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년 손진길 목사 설교문

모세의 언약식이 보여주는 성도의 삶의 4가지 요소(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8. 17. 18:33

제목; “모세의 언약식이 보여주는 성도의 삶의 4가지 요소”(24:3-11)

설교일; 주후 2021822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817일 화요일 작성)

 

80세의 노인 모세는 아라비아 반도 서북부에 있는 호렙 산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3:1-8, 7:7). 여호와께서는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의 사위가 되어 무려 40년 세월을 나그네 양치기로 살아가고 있는 모세를 일약 출애굽의 지도자로 발령하십니다(2:21-22, 7:23). 그리고 모세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시행할 수 있는 능력의 지팡이를 주십니다(4:17);

여호와의 능력이 모세의 지팡이를 통하여 여러가지 재앙으로 연이어 터져 나오자 애굽의 황제인 바로와 그의 신하들은 전전긍긍하면서도 악착같이 버티고자 합니다. 그렇지만 막상 10번째의 재앙이 발생하여 애굽인의 장남이 하룻밤에 전부 죽임을 당하게 되자 바로와 신하들은 무조건 항복을 하고 맙니다(12:29-32).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부디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고 애굽을 떠나 달라고 통사정하게 됩니다(12:33-36). 그 결과 애굽을 떠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나이 반도 최남단 시내 산 앞에 모여서 인류최초로 여호와를 민족의 하나님으로 섬기는 신정국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19:4-6).  

모세가 기록하여 남기고 있는 출애굽기의 내용을 참조하면 신정국가를 성립시키는 과정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세상제국의 노예로 살고 있던 백성을 해방시켜 광야로 불러내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신위적인 Calling Out이 먼저 있게 됩니다(19:4).

둘째, 시내 산 정상에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강림하십니다(19:16-19).

셋째, 모세를 시내 산 정상으로 불러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도록 조치합니다(19:20-24:2). 그 말씀을 모세가 하산하여 백성들에게 전달하고 반드시 실천하겠다고 하는 약속을 받아 내고 있습니다(24:3);

넷째, 그 결과 모세의 언약식이 있게 됩니다. 언약식의 상세내용이 출애굽기 제24장 제3절을 포함하여 제4-11절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설교제목은 모세의 언약식이 보여주는 성도의 삶의 4가지 요소입니다. 그러므로 위의 4단계를 참조하여 말씀드리자면, 오늘의 설교내용은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기는 신정국가 성립의 마지막 단계인 언약식에 해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언약식의 기록에 관한 본문말씀 가운데 뜻밖에도 다음과 같은 성도의 삶의 요소 4가지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가, 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입니다(24:3). 그것은 의미상 성도들의 복음전파의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는 것입니다(24:4).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기록하는 것은 물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한 자신의 생애를 기록하는 것입니다.  

셋째가, 언약의 에 대한 것입니다(24:5-8). 모세의 언약식에 있어서는 가축인 소의 피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리스도는 스스로 대속의 제물이 되어 자신의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은 주님의 보혈의 은혜에 감사하는 인생 곧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헌신적인 생애를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넷째가, 하나님을 뵙고 그 앞에서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24:9-11). 그것은 진리의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에 따라 영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의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삶에 있어서 그와 같은 교훈을 말해주고 있는 본문의 말씀을 이제부터 한 절 씩 풀이하면서 더 자세한 내용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3.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목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24:3);

(1)  출애굽기 제19장을 참조하면 시내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강림하시는 이유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고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19:4-6);

