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이민자(손진길 소설)

시간 이민자23(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0. 7. 29. 09:02

시간 이민자23(손진길 소설)

 

김상진은 1994년 한해의 의미를 두가지로 파악하고 있다; 하나는, 김영삼 대통령이 민주화작업을 강하게 밀어붙이다가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해로 보고 있다. 또 하나는, 국내외적으로 의미심장한 사건사고가 많이 발생하였기에 그에 대처하고 치유하기에 바빴던 한해로 보고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1994년에 발생한 사건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알 수가 있다;

첫째로, 김영삼은 3당합당에 따라 창당이 된 민자당에서 대통령후보가 되고 199212월 대선에서 승리하여 1993225일부터 한국의 제14대 대통령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므로 민자당의 뿌리가 되고 있는 신군부가 만든 민정당의 뒤를 잇고 있는 셈이다.

그와 같은 역사성 때문에 신군부의 정권이 저지른 여러가지 잘못에 대하여 그것을 바로잡고 민주화시대를 확실하게 열어가야만 한다. 그런데 그렇게 애를 쓰고 있는 김영삼 정권에게 큰 부담을 주고 있는 사건이 1994년에 두가지나 발생하고 있다.

그것이 하나는 33일에 용인 야산에서 발생한 헬리콥터 블랙호크의 추락사건이다. 그 때문에 공군 조근해 참모총장을 비롯한 탑승자 6명이 전원사망하고 만다. 또 하나는, 1021일에 차량들이 통과하고 있는 중에 멀쩡하게 보이던 성수대교가 붕괴되는 대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그 두가지 사건은 김영삼 정권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블랙호크 헬리콥터가 추락한 것은 국방산업의 비리가 터져 나온 것이고 성수대교가 붕괴된 것은 과거 부실공사의 결과가 그렇게 참혹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니고 전임 대통령과 지난 정부의 잘못이라고 우기면 되는 것일까? 그것이 아니다. 그들의 권리와 의무를 승계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김영삼 대통령의 정부이다. 그러므로 먼저 국민들에게 사죄하고 그 비리를 하나씩 고쳐 나가야만 한다.

그와 동시에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하는 일이 하나 있다. 그것은 모든 블랙호크 기종에 대하여 같은 결함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성수대교와 같은 시기에 건설이 된 교량들에 대하여 안전점검을 확실하게 다시 시행해야만 한다. 그 일에 매어 달리다 보니 1994년이 바쁘게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민주투사 출신인 김영삼 대통령이 과감하게 민주화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치권에서 그 반대세력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시민들이 반대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거리에 나서고 있다. 그러한 자발적인 시민운동이 910일에 발족하고 있는 참여민주사회와 인권을 위한 시민연대인데 속칭 참여연대라고 부르고 있다.  

그것은 김영삼 정권이 지속적으로 민주화개혁을 추진한다면 힘을 실어주는 시민의 세력이 된다. 하지만 그 반대로 적당하게 군부세력이나 기득권세력과 타협하게 되면 그를 강하게 비판하는 세력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825일 서강대 박홍 총장이 여의도클럽토론회에서 주장한 바 한국사회에 자생하고 있는 주사파에 대한 지적을 눈여겨볼 수가 있다. 지난 1980년대 대학가에서는 학생운동에 대한 강력한 신군부의 무력사용에 맞서기 위하여 일부 대학생들이 북한의 주체사상을 연구하였다는 것이다.

그들이 소위 주사파인데 사회에 진출한 지금에도 여전히 그 사상을 버리지 아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자생적인 주사파가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북한 김일성 정권과 접촉을 해야지 그것을 소홀히 생각했다가는 자칫 낭패를 당할 수가 있다는 조심스러운 견해라고 하겠다.

셋째로, 하지만 김영삼 정권은 그러한 주장에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미 경제적인 체제경쟁에서 한국이 북한을 이기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430일에 북한에서 여만철 가족 5이 압록강을 건너 탈북하여 중국을 거쳐서 한국으로 귀순하고 있다. 잘 사는 나라 한국을 동경하여 먹고 살기 힘든 북한을 탈출한 것이다.

7년전 19871월에도 김만철 일가 11명이 청진에서 배를 타고 긴 표류 끝에 한국을 찾아 귀순한 사례가 있다. 당시 김만철은 잘 사는 남쪽 나라 한국에서 살고 싶었다고 실토했다.

