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이민자(손진길 소설)

시간 이민자20(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0. 7. 25. 13:47

시간 이민자20(손진길 소설)

 

시간이민자인 김상진은 1991년을 보내고 1992년을 맞이하면서 그가 일찍이 서울 안국동에서 202010월까지 살면서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1992년에 발생하는 세가지 중요한 사실을 미리 알고 있다. 그 내용을 조금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3월에 총선이 있고 12월에 대선이 있다는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의 임기가 1993224일에 끝나고 제13대 국회의 임기가 1992529일에 끝나기 때문에 두 종류의 선거가 있게 된다.

둘째, 작년 19911226일에 소련이 사라졌기 때문에 미국이 유일한 패권국이 되어 있다. 따라서 미국의 영향에서 벗어나고자 유럽에 강력한 연합체가 구성이 된다. 그때가 199227일인 것이다. 그에 대항하고자 미국이 전세계적으로 시장개방과 자유무역을 강하게 밀어 부치게 된다.

셋째, 1992년 봄에는 미국에서 로스앤젤레스 폭동이 발생하고 여름에는 한국의 건설중인 신행주대교가 붕괴된다.

김상진은 경제신문사의 정치부기자이며 정치칼럼을 쓰고 있는 차장이다. 그러므로 선거의 해인 금년 1992년에 특종을 취재하기 위하여 바쁘다. 분주한 중에 그가 이상한 소문 하나를 듣게 된다. 그것은 국회의원 출마자들에게 그 당락여부를 기가 막히게 정확하게 미리 알려주는 인물이 서울에 있다는 것이다.

그자는 보통 점을 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총선에서의 당락여부만을 알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총선에 출마하고자 하는 인물들이 많은 돈을 들고서 무조건 그 점쟁이를 찾아가고 있다. 그 점쟁이의 이름이 박창옥인데 사는 곳이 성북구 중화동이라고 한다.

그 정도의 정보를 얻은 김상진 차장이 변장을 한다. 자신이 기자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하여 콧수염을 붙이고 이름도 김상호라고 명함을 새로 판다. 그리고 혼자서 돈을 마련하여 중화동으로 간다. 사전에 제보자가 적어준 주소를 가지고 그 집을 찾는다.

허름한 단독주택이다. 아직 1월 중순이라 날씨가 차갑다. 김상진이 도착한 시간이 11시반경이다. 대문이 열려 있기에 인기척을 내면서 마당으로 들어선다. 그러자 30세 정도로 보이는 젊은이가 방에서 나오면서 용건을 묻고 있다.

김상진이 그에게 말한다; “저는 김상호라고 합니다. 이번 총선에 출마하고자 하는데 점을 좀 보려고 일부러 찾아왔습니다. 용하신 선생님을 오늘 뵐 수가 있을런지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오늘 점을 보고서 고향으로 내려가고자 합니다“.

그 말을 듣자 그 청년이 김상진의 아래위를 훑어본다. 그 다음에 질문한다; “지방 어디에서 오셨는지요?... “. 김상진이 꾸며서 대답한다; “멀리 대구에서 일부러 서울까지 찾아왔습니다. 제 친구가 여기서 수년전에 점을 보았는데 총선의 당선여부가 가장 정확하다고 하여 제가 먼 길을 왔습니다… “.

그 청년이 말한다; “저는 선생님을 모시고 있는 김호남이라고 합니다. 저희 선생님은 오로지 4년에 한번 한달동안 국회의원선거의 당락만 점을 쳐주고 있지요. 마침 잘 오셨습니다. 오늘은 크게 손님이 밀리지 아니하니 한사람만 나오면 김선생님 차례가 됩니다. 그런데 점을 보는 값이 좀 셉니다. 큰 것으로 한 장입니다.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

김상진은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그 점치는 값이 대기업 사원의 한달 봉급에 해당한다는 이야기까지 들은 바가 있다. 큰 것 한 장의 의미를 알고 있다. 그래서 고개를 끄떡인다. 그것을 보고서 청년 김호남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다.

그러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안채에서 손님이 나오고 있다. 청년 김호남이 김상진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간다. 큰 방의 뒷면에는 병풍이 둘러 있고 세간살이가 없다. 그 대신에 앉은뱅이 책상을 하나 놓고서 50대의 인물이 방석위에 앉아 있다.

