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289강(사59:19-2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년 3월 25일(금)
만민구원을 이루고자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새로운 언약에 대하여(사59:19-21)
본문에서 이사야는 만민구원을 이루고자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새로운 언약의 내용에 대하여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그 새로운 언약은 가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말이 새로운 언약이지 실제로는 여호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도대체 어떠한 내용으로 되어있기에 그렇게 볼 수가 있을까요? 본문에서 그 근거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먼저 본문의 각 구절을 하나씩 주의 깊게 살펴보면서 그 의미를 깊이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그리하면, 본문이 역사상 유례가 없는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의 방식을 예언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발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첫째로, “(a) 서쪽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b) 해 돋는 쪽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 (c)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강물같이 오실 것임이로다”(사59:19); 이스라엘 자손들의 경험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서쪽과 동쪽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서쪽과 동쪽의 세상제국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에 대하여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서쪽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사59:19a);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이주가 어느 방향으로 진행이 되고 있는 것일까요?
1) 그들의 조상인 야곱에게 주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창28:13-14). 왜 동쪽보다 서쪽이 먼저 언급이 되고 있는 것일까요?
2) 그 이유는 역사적으로 야곱 일행의 애굽 이주가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바라보면, 서쪽에는 애굽 제국이 있으며 동쪽에는 메소포타미아의 나라들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전 19세기에 야곱이 가나안 땅의 연이은 흉년을 피하여 아들 요셉이 총리가 되어 있는 애굽으로 모든 식솔을 이끌고 이민을 가게 됩니다(창45:9-11, 46:1-4).
3) 요셉을 총리로 기용했으며 야곱 일행에게 이민을 허용해준 애굽 제국의 제12왕조는 통일왕조 ‘중 왕국의 시대’이며,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무척 호의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민 온지 94년 후에 제국이 분열되고 제13왕조가 나타났지만 집권세력은 여전히 그 옛날 요셉 총리의 은덕을 잊지 아니했습니다. 분열시기인 제2중간기 후반에는 동북면에서 셈족인 힉소스인들이 철기마차를 앞세워서 침입을 했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중심부를 장악하고서 100년간을 통치했습니다. 그들이 아흐모세 왕가에 의하여 망할 때까지 같은 셈족인 이스라엘 자손들에 대하여 관대했습니다.
4) 그 결과 야곱의 일행은 BC 1,876년에 애굽에 이민을 와서 BC 1,570년에 제2중간기가 끝날 때까지 무려 306년 동안 크게 번성하여 하나의 어엿한 민족을 이루게 됩니다(출1:7). 그렇지만, 분열왕국 시대에 힘을 쓰던 소수민족 힉소스인들이 함족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하게 됩니다. 아흐모세의 제18왕조가 셈족을 물리치고서 다시 통일 애굽 제국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것이 소위 ‘신 왕국의 시대’입니다. 그 특징은 이방족속에 대하여 강경한 탄압을 자행한 것입니다. 그들은 셈족 히브리인 출신인 그 옛날 요셉 총리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를 못하고 있습니다(출1:8). 따라서 히브리인인 이스라엘 자손들을 강력하게 탄압합니다.
5) 아흐모세의 왕가는 동북면 고센 땅에 지방도시를 건설한다는 명분으로 교묘하게 이스라엘 자손들을 강제노역에 동원합니다(출1:11). 도시를 건설하는 중노동에 동원하여 아예 힘을 쓰지 못하도록 조치한 것입니다. 그 형편이 한 마디로, 노예입니다. 신 왕국의 성립이 BC 1,570년이므로 그 때부터 BC 1,446년에 출애굽의 역사가 이루어질 때까지는 124년이 걸립니다. 그 기간 동안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엄청난 학대를 받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하나되어 조상들의 하나님께 한 마음으로 노예생활에서의 해방과 구원을 부르짖게 됩니다(출2:23).
6) 그 기도를 들으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에 보내시고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게 됩니다. 9번째 재앙이 흑암의 재앙이며 10번째 재앙이 장자와 초태생의 죽음입니다. 애굽의 황제인 바로의 장자부터 모든 백성들과 종들의 장자까지 모두가 같은 날 밤에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가축의 첫 새끼인 초태생도 전부 죽게 됩니다. 따라서 온 애굽 땅에 통곡소리가 울러 퍼지고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과 같이, 두려우신 창조주 여호와의 이름이 모든 애굽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각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사59:19a).
