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이민자(손진길 소설)

시간 이민자19(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0. 7. 24. 17:41

시간 이민자19(손진길 소설)

 

시간이민자인 김상진이 기억하기로는 1991년의 한국은 별로 큰 사건이 없다. 작년에 3당이 합당하여 거대 여당인 민자당이 창당된 이후 국정의 주도권을 야권이 아니라 여권이 장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건은 그것이 아니다.

굵직굵직한 사건이 빈발한 한해이다. 그러므로 김상진 기자가 관심을 가지고 취재하여 보도한 사건의 대강만 살펴보아도 다음과 같다;  

첫째로, 19911월과 2월에는 소위 걸프전쟁을 취재하느라고 바쁘다. 세계지도를 보면 아라비아반도의 동서에는 두개의 큰 만이 있다. 서쪽에 있는 것이 수에즈만이고 동쪽에 있는 것이 페르시아만이다. 페르시아만 깊숙한 곳에 쿠웨이트의 유전이 자리를 잡고 있으므로 그 이름을 걸프만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작년에 이라크가 자신들의 원유를 도둑맞았다고 쿠웨이트를 비난하다가 결국에는 19908월에 군사력으로 기습하여 쿠웨이트를 점령하고 말았다. 쿠웨이트의 석유개발회사에 투자하고 있는 구미의 열강들이 이라크에게 쿠웨이트에서 철수를 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라크는 요지부동이다.

그 결과 미국이 앞장서서 해상봉쇄를 하고 있다가 마침내 새해가 되자 117일에 다국적군대를 형성하여 이라크에 공격을 개시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의 힘 앞에 이라크가 상대가 되지를 아니하고 있다. 따라서 2달을 버티지 못하고 227일에 쿠웨이트에서 완전 퇴각을 하고 만다.

미국을 필두로 하는 다국적군은 쿠웨이트가 해방되었음을 선언하고 있다. 하지만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략으로 말미암아 입게 된 손해와 손실에 대한 보상과 배상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그것을 중동지역에서 그 옛날 바벨론의 영광을 회복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이라크가 인정할 것인가?

그러하지가 아니하다. 그 패전의 치욕을 이라크는 핵무기를 개발하여 갚으려고 시도한다.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국가들은 이라크가 생화학무기까지 개발하고 있다고 몰아 부치고 있다. 그렇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중동 아랍지역의 강자인 이라크와 구미의 열강들은 장차 어떠한 충돌을 빗을 것인가?...

그 사태를 바라보면서 김상진이 자신의 정치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중동 걸프만에서 발생한 무력충돌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중동의 석유를 수입하여 사용하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간접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

당장의 피해는 걸프전 때문에 쿠웨이트의 석유생산량이 감소하여 유가가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비싼 값으로 중동의 석유를 수입하게 된다. 장기적인 피해는 군사 외교적인 것이다.

구체적으로, 중동의 산유국들이 한국정부에게 자신들의 입장을 외교적으로 지지해달라고 강요할 것이기 때문에 외교적인 어려움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유엔에서는 중동의 평화를 위하여 한국에게 평화유지군을 보내어 달라고 장차 요구할 것이다. 그 때문에 한국정부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 것이다.

둘째로, 김상진 기자는 6월부터 12월까지 7개월동안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는 소련과 러시아의 사태를 분석하면서 정치칼럼을 작성하느라고 바쁘다. 한마디로, 소련이 아무리 개방과 개혁정책을 마련하여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오려고 애를 써도 그것이 허사이다.

따라서 수많은 위성국들과 소수민족들이 소련연방을 떠나고 마침내 러시아가 주도하는 새로운 연방이 탄생하게 되고 만다. 그 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보리스 옐친이 612일에 러시아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그는 군부의 위협을 물리치고 당당하게 민간정부를 구성한 것이다. 이제 소련연방과는 별도로 러시아가 자구책을 찾아서 움직이기를 시작하고 있다고 하겠다.

