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배 할배(손진길 소설)

서배 할배64(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9. 23. 16:30

서배 할배64(작성자; 손진길)

 

음력으로는 정월 초하루인 명절 설날이 양력으로는 1907년 2월 중순이다. 그러므로 큰 거랑과 넓은 들판을 가지고 있는 내남 너븐들의 날씨가 상당히 춥다. 그러나 설날 아침에 집집마다 차례를 지내느라고 온 마을이 부산하다. 그것도 장자의 집안에서만 차례를 지내고 있으므로 다른 형제들의 식구가 큰 집에 몰리고 있다;

부지런한 서배 아재 손상훈이 새해 첫날부터 아침 일찍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낸다. 그는 외아들이므로 양아들인 손영주와 함께 차례상 앞에 서있다. 그 옆에서는 안방마님 이채령이 차례상이 잘 차려져 있는지를 다시 점검하고 있다.

먼저 서배 아재가 지방이 제대로 써져서 신위가 순서대로 정확한지를 확인한다. 그리고 축문을 읽고 술 한잔을 부어 향불 위에 세번 돌린 다음에 차례상 위에 올린다.  그 다음 옷깃을 가다듬고 재배를 한다;

그날 손상훈은 자신이 올린 술을 퇴주 잔에 붓고 빈 잔을 아들 손영주에게 주면서 말한다; “영주야. 오늘은 네가 증조부와 증조모는 물론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술 한잔을 올리도록 해라. 이 잔을 사용해라”. 영주가 그 잔을 받자 손상훈이 잔에 술을 부어 준다. 그러자 손영주가 부친에게서 본 바와 같이 그 술잔을 향불 위에 세번 돌린 다음에 차례상 지방으로 쓴 신위 앞에 놓는다. 그리고 두 번 공손하게 절을 한다.

그러자 서배 아재 손상훈이 안방마님 이채령에게 말한다; “부인께서도 차례상을 마련하느라 고생을 하셨는데 조상님들께 술 한잔 올리시면 어떻겠소? 식구도 많지 않은데…”. 그러자 이채령이 말한다; “술은 남자들만 올리고 저는 함께 한쪽에서 절만 같이 하겠습니다. 보는 눈이 없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옳지요…”.

손상훈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상위에 차려져 있는 밥그릇에서 숟가락으로 밥을 조금씩 퍼서 국그릇에 말고 있다. 조부모와 부모님의 제사를 함께 모시고 있으므로 신위가 넷이고 밥그릇과 국그릇이 각각 넷이다;

차례상에 올리는 국은 붉은 고춧가루를 일체 사용하지 않고 소금만으로 간을 한 말간 국이다. 그리고 설날이므로 떡국까지 차례상에 올리고 있으며 숟가락을 밥그릇 위에 꽂아 두고 있다.

조상님들이 왕림하여 충분하게 음식을 드시도록 한참을 서서 기다린다. 그 다음에 정성스럽게 모두들 함께 두 번 절을 한다. 재배가 끝나자 밥에 꽂아 둔 숟가락과 전 위에 얹어 둔 젖가락들을 회수하여 마실 물을 담은 그릇에 놓고 밥그릇을 뚜껑으로 덮는다. 그리고 술잔에 남아 있는 술은 음복을 한다. 혹시 남은 술이 더 있으면 모두 퇴주잔에 붓는다.

마지막 순서는 지방과 축문을 불사른 다음에 화로에 넣는 것이다. 그것으로 차례가 끝나자 차례상 위의 음식을 모두 부엌으로 내어가서 다시 식사상을 차려온다. 새해 첫날의 아침식사이므로 떡국을 먹는다. 그리고 남은 술을 나누어 마시고 차례상에 놓았던 음식 가운데 조금씩 맛을 본다.

설날 차례와 아침식사가 모두 끝나자 손영주가 부모님께 세배를 드린다. 24살이나 되어 혼자서 세배를 드리자니 다소 민망한 모양이다. 그래서 새해 세배를 받는 자리에서 서배 아재 손상훈이 아들 영주에게 한마디를 한다; “멀지 않아 결혼을 하고 일가를 이루어 자손들과 함께 세배를 하기를 바란다. 손이 귀한 우리 집안이니 영주 네가 장차 그렇게 해주면 좋겠다”.  

아침식사와 세배가 끝나자 서배 아재가 아들 영주를 데리고 성묘를 가고자 한다. 먼저 멀리 떨어져 있는 박달 도진마을로 가서 그 안산으로 올라간다. 그곳에 선친 손성규의 산소가 있기 때문이다. 약간의 음식을 묘소의 상석에 차려 놓고 재배를 한 다음에는 다시 너븐들로 돌아온다. 그곳 상신의 뒷산에 조부모의 산소가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두사람이 동남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구왕골로 향한다. 그 앞산에 돌아가신 모친 이숙임의 산소가 있기 때문이다. 서배 아재는 아들 손영주를 데리고 그렇게 모친의 산소에서 성묘를 마친 후 구왕골에 살고 있는 재종 손형의 집에 들린다.