그러므로 1994년 한국의 대통령인 김영삼은 자신이 있다. 못사는 나라 북한의 김일성을 만나 충분하게 담판을 지을 수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에 따라 적극적인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서 7월 하순에 드디어 김영삼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과 만나도록 되어 있다. 따지고 보면, 경제적 열세를 인정한 북한 정권이 경제개발을 위하여 한국과의 협력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넷째로,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 발생하고 만다. 725일 역사적인 평양회담을 앞두고 갑자기 김일성78일에 심근경색으로 사망하고 만 것이다. 이제 김영삼 정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그 대안이 두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8.15광복절 기념행사를 통하여 김영삼 대통령이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발표한 것이다. 김일성이 죽었지만 그의 아들 김정일이 그 뒤를 잇고 있다. 그러므로 시간을 가지고 북한과 한민족통일방안을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은밀하게 핵무기개발을 시도하고 있는 북한에게 국제사찰을 받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 일을 위해서는 미국은 물론 국제원자력기구와 긴밀하게 협의해야 한다.

그래서 영어에 능통한 한국의 한승주 외무부장관이 큰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당시 국제관계와 경제정책에 어두운 김영삼 대통령이 외무부장관만은 잘 뽑았다는 세간의 이야기가 나돌고 있을 정도이다.

다섯째로, 일본이 계속 자위대병력을 확충하고 해외파병을 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과거 일본제국시대에 동아시아 전역에서 침략전쟁을 벌인 전범국가 일본이 다시 욱일승천하여 군사력을 앞세워 세계로 진출하고자 한다. 미국이 만들어준 소위 평화헌법까지 개정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김영삼 정권은 1994102일에 일본 자위대 병력 470명이 아프리카 르완다에 파병되고 있는 것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비록 유엔의 요청에 따라 평화유지군으로 파견된다고 하더라도 일본만을 지켜야 하는 방어와 수비성격의 자위대가 세계질서의 유지에 동원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사태가 진전이 된다면 나중에는 한반도의 위기상황에서 미군과 함께 일본의 자위대가 전투에 참여할지도 모른다. 100년전 청일전쟁 당시의 상황이 자꾸만 되살아나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정부와 국민들은 마음이 편치 아니한 1994년인 것이다.

그와 같은 일본자위대의 해외진출을 바라보면서 경제신문사의 김상진 차장이 자신의 정치칼럼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리고 있다; “금년 427일에 먼 나라 남아공에서는 흑인을 위한 인권운동가인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이제는 백인이 흑인을 차별하고 괄시하는 소위 아파리트헤이트를 완전 철폐한다고 선언했다”.

그 내용을 가지고 김상진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하고 남아공의 역사에 있어서 백인과 흑인이 사이 좋게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 그런데 극동의 일본은 그것이 아니다. 제국주의 시대의 일본의 영광을 다시 되찾고자 자위대를 키워서 이제는 해외파병에 나서고 있다. 장차 일본은 다시 군대를 앞세워 동아시아의 이웃나라들을 침략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김상진의 결론이 다음과 같다; “미국은 그것을 원하고 있는가? 아니면 전범국가에게 더욱 반성하고 자성하도록 만들 것인가? 미국의 선택에 따라 동아시아의 정세도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미국의 혈맹으로서 아무쪼록 미국이 현명한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바쁘게 김상진은 그해의 사건들을 취재하면서 정치칼럼을 작성하고 있다. 그런데 하루는 국회를 출입하다가 우연히 송일섭 조사관을 만나게 된다. 그와 커피를 한잔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중에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 듣게 된다.

송일섭이 다음과 같이 말문을 연 것이다; “1994년 금년 한해는 예상밖의 사건과 사고가 터져서 정부나 정치인들 그리고 국민들이 정신들이 없지요. 그런데 그 사이에 슬그머니 한국의 정세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일들이 빠르게 진척이 되고 있어요. 그것은 크게 보아 두가지이지요. 하나는… “.

김상진이 송일섭의 이야기를 듣고자 정신을 집중한다. 그때 그의 말이 들려온다; “미국은 빠르게 전세계적인 자본의 자유화와 무역의 자유화를 밀어붙이고 있어요. 그래서 금년말에는 소위 우루과이 라운드가 마무리가 될 것으로 전망이 되고 있지요. 그렇게 되면 한국경제에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되지요… “.