둘째, 유고슬라비아에 속해 있던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625일에 독립을 선언하고 있다. 그들은 유고슬라비아가 소련을 의지하고 있지만 아무런 원조를 받지 못하게 되자 자민족끼리 살겠다고 차제에 독립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다민족국가로 이루어져 있는 유고슬라비아에서 그러한 민족분열이 먼저 발생하고 있다.

셋째, 소련의 보수 군부세력이 개방과 개혁을 부르짖고 있는 고르바초프 서기장에게 반기를 들고 있다. 819일에 쿠데타를 일으켜 고르바초프를 연금한다. 그러자 쿠데타 세력에게 밀린 고르바초프는 824일에 서기장 직에서 물러나고 만다.

넷째, 그 사건을 전후하여 소련의 붕괴가 가속화되고 있다. 예를 들면, 821일에 라트비아가 독립하고, 824일에는 우크라이나가 독립하며, 827일에는 몰도바의 독립이 인정된다.

또한 소련의 발틱 3국인 작은 나라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 그리고 에스토니아가 독립하고자 미국에게 도움을 청하고 92일에 미국의 지지를 획득하게 된다. 그러자 소련이 맥없이 94일에 발틱 3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만다.

98일에는 마케도니아가 독립을 선포하고, 99일에는 타지키스탄이 921일에는 아르메니아가 독립을 얻는다. 하지만 유고슬라비아가 915일에 크로아티아와 마케도니아의 독립선언에 대하여 시비를 걸고 무력행사를 하고자 한다. 하지만 918일에 그 시도는 허사로 끝나고 만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다섯째, 19911216일에 카자흐스탄이 소련에서 독립한다. 그것은 큰 충격이다. 왜냐하면,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의 큰 나라이며 핵무기가 많이 배치가 되어 있는 군사강국이기 때문이다. 이제 소련은 자신의 핵무기를 관리할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그것을 바라보고서 미국은 유엔에 러시아연방을 가입시키고 소련연방을 대신하도록 조치하고 만다. 그때가 19911224일이다. 그로 말미암아 소련연방은 1226일자로 완전히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셋째로, 소련이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하는 것을 보고서 세상사람들은 기나긴 냉전의 시대가 종식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이제는 미국이 세계에서 유일한 패권국이다. 앞으로 미국은 세계의 질서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 것인가?

그것은 장기적인 전망이고 당장은 그러한 사실을 바라보고 있는 한국정부가 북방외교에 진력하고 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실을 1991년에 거두게 된다;

첫째, 한국정부는 북방외교를 진행하면서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고자 한다. 그래서 우선 유엔에 남북한이 함께 가입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8월에 시작한 그 노력이 9월에 결실을 맺는다. 917일에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이 되고 일주일 후인 924일에는 노태우 대통령이 유엔에서 연설하게 된다. 그리고 1213일에는 남북한 사이에 기본합의서가 체결이 된다.

둘째, 한국이 알바니아와 822일에 수교한다. 97일에는 외무부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평양으로 들여보낸다. 그 명분은 77아주그룹 각료회의에 참석한다는 것이다.

어째서 북한의 김일성이 갑자기 유엔에 가입하고자 하고 또한 한국의 대표단을 평양에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한국정부가 북방외교에 나서는 것을 북한이 방해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한마디로, 소련이 붕괴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김일성은 소위 주체사상에 따른 외교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그것은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과 거대한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 사이에서 북한이 살아남고자 하는 책략이다.

그런데 그만 미국과 경쟁하던 소련이 붕괴가 되고 있다. 이제부터는 미국이 세계를 단독으로 경영하게 될 것이다. 북한이 러시아와 중국을 의지한다고 해도 미국의 독주를 막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북한의 김일성은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가 있는가?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책략은 두가지 뿐이다; 단기적으로는, 한국과 관계를 개선하고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유엔에 가입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미국에게 잡아 먹히지 아니하기 위해서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 그것이 북한정권을 보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인 것이다.