 따라서 여호와의 선포내용이 두가지입니다; 첫째, 이 세상의 수많은 족속 가운데 유일하게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여 창조주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기는 백성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19:4-5). 둘째, 선민을 통하여 모든 나라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큰 복을 전하며 여호와를 섬기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 된다고 하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19:6). 또 하나는, 모세를 신정국가의 지도자로 강하게 세워 주기 위한 것입니다(19:9).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자가 모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시내산 정상에 임재하여 모세와 대화하는 광경을 연출하여 그것을 백성들에게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모세의 권위를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2)  모세가 시내산 정상에 올라가서 여호와로부터 배우고 익힌 하나님의 말씀을 하산하여 백성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한 목소리로 말씀 그대로 실천을 하겠다고 대답합니다(24:3). 그것은 마치 세상살이에 빠져서 살아가던 인생들이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깨닫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그 말씀 그대로 실천하는 복음적인 인생을 살아가겠다고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과연 자신의 고백 그대로 성도들이 남은 인생을 신실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이 아니기에 모세의 언약식에서부터 그 다음 3가지 절차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1) 기록한 다음에, 2) 피로 맹세하고, 3) 나중에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 발 아래에서 먹고 마시는 행사가 계속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3)  3절 앞부분에서 모세가 백성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 두가지입니다; 하나가 하나님의 말씀(word)입니다. 또 하나가 하나님의 율례(law)입니다. 여기서 율례가 필요한 이유는 민족공동체인 신정국가를 운영하기 위하여 나라의 법이 먼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모세의 율법은 마치 딱딱한 법조항과 같습니다. 그와 달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모습을 백성들에게 부드럽게 설명하여 주고 있는 것이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에 있어서 어느 것이 우선일까요? 신앙공동체를 운영하기 위한 딱딱한 법조항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 말씀이 먼저입니다. 더구나 율법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출애굽기 제20장에서 십계명과 참된 제사의 규정으로 먼저 기록되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그러합니다;

(4)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말로써 전달하고 있다는 것은 그 개념을 확대하여 생각하면 그것은 성도들이 모든 나라와 족속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과 같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3일후 부활에 대하여 성도들이 온세상에 나아가서 말로써 증거를 해야 합니다(24:44-49). 그러므로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달한 것처럼 오늘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전파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선하여 말로써 복음을 전파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4.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12지파대로 12기둥을 세우고”(24:4);

(1)  사람의 말이라고 하는 것은 그 성격이 일과성입니다.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그 효력이 감소하고 마침내 바람처럼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계약은 말로 하지 아니하고 문서로 작성하여 그 효력을 오래 유지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24:4a).  

(2)  이스라엘 사회에서 훗날 바리새인들이 공부하고 있는 것이 세가지입니다; 1) 글로 기록되어 있어 소리를 내어 읽을 수 있는 히브리경전인 미크라, 2) 말로써 전수가 되고 있는 경전인 미쉬나, 3) 그 둘을 비교연구하여 만들고 있는 주석 곧 미드라쉬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자 미쉬나와 미드라쉬가 전부 문서화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성도들이 읽고 있는 성경 구약 가운데 히브리정경 39권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 히브리정경의 저자는 모세 이후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선지자들이라고 하겠습니다.

(3)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이 구약과 신약으로 되어 있는 성경책만 열심히 읽고 공부하며 그 깊은 내용을 연구한다고 하면 그것으로 믿음생활을 확실하게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일찍이 장로 야고보가 그의 서신서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과 같이 선택과 실천이라고 하는 행동이 믿음과 함께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종말에 부활하여 하나님의 존전에서 심판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도의 인생을 신실하게 살아왔다고 하는 기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제부터라도 성도로서의 자신의 인생을 말씀을 실천하는 삶으로 살아갔다고 하는 기록을 남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언제나 기록의 증거력이 말로써 하는 증거보다는 더욱 강한 법이기 때문입니다.

(4)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12지파대로 12기둥을 세우고”(24:4b)라는 구절은 언약식을 거행하기 위한 제단과 시설을 건립하는 대목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욥기 제19장에 기록되어 있는 한구절을 기억나게 해주고 있습니다; “나의 말이 곧 기록되었으면, 책에 씌어졌으면, 철필과 납으로 영원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노라.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19:23-25);

 요컨대, 욥의 고백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 제자로 살아간 기록은 부활과 심판 그리고 영생을 믿고 있는 성도들에게 참으로 중요한 것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5.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고, 6. 모세가 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7.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8.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24:5-8);

(1)  모세가 시내산 정상에 올라가 여호와의 말씀을 배우고 하산하여 백성들에게 전달한 결과 한마음으로 그것을 실천하겠다고 하는 대답을 얻고 있습니다(24:3). 모세는 하나님 말씀의 내용과 백성들의 응답을 기록하여 그것을 두고서 언약식을 거행하고 있습니다(24:4-8). 여기서 가축인 소를 제물로 삼아 드리고 있는 백성들의 번제는 피의 맹세를 의미하고, 화목제는 그 언약을 실천함으로써 여호와의 백성으로 계속 언약 안에서 살아가겠다고 하는 약속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제사입니다(24:5).