무슨 문제가 발생한다는 말일까?... ’, 김상진이 궁금해한다. 그때 송일섭이 천천히 말한다; “미국이 노리고 있는 것은 대자본에 의한 산업계의 지배구조입니다. 미국은 1980년대에 벌써 산업공동화현상을 경험하였기에 국내에서는 그렇게 산업생산기지가 없어요그것은 해외에 상품을 팔아먹을 경쟁력이 있는 기업이 미국에 거의 없다는 의미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

잠시 뜸을 들이다가 송일섭이 말을 잇는다; “미국이 세계적으로 무역의 자유화를 부르짖고 있는 것은 국제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무조건 경쟁시켜서 작은 것들을 모조리 대기업으로 흡수하고자 하는 전략입니다. 그 다음에 미국은 대기업의 자본을 관리하면서 독과점 시장으로부터 큰 이익을 얻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한국의 시장구조에 있어서도 그와 같은 방향으로 큰 변화가 발생하게 되지요… “.

그것이 무엇일까?... 그 대답이 들려온다; “우루과이 라운드를 종결하는 국제무역기구(WTO) 비준동의안이 금년 정기국회에서 통과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국내산업을 보호하거나 은밀하게 보조금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사라지고 무조건 외국의 기업과 경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한국의 중소기업들은 자본력이 약하여 문을 닫게 되고 대기업들만 살아남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미국의 자본이 그것을 잡아먹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겠지요!... “.

그 말을 듣자 김상진이 급하게 질문한다; “한국의 대기업을 미국의 자본이 잡아먹는다?... 선뜻 이해되지를 않는 군요어째서 그렇게 됩니까?... “. 그 순간 송일섭이 씁쓸한 미소를 띄고서 대답한다; “미국이 뒷배를 보아주고 있는 세계의 돈줄이 중진국과 개도국의 우량기업을 잡아먹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

김상진이 바짝 긴장하면서 귀를 기울인다. 그때 송일섭이 말한다; “국가적인 부도상태를 만들고 구제금융을 주는 것이지요. 그때 기타 펀드가 당당하게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항하는 세력을 분쇄하기 위하여 수혜국의 정부에게 강제로 구조조정을 단행하게 강요하는 것이지요… ”.

정치부 기자인 김상진은 그 말을 온전히 믿을 수가 없다. 그래서 반신반의하면서 말한다; “그렇게 인위적으로 하나의 국가를 부도로 몰고가는 것은 상상하기가 힘이 드는 군요.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요?... “.

송일섭이 담담하게 대답한다; “꼭 일치하는 사례는 아니지만 비슷한 경우는 많이 있지요. 미국이 냉전시대에 소련과 체제경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세계에는 부국이 둘 등장하게 되지요. 그것이 유럽의 서독과 아시아의 일본입니다. 그런데 1994년 지금의 세상에서는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나라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지요. 어째서 역사가 그렇게 전개가 된 것일까요?... “.

송일섭이 말을 끊고 있다. 김상진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상진은 그 해답을 얻지 못한다. 그때 송일섭이 말한다; “1991년말에 국제적으로 소련이 사라지고 러시아연방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지요. 그리고 1990년말에 서독이 동독을 흡수하여 통일을 이룬 결과 향후 30년간은 동독의 경제수준을 서독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하여 꼼짝 못할 것입니다. 게다가… “.

정작 송일섭이 하고 싶은 말이 들려온다; “지난 1980년대초부터 소위 3저현상으로 한국은 쾌재를 불렀지만 일본은 그 반대입니다. ‘엔고때문에 수출이 감소하고 국제경쟁력을 잃어가게 되지요. 그렇게 국가경제가 비틀거리자 일본의 부자들이 조국을 버리고 대거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맙니다. 그래서… “.

너무 단순한 설명으로 들린다. 그래서 김상진이 고개를 갸웃하자 그것을 보고서 송일섭이 말한다; “지금까지 일본의 개인당 국민소득은 10년동안 제자리걸음이지요. 물론 일본정부는 거품이 오래 빠지고 있다고 말합니다마는 세상에 10년이나 지속이 되는 경제적인 거품은 없는 법입니다. 결국 요약을 하자면… “.

송일섭이 짤막하게 결론을 내리고 있다; “미국은 우월한 국제자본을 움직여서 잠재적인 도전국들을 꺾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자본은 세계적인 대기업을 장악하고서 상대국가의 위기를 이용하여 그때 큰 이익을 향유하고 있지요. 그러한 패턴이 일본은 물론 아시아의 4마리의 용과 5마리의 호랑이를 대상으로 이제 다시 발생할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안합니다”.

국회의 경제관계위원회에서 오래 조사관으로 일하고 있는 송일섭의 견해이다. 김상진은 그 말을 들으면서도 그때에는 그 심각성을 크게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집에 돌아와서 자신의 본체인 이상우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송일섭의 말을 다시 생각해본다. 그때 그는 무엇을 깨닫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