 예수님의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자세하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마귀의 첫번째 시험은 돌로 떡을 만들어 먹는 것이 좋겠다는 것입니다. 40일간 주리신 예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능력을 활용하여 이 돌을 떡으로 만들어 시장함을 면하는 것이 좋겠다는 마귀의 유혹은 합리적이면서도 달콤하게 들립니다(4:2-3);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란 백성들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우선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마귀의 유혹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대응하십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삶을 영위하는 목적이 단순하게 먹고 사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영생의 구원을 얻는데 있다는 복음적인 진리를 그 자리에서 엄중하게 선포하신 것입니다(4:4, 8:3).

사실 사람의 인생이 중요한 이유는 영생의 구원을 얻는 단 한번의 기회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교훈 곧 거지 나사로와 부자와의 비유 가운데 나타나고 있는 한 대목이 그 사실을 실감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아직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는 나의 형제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16:30-31).

요컨대 사람의 한번 뿐인 인생의 목적은 창조주를 만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감으로써 영생의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그 인생의 목적을 잊어버리고 단지 목숨을 유지하는 수단에 불과한 떡을 만드는 일에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게 되면 그것은 본말이 전도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훗날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푼 자신을 유다의 임금으로 삼고자 하는 무리들을 피하여 그 자리를 급히 떠나고 마십니다(6:15).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성도들이 경제적인 문제의 해결에 인생을 거의 소비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자신의 인생의 목적이 주님을 만나 그 인도함을 따라서 천국에 들어가는 영생을 얻는데 있다는 사실을 아주 잊어버리고 맙니다.

오늘날에도 세상사람들에게 인생의 목적이 영생구원의 마지막 기회를 얻는데 있다고 복음적인 설명을 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그러한 가르침이 그들에게 일종의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점을 선지자 이사야의 기록 제2816절을 인용하여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9:33). 그 뜻을 풀이해보자면, 영생의 복음을 믿지 아니하면 주님의 말씀이 인생길에서 걸림돌이 될 것이며 장차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크게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을 싫어하는 무리들은 이방인에 국한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내내 선민 유대인들로부터 오는 여러가지 박해와 핍박에 계속 시달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도 유대교의 지도자들과 선민 유대인들이 오랜 세월 하나님의 말씀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여 오로지 선민만의 구원과 현세적인 구원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교리화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을 유대사회에 전파하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교의 적으로 정죄한 후 십자가에 처형하고 맙니다. 그와 같은 미래에 대하여 미리 예언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사실은 마태복음 제21장에 수록되어 있는 포도원농부 비유입니다(21:33-46);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은 선민만의 구원과 현세적인 하나님의 축복을 강조하고 있는 자신들의 유대교리를 파수하기 위하여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있습니다(21:34-36, 23:31, 26:23). 그 이유는 선지자들이 만민을 사랑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6:1-7).

그 결과 영적인 암흑시대가 도래합니다. 구체적으로, 주전 5세기말 말라기 선지자 이후 주후 1세기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시대까지 무려 400년 이상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선지자가 유대사회에 나타나지 아니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영적인 암흑시대를 유대교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오히려 선호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방인까지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이 싫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5:43-48). 그리고 세상이익과 세상영광을 탐하지 말고 영생구원을 위하여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현실적으로 결코 동의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16:24-26).

그들은 일일이 걸림돌이 되고 있는 나사렛 예수를 제거함으로써 현실성이 없는 예수의 복음을 끝장내고 싶어합니다. 그 대신에 현세구복적인 자신들의 유대교를 고수하는 한편 선민의 영광을 온세상에 떨칠 메시아를 계속 기다리면서 제 마음대로 한 세상 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하나님의 아들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고 예수님께서 포도원농부 비유에서 지적하십니다(21:37-39);

그 다음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는 것일까요? 주후 70년경 선민 유대인들이 그들의 포도원인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쫓겨나며 그 결과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방인들을 먼저 구원하는 하나님의 역사섭리가 이 세상에 임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예수님께서 포도원농부 비유에서 설명하십니다.

참고로 관련 구절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선민들에게 걸림돌이 되었다는 뜻임)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이방인에게는 디딤돌이 되었다는 의미임) 이것이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118:22-23)함을 읽어본 일이 없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걸림돌이 나중에는 심판의 시금석이 된다는 것임),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21:40-46).

둘째로, 마귀가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성전의 꼭대기에서 한번 뛰어내려 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4:5-6). 많은 백성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예수님이 그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신위적인 능력으로 안전하게 착지를 시켜준다고 하면 백성들이 환호할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종처럼 부리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영광을 찬양하면서 지금 당장 자신들을 로마제국의 압제에서 구원하여 달라고 호산나를 외칠 것입니다(21:9). 그러나 그것은 아주 두려운 마귀의 유혹이며 무서운 시험입니다.

