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302강(사62:4-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9. 26. 10:28

이사야 강해 제302(62:4-5)

작성자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주후 2016 4 7()

 

새 이름 새 이스라엘’로 탄생한 성도들을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헵시바성도들에게 과거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준 땅을 대신하여 경영하도록(쁄라조치하시다(62:4-5).

 

본문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앞의 구절 제2-3절의 내용을 다시 기억해야만 합니다그 요점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이사야는 선민우월사상에 빠져 있는 동족 이스라엘 자손들이 정신을 차려야만 한다고 말합니다왜냐하면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시고 만민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할 때에만 선민들이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62:2a).

(2)  지금의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려버리시고 새로운 이스라엘을 만드실 것입니다새 이름, 새 이스라엘’로 불리게 되는 성도들은(62:2b메시아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사역을 계승하는 자들입니다그리스도의 제자들입니다.

(3)  새 이스라엘’로 불리게 되는 그리스도의 제자들 곧 성도들은 여호와가 그 손으로 만드는 아름다운 관과 같습니다(62:3a). 그리고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황폐화된 선민들의 땅과 이방인들의 땅을 모두 나누어서 다스리도록 위탁할 것입니다이에 따라 기업을 얻게 된 성도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왕관을 쓰고서 그 옛날 12지파처럼 그 땅들을 경영하게 됩니다(62:3b).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먹고 마시며 그 말씀을 따라 세상을 다스릴 것이므로(22:30다시는 선민인 이스라엘 자손들이 범했던 이기주의와 현세구복사상에 빠져들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상의 내용을 이해하면서 본문을 검토해보면, 헵시바’의 의미와 쁄라’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 오게 됩니다과연 어떠한 상징성과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이제부터 본문의 구절을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그리고 숨어 있는 메시지를 파악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묵상을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다시는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b) 다시는 네 땅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c) 오직  헵시바라 하며네 땅 쁄라라 하리니, (d)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이라(62:4); 장차 선민의 나라가 멸망을 당하고 그 백성들이 이방 땅으로 끌려가서 고난의 세월을 지내게 됩니다(39:6-7). 그러나 이사야는 먼 훗날 그들의 신원이 회복될 것임을 믿고 있습니다(62:2). 그렇다면 그들 이스라엘 자손들의 치유를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를 하실까요?

(1)  다시는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62:4a);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됩니다그 이유는 선민들이 먼저 하나님말씀의 뜻을 실천하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1)    겉으로 보면선민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하지만 그 속이 문제입니다하나님말씀의 기본취지는 공의의 정신입니다창조주의 입장에서는 모든 피조물이 다 자식과 같습니다그러므로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살리고자 하십니다그런데 선민들은 자신들만 구원받고 세상의 복락(福樂행복과 즐거움)을 누리고자 합니다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선민들을 섬기면서 율법생활을 해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2)    그리하지 아니하면 이방인 모두가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을 당하고 말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그러한 심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선민들이기에 하나님의 눈밖에 나고 마는 것입니다그런데 본문에서 이사야는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음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선민을 다시는 버리지 아니하겠다고 하십니다그 이유는 그들과 영원히 동행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셨기 때문입니다그것이 과연 무엇일까요?(62:4a 의역).

(2)  “다시는 네 땅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62:4b); 선민의 사회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떠나버리시면 그곳은 이방인의 나라와 마찬가지가 되고 맙니다오로지 약육강식의 국제질서에 의하여 그 미래가 결정될 따름입니다따라서 이사야의 조국인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은 메소포타미아의 새로운 패권국 신바벨론 제국에 의하여 멀지 아니하여 멸망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또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사회에 보내어주시는 구원자 메시아를 배척하게 되자 예루살렘과 유대 땅은 로마제국의 군대에 의하여 처참하게 파괴가 되고 맙니다그러한 참상을 보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들의 기업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십니다그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3)  “오직  헵시바라 하며네 땅 쁄라라 하리니(62:4c); 이사야는 선민을 치유하는 방법을 헵시바’로 부르고 있습니다그리고 선민의 기업을 회복하는 방법을 쁄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그 의미가 무엇일까요그리고 이사야는 왜 그와 같은 신조어(新造語새로 만든 조작적인 용어)를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요그 용어의 의미에 대해서는 이사야가 곧이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다만그와 같은 신조어를 만들어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기서 잠시 다음과 같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    신조어를 만들고 있는 이유는 기존에 그러한 개념을 담을 수 있는 용어가 없기 때문입니다따라서 이사야가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2)    신조어를 만들어 일종의 상징으로 사용하게 되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아낼 수 있으며 강한 인상을 줄 수가 있습니다그러므로 그 신조어가 담고 있는 의미를 오래 기억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4)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이라(62:4d); 헵시바’는 여호와께서 죄과를 떠난 선민을 기뻐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그리고 쁄라’는 성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기업을 얻게 되면 그것을 자기 아내 사랑하듯이 헌신적으로 경영하게 될 것이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이사야가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1)     그런데 여기서 헵시바가 먼저이며 그 다음이 쁄라입니다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경험한 성도가 비로소 자신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기업을 그 내리사랑으로 경영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그렇게 하나님사랑이 먼저입니다요컨대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성도가 받은 바 하나님사랑을 천하만민에게 복으로 나누어주기 위하여 이웃사랑에 나서는 것입니다(12:1-3).