(2) “해 돋는 쪽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사59:19b); 그 후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동방이주가 시작이 됩니다;
1) 그 이유는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주전 722년에 메소포타미아의 패권국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쓸만한 백성들이 동방으로 끌려가게 되기 때문입니다(왕하17:5-6, 23). 물론 주전 586년경에는 똑 같은 역사가 남조 유다 왕국에서 발생하게 됩니다. 앗수르를 멸망시킨 신바벨론 제국에 의하여 다윗 왕조의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하고 역시 쓸만한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동방의 바벨론으로 끌려가기 때문입니다(왕하25:1-7, 11-12).
2) 하지만 그것은 이사야 예언이 있는 주전 700년경보다 100여년 후의 일입니다. 당시 다윗 왕조의 멸망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이 다음과 같습니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왕은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 네게서 태어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사39:5-7).
3) 그렇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벨론 땅에서 계속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원하시지 아니하십니다. 그래서 바사 왕국의 고레스 왕에서 힘을 실어주어 주전 539년에 신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리게 역사하십니다. 그 결과 이사야의 예언 그대로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으로 자신이 천하통일을 했음을(사44:28, 45:1-8) 알게 된 페르시아의 황제 고레스는 유대인들에게 자유를 주고 원하는 자는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도록 조서를 내리게 됩니다(스1:1-4). 그것은 동방 땅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크게 드러나게 되는 사건입니다.
4) 그 후 주전 5세기에는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황제의 도움으로 페르시아 제국내의 반(反)유대세력을 크게 토벌하게 되는 역사가 발생합니다(에9:23-28). 그것 역시 “해 돋는 쪽에서 여호와의 영광을 두려워하게 되는”(사59:19b) 사건에 해당할 것입니다.
(3)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강물같이 오실 것임이로다”(사59:19c);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직접 오실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굉장히 급하고 강력합니다. 여호와께서 이 세상에 오시는 그 기운이 엄청나게 격렬할 것임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풀이를 해보고자 합니다;
1)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강림하신 사건을 모세가 출애굽기 제19장에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여호와의 ‘시내 산 강림사건’입니다. 그 강림사건을 통하여 ‘시내 산 언약’이 발생하게 됩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앞에 강림하시게 됩니다. 그 사건을 통하여 ‘새로운 언약’이 발생하게 됩니다.
2) 당시 시내 산에 강림하시는 여호와의 모습을 기술하고 있는 모세의 글이 다음과 같습니다;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가마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출19:18-19). 특징은 두 가지입니다; ①첫째, 불 가운데서 강림하십니다. ②둘째, 모세와 음성으로 대화를 하시고 있습니다.
3) 그런데 본문에서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내용은 조금 다릅니다; ①첫째,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강물같이 오실 것임이로다”(사59:19c)는 예언입니다. 그 말은 직접 강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기운을 빌려서 이 땅에 오시는 분이 있다는 표현입니다. 그 기운이 바로 바닷물을 출렁이게 이끌고 있는 인력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②둘째, 창조주의 기운을 입고서 이 세상에 오시는 분이 메시아임을 짐작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③셋째, 모세와의 대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그 음성으로 대화를 나누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요컨대, 이 대목에서 이사야는 메시아의 오심을 비유적으로 다시 한번 예언을 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a)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b)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c)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사59:20); 확정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전달하고 있습니다;
(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59:20a); 선지자가 특히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59:20a)고 말하는 경우에는 그것이 하나님의 확정된 계획이라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이하의 말씀은 확고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입니다.
(2)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사59:20b); 구속자로 오시는 메시아가 어디에 오실까요? 그 옛날 출애굽 당시의 시내 산이나 호렙 산이 아닙니다. 시온으로 불리고 있는 예루살렘입니다. 그리고 선민사상이 만연되어 있는 유대 땅에 오십니다. 그곳에서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만민구원사상을 선포하실 것입니다. 만약 선민들이 자신들만의 구원사상을 버리고 이방인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구원을 얻기 위하여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제대로 역할을 했다고 한다면 구속자가 시온 땅에 오시는 일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3)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사59:20c); 위와 같은 관점에서 보자면,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 앞에 큰 죄인들입니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출애굽의 은혜를 누리고 출바벨론의 은총까지 누리게 되지만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은 이유와 목적에 대해서는 영적으로 까막눈이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메시아가 그들의 땅에 오시게 된다고 하여 그들이 모두 구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로지 자신들의 선민구원사상과 현세적인 구복사상이 이기적인 신앙이며 우상문화로서 여호와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 그리고 공의의 정신에 정면으로 어긋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회개를 하는 자들만이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사59:20c). 그 구원의 기준은 선민 이방인 상관이 없이 누구에게나 적용이 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a)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b)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c)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d)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e)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59:21);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포하시는 새로운 언약의 내용이 어째서 새로운 역사를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요?