김호남이 방석을 하나 김상진에게 밀어준다. 그리고 그가 방 바깥으로 나간다. 방안에 형광등이 켜져 있어서 점쟁이의 얼굴이 환하게 보인다. 김상진이 유심히 그 자의 인상을 살피고 있다. 그 다음에 그가 속으로 몹시 놀란다.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변장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자는 김상진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 준 인물이다. 그러니 어찌 그자의 진면목을 모를 것인가?... 그자가 얼굴을 다소 늙게 꾸미고 수염을 더부룩하게 키워서 마치 도사처럼 꾸미고 앉아 있다. 하지만 그 얼굴의 모양과 눈코입은 정확하게 한사람의 인상착의이다. 박창진 그자이다.

그래서 김상진이 미소를 띄고서 천천히 말한다; “저는 이번 총선에 나가려고 생각하여 한번 고명하신 예언가의 말을 들어보고자 왔습니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저의 운명은 제가 잘 알고 있으니까요그 대신에 제가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

조용조용한 김상진의 말에 점쟁이 박창옥으로 꾸미고 있는 박창진이 깜짝 놀라고 있다. 그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김상진의 얼굴을 유심히 살핀다. 청년이 미리 알려준 이야기로는 대구에서 올라온 김상호라고 하는 정치지망생이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이 아니다.

다음 순간 박창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김상진에게로 온다. 그리고 그의 두 손을 잡으면서 너무나 반갑게 인사한다; “김상진 선생님, 아니 이상우 고객님, 이것이 얼마 만입니까? 여기서 만나다니요?... 정말 반갑습니다… “.

김상진은 박창진이 자신을 알아보자 웃으면서 그의 두 손을 잡고 다음 순간 포옹을 한다. 그리고 말한다; “박창진 선생, 정말 반갑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인연이 있는가 봅니다. 여기서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니 말입니다그래 어떻게 지내셨어요?... 여전히 시간이민사의 일을 하고 계시는 것이겠지요?... “.

그 말을 듣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박창진이 천천히 말한다; “, 저는 여전히 시간이민사의 일을 보고 있습니다. 다만 이렇게 4년에 한차례 정치지망생들을 위하여 점을 보아주고 있습니다. 그 수입이 제가 회사에서 받는 것보다 더 많습니다. 그러니 부수입으로는 대단한 금액이지요하하하… “.

그 말을 들은 김상진이 말한다; “그렇군요. 이미 누가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고 아니 되고를 미리 알고 계시니 용한 점쟁이가 맞지요. 그 점으로 말미암아 시간적으로 결정이 되어 있는 당락이 뒤바뀌는 것이 아니니 그 점은 가능한 벌이가 맞습니다.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박창진이 크게 웃는다. 김상진도 따라서 웃고 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김상진이 진지하게 박창진에게 말한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만난 김에 박선생에게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저의 집사람과 저는 21세기가 되기 직전에 이곳을 떠나 제가 살던 2020년의 안국동으로 되돌아가고자 합니다.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

그 말을 들은 박창진이 신중하게 대답한다; “물론 가능합니다. 저를 직접 만나셨으니 제가 그렇게 정확하게 조치를 해드리겠습니다. 그러면 19991231일 오후 5시까지 교보빌딩 1016호실로 오십시오. 제가 타임머신을 대기해 놓겠습니다. 저와 함께 2020103일로 돌아가시지요. 그리고 요금은 오실 때의 비용과 같습니다”.

그러자 김상진이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가지고 온 돈을 꺼낸다. 그것을 주면서 박창진에게 말한다; “이것은 점을 보는 값이 아니라 돌아갈 때의 계약금입니다. 나머지 잔액은 그날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그러면 계약이 성립된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박창진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잘 알겠습니다. 실수없이 제가 그렇게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버신 돈은 지니고 가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사전에 본명 이상우의 이름으로 부동산을 사서 등기를 해두시기 바랍니다. 아니면 신탁을 해놓으셔도 좋고요. 그것을 202010월 서울에 가서 찾아서 사용하시면 될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김상진이 크게 고개를 끄떡인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박창진이 문밖까지 나와서 배웅한다. 그날 김상진은 중화동에서 곧바로 자택이 있는 강남 반포동으로 온다. 일찍 퇴근을 한 셈이다. 그리고 아내 윤지혜에게 오늘 우연히 박창진을 만난 이야기를 해주고 19991231일 오후 5시에 타임머신을 타도록 예약했다고 말해준다. 윤지혜가 그 말을 듣고 대단히 기뻐한다.

그리고 그날 두사람은 자신들의 재산을 1998년쯤에 이상우윤성혜의 이름으로 등기를 다시 하자고 결정한다. 지금은 1981년 봄에 사 놓은 명일동의 땅값이 많이 오르고 있다. 그것이 큰 재산이 될 것이므로 그 명의를 자신들의 본명으로 바꾸고 그 관리를 일체 부동산관리회사에 위임하여 놓고자 한다.