(2)  언약식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상호계약을 신실하게 지키겠다고 하는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사입니다. 그러므로 제물인 소의 피를 계약당사자 쌍방에게 뿌리고 있습니다; 하나가, 여호와의 제단입니다(24:6). 또 하나가, 백성들입니다(24:8a). 모세는 용의주도하게도 언약식 도중에 양피지에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고 있습니다(24:7). 그대로 준행하겠다는 백성들의 답변을 들은 다음에야 그들에게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24:8b)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9.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70이 올라가서, 10.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더라. 11.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24:9-11);

(1)  창세기 제1장을 살펴보면,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든 남자와 여자를 청지기로 삼아 이 세상을 하나님 말씀의 뜻대로 경영하고자 계획하십니다(1:26-28). 선한 청지기 사람들이 다스리고 있는 세상을 보시고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심히 좋아하십니다(1:31). 그러나 창조주 여호와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실현하고자 하는 인간들의 탐욕 때문에 창조의 질서가 무너지고 이 세상은 구제불능의 상태가 되고 맙니다. 그 때문에 노아 시대에 홍수심판이 임하게 됩니다(6:1-7).

(2)  노아를 조상으로 하고 있는 인류들이 어떻게 하면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가서 그 앞에서 먹고 마시며 영생을 구가할 수가 있을까요? 그 방법이 그리스도의 공생애 가운데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성육신하여 공생애를 살아가면서 아버지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뜻을 천국복음으로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3:16-17, 6:38-40). 또한 그 복음이 진리라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스스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후 3일만에 무덤에서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시기 때문입니다(24:44-48). 아울러 제자들에게는 지상명령을 실천한 후 천국에서 함께 영생을 누리자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22:28-30);

(3)  그와 같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출애굽기 본문에서 먼저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24:11). 사실 창조주의 진면목을 보게 되면 혈과 육으로 이루어져 있는 피조물 인간은 육체가 녹아지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맙니다(33:20). 그런데 어떻게 시내산 정상 가까이 올라간 모세와 아론, 제사장인 나답과 아비후, 그리고 70인의 장로들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그 발치에서 먹고 마시는 영광을 누리고(24:9, 11b)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물론 여호와께서 창조주의 능력으로 그들을 보호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24:11a).

(4)  모세는 본문에서 천국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더라”(24:10). 그것은 사도 요한이 기록하고 있는 천국의 수도인 새 예루살렘성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21:10-11).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되고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이 세상에 임하게 되는 것은 세상의 역사의 종말과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미래의 일입니다. 그리고 내세의 일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성도들은 믿음생활을 하다가 이 세상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5)  어떻게 하면 성도들이 살아생전에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영광 곧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시는 생활을 누릴 수가 있을까요? 그 방법이 영적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예수님과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14:26-27),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1-2). 성령님께서 내주하여 역사하시게 되면 성도들은 영적인 삶을 영위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심령속에 성령의 전이 건설되면 그곳에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함께 임재하십니다(고전6:19, 8:9-11). 그와 같이 성도들이 31체 하나님과 함께 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으므로 동행의 역사는 심히 복되고 기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모세의 언약식 가운데 성도의 삶에 영감을 주고 있는 4가지가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1)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말로써 전달하듯이 성도들은 온 세상 만민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2)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여 보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들이 기록한 성경말씀을 열심히 읽고 그 뜻을 깨달아 실천해야 합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한 자신의 행적을 기록으로 남기게 되면 그것은 후세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3)  제물의 피가 언약을 지킨다는 맹세의 자리에 뿌려지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보혈의 은혜를 입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의 종으로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제자도입니다(16:24).

(4)  모세는 제사장 및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표인 70인의 장로들과 더불어 시내산에 올라가서 여호와의 발치에서 먹고 마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을 오늘날 성도들이 누리고 있습니다.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 가운데 31체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성도들과 동행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영적인 사실을 깨닫고 체험하게 되면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아무쪼록 위와 같은 사실을 명심하여 모두들 승리하시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