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74(작성자; 손진길)
1911년 2월에 내남 덕천의 선비 최사권의 사랑방에서 모임이 열리고 있는데 그것이 그 집에서 개최가 되는 마지막 사랑방모임이다. 왜냐하면, 1836년생인 최사권 선비가 조선의 나이로 금년에 76세가 되어 너무 연로하여 더 이상 사랑방모임에 참석하기가 힘이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날의 모임을 끝으로 이제는 명예스럽게 사랑방모임을 졸업하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선비 최사권의 부인인 손예린이 그날 낮에 한상을 크게 차린다.. 따라서 4선비와 그 부인들은 마치 계중에 온 것처럼 푸짐하게 식사를 한다. 그리고 손예린에게 이제 자주 뵙지를 못하게 되었으니 섭섭해서 어떻게 하느냐고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그러자 손예린이 이웃에 살고 있는 장인식 교장과 그 부인 최순옥을 보고서 한마디를 한다; “그러면 장 교장과 순옥이 너는 이제 우리집에 아예 발걸음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니? 이거 시원하고도 매우 섭섭합니다. 호호호…”. 최순옥은 선비 최사권의 일가이며 촌수로는 질녀가 된다. 그러므로 숙모 뻘이 되는 손예린이 그들을 놀린다고 한번 하대를 해보고 있다.
장인식 교장도 조카사위에 해당하니 손예린이 그렇게 말해도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역시 농담으로 받아서 한마디 멋지게 응수를 한다; “그 숙모님도 괜히 저희들에게 찍짜를 다 놓으시고 계십니다. 그렇게 섭섭하시다면 저희 부부가 매일같이 와서 문안인사를 드릴 터이니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나 잔뜩 차려 주십시오, 하하하…”;
그 말을 듣고 이번에는 최사권 선비가 얼씨구나 하면서 말참견을 한다; “장 교장, 부디 부부동반으로 그렇게 매일 문안인사를 오시게. 내가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사랑방에서 기다리고 있겠네. 우리집에서 자네들 부부에게 매일 식사 대접이야 못해 주겠나. 그러니 안심하고들 찾아 오시게나…”.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나이가 들어가면서 참으로 외로움을 많이 타시는가 보다.
그날 헤어지기 전에 서배 아재 손상훈이 재종 누나인 손예린과 매형 최사권에게 각별하게 인사를 한다; “저희 부부는 이웃마을 너븐들에 살고 있으니 경주 오일장에 가는 걸음에 늘 들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경주 시장에서 살 물건이 있으시면 꼭 말씀해 주세요. 매형, 아무쪼록 아직 날씨가 겨울이라 추우니 몸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누나도 잘 계시고요…”.
그 말을 듣고서 최사권이 말한다; “그래 처남 고마우이. 우리 부부는 아들 경도가 멀리 한성에 가서 자리를 잡고 그곳에서 계속 살고 있고, 딸 영란이도 멀리 경기도에 시집을 가서 살고 있으니 이제 내남에서는 가족이 없어. 그래서 어떤 때는 우리 내외가 쓸쓸하고 외로우이. 그러니 자네 부부가 그렇게만 해준다면 참으로 고맙지. 그러면 다음 경주 오일장이 서는 날에 우리집에 다시 부부간에 한번 들러 주게나. 잘 가시게”.
그러한 인사말을 끝으로 하여 덕천 최사권 선비의 집 사랑방에서 수십년간 계속이 되어오던 모임은 끝이 나고 1911년 4월부터는 새롭게 경주 읍내 성동에 있는 김춘엽의 사랑방에서 모임을 가지게 된다. 김춘엽과 부인 이가연은 3월달에 외동 서배 마을에서 경주 성동의 본가로 이사를 하여 벌써 짐정리가 모두 끝난 상태이다. 그런데 넓은 정원과 마당을 가진 그러한 큰 기와집들이 그 동네에 여러 채가 있다;
그 저택의 안채에서는 안방을 모친 정해옥이 여전히 사용을 한다. 그 옆방을 며느리인 이가연이 사용하고 그 다음방을 딸인 김경화가 사용한다. 그리고 남자들이 기거를 하고 있는 사랑채는 큰 사랑방을 김춘엽이 사용하고 그 다음 옆방을 정진평이 사용한다.
또 하나의 옆방을 정진평의 아들인 정한욱이 사용하고 있다. 정한욱이 1894년생이므로 금년에 벌써 18세나 된다. 늠름하고도 잘 생긴 총각이다. 딸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한번 사위감으로 점을 찍을 만한 인물이다.
1911년 4월 사랑방 정기모임이 있는 날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경주 성동 김춘엽의 집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 그날은 집들이를 겸하여 사랑방모임을 한다고 하므로 참석자들이 아침식사를 간단하게 하고서 다들 집을 나선다.
서배 아재 손상훈 부부도 오전 9시경에 내남 너븐들의 집을 나선다. 며느리 정애라는 시부모님이 자신의 친정집을 방문하는 것이므로 기분이 좋다. 그래서 깍듯하게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를 드리고 한마디를 한다; “저희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제가 시집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꼭 말씀 드려주세요”.
