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297강(사61:1-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년 4월 2일(토)
주 여호와의 영의 임재를 받게 되는 선지자, 메시아, 성도들이 감당해야만 하는 일에 대하여(사61:1-3)
이사야는 본래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의 제10대 왕 웃시야의 행적을 적는 사관(史官) 출신으로서 선지자가 된 사람입니다(대하26:22, 사6:1). 웃시야 왕은 주전 791년에 16세의 나이로 유다 왕국의 왕이 되어 무려 52년간이나 통치를 했습니다(대하26:3). 그는 스가랴 선지자의 도움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며 부국강병책(富國强兵策, the policy of growing national wealth and building strong army)을 실시하여 대 성공을 거둔 현명한 왕입니다. 구체적으로, 웃시야 왕은 블레셋, 아라비아, 암몬 등을 쳐서 승리를 거두고 유다 왕국을 강대국으로 만듭니다(대하26:6-8).
그의 군대는 30만명이 넘고 있습니다(대하26:13). 그 옛날 조선의 선조시대에 율곡선생이 부디 10만명의 군대를 양성하여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자고 주창했던 일과 비교를 해보면, 웃시야 시대의 유다 왕국이 얼마나 융성했던가를 넉넉하게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강한 군사력에 의존하여 다윗 왕조를 부흥시키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웃시야 왕이 하나님신앙에 있어서 실족하게 됩니다. 그는 통치말기에 그만 하나님 앞에 교만하게 되어 제사장만이 만질 수 있는 성전의 향단에(출30:7) 분향을 하려고 하다가 문둥병자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대하26:16-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민 유대인들은 하나같이 웃시야 왕이야말로 다윗 왕조의 부흥을 이끈 위대한 왕이며 웃시야 왕 덕택에 나라가 부강해지고 백성들이 잘 살게 되었다고 만만세를 외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다의 백성들은 웃시야 왕이 계속 통치를 해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위대한 왕이 없어지게 된다면 유다 왕국은 그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바로 그러한 때에 주전 739년경 웃시야 왕이 서거하고 맙니다. 앞으로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백성들은 걱정이 태산과 같습니다. 궁정에서 웃시야 왕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던 이사야도 똑 같은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미묘한 시기에 여호와 하나님은 웃시야 왕의 서기관이며 사관인 이사야를 불러서 선지자로 세우고 있습니다. 그 깊은 뜻이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의 통치자가 웃시야 왕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백성들에게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하나님 앞에 교만하게 만드는 세상나라의 번영과 강성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부디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는 하나님나라의 번영과 강성함을 위하여 신실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사11:12, 37:35-36, 59:20-2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성령님이 임재하여 선지자로 세움을 받게 된 이사야는 그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고 있습니다(사6:1-10).
따라서 이사야는 동족인 선민들에게 끊임없이 부르짖고 있습니다. 마치 그 옛날 모세처럼(민11:29) 외치고 있습니다; “모두들 하나님의 영의 임재를 받아서 선지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눈을 뜨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나라의 확장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일하는 성도로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세상나라의 번영과 강성함을 자랑하지 말고 오로지 이방 땅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이방인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영원한 기업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온 세상에 드러내는 길입니다”.
그러나 이사야의 부르짖음은 선민들의 이해를 얻지를 못합니다. 유대인들이 전통적인 선민우월사상과 현세구복사상에 너무나 푹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마지막 기대를 메시아의 오심과 성령님의 강림에 두고 있습니다; “장차 메시아의 복음사역과 부활사건을 통하여 선민들이 영적으로 크게 각성하기를 이사야가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임재하심으로 성도들이 거듭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사59:19-21). 그러한 이사야의 소원이 제61장부터 마지막 제66장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예언으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그 머리말이 되고 있는 본문의 내용이 그러합니다.
그와 같은 시각을 가지고 본문의 각 구절을 하나씩 검토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도출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b)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c)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사61:1);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임재를 하시게 되면 다음과 같은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사61:1a); 왜 성막을 지으며 성물과 제사장에게 기름을 붓고 있는지를 먼저 알아봅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를 애굽으로 파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노예상태에서 해방시켜 하나님의 산으로 데리고 오라고 하십니다(출3:12).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온 세상을 구원하는 제사장나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출19:5-6).
2) 그런데 불행하게도 지도자 모세가 시내 산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러 간 사이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범죄를 하고 맙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지도 못하고 지도자 모세마저 없으므로 백성들이 불안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아론과 협의하여 금송아지를 만들고 출애굽의 신 여호와라고 부르면서 제사를 드리고 축제를 벌이게 됩니다(출32:1-7).
3) 그 때문에 3천명의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게 되고 금송아지를 갈아서 그 가루를 나누어 마시게 되는 수치를 경험하게 됩니다(출32:20, 28). 그와 같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무지와 우상문화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대안을 제시하십니다. 그것이 백성들 사이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수 있는 성막을 건설하게 하는 것입니다(출25:8, 35:5, 40:35).