동갑인 손형과 그의 부인인 최인옥이 반갑게 서배 아재 손상훈과 손영주를 맞는다. 새해 첫날이므로 얼른 술상을 차려온다. 안주가 푸짐하다, 그리고 점심식사를 함께 하자고 하면서 또 밥상을 차려온다. 그렇게 설날에는 어느 집을 방문하더라도 마실 것과 먹을 것이 풍성하다. 그것이 시골의 인심이다.  

너븐들 집으로 돌아오니 시간이 많이 지났다. 그렇지만 서배 아재 손상훈은 아들 영주를 데리고 너븐들 가까이 살고 있는 재종 손섭과 고인이 된 손찬의 부인 남양 홍씨가 장남 손영한과 함께 살고 있는 집을 차례로 방문한다. 그날 손상훈은 양아들 손영주에게 생모도 만나고 생가에서 좀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한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손영주에게 말한다; “영주야, 내가 너의 생모와 너의 친형 영한에게는 먹고 사는데 지장이 되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있다. 훗날 내가 없더라도 그들의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네가 도와주도록 해라. 그리고 언제 기회를 보아 네 형 영한이와 함께 생부의 산소에 성묘를 다녀오도록 해라”. 고마운 말씀이다. 역시 서배 아재 손상훈은 너븐들의 지주이자 그곳 월성 손씨의 가주인 것이다.  

새해 첫날이므로 서로들 만나자 마자 맞절부터 한다. 그리고 푸짐한 술상이 집집마다 차려져 나온다. 바깥주인들이 머물고 있는 사랑방이 그날따라 남자들의 큰 웃음소리로 떠들썩하다. 그날은 지나간 한해를 추억하며 새해 설계를 말하는 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제수씨들도 그날은 사랑방의 한쪽에서 귀를 기울여서 지주 손상훈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중요한 가주의 이야기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음날은 아침에 서배 아재가 안방마님 이채령과 아들 손영주를 모두 데리고 양삼마을에 살고 있는 훈장 이덕화 댁을 방문한다. 장인 이덕화와 장모 김옥심이 반갑게 그들을 맞는다. 새해 세배를 드리자 양주분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그 자리에서 훈장 이덕화는 외손자가 되는 손영주에게 “금년에는 24살이나 되는 노총각이 장가를 가야지”라고 말한다. 외손이지만 역시 자손이 번성하기를 그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손상훈이 그 자리에서 장인어른에게 말한다; “언제 날을 보아 서배 마을로 가서 성묘를 하셔야지요. 저도 함께 가고 싶습니다마는 사정이 어떠하신지요?”. 훈장 이덕화가 흔쾌하게 말한다; “좋은 생각이야. 이번에는 다 함께 외동 서배 마을로 가서 성묘를 하자고. 이채령이의 조부모의 산소가 모두 그곳에 있지. 그리고 손영주도 그 산소의 위치를 한번 보아두면 좋고…”.

장모인 김옥심도 좋아한다. 그곳이 그녀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카 김춘엽의 가족이 그곳에 살고 있는 것이다. 손상훈도 동갑내기 친구 김춘엽을 보고 싶어한다. 그 마음이야 이채령이 더하다. 왜냐하면 그녀의 절친 이가연이 바로 김춘엽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훈장 이덕화는 부인 김옥심은 물론 손상훈의 가족들이 모두 외동 서배 마을을 방문하고 조상들에게 성묘를 하게 되었다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다. 그래서 말한다; “나는 내일도 별다른 일이 없으므로 당장 내일 서배 마을을 방문해도 좋은데, 사위의 생각은 어떠한가?”.

서배 아재 손상훈은 금년에 자신이 조선의 나이로 57세이므로 19살이 연상인 장인 이덕화의 춘추가 76세임을 알고 있다.  장인이 고령이시다. 그러므로 장인 이덕화는 이번 기회에 반드시 고향 서배 마을을 다같이 방문하고 싶어하신다.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자신이 향년을 맞이하게 되면 그곳 선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벌써 느끼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 점을 생각하고서 손상훈은 대답을 미루지 아니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말씀 드린다; “저도 좋습니다. 그러면 내일 아침 일찍 다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날씨가 추우니 단단하게 옷을 차려 입으시기 바랍니다”.

훈장 이덕화는 자신이 사위복은 있다고 새삼 느낀다. 외동딸 이채령만을 키운 자신으로서는 서배 아재 손상훈이 아들과 같은 사위이다. 물론 자신의 제자이기도 하다. 그러고 손상훈은 이덕화 자신이 존경한 지주 고 손성규의 아들이 아닌가?

생전에 지주 손성규를 형님처럼 생각한 훈장 이덕화이다. 그러니 장인 이덕화는 사위 손상훈의 그 말을 들으면서 그 마음이 다시금 훈훈하고 기꺼워진다. 그렇게 부자간과 같은 사이가 이덕화와 손상훈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