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294강(사60:12-1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년 3월 30일(수)
놀라운 운명의 변화, 무엇이 그 변화를 초래하고 있는가?(사60:12-15)
본문에서 이사야는 두 가지의 운명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나는 현실적으로 그의 동족인 이스라엘 자손들이 영적인 타락으로 말미암아 경험하고 있는 비극적인 운명입니다(사60:15a). 또 하나는 그들이 개과천선함으로써 맞이하고 있는 새로운 소망에 찬 운명입니다(사60:15b). 본문의 제12-14절의 내용은 후자의 운명을 선택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맞이하고 있는 놀라운 변화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말미의 제15절은 그와 같은 변화가 발생하게 되는 이유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고 있는 언질입니다.
위와 같은 시각을 가지고 이제부터 본문의 각 구절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도출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너를 섬기지 아니하는 백성과 나라는 파멸하리니 그 백성들은 반드시 진멸되리라”(사60:12); 두 가지의 해석이 가능한 구절입니다;
(1) 겉모양만 살피게 되면, 이 대목은 선민으로 자처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금과옥조(金科玉條, 가장 귀한 규정)로 믿고 있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그들의 선민우월사상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여호와가 바로 창조주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오로지 이스라엘 자손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시고 반드시 그들을 통하여 이 세상을 다스리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백성과 나라는 선민을 섬겨야만 합니다”. 그리하지 아니하게 되면 세상나라는 멸망을 당하게 되고 그 백성들은 죽임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사60:12).
(2) 본문의 깊은 뜻을 살피게 되면, 그와 같은 선민사상으로 해석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전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듭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이기적인 선민우월사상에 안주하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넓고도 넓은 공의의 정신을 깨닫고 실천해야만 합니다; “이방인들도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모두가 구원의 대상입니다. 왜냐하면,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돌보시고 그 생명을 살리시기를 무엇보다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며 공의의 정신입니다”. 따라서 세상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택하셔서 두 가지의 사명을 맡기고 계십니다; ①첫째,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고 하나님신앙의 거룩한 본을 보여주라. ②둘째, 이방인들의 죄 사함을 위해서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나라가 되라는 것입니다(출19:5-6, 욘1:2, 3:2, 마12:39).
(3) 실제로 이사야는 동족인 유다 왕국의 백성을 지극히 사랑하고 있는 선민들의 선지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선민들이 하나님신앙에 있어서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를 일깨워주고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의 요지가 다음과 같습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말씀의 본뜻을 버렸으며 이기주의와 현세구복사상에 물들어 있다고 질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만 구원받기를 원하며 이방인들은 여호와의 진노로 멸망을 당하게 내버려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민들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을 선민들로부터 배워야만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공의를 버리고 대신 세상적인 이익과 권력을 제 마음대로 취하고자 하는 심각한 영적인 타락입니다.
둘째로, “(a) 레바논의 영광 곧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이 함께 네게 이르러 내 거룩한 곳을 아름답게 할 것이며, (b) 내가 나의 발 둘 곳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사60:13); 이방나라의 재물이 선민들에게 주어지는 이유와 하나님께서 선민과 이방인들을 거룩하게 만드시는 이유가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1) “레바논의 영광 곧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이 함께 네게 이르러 내 거룩한 곳을 아름답게 할 것이며”(사60:13a); 그 옛날 지중해 무역을 경영하여 경제대국을 형성한 페니키아 인들의 중심도시가 두로와 시돈입니다. 그 지역은 오늘날 레바논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습니다;
1) 페니키아 인들이 지중해지역에 수출한 것은 애굽의 농산물, 귀한 광물들, 좋은 목재, 옷감과 염색재료, 각종 향신료 및 약재 등 생활필수품만이 아닙니다. 조선기술 및 건축기술 등과 고급 예술품 등이 들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고급 예술품으로는 각종 신상과 우상의 모형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수출한 건축기술과 좋은 목재로 솔로몬의 성전이 건립이 되고 있습니다.
2) 그러므로 여기서 이사야가 “레바논의 영광 곧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이 함께 네게 이르러 내 거룩한 곳을 아름답게 할 것이며”(사60:13a)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솔로몬 왕 때에 두로의 히람 왕을 복속시켜서 그 재물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짓도록 역사를 섭리하셨다는 의미입니다(왕상5:5-18).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방인들의 재물을 선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 목적을 벗어나서 이방인의 재물을 취득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서 어긋나는 행위라고 하겠습니다.