4) 성소와 지성소에는 많은 성물을 만들어 배치합니다. 그리고 성물에는 거룩한 기름을 발라서 세상의 것과 구별을 하도록 합니다(출30:26-29). 마찬가지로 성막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도 거룩한 기름을 발라서 세상사람과 구별을 합니다(출30:30-33).
5) 그러므로 본문에서 하나님이 선지자, 메시아, 성도들에게 기름을 붓고 있는 것은 세상사람과 구별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만들기 위함입니다(사61:1a). 그렇게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해주고 있습니다.
6) 그와 같은 권능을 훗날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12제자와 70인의 제자들에게 주셨다는 사실을 복음서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12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마10:1),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눅10:8-9), “70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눅10:17-18).
(2)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사61:2b); 가난한 자가 누구일까요? 그리고 가난한 자에게 들려오는 아름다운 소식이 무엇일까요?
1) 첫째, ‘에노스’와 같은 자가 가난한 자입니다(창4:26a). 풀이하면, 유한한 육체를 가지고 짧은 인생을 살다가 소멸될 수밖에 없는 슬픈 운명을 타고난 자임을 깨닫는 자가 가난한 자입니다. 그래서 에노스 시대에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부디 영생의 구원의 길을 열어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창4:26b). 따라서 영생의 길을 가르쳐주고 있는 메시아의 복음이 아름다운 소식입니다.
2) 둘째, 이 세상에서 참된 위로를 발견할 수 없는 자가 가난한 자입니다. 사실 이 세상이 주는 위로는 한시적인 것이며 영원한 효력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목격하고 나면 그 상실감과 슬픈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자들이 그리스도의 부활과 천국입성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믿는 자들이 장차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아름다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제는 슬픔과 눈물이 사라지고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소망을 얻게 됩니다. 그것이 한 마디로, 참된 위로입니다.
3) 셋째, 아무리 부와 권력을 많이 가지고 역사에 남는 위업을 달성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자신의 구원을 얻을 수가 없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된 자가 가난한 자입니다. 그렇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습니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마5:3).
(3)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사61:1c);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임하게 되면 하나님의 일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자가 됩니다. 어떤 능력을 발휘하게 될까요?
1) 첫째,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나 소유물 또는 지위와 권력을 잃어버린 자가 마음이 상한 자입니다. 그 상한 마음은 그 모든 것을 회복해줄 수 있는 창조주 하나님을 만날 때에만 치유가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메시아의 오심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사실을 복음으로 전해주는 그것이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는 유일한 방법이 되고 있습니다.
2) 둘째,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줄 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죄와 사망의 권세에 포로가 되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가 그 권세를 깨뜨리고 자유를 줄 수가 있을까요? 그리스도이십니다(롬8:1-2).
3) 셋째,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시공간에 갇혀서 살고 있는 불쌍한 존재입니다.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상실된 것입니다. 어떻게 시공간의 제약에서 놓임을 받을 수가 있을까요? 영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영이 성도에게 임하여 함께 인생을 살아가야만 그 제약성을 초월하고 영적인 삶이 가능해집니다. 그것이 성령님이 오시고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영이 아버지 하나님의 영과 함께 성도에게 임재하시고 내주 역사하시는 이유입니다(요14:16-20, 행1:8, 롬8:9-17).
둘째로, “(a)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b)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사61:2); 어째서 역사의 종말이 있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되는 것일까요?
(1)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사61:2a); 죄와 사망이 지배하고 있는 이 세상이 언제 종말을 고하게 될까요? 악한 영에게 사로잡혀 살고 있는 불안한 인생이 언제 해방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이사야는 그 종말의 사건이 선포가 되고 있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때에는 죄와 사망의 권세 그리고 그 권세를 장악하고 있는 악한 영들이 모두 심판을 받고 영원한 불 못 속에 던져지고 말 것입니다(계20:10, 14-15).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얻은 성도들이 영생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계21:22-22:5).
(2)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사61:2b); 그러므로 종말의 심판과 영생의 구원이 있다는 그 사실이 믿는 자들에게 참된 위로를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구원의 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해야만 합니다.
셋째로, “(a)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b)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c)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d)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사61:3); 심판 가운데 구원을 받게 되면 무엇이 무엇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일까요?
(1)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사61:3a); 선민이 타락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사명을 잊어버리고 우상문화와 선민사상에 푹 빠져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토록 원하시는 이방인 구원이나 만민구원의 길을 버려버렸으니 이제는 여호와께서 선민의 나라를 버려버릴 차례입니다. 그 사실을 바라보면서 선지자 이사야는 슬퍼하며 속죄의 재를 뒤집어 쓰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사야처럼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에게 앞으로 생명의 면류관을 화관처럼 주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사61:3a).
