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이민자(손진길 소설)

시간 이민자25(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0. 7. 31. 11:22

시간 이민자25(손진길 소설)

 

1996년이 되자 김상진 차장이 다니고 있는 경제신문사에서 인사이동이 있게 된다. 신문사를 성장시킨 일등공신인 방사장이 나이가 많아서 이선으로 물러난다. 그리고 새로운 사장이 들어선다. 그를 김상진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14일 시무식을 겸한 자리에서 신문사 사장의 이취임식이 거행된다. 먼저 물러나는 방주일 사장이 한마디를 한다; “나는 평생 언론인으로 살아왔습니다. 이제 나이 70이 넘어 그만 일선에서 물러나고자 합니다. 그동안 저를 도와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먼저 드립니다. 그리고… “.

이제 홀가분한 마음으로 방사장이 말한다; “저의 뒤를 이어 오늘부터 40대 중반의 패기와 원숙함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편집국 성기수 국장이 사장으로 일하게 됩니다. 아무쪼록 신임 성 사장을 도와 우리 신문을 한국의 최고 신문으로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안녕!... “.

직원들이 박수로 화답한다. 그 다음에 성기수 신임사장이 취임인사를 간략하게 한다. 그리고 악수를 나누면서 방주일 사장을 집으로 떠나 보낸다. 개인적으로는 고모부인 방주일 사장이다. 그날 사장실에서 하루를 근무하고 성기수 사장이 부인 임효린과 함께 효자동의 고모 집을 찾는다.

조카인 성기수 내외가 들어서자 고모 성순혜 여사가 그들을 반긴다. 응접실에서 신문을 보고 있던 방사장이 조카내외를 반긴다. 그 자리에서 성순혜 여사가 말한다; “기수야, 나의 친정 아버지이고 너의 조부이신 성영후 회장님께서 만드신 유일한 언론기관이 우리 경제신문이다. 이제 그분의 손자인 너에게 신문사를 물려주게 되어 나는 기쁘다”.

그 말을 듣자 성기수 사장이 대답한다; “고모님, 그동안 고모부님과 함께 할아버지의 기업을 잘 관리하여 주셔서 제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신문사가 그동안 엄청나게 성장했어요. 모두가 고모님 내외분의 공입니다. 제가 꼭 기억할게요… “.

말로만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다. 성기수 내외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모 내외분께 큰 절을 올린다. 그것을 보면서 성순혜 여사가 눈물을 훔치면서 말한다; “아버지가 보시면 참으로 기뻐하셨을 터인데... 그때 손자인 기수 너는 너무 어렸다. 그리고 나의 오라버니와 올케 그러니까 기수 너의 부모님이 너무 일찍 돌아가셨지… “.

옛날 일을 생각하면서 성순혜 여사가 이어서 말한다; "아버지는 사위인 고모부에게 신문사를 맡기면서 훗날 손자인 기수 너에게 대물림을 해주라고 부탁하셨지. 그리고 나머지 큰 기업들은 나의 오라비인 나머지 아들들에게 물려주셨고그 일이 벌써 옛날 일이 되고 말았구나!... “.

그 말을 듣자 조카 며느리인 임효린이 말한다; “고모님, 그 마음을 제가 알아요. 저는 시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한번도 모시지를 못했어요. 그러니 제가 조카며느리가 아니라 고모님의 며느리가 되어 여생을 잘 모실게요… “.

그 말을 하면서 임효린이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다; “저의 친정부모님도 제가 남편과 사귀는 것을 아시고서는 고모님 내외분이 대신 신문사를 잘 경영하고 있으니 좋은 가문이라고 하시면서 혼사를 허락하셨어요. 그리고 고모님 내외분을 시부모로 알고서 잘 모시라고 당부까지 하셨어요. 그러니 제가 며느리 노릇을 할께요… “.

임효린이 눈물을 글썽이면서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방주일 사장이 말한다; “우리 내외는 무자식인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그것이 아니구나. 성사장이 내 아들이고 임여사가 내 며느리이니 우리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평생 언론인으로 살아온 보람이 있구나. 고맙다… “.

서울에서 손꼽히는 고 성영후 회장의 자손이 그들이다. 세간에서는 오래된 재벌 집 이야기라서 이미 잊어버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 4인에게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가문의 이야기인 것이다.

성기수 사장이 그 달 중순에 인사발령을 낸다. 새로운 편집국장의 자리를 누가 맡느냐? 하는 것이 사내의 관심거리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 김상진 차장의 이름이 올라 있다. 모두들 의외의 인사라서 깜짝 놀란다.