(2) “내가 나의 발 둘 곳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사60:13b);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을 하여 처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강림을 본 것은 시내 산입니다;
1) 당시 하나님은 모세 한 사람만 시내 산으로 불러 올려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신정국가의 율법으로 가르쳐주셨습니다(출19:3, 7, 20, 25, 24:2-3). 그 율법을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반드시 준수하겠다고 하는 약속을 받아냅니다(출19:8, 20:19, 24:3). 그 결과 언약식이 이루어집니다(출24:4-8).
2) 그 직후에 이스라엘 12지파를 대표하는 70인의 장로들이 모세의 인도로 시내 산 위에 올라갑니다. 그때의 기록이 다음과 같습니다;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와 (제사장인)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12지파의 대표자인) 이스라엘 장로 70인이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더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출24:6-11).
3) 그 옛날 이스라엘 자손들처럼 누구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게 되면, 하나님의 발치에서 먹고 마실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 자리가 바로 영생을 호흡하는 자리입니다. 그와 같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말씀이 바로 “내가 나의 발 둘 곳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사60:13b)는 구절이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a) 너를 괴롭히던 자의 자손이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너를 멸시하던 모든 자가 네 발 아래에 엎드려, (b) 너를 일컬어 여호와의 성읍이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의 시온이라 하리라”(사60:14); 이사야 제19장의 내용을 거듭 설명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1) “너를 괴롭히던 자의 자손이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너를 멸시하던 모든 자가 네 발 아래에 엎드려”(사60:14a); 먼저, ‘너를 괴롭히던 자의 자손’과 ‘너를 멸시하던 모든 자’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출애굽기의 내용을 참조하게 되면 이스라엘 자손을 괴롭히던 대표적인 족속이 애굽과 아말렉입니다. 그 가운데 아말렉 족속은 여호와 하나님의 맹세 그대로 멸망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출17:16).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아말렉 족속을 거의 전멸시켰으며 아각 왕은 대사사인 사무엘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삼상15:7-9, 32-33).
2) 그런데 애굽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선민의 나라보다 더 오래 존속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아오도록 만드십니다. 그것도 겸손하게 나아오게 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사야가 진작에 예언하고 있는 바와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주시리라”(사19:22).
3) 선민의 나라를 멸시하던 대표적인 제국이 앗수르입니다. 산헤립 황제가 다윗 왕조의 유다 왕국을 거의 짓밟고 예루살렘 성에 갇혀 있는 히스기야 왕에게 최후통첩을 합니다. 그때 앗수르의 선전관 랍사게 장군의 항복권유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는 유다의 히스기야 왕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기를, 너는 네가 신뢰하는 하나님이 예루살렘이 앗수르 왕의 손에 넘어가지 아니하리라 하는 말에 속지 말라. 앗수르 왕들이 모든 나라에 어떤 일을 행하였으며 그것을 어떻게 멸절시켰는지 네가 들었으리니 네가 구원을 받겠느냐?”(사37:10-11).
4) 참으로 앗수르의 황제는 안하무인(眼下無人, 눈앞에 뵈는 사람이 없음)입니다. 그는 교만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나라도 얼마든지 멸망시킬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능력을 멸시하던 앗수르 황제의 군대는 예루살렘 성밖에서 하룻밤에 하나님의 천사에 의하여 18만 5천명이 몰살을 당하게 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됩니다(왕하19:35, 사37:35-36). 따라서 이사야가 “너를 멸시하던 모든 자가 네 발 아래에 엎드려”(사60:14a)라고 자신 있게 진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너를 일컬어 여호와의 성읍이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의 시온이라 하리라”(사60:14b);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 말씀의 본뜻인 공의의 정신을 잊어버리고 선민의 이익만을 고집하면서 살게 되면 그들의 땅은 더 이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를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사야가 간구하고 있는 바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고서 이기적인 선민만의 구원사상을 버리고 현세적인 소원성취만을 탐하는 우상문화를 청산하게 된다면 그들의 땅은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도읍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도성이 될 것이며 또한 시온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사60:14b 의역).