그와 같은 조짐을 김상진은 이라크에서 벌써 보고 있다. 이라크는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에 의하여 쿠웨이트에서 쫓겨난 것을 참으로 억울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에 맞설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그 유일한 방법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이다.

그러한 이라크의 움직임을 포착한 미국이 핵확산을 억제하기 위하여 강수를 두고 있다. 유엔의 핵사찰단을 이라크에 들여보낸 것이다. 그러자 이라크가 923일에 그들을 바그다드에 억류하고 만다. 그것을 바라보고서 김상진 차장은 멀지 아니하여 북한의 김일성도 그러한 선택을 할 것이라고 짐작해보는 것이다.

그와 같은 사건들만 1991년에 발생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김상진이 관심있게 취재하고 또한 정치칼럼에 적고 있는 다른 내용들이 있다. 그 대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여소야대 시절에 3김씨는 한국의 지방정부에 자치권을 크게 부여하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4종류의 지방선거를 실시하려고 구상했다. 그것이 첫째가 기초의회 의원 선거이고 둘째가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이다. 셋째가 광역의회 의원 선거이고 넷째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이다.

그런데 여소야대가 인위적으로 야소여대로 바뀌고 나자 그 실시가 절반으로 줄어들고 만다. 한마디로, 단체장 선거는 물 건너가게 되고 지방의원선거만 실시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기초의회 의원 선거가 1991326일에 실시된다. 2공화국 시절에 실시하던 그것이 19615.16쿠데타로 인하여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30년후에 비로소 다시 실시하게 된 것이다.

광역의회 의원 선거는 620일에 실시된다. 그것을 보고서 김영삼 의원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기필코 자치단체장 선거를 실시할 것이라고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민자당 내에서 그 때를 기다리고 있는 인물이라고 하겠다.

그러한 결심은 야당을 이끌고 있는 김대중 총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시해야 자신의 지지기반인 호남이 발전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19805월의 광주의 비극이 재현되지 아니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둘째로, 정신대 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 할머니가 1991814일에 세상에 자신이 일제시대에 입은 피해에 대하여 공개하고 나섰다. 그와 같이 용감한 커밍 아웃이 있자 일본정부가 크게 당황해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정부는 그때서야 일본제국에 의하여 입은 한국민의 징용과 정신대 피해를 다시 살펴보고자 하고 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199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한국 원폭 피해자 실태조사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그 내용에 따르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피해의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한국인 피폭 2세대의 수가 2,300명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제 한국과 일본 양국은 이 문제를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할 것인가? 1960년대 초반에 한일수교를 하면서 약간의 돈을 주고서 그 문제를 통째로 해결했다고 일본정부가 계속 강변할 것인가?

한국국민들이 개인적으로 입은 피해에 대하여 그렇게 양국정부가 조약체결을 통하여 전부 해결을 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김상진 차장이 그의 정치칼럼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일제시대에 한국사람들이 받은 피해에 대해서는 양국 정부 사이에 해결할 문제가 있고 동시에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양쪽으로 진행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그와 같은 노력을 소홀히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김상진이 내리고 있는 결론이 다음과 같다; “일본은 일본제국시대에 동아시아의 대부분의 국가를 점령하고 피해를 입힌 당사국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아무리 투자와 개발을 통하여 동아시아제국을 달래 보려고 해도 원천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아니하는 이상 그것은 사상누각이다… ”.

김상진이 다음과 같이 조언하고 있다; “그러니 일본정부와 국민들이 이제라도 그 문제의 해결에 진심으로 나서기를 바란다. 시간을 끌게 되면 피해당사자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원폭의 피해는 유전적인 것이므로 오래 지속이 되며 정신대 위안부 피해와 징용의 피해는 그 후손들에게 역사책을 통하여 계속 알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칼럼의 결론 중의 결론이 다음과 같다; “결론적으로, 역사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민족은 결코 좋은 이웃이 될 수가 없다고 하겠다”. 시간이민자인 김상진 차장이 세상을 향하여 서로 좋은 이웃이 되자고 외치는 가운데 1991년이 슬며시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