기본적으로 피조물은 하나같이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종입니다. 육신을 가지고 태어나신 예수님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종입니다(52:13, 53:11). 종은 주인의 뜻을 실천하는 인생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만약 주종관계가 꺼꾸로 되어 종이 주인을 자신의 도구로 마구 부리게 되면 그것은 패역이며 심판의 대상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우상을 만들어 신으로 섬기면서 자신들의 이기적인 욕심을 이루고자 합니다. 나아가서 창조주 하나님을 감히 사람이 만든 우상처럼 만만하게 종으로 부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을 우상으로 섬기고자 하면 영벌(永罰, eternal punishment)의 심판에 들어가고 맙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마귀가 예수님을 유혹하여 그 시험에서 실족하게 만들고자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호되게 질책하십니다;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4:7, 6:13).

두번째 시험에는 또 하나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높은 곳에서 자신의 위세를 자랑하고자 하는 악한 영과 그것을 추종하는 사람의 마음이 다음과 같이 그 속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첫째,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마음 그것이 그 옛날 선악과를 따먹은 하와의 의도이며 숨은 생각입니다(3:5-6);

둘째, 히브리전승을 원용하고 있는 선지자 이사야의 설명을 요약하면 악한 영의 정체는 다음과 같습니다; “천사장 루시엘이 자신의 보좌를 창조주 하나님만큼 높이고자 한 죄악 때문에 이 세상에 쫓겨나서 루시퍼 사탄 곧 마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14:12-14).

한편,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제사장나라의 율법으로 주시면서 그 취지를 출애굽기 제20장에서 십계명과 참된 제사의 규정으로 미리 제시하십니다. 그 요지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하며 제사장은 자신의 종교적인 권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높은 단에 올라가서 좌중을 오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성도는 이웃을 사랑하며 세상적인 교만과 자랑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세례 요한은 누가복음 제3장에서 다음과 같이 외치고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40:3-5)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3:4-6);

간략하게 풀이를 해보자면 첫째, 높은 산과 같이 교만한 자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영접하고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러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주님의 말씀이 인생에 있어서 걸림돌이 되고 종국에는 심판대에서 그 죄상을 밝히는 시금석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둘째, 굽은 길을 가는 자는 하나님의 진리 대신에 마귀의 거짓말을 따라 인생을 살아가는 자입니다. 그러한 자들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고서 자신의 잘못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복음의 진리가 그 인생을 인도하여 영생의 천국으로 들어가게 할 것입니다. 그와 같이 회개하는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주님의 일생과 교훈이 마귀의 시험을 이기는 확실한 디딤돌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가장 달콤한 마귀의 시험이 바로 세번째의 것입니다. 그 내용은 천하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마귀에게 한번 절을 하면 자신은 모든 권세를 예수에게 줄 것이며 그것으로 예수는 손쉽게 아버지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을 실천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4:8-9);

듣기에 따라서는 아주 손쉬운 세상구원의 방법론입니다. 그러나 두가지 비()진리 곧 거짓말이 그 속에 숨어 있습니다; 하나는, 천하 권세는 오로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만이 보유하고 계시는데 마귀가 그것을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또 하나는, 죄와 죽음의 권세를 지니고 있는 마귀와 타협하게 되면 진정 하나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칭의와 영생구원의 뜻을 성취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마귀의 세력 악한 영을 쫓아내고 그 심령속에 진리의 성령님을 영접하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그 작업이 허사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8:1-2). 요컨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세상적으로 마귀와 타협하게 되면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사람들의 심령속에 이룰 수가 없게 되고 맙니다(11:20). 따라서 예수님께서 단호하게 외치고 있습니다;사탄아 물러가라”(4:10);

이제 간단하게 결론을 맺어보고자 합니다;

(1)  인생의 목적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영생구원의 길을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목표를 잊어버리고 먹고 사는 문제에 전전긍긍해서는 안됩니다. 경제적 문제의 해결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서 살아가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과 생애가 커다란 심적인 걸림돌이 되고 맙니다. 그와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  아버지 하나님을 자신의 종처럼 부리고자 하는 유아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 감히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우상으로 여기고 있는 불신앙입니다. 현세구복적인 잘못된 신앙도 여호와 하나님을 우상으로 섬기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천하 권세를 오직 한 분 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 위임하고 계십니다(28:18). 주님께서는 그 권세를 가지고 온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을 돌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천하 권세를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현혹하고 있는 마귀의 거짓말에 속아서 그와 타협하는 불법적인 신앙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마귀를 경배하고 제휴하게 되면 영생구원이 아니라 영벌의 길에 들어서고 마는 것입니다.

(4)  결론적으로, 본문의 세가지 시험을 통과하여 굳건한 복음적인 믿음의 디딤돌을 마련하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시험에서 실패한 인생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부담스러운 걸림돌이 되지만 시험을 이기는 인생은 그 승리의 비결이 믿음성숙의 디딤돌이 된다는 사실을 재삼 강조하고 싶습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