(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사59:21a); 여기서 말하고 있는 ‘그들’은 위에서 구원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미 살펴본 그대로, 오로지 자신들의 선민구원사상과 현세적인 구복사상이 이기적인 신앙이며 우상문화로서 여호와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 그리고 공의의 정신에 정면으로 어긋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메시아 앞에 회개를 하고 있는 자들입니다(사59:20c).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을 대신하여 구속자 메시아가 그들과 구원의 언약을 세우십니다. 그 새로운 언약의 내용이 무엇일까요?
(2)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사59:21b); 첫 번째 언약의 내용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영이 자신의 죄과를 회개하고 앞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겠다고 신앙고백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사59:21b). 히브리인들의 전통과 사상에 의하면, 왕과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에 국한하여 일시적으로 임하고 있는 것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성령께서 메시아 앞에 자신의 죄과를 회개하는 자들이라면 선민 이방인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임하시겠다고 하는 파격적인 내용입니다. 그것은 경천동지(驚天動地, 하늘이 놀라고 땅이 움직임)의 개벽(開闢, 태초가 시작됨)의 역사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과 동행하는 성도의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습니다. 요컨대 그리스도처럼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이 한 몸에서 역사하고 있는 구원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새로운 언약이며 새로운 역사의 창조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3)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사59:21c);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성도의 입에 머물게 된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옛날 출애굽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모세의 입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머물러 있게 된 역사가 있습니다(출4:10-17). 그런데 메시아가 오시게 되면 제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가르쳐줄 것입니다(눅24:44-48, 요17:8, 14). 그리고 그 말씀의 뜻을 제대로 깨달아 여러 백성과 이방인들에게 그대로 전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의미입니다(행1:8). 바야흐로 모세가 일찍이 말한 소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민11:29). 사도 요한의 설명에 따르게 되면, 말씀의 성육신으로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께서 장차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성령님과 함께 말씀의 영으로 함께 임재하시고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이라는 내용입니다(요14:16-20).
(4)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사59:21d);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과 말씀의 성육신이신 그리스도의 영이 언제까지 성도들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게 될까요? 그 엄청난 임재와 동행의 역사가 영원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사59:21abcd). 구체적으로 보자면, ①첫째, 성도가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 떠나지 아니하고 임재하신다는 것입니다. ②둘째, 이 세상이 끝나고 새 하늘과 땅이 창조가 되며 새 예루살렘 성이 이 땅에 임하는 그때까지 모든 성도들에게 계속 임재하신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과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은 그 길이가 이 땅에서 천국에까지 이르게 되며, 그 넓이가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인류와 또 앞으로 살게 될 모든 인류를 포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59:21e);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통하여 그리고 성령님을 통하여 회개하는 성도들에게 임재하여 앞으로 함께 만민구원을 이루어가신다고 하는 새로운 역사가 새 언약으로 천명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역사가 반드시 성취가 될 것임을 이사야가 거듭 창조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59:21e).
결론적으로,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통하여, 구속자이신 메시아가 시온에 임하시고 하나님의 영과 말씀이 자신의 죄과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성도들에게 영원히 임하실 것이라는 여호와의 선언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한 방법으로 만민구원을 성취하시겠다고 하는 것이 새로운 언약의 내용입니다.
그것은 메시아를 통하여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성도들에게 함께하시고 하나님의 영이 또한 성도와 함께 거룩한 인생을 함께 살아가시겠다고 하는 놀라운 내용입니다. 그 목적은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회개하는 모든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여호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생과 인류의 역사는 모든 성도들에게 메시아와 성령님이 임하시는 그 시기를 전후하여 두 개로 갈라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첫째, 이전의 시대는 구속자와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 시대입니다(히11:13-16). 둘째, 이후의 시대는 자신의 죄와 허물을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는 시대입니다(눅24:44-49, 행1:8, 롬8:1-17). 그러므로 아무쪼록 거듭난 이후의 시대를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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