그렇게 합의를 하고 나자 1992년을 보내는 것이 즐겁다. 그래서 김상진 차장이 열심히 본업에 충실하게 임한다. 그해 그가 취재하고 자료를 분석하여 정치칼럼에 적고 있는 내용들이 다음과 같다;

첫째로, 미국의 대통령 조지 부시는 참으로 국제관계를 잘 다루는 인물이다. 그는 작년 초에 다국적군대를 만들어 이라크를 공격하여 중동의 문제를 해결했다. 올해는 자본시장의 개방문제를 밀어 부치고 있다.

그래서 한국이 정초부터 자본시장을 개방하고 있다. 13일부터 외국인들이 한국기업의 주식을 마음대로 살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이제는 다국적군대가 아니라 다국적자본이 한국을 지배하기 위하여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부시 대통령은 19922월에 유럽연합이 구성이 되는 것을 보고서 재빨리 아메리카 대륙에서 하나의 지역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이 199210월에 캐나다와 함께 결성하고 있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그것이다.

그렇게 국제관계에서 업적이 많은 조지 부시 대통령이다. 그러나 국내적으로 경기가 불황이고 실업문제가 심각하다. 따라서 재선에서 고배를 마시게 된다. 1992113일 반대당 민주당 후보인 빌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이다.  

둘째로,유럽경제공동체’(EEC)가 정치적인 공동체로 변신하고 있다. 199112월에 유럽이사회(EC정상회의)가 네덜란드의 마스트리히트에 모여서 유럽연합’(EU)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그에 따라 유럽의 12개국이 199227일에 정부조인을 얻어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서명한다.

이제 한해가 지나 1993111일에 마스트리히트조약이 발효될 것이다. 그 조약에 따라 유럽에는 단일통화, 자유무역, 공동안보 등을 비롯하여 유럽의회와 연합정부가 움직이게 된다. 그것은 미국의 패권을 견제하는 하나의 지역연합정부가 되는 것이다.

셋째로, 노태우 대통령은 1992년에도 신도시건설과 북방외교에 진력하고 있다. 수서지구에 신도시건설을 위한 택지조성사업을 계속하고 있으며 일산신도시 건설을 위하여 199221일에는 경기도 고양군을 고양시로 승격하고 있다.

그리고 824일에는 중화인민공화국’(중공)과 수교를 한다. 그때부터 중공이라는 말 대신에 중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다. 자연히 중공의 요구에 따라 자유중국인 대만과는 단교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1222일에는 베트남과도 수교를 하게 된다.

넷째로, 여당인 민주자유당이 324일의 총선에서 과반수의석을 획득하게 된다. 하지만 3당합당에 실망한 국민들이 김대중 총재의 평화민주당과 정주영 회장이 급하게 만든 통일국민당에게도 많은 표를 던지고 있다.  그에 고무가 된 정주영 회장은 12월 대선에 출마하게 된다.

그러자 1218일에 실시가 되는 제14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서 민자당내에서는 경합이 치열하다. 누가 대통령후보가 될 것인가? 그때까지 노태우 대통령을 모시고 고분고분하게 지내고 있던 김영삼이 갑자기 강공으로 나선다. 노태우 대통령에게 처족 박철언을 지지하지 말고 공정한 후보경쟁을 위하여 당을 떠나라고 주장한다.

뒷일을 염려한 노태우 대통령이 한발 물러서고 만다. 따라서 가장 공정한 경쟁을 통하여 김영삼이 여당 민자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다. 그것을 보고서 국민들이 민주투사의 기질을 발휘하고 있는 김영삼에게 제14대 대선에서 승리를 안겨주게 된다. 김영삼 후보가 무려 42%를 득표하여 2위인 김대중 후보의 33.8%8%나 앞서고 있는 것이다.

김영삼 후보가 그렇게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가 있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가신그룹으로 알려지고 있는 좌 동영 우 형우를 위시하여 김덕룡, 서석재, 박관용 등 여러 심복들이 의리로 강하게 뭉쳐 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여러가지 굵직한 사건들 이외에도 1992년에는 4월에 발생한 미국 LA의 폭동사건과 서울에서 발생한 신행주대교 붕괴사건이 있다. 그리고 10월에는 서울에서 다미선교회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어수선한 한해이다.

김상진은 그러한 다사다난한 한해를 보내면서 멀리 7년후를 바라보고 있다. 빨리 20세기를 보내고 202010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한번 살아온 세월을 다시 살아보아도 별로 기쁘지가 아니한 것은 어째서 그런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