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70(작성자; 손진길)
16. 아들의 결혼식과 어른들의 별세
1909년 10월 17일은 경주 읍내에서 손영주와 정애라의 결혼식이 있게 된다. 1907년 5월 30일에 두사람이 약혼을 하였으므로 2년이 지난 1909년 5월쯤에 결혼식을 거행하는 것으로 예정이 되어 있었지만 내남 시골사람들이 그때는 농번기이므로 한해 농사가 끝난 10월 중순에 혼례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결혼식이 신부의 집인 경주 성동 김종민의 저택에서 10월 17일날 전통적인 혼례로 진행이 된다. 혼례식 날짜를 17일로 정한 이유는 경주 오일장이 서는 날이기 때문이다. 내남의 일가들이 오일장을 보러 경주에 왔다가 쉽게 혼례식에 하객으로 참석할 수 있도록 서배 아재가 그렇게 배려한 것이다;
농사일에 바쁜 친척들의 시간을 많이 뺏지 아니하려고 내남 너븐들의 지주인 손상훈이 여러모로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서배 아재 손상훈은 천상 농사꾼이다. 한마디로, 그는 철저하게 ‘농자천하지대본’인줄 알고서 그렇게 한평생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라고 하겠다.
훈장 이덕화의 친구인 김종민이 딸 내외와 함께 살고 있는 경주 읍내 성동의 저택은 상당히 넓다. 특히 그 마당과 정원의 규모가 그러하다. 따라서 그 장소가 구식 혼례를 진행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그날 혼례식을 보고서 잔치국수를 먹고자 그 집에 모인 축하객들이 김종민의 저택의 규모를 보고서 깜짝 놀란다;
내남 너븐들의 천석꾼 서배 아재만 그 재력이 대단한 줄 알았더니 그의 사돈이 되는 집안이 살고 있는 그 저택도 대단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내남의 부자와 경주의 부자가 서로 자녀들의 결혼으로 한집안이 되는 큰 경사라고 말하고들 있다. 시골에서 온 고향의 친척들이 그러한 말을 수군거리는 가운데 혼례는 일사천리로 진행이 된다;
그날 19세의 정애라를 신부로 맞이하는 신랑 손영주는 참으로 기쁘다. 그 즐거운 마음이 그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여자들이 깔깔거리고 웃는다. 심지어는 “신부가 얼마나 마음에 들면 신랑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를 아니하고 있는가?”라고 노총각인 손영주를 놀리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정애라를 그토록 좋아하고 있는 것은 손영주 개인의 마음이다. 그것까지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놀릴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그날 하루는 완전히 손영주가 주인공이다. 한양의 임금조차 부럽지가 않다. 한평생을 살면서 더이상 부러운 것이 없는 가장 기쁜 날이 바로 그의 결혼식날인 것이다.
하기야 조선의 왕들도 백성들의 그 결혼식날 하루의 기쁨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옛날부터 백성들의 혼례를 임금이 축하한다는 의미에서 그날만은 특별히 신랑이 관모를 쓰고 관복을 입으며 신부가 숙부인의 복색을 혼인 예복으로 입는 것을 허락하고 있지 않는가?
하루 종일 전통혼례로 떠들썩하던 김종민의 집이 저녁이 되자 내남 사람들이 대부분 돌아가고 가까운 친척들만 남게 된다. 신부의 외조부인 김종민은 신랑의 외조부인 자신의 친구 이덕화와 사랑방에서 술을 마시면서 환담을 나누고 있다. 이제 사돈이 된 서배 아재 손상훈과 정진평이 역시 사랑채 큰 사랑방의 옆방에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그리고 정진평의 큰 처남인 김춘엽이 자리를 함께하고 있다.
신부의 모친인 김경화와 신랑의 모친인 이채령은 안방을 차지하고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그 자리에 김춘엽의 처인 이가연이 함께 앉아있다. 이가연은 자신의 소꿉친구이자 일가인 이채령이 이제는 자신의 시누이 김경화와 사돈이 되어버렸기에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섭섭하다;
세상에 둘도 없는 자신의 동무가 이제는 자기보다 사돈인 김경화를 더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가연이 한마디를 한다; “채령아, 너는 언제부터 내 시누인 김경화가 그렇게 좋더냐? 너 나보다 사돈을 더 좋아하는 것 아니냐? 내가 샘이 다 난다, 채령아”. 그 말을 듣자 이채령이와 김경화가 무엇이 그렇게 우스운지 배를 잡고 웃는다.