2)    그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12:29-31). 특히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과 성령님의 강림 및 성도들에게 내주 역사하심으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둘째로, (a) 마치 청년 처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 를 취하겠고, (b) 신랑 신부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 너를 기뻐하시리라(62:5);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의 원리를 더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 문장입니다;

(1)  마치 청년 처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 를 취하겠고(62:5a); 성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기업을 얻어서 그것을 잘 돌보게 됩니다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한 것처럼 자신의 기업을 애지중지하게 됩니다(62:5a). 그것은 마치 한 몸이 된 것과 같습니다어떻게 그와 같은 사랑의 관계가 발생할 수 있을까요그 이유는 피조물이 모두 구속자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아 한 몸으로 연합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2:13-22). 이 세상에서 작은 자라고 하더라도 버림과 소외의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왜냐하면그리스도 안에서 다 같은 하나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그 사실을 웅변적으로 가르쳐주고 있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25:40).

(2)  신랑 신부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 너를 기뻐하시리라(62:5b); 여호와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죄인을 어느 정도로 기쁘게 천국으로 맞이하실까요그 장면을 흔히 혼인잔치자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22:2, 14:25, 13:29, 3:29). 예수님도 탕자의 비유에서 돌아온 아들을 위하여 아버지가 동네잔치를 베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5:23). 성도들은 그 기쁜 잔치자리에서 주님과 한 상에 둘러 앉아 먹고 마시게 됩니다(22:30). 그와 같은 잔치자리에 대하여 일찍이 모세가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24:11).

결론적으로복음서는 천국을 어째서 혼인잔치자리로 비유하고 있을까요그리스도는 왜 제자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을 전제로 하여 성도들이 12지파를 다스릴 수 있다고(22:30말하고 있는 것일까요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자면 무엇보다도 스승이신 예수님을 쫓아다니면서 배워야만 하기 때문입니다예를 들면그리스도와 같은 믿음도사랑도기업을 다스리는 법도이웃의 생명을 살리는 법도자신희생의 방법도 하나같이 주님으로부터 배워야만 합니다.

그것을 가장 잘 배우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먹고 마시며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그것이 12사도가 일찍이 경험을 했던 주님과의 공생애 3 6개월입니다그런데 12 사도의 시대 이후의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실제로 육체적으로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습니다이미 그리스도가 부활 승천하시고 난 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일한 한 가지의 방법이 남아 있습니다그것은 다음과 같이 성령님의 임재 안에서 가능합니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니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14:16-17),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14:23).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며 성령님과 동행하고 있는 성도들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먹고 마시는 자입니다그것을 일종의 영적인 공생애’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실제로 사도 바울이 그렇게 체험하고 있으며 그 사실을 성도들에게 간증하고 있습니다(고전11:1, 15:8). 그렇게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이사야를 통하여 헵시바’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나아가서 성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생활하면서 배운 그대로 자신의 기업을 위하여 기도하고 사랑한다면 그것이 바로 쁄라’가 될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그의 동족인 선민들에게 안타깝게 외치고 있습니다; 부디 ‘헵시바’로 살아가시고 ‘쁄라’의 정신으로 기업을 경영하십시오(62:4-5). 저도 이사야와 같은 심정으로 성도님들에게 외치고 싶습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헵시바’가 되시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기업을 ‘쁄라’로 사랑하고 경영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