(2)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사61:3b); 이 세상에서 절망하고 있는 심령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고 그 상실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살아갈 수 있는 생활기반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불치의 병마와 싸우며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아가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과 범죄를 저질러서 자신의 목숨으로 그 죄값을 대신하고자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어떻게 위로하고 구원해낼 수가 있을까요? 이사야는 유일한 방법이 성령님이 임재하셔서 창조주의 능력으로 역사하는 도리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을 여기서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사61:3b).
(3)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사61:3c); 사람은 다가오는 미래에 대하여 무지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단 5분후의 일조차 도무지 짐작도 못하고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얼마나 불안해하며 근심걱정을 많이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걱정과 근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까요? 이사야가 하나님의 지혜를 본문에서 전달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미래를 손아귀에 쥐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을 구원하시고자 메시아를 보내시고 또한 당신을 앞으로 믿는 성도로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영을 보내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당신의 미래를 구원자 그리스도와 능력자 성령님께 맡겨드리고 그 인도하심을 따라서 남은 인생을 살아가십시오. 그리하면 불안 대신에 평강을, 걱정 대신에 소망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인생을 끝까지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사61:3c).
(4)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사61:3d);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를 얻은 선지자입니다. 왜냐하면, 성도의 별명을 ‘의의 나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무’는 근본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하나님의 은혜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는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서 심어주신 자신의 기업에서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자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해지고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왕성해지고 있습니다. 구원받는 자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하나님의 영광이 찬란히 빛나게 됩니다(사60:21-22, 61:3d).
결론적으로, 본문을 풀이한 내용을 간추려봄으로써 결론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이 선지자, 메시아, 성도들에게 기름을 붓고 있는 것은 세상사람과 구별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만들기 위함입니다(사61:1a). 그렇게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해주고 있습니다.
(2) 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가 누구일까요? 그리고 가난한 자에게 들려오는 아름다운 소식이 무엇일까요? 첫째, ‘에노스’와 같은 자가 가난한 자입니다(창4:26a). 둘째, 이 세상에서 참된 위로를 발견할 수 없는 자가 가난한 자입니다. 셋째, 아무리 부와 권력을 많이 가지고 역사에 남는 위업을 달성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자신의 구원을 얻을 수가 없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된 자가 가난한 자입니다. 그렇게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훗날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같이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마5:3). 그러므로 아름다운 소식과 참된 위로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입니다.
(3)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임하게 되면 하나님의 일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자가 됩니다. 어떤 능력을 발휘하게 될까요? 첫째,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게 됩니다. 둘째,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줄 수가 있습니다. 셋째,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할 수가 있습니다.
(4) 어째서 역사의 종말이 있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되는 것일까요? 죄와 사망의 권세 그리고 악한 영들이 모두 심판을 받고 영원한 불 못 속에 던져지고, 반면에 성도들이 영생으로 들어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5) 심판 가운데 구원을 받게 되면 무엇이 무엇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일까요? 첫째, 이사야처럼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에게 앞으로 생명의 면류관을 화관처럼 주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사야의 예언으로 주어지고 있습니다(사61:3a). 둘째, 이 세상에서 절망하고 있는 심령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어떻게 위로하고 구원해낼 수가 있을까요? 이사야는 유일한 방법이 성령님이 임재하셔서 창조주의 능력으로 역사하는 도리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을 여기서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사61:3b). 셋째, 어떻게 하면 걱정과 근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까요? 이사야가 하나님의 지혜를 본문에서 전달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미래를 구원자 그리스도와 능력자 성령님께 맡겨드리고 그 인도하심을 따라서 남은 인생을 살아가십시오. 그리하면 불안 대신에 평강을, 걱정 대신에 소망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인생을 끝까지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사61:3c).
(6) 성도는 하나님께서 심어주신 자신의 기업에서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자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해지고 생명의 살림이 왕성해지고 있습니다. 구원받는 자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하나님의 영광이 찬란히 빛나게 됩니다(사60:21-22, 61:3d).
(7) 이사야는 위와 같이 메시아의 오심과 구원의 복음선포 그리고 성령님의 오심과 성도들에게 내주하여 역사하시는 놀라운 시대를 소망가운데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자신이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하나님을 만나고 선지자로 세움을 받은 그때를 회상하고 있습니다. 그 후 성령님이 함께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동족들에게 힘있게 선포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와 같은 은혜가 장차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게 되는 모든 성도들에게 임하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8) 그와 같이 활짝 열린 구원의 시대, 그리고 성령님이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새 시대를 전망하면서 이사야는 자신의 동족들이 한 사람이라도 더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도 이사야의 심정으로 기도하여야만 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부디 우리 한민족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더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십시오”. 그 은혜가 아무쪼록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한민족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사야 강해 제299강(사61:7-9)(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9.25 |
---|---|
이사야 강해 제298강(사61:4-6)(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9.25 |
이사야 강해 제296강(사60:19-22)(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9.24 |
이사야 강해 제295강(사60:16-18)(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9.23 |
이사야 강해 제294강(사60:12-15)(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1.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