김상진은 시간이민자이다. 이제 5년이 지나면 이곳을 떠나야 하는 운명이다. 그런데 그가 그러한 중책을 맡아서 어떻게 하는가?... 따라서 그는 성사장을 찾아 뵙고 고사를 한다. 그러나 성사장이 막무가내이다; “당장 편집국장을 맡을 적임자가 없어서 그러니 자네가 한 5년만 맡아 주게나. 그것은 가능하겠지?... “.

차마 그러한 청까지 거절할 수가 없다. 그래서 김상진이 그 자리를 맡고 만다. 그때부터 그는 편집국의 일을 처리하느라고 바쁘다. 그래서 1996년 한해를 편집실에서 주로 직원들과 보내게 된다.

그해의 기사거리를 정리하면서 김상진은 크게 보아 두가지 사실을 깨닫고 있다; 하나는, 국제적인 경제환경이 자꾸만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2년도 남지 아니한 김영삼 정권에 대한 야권과 보수세력의 도전이 거세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상진 국장은 차마 남들에게 말하지를 못하고 있는 이야기가 그 내심 가운데 하나 깊숙이 들어있다. 그것은 작년 1995년에 김영삼 대통령이 검찰을 움직여서 전임 대통령 두사람을 구속수사하도록 지시한 것이다.

그때부터 검찰의 힘이 막강해지고 있다. 그것이 나중에는 현직 대통령의 발목을 잡을 것만 같다. 1996년이 되자 김영삼 대통령의 임기가 2년도 남지 아니하게 된다. 왜냐하면, 19971218일에 제15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국민투표가 실시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힘이 약해지고 있는 현직 대통령에게 끝까지 충성하는 권력기관이 없을 것이다.

만약 검찰에서 공평한 수사와 평등한 법적용을 이야기하면서 현직 대통령의 자금줄을 조사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그러한 일이 실제로 김영삼 대통령의 임기가 막바지에 이르게 되는 1997년에 발생하게 되고 김영삼 대통령의 개혁 드라이브가 크게 꺾이게 된다는 사실을 시간이민자인 김상진이 벌써 알고 있기에 그가 혼자서 속이 타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난 199212월 대선에서 패배한 김대중 후보는 영국에서 오래 머물다가 2년반이 지나서야 1995년에 한국으로 되돌아온다. 그는 6월 지방선거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정계에 복귀한 기념으로 19959월에 새로운 정당 새정치연합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세력을 확장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는 제1야당의 수장 답게 이제는 김영삼 대통령의 아킬레스 근을 물어뜯으면서 당면한 1996411일의 총선과 19971218일의 대선을 준비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의 소원대로 정치일정이 돌아가지는 아니한다. 그 이유는 정치 9단인 김영삼 대통령이 야당보다 더욱 개혁적인 모습으로 정국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가 과감하게 19956월에 제1회 지방의원 및 단체장 동시선거를 실시하고 만다. 35년만에 완전한 지방자치가 실시되자 국민들이 환호한다.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은 그해가 가기 전에 더 대담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것이 11월과 12월에 발생하는 신군부 출신 대통령 노태우와 전두환에 대한 구속수사이다.

그 다음해인 19963월이 될 때까지 국민들이 김영삼 대통령의 과감한 조치를 환영하면서 신군부 출신 전임 대통령들의 수사와 판결의 진행과정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1996411일 제15대 총선의 결과는 여당의 승리이다.

그러므로 야당 총재인 김대중과 김종필이 역전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들이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자금의 실마리를 추적하여 대통령의 아들과 금고지기를 법정에 세우는 것은 그 다음해인 1997년이다. 그러므로 그때까지 1996년은 김영삼 정권이 나름대로 그 영향력을 크게 발휘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김상진 국장이 1996년에 발생한 사건들을 나름대로 다음과 같이 파악하고 있다;

첫째로, 530일부터 제15대 국회의 임기가 시작된다. 그런데 여야의 세력이 팽팽하다 전체의석 299가운데 여당인 신한국당의 의석이 139석으로 과반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다른 소수정당의 도움을 받아야만 정국운영이 가능하다. 여당인 신한국당과 제1야당인 새정치국민당이 다른 소수정당의 지지를 얻고자 경쟁하고 있다. 그 제휴여부에 따라 정국의 운영이 달라지는 것이다.

둘째로, 813일 대학생 전위부대인 한총련이 연세대학교를 점령하여 과격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1980년대 후반에 맹위를 떨친 전대협이 사라지자 1993년부터 한총련이 구성되어 보수우익정권에 대하여 반대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민들은 냉담한 표정이다.