따지고 보면, 이채령이와 이가연은 1856년생 동갑이고 김경화가 1살이 적은 1857년생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사돈이 되었기에 서로가 존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여인들이란 서로 나이가 비슷하니 금방 친구가 되고 만다. 남은 인생을 이채령과 이가연 그리고 김경화는 서로 돕고 의지하면서 그렇게 즐겁게 살아갈 것이다.
안채 안방 바로 옆에 있는 방에서는 김옥심과 정해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녀들은 본래 시누와 올케 사이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서로가 사돈지간이 된다. 왜냐하면, 김옥심이 신랑 손영주의 외조모이고 정해옥이 신부 정애라의 외조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그들이 서로 오래된 올케와 시누 사이인 것이다.
그렇지만 역시 그날의 주인공은 신랑 손영주와 신부 정애라이다. 그들 신혼부부는 신부 집 신방에서 비로소 첫날밤을 맞이한다. 그런데 촛불을 아직 끄지 아니하고 있는데 갑자기 문풍지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구경꾼들이 신랑신부를 놀린다고 손가락으로 문풍지를 찢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손영주가 병풍을 가져다 얼른 막는다.
그것을 보고서 구경꾼들이 한마디씩 한다; “신랑이 노총각이라고 하더니 역시 다르군요. 얼른 병풍으로 방문을 막는 것을 보세요. 이제 구경을 다했으니 우리도 자러 갑시다”. 그렇게 떠들썩한 가운데 신혼 첫날밤이 조용히 저물고 있다. 10월 중순이라 그런지 달도 밝고 가을 날씨가 참으로 상쾌하다.
일반적으로 신부집에서 혼례를 올리고 나면 신랑이 며칠 처가에 머물면서 신부집의 일가들과 사귀는 시간이 있다. 그때 놀이삼아 신랑에게 술을 먹이고 방망이로 신랑을 다루는 시간도 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신랑이 돌아가고 나면 신부는 그 다음해에 좋은 날을 잡아 신행에 나선다. 그때부터 시집에 들어가서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신랑 손영주가 26세이고 신부 정애라가 19세이다. 신랑의 나이가 너무 많은 것이다. 따라서 서배 아재 손상훈은 사돈인 정진평과 상의를 하여 3일후에 아예 신혼부부를 내남 너븐들에 데리고 와서 같이 사는 것으로 양해를 구하고 있다. 그 제안에 정진평 내외도 환영이다. 왜냐하면, 그들도 웃시장 식당문을 언제까지나 닫아 두고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애라는 1909년 10월 하순부터 내남 너븐들에서 시집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는 두가지 사실을 깨닫고 시댁에서 깜짝 놀란다; 하나는, 시어머니인 이채령이 보통사람이 아닌 것이다. 연세가 54세인데도 불구하고 아는 것이 많고 총기가 넘친다.
그리고 일을 척척 그렇게 잘 하신다. 그 옛날 시조모께서 억척이셨다고 들었는데 시어머니 이채령도 그런 분이다. 그러므로 새신부라고 하여 정애라가 오래 늦잠을 잘 수가 없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부엌으로 나가야만 한다;
또 하나는, 내남 너븐들 사람들이 거의가 월성 손씨이다. 한마디로 대부분이 보름 촌 이내의 일가들이다. 그렇게 세거부락이므로 골목에 나서면 서로 인사가 각별하다. 특히 너븐들에서는 나이가 많고 적고가 문제가 아니다. 누가 항렬이 높은가를 따지는 전근대적인 시골 양반의 집성촌이다.
그러므로 많은 이웃들이 정애라보다 연세는 훨씬 많지만 남편 손영주가 항렬이 높기 때문에 자연히 그녀를 높여서 어른대접을 해준다. 그것이 처음에는 참 어색하다. 그러나 익숙해지니까 그런대로 재미가 난다. 그렇게 전통적인 집성촌 그것도 시골의 양반 고을은 그들 나름대로의 유교적인 질서가 확실한 것이다.
새해가 되자 이웃들이 정애라를 보고서 ‘봉천 댁’이라고 부른다. 시집을 오고 한해가 지났기 때문에 더 이상 새댁이라고 불러주지를 않는다. 그리고 그녀가 경주 읍내 성동에서 시집을 왔지만 본래 고향이 동래 봉천마을이기 때문에 택호가 그렇게 되고 만 것이다. 그러므로 정애라의 남편인 손영주는 졸지에 ‘봉천 아재’로 불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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