넷째로, “(a) 전에는 네가 버림을 당하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가는 자가 없었으나, (b) 이제는 내가 너를 영원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사60:15); 놀라운 운명의 변화를 명쾌하게 이사야가 두 가지의 간단한 용어, ‘전에는’(although, NIV) 및 ‘이제는’(I will, NIV)으로 설명하고 있는 문장입니다;
(1) “전에는 네가 버림을 당하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가는 자가 없었으나”(사60:15a); 선민 유대인들이 어째서 하나님의 버림을 받으며 세상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될까요? 그것은 그들의 유아독존(唯我獨尊, 오직 자신만이 홀로 존귀함) 적인 선민우월사상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세적인 이익을 너무 탐하기 때문입니다;
1) 애초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든 나라와 백성을 전부 구원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선민으로 삼으시고 큰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특별히 이방민족을 위하여 죄 사함의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의 나라가 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실천하는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라고 하신 것입니다”(출19:5-6). 그런데 그들은 선민의 권리만 주장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그 사명을 완전히 헌신짝처럼 내던져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맙니다.
2) 선민우월사상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자손들이 얼마나 이방민족 앞에 교만스러운지 모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자신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오로지 선민만의 행복과 형통만을 위하여 존재하는 우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버림을 받는데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그 잘못된 우월감과 현세적인 이익과 권력을 지독하게 추구하는 그 근성을 매우 싫어하고 미워하게 됩니다. 그것은 일종의 자업자득(自業自得, 스스로 잘못을 범하여 얻게 되는 결과)이라고 하겠습니다.
3) 선민만이 아닙니다. 세상의 그 어느 민족이라고 하더라도 똑 같은 함정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두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깨닫고 실천해야만 합니다. 자기는 잘 살아야 되고 남은 못 살아도 좋다고 하는 사고방식은 하나님의 버림과 세상의 미움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이사야가 여기서 천명하고 있는 하나님의 역사섭리의 방향성입니다.
(2) “이제는 내가 너를 영원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사60:15b); 이사야는 애굽과 같은 이방민족일지라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장차 그들을 고쳐서 만민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실 것이라고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주시리라”(사19:22). 완악한 마음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진심으로 간구하기만 하면 새로운 역사가 전개되는 것입니다(롬11:23). 그러므로 본래 선민인 이스라엘 자손이야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롬11:24). 진심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이제는 만민구원을 위하여 헌신하겠다고 한다면 놀라운 미래가 다음과 같이 전개될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너를 영원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사60:15b). 하나님나라에서 영생을 누리는 아름다운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대를 이어가면서 하나님께서 지극히 기뻐하시는 일을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본문의 각 구절을 묵상함으로써 얻은 결과를 요약하고 결론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1) 성도들은 그 옛날 이스라엘 자손들처럼 지극히 이기적인 선민우월사상에 안주하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넓고도 넓은 공의의 정신을 깨닫고 실천해야만 합니다.
(2) 모세의 출애굽기를 참조하면, 세상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택하셔서 두 가지의 사명을 맡기고 계십니다; ①첫째,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고 하나님신앙의 거룩한 본을 보여주라. ②둘째, 이방인들의 죄 사함을 위해서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나라가 되라는 것입니다(출19:5-6, 욘1:2, 3:2, 마12:39).
(3) 그런데 역사 가운데 이스라엘 자손들이 영적으로 타락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버리고 대신 세상적인 이익과 권력을 제 마음대로 취하고자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선민들이 하나님신앙에 있어서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를 일깨워주고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4)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반드시 준수하겠다고 하는 약속을 받아냅니다(출19:8, 20:19, 24:3). 그 결과 언약식이 이루어집니다(출24:4-8). 그러자 12지파의 장로들이 하나님의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발치에서 먹고 마시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게 되면, 하나님의 발치에서 먹고 마실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 자리가 바로 영생을 호흡하는 자리입니다.
(5) 이사야가 간구하고 있는 바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고서 이기적인 선민만의 구원사상을 버리고 현세적인 소원성취만을 탐하는 우상문화를 청산하게 된다면 그들의 땅은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6) 진심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이제는 만민구원을 위하여 헌신하겠다고 한다면 놀라운 미래가 전개될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미래상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본문의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그와 같은 놀라운 미래를 맞이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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