이념투쟁보다는 나날이 각박해지고 있는 세계적인 경제환경의 악화 속에서 스스로 한국사람들이 살아남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한국의 수출에 유리했던 3저현상이 사라진지 오래이다. 이제는 미국이 주도하는 시장개방과 자본개방이 도래하여 전세계적인 무한경쟁의 시대이다. 그러므로 대학생들의 이념에 치우친 시위에 호응할 정신적 여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셋째로, 826일 서울지방법원에서 드디어 전직 대통령 전두환노태우에 대하여 1차선고를 내린다. 반란과 내란수괴죄 등으로 사형과 무기징역이 각각 결정이 되고 만다. 그러나 12 16 항소심에서 전두환 노태우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형으로 감형되고 있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의 통치적인 차원에서의 사면이 없는 이상 감옥에서 오래 지낼 수밖에 없다. 앞으로의 추이를 지켜볼 따름이다.

넷째로, 미국의 정보부대가 북한에서의 핵개발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미 러시아와 중국은 핵보유국이다. 그런데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여 사용하게 되면 그것이 가장 큰 위협요소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북한에 대하여 핵사찰을 강하게 진행하고자 한다.

그 준비단계가 두가지로 진행되고 있다; 하나가, 1996910일 유엔총회에서 CTBT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을 가결한 것이다. 이제 북한을 비롯하여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의도를 가진 나라들이 핵실험 자체를 행하지 못하게 된다. 또 하나가, 921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한에 대하여 IAEA의 전면사찰을 받도록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것이다.

그것이 과연 효력이 있을 것인가? 세계의 군사 강대국인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등은 벌써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파키스탄도 인도로부터 자국방어의 목적으로 핵무기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주한미군이 지니고 있는 핵무기를 트집잡아 핵사찰을 회피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 문제가 어떻게 해결이 될 것인가? 한국의 외무부장관이 분주할 따름이다.

다섯째로, 김영삼 정권의 어처구니가 없는 실수가 1996년에 등장하고 만다. 그것이 12월에 날치기로 통과된 노동법 개정안이다. 1993225일에 출범한 김영삼 정권이 집권 3년이 지나자 그만 자신들도 모르게 권력의 달콤한 맛에 취하여 노동자의 권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사용자의 편에 서고 만 것이다.

그 결과 노동자들에게 극히 불리한 조항들을 여과없이 통과시키고 만다. 예를 들면, 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 파업기간 중 무노동 무임금 적용, 노조의 정치활동 금지, 동일사업장에서의 대체근로신규하도급 허용 등이 그러한 독소 조항들이다.

쉽게 말하자면, 임금을 적게 주고 마음대로 부려먹다가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그 개선을 요구하는 노조의 활동도 금지가 되고 파업하면 아예 무노동 무임금으로 처리하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야당이 악법 날치기 통과라고 외치면서 국회 농성에 들어간다.

보수세력이지만 개혁정치를 시행하고 있는 김영삼 정권에 대하여 기대를 크게 하고 있던 노동계는 그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깨끗하게 김영삼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만다. 민주노총도 같은 입장이다. 더구나 민주화사회운동단체들의 입장도 동일하다.

그 결과 노조에서 강력한 투쟁에 나서게 된다. 병원노조, 서울시 지하철노조, 현대자동차노조 등이 연합하여 일시에 파업을 전개하자 199612월의 한국경제는 큰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러한 기사를 내보내면서 편집국장인 김상진은 마음이 착잡하다. 권력을 3년만 독차지하고 있어도 사람들이 이렇게 변질하고 마는 것인가?... 아직 1997년이라고 하는 마지막 한해가 남아 있는데 김영삼 정권은 어떠한 험한 꼴을 당하게 되는 것일까?...

그런데 국내외의 안보상황은 다음과 같이 나날이 위험해지고 있다; 첫째, 199691일에는 해방 후 처음으로 일본 자위대의 군함이 부산에 입항하고 있다. 한미연합사의 요청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뒷맛이 씁쓸하다. 둘째, 같은 달인 918일에는 강릉지역에 무장공비가 침투하여 117일까지 소탕작전을 전개하고 있다.

북한도 일본도 하나같이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그런 도중에 미국의 대통령 빌 클린턴116일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하고 있다. 그는 미국정부의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하여 복지제도를 줄이고 개인보험을 늘리며 인턴제도를 많이 활용하는 등 굉장히 현실적인 정책을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는 젊은 대통령이다. 그러므로 그의 도덕성 여부와는 상관이 없이 국민들의 지지도가 높다.

그러한 미국제일주의에 입각한 재선 대통령 클린턴이 한국의 김영삼 정부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미국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하여 한국의 경제적인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할 것만 같다. 그렇게 시간이민자인 김상진 국장이 걱정하고 있는 가운데 다사다난한 1996년이 후딱 지나가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