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272강(사57:1-2)(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9. 16. 13:33

이사야 강해 제272(57:1-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38()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는 메시아의 죽음, 그 뒤를 따르는 진실한 제자들의 죽음이 천국의 평안을 얻는 길임을 알지 못하고 있는 악한 자들의 비극에 대하여(57:1-2)

 

본문은 짧습니다. 두 구절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선지자 이사야가 전해주고자 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메시지는 간단한 내용이 아닙니다. 먼저 본문의 말씀을 소개하고 그 다음에 그 주요내용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본문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의인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진실한 이들거두어감을 당할지라도 깨닫는 자가 없도다. 의인들악한 자들 앞에서 불리어 가도다. (2) 그들은 평안에 들어갔나니, 바른 길로 가는 자들그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리라”(57:1-2);

첫째로, 1절에서 의인은 단수이며 진실한 이들은 복수입니다. 그리고 의인은 죽음을 당하고 진실한 이들은 거두어감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요?

(1)  의인의 죽음은 단수이므로 메시아의 죽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이미 제53장에서 여호와의 종으로 이 세상에 오시는 메시아가 대속의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53:4-9). 따라서 메시아는 회개하는 죄인들의 죄를 사해주기 위하여 속죄양으로 이 세상에 오셨으며 실제로 그 사명을 감당하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메시아의 대속의 죽음을 바라보는 자들은 그 마음속에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야만 합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1:29)을 이 땅에 메시아로 보내어주신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에 먼저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메시아가 세상구원과 만민구원이라는 하나님의 공의를 끝까지 실천하다가 의인으로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장차 마음속에 그러한 깨달음을 가지지 아니하고 살아가는 동족들이 많을 것임을 알고서 이에 본문에서 경종을 울리고 있다고 하겠습니다(57:1a). 

(2)  진실한 이들은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하여 거두어감을 당하게 된다고 이사야가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일관했던 에녹이 하늘로 데려감을 당하고 있습니다(5:24).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에서는 선지자 엘리야가 요단 강가에서 불수레와 불말 그리고 회오리 바람을 타고서 하늘로 올리어가고 있습니다(왕하2:7, 11). 그와 같이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휴거를 당한 인물도 있지만 모세와 같이 별세 후에 그 무덤을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34:5-6). 유다서에서는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신을 하늘로 거두어간 것으로 암시해주고 있습니다(1:9). 그와 같은 경우를 되돌아보게 되면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은 이사야의 말과 같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진실된 마음으로 한 평생 실천하고자 했던 진실한 이들은 그 영혼이나 육신이 하나님에 의하여 거둠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57:1b, 5:24).

둘째로, 의인들이 악한 자들 앞에서 먼저 죽거나 하늘로 불리어가게 되는 것은 특별한 징조입니다(57:1c).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창세기에서 이미 두 가지의 경우를 엿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노아의 시대에 그의 조상들이 모두 이 세상을 먼저 떠나자 홍수심판이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5:24-31, 7:11). 또 하나는, 의인 열명이 없으므로 소돔 성과 고모라 성에 불 심판이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18:32, 19:24-25);  

(1)  노아의 증조부가 에녹입니다. 그는 365세를 살다가 일찍 휴거를 당하게 됩니다(5:23-24). 노아의 조부는 므두셀라입니다. 그는 인류역사상 가장 장수한 인물입니다. 향년이 969세입니다(5:27). 므두셀라가 별세한 때가 공교롭게도 노아 600년인데 그 해 217일에 홍수심판이 발생합니다(7:11). 만약 므두셀라가 홍수심판 시작 때에도 살아 있었다면, 의인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그를 노아의 방주에 함께 들어가도록 조치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의 방주에는 사람으로서는 노아 부부와 3아들 부부만이 타고 있습니다(7:7). 그러므로 므두셀라는 그 해 정월에 죽고 그 장례를 손자 노아가 치르고 홍수심판을 맞이한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계산방법은 187(라멕 탄생)+182(노아 탄생)+600(노아홍수의 해)=969(므두셀라의 향년)입니다. 같은 방법으로 계산해보면, 향년이 777세인 라멕(노아의 부친)777-182=노아 595”, 곧 홍수심판 5년전에 벌써 소천하고 있습니다.