그 말을 듣자 손상훈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떡이고 있는데 이채령이가 웃으며 한마디 응수를 한다; “며늘아. 네가 남편하고 꼭 붙어 지내면서 조금도 떨어지지를 않고 있다고 내가 안사돈에게 말할 것이다. 그러니 기다리고 있거라. 내가 오늘 저녁에 돌아와서 네 친정어머니의 말씀을 꼭 그대로 전해줄 테니…호호호”.
그 말을 듣자 마자 정애라가 손영주의 팔을 놓고서 말한다; “어머니, 보세요. 제가 남편 팔을 놓고 떨어져 있잖아요? 그리고 이제부터 열심히 부엌일도 하고 빨래도 하고 방청소도 할 거예요. 그러니 그렇게 살림을 잘하고 있다고 전해 주세요, 네…”.
그 말에 이채령이 한마디를 기어코 하고 만다; “애라야, 너는 어떻게 친정 엄마는 무서워하면서 시어머니인 나는 하나도 무섭지가 않니? 참 신기한 일이다. 내가 너무 마음씨가 좋은 시어머니라서 그런가?”. 슬쩍 자화자찬을 하고 있는 이채령이다.
모친이 기분이 좋은 것을 보고서 얼른 손영주가 맞장구를 친다; “어머니, 그렇고 말고요. 어머니처럼 좋은 시어머니가 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겠어요. 집사람이 늘 제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걸요”.
그러자 이채령이 한마디를 한다; “영주야, 너는 이 에미보다 애라가 그렇게 좋으냐? 내가 보기에는 네가 ‘마누라 바보’같이 보인다. 정도껏 해라. 그것도 흉이란다”. 그러자 서배 아재가 나선다; “여보 그만하시고 이제 경주로 길을 떠납시다. 둘이 싸우는 것보다야 그것이 나는 훨씬 보기가 좋소이다. 하하하…”.
이채령이 슬쩍 남편의 팔짱을 끼면서 말한다; “어쩜 영주가 당신을 그렇게 닮았어요. 그러고 보니 당신도 ‘마누라 바보’이지요…호호호”. 참으로 재치가 넘치고 영리하며 쾌활한 이채령이다. 그러니 손상훈이 ‘아내 바보’가 되지 아니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들 부부가 정답게 함께 걸어가고 있어서 그런지 오늘따라 그 시골길이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김춘엽이 이사한 경주 읍내 성동집으로 찾아 가는데 그 골목이 넓고 좋은 기와 집들이 즐비하다. 그들보다 먼저 그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던 장인식 교장과 안성기 교장이 마침 서배 아재 손상훈을 발견하고서 함박웃음으로 그를 맞이한다. 경주까지 30리길을 걸어와서 서배 아재를 만나니 참으로 기쁜 것이다;
그날 김춘엽의 집 사랑방에서 처음 모인 선비들과 그 부인들은 모두들 경주 읍내로 이사를 잘 하셨다고 칭찬을 한다. 비록 월성 내남이나 외동에서 그곳까지 오자면 30리길을 걸어야만 하지만 그래도 경주 읍내 고급 주택가에서 다시 만나게 되니 좋은 것이다. 역시 사람은 한양으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는 것이 좋은 법이다.
그날 점심식사를 집들이 겸하여 푸짐하게 먹고서 현안문제를 발표도 하고 토론도 한다. 김춘엽이 먼저 의제를 말한다; “함께 나누고 싶은 안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째서 일본제국이 조선백성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본의 헌병을 경찰로 사용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헌병은 군인인데 어째서 민간인을 함부로 다루고 있지요? 그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 말을 받아서 자신의 견해를 장인식 교장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본토 일본인들에 대해서는 일본제국이 정상적으로 경찰을 통해서 민간인 통제를 하고 있지요. 그러나 일본제국의 식민지에 불과한 조선에서는 다릅니다. 기본적으로 조선은 일본이 전쟁을 통하여 얻은 일종의 전리품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점령지역인 조선에서는 일본제국이 군정을 실시하여 식민지의 백성들을 무력으로 지배하는 것이지요”;
그 말을 듣고서 일동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 본토의 일본인과 점령지역에 불과한 조선의 백성은 전혀 다르다. 일본인들은 지배자들이고 조선인들은 피지배자들이다. 그러므로 일본군대의 군기를 바로 잡고 있는 헌병이 군법으로 조선인들을 다스리고 있다. 만약 저항을 하면 그 자리에서 옛날 사무라이들처럼 즉결처분을 하고 만다. 조선백성들의 앞날이 참으로 캄캄하구나…”;
실제로는 군정과 같은데 남의 눈이 있으므로 일본제국은 조선총독부를 설치하여 정상적인 행정으로 조선의 백성들을 다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이게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한 속내를 알고 나니 사랑방모임의 인사들은 아득한 앞날을 과연 어떻게 헤치고 살아나가야만 할지 아찔하다.
이제 50대와 60대인 자신들은 남은 세월을 그럭저럭 살아가면 된다고 하더라도 자식들과 손주들의 앞날이 참으로 걱정이다. 그렇다면 후손들을 위하여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다시 심각한 생각에 잠겨서 그날의 모임을 일찍 마치고 모두들 귀가길에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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