(2)  여호와 하나님께서 두 천사와 더불어 사람의 모습으로 헤브론에 살고 있는 아브라함의 거처 앞에 나타나십니다(18:1-2). 아브라함의 극진한 식사대접을 받으신 다음에 여호와는 두 천사를 소돔 성으로 먼저 보내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소돔과 고모라 등지에서 죄악이 넘쳐나고 있으므로 실태파악이 되는대로 멸망시켜버리실 계획이라는 것입니다(18:20-21). 아브라함은 소돔성에 살고 있는(13:12-13) 장조카 롯의 가족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18:23). 하나님께서는 옥석을 구별한 다음에 멸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 등에 살고 있는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고 싶어합니다. 따라서 의인 50명만 있어도 용서해달라고 건의합니다(18:24). 하나님의 긍정적인 응답을 받았지만 그 의인의 수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계속 그 수를 줄여가면서 중보기도를 합니다. 그 결과 의인 10명만 있어도 그 성읍을 멸하지 아니하실 것이라는 확답을 받게 됩니다(18:32). 아브라함은 안심합니다. 자신과 같은 의인 열명이 그 크고 번성한 성읍에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의 예상은 빗나가고 맙니다. 실제로 의인 열명이 없어서 10만명 정도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그 큰 성들이 불 심판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19:24-25).

(3)  그러므로 의인의 존재는 참으로 소중합니다. 그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중보의 기도를 드리며 하나님신앙의 본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그 성읍이 보전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악인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모조리 일찍 소천하고 있다고 한다면(57:1c) 그것은 굉장히 위험한 신호입니다. 그만큼의 의인이 빠른 속도로 충당이 되지 못하는 한 그 성읍은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을 당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한 가지 기억해야만 하는 사건이 있습니다. 일찍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에서 아말렉 족속의 기습을 받게 됩니다(17:8). 그때 의인 모세가 산 위에 올라가서 전장을 내려다보면서 두 팔을 하늘로 들고서 여호와 하나님에게 기도를 합니다(17:10-11). 그 결과 승전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피곤하여 그 팔을 내리게 되면 어김없이 패전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의인의 기도가 역사하는 힘이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의인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성읍의 주민들을 살려달라고 하나님에게 간구할 때에 그 중보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큽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선지자를 소중하게 여기고 하나님신앙을 보전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 전쟁을 이기고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구원의 방법론입니다.

  셋째로, 본문 제2절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그들은 평안에 들어갔나니, 바른 길로 가는 자들그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리라”(57:2). 알기 쉽게 풀이를 해보고자 합니다;

(1)  이 세상에는 참된 평안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먼저 개인적으로 사람의 육신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음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중에 병들고 늙어가는 그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렇게 불완전하고 유한한 육신을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는 인생이(4:26, 에노스의 의미임) 어떻게 온전한 평안을 누릴 수가 있겠습니까?  또한 사람들은 사회적으로도 불안합니다. 기본적으로, 재화가 부족하기 때문에 살기다툼이 치열합니다. 그리고 힘으로 약탈하고자 하는 세력들이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이 세상에서 안전과 평안을 누린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2)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은 영생의 구원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결코 이 땅에서 그와 같은 불안한 삶을 계속 살아가라고 강요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제3장 말미를 보면 하나님의 그 뜻이 이미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부부가 선악과를 따먹은 그 상태로 생명나무의 실과마저 따먹고 저주 가운데 영생하도록 결코 방치하지 아니하십니다”(3:22-24). 따라서 하나님과 평생 동행한 에녹에게는 휴거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 역시 하늘로 올림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시는 예수님도 부활한 다음 베다니 앞에서 승천하시고 있습니다(24:50-51). 모두 하나님 보좌 앞에서 영생을 누리며 참된 평안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메시아처럼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다가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한 평안을 얻는다고 하는 것이 복 중의 가장 큰 복입니다.

(3)  바른 길로 가는 자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여 자신의 침상에서 편히 쉬게 해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사야가 전해주고 있습니다(57:2).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성도들이 천국에서 자신의 거처와 편안한 침상을 가질 수가 있을까요? 그 비결을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해주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마련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1-3). 그 비결은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성도들이 들어갈 천국의 거처를 마련하여 다시 오시기 때문입니다(22:20-21).

  결론적으로, 이사야는 메시아가 다시 오실 때까지 바른 길을 가라고 성도들에게 본문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바른 길은 그리스도의 제자로 한평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컨대, 그리스도가 명령하신 지상명령을 실천하면서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장차 하늘의 상급과 기업은 그렇게 행하는 성도들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아무쪼록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맡은 바 사명에 최선을 다하시는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풍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