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이민자(손진길 소설)

시간 이민자18(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0. 7. 23. 14:45

시간 이민자18(손진길 소설)

 

김상진은 202010월에서 198010월로 시간이민을 온 인물이다. 그러므로 그는 서울에서 미리 살아본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19901월에 발생하고 있는 3당 합당2월에 창당되고 있는 민주자유당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취재한 기사를 근간으로 하여 3당 합당의 의미와 3김씨의 선택의 속사정을 분석하여 칼럼에 글을 싣고 있다. 그러자 그의 칼럼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상진 차장이 그의 정치칼럼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이 다음과 같다;

첫째로, 민정당의 총재이자 제6공화국의 대통령인 노태우는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하여 과반수 의석을 가지고 있는 3김씨의 야당을 쪼개야 한다. 그 방법은 은밀하게 야당 총재들을 접촉하여 여당인 민정당과 합당하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그것은 민주화를 열망하고 있는 국민들의 뜻을 반영하고 있는 여소야대의 정국을 인위적으로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의하여 변형시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렇다면 3김씨가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외면하고 과연 민정당과 합당하고자 할 것인가? 만약 합당에 합의한다고 하면 그 속사정은 무엇일까? 

노태우 대통령이 여소야대 정국을 인위적으로 변형시키고자 하는 깊은 이유가 무엇일까? 그 점을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겉으로 보면, 국회에서 과반수 의석을 지니고 있는 야 3당이 합의하여 추진하고 있는 일을 중단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특별위원회와 청문회에서 5공비리와 광주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한 신군부의 잘못에 대하여 연일 조사하고 파헤치고 있다. 그로 말미암아 발생하고 있는 정국의 불안을 정부여당이 없애고자 하는 계책이다.

그러나 더 깊이 그 속사정을 파고 들어가보면 그것은 노태우 대통령의 안위와 관련되고 있다. 비록 국민들이 원하고 있는 직선제개헌에 찬동하고 대선을 통하여 당당하게 제6공화국의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노태우는 신군부 및 하나회의 제2인자 출신이라고 하는 자신의 정체성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므로 5공비리와 광주에 대한 무력행사의 진상을 파헤치게 되면 노태우 대통령의 실체가 드러나고 말 것이다. 그것을 그는 자신이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는 동안에 무조건 막아야만 한다. 그러므로 어떠한 대가를 치루더라도 3김씨의 연합을 쪼개고 그 일부와 제휴하여 여소야대의 정국을 벗어나야 한다.

환언하면, 3야당이 연합하여 5공비리와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신군부의 진압작전을 계속 조사하게 되면 결국 그 칼날은 신군부와 하나회의 실세의 하나였던 노태우 대통령 자신을 향하게 될 것이다. 그것만은 미리 막아야 한다. 그래서 노태우 대통령은 3당합당을 서두르게 된 것이다.

둘째로, 사실 노태우 대통령은 제1야당인 평화민주당을 이끌고 있는 김대중 총재와 손을 잡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 이유가 두가지이다; 하나는, 소위 호남의 대통령으로 불리고 있는 김대중 총재이므로 그와 제휴하게 되면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무력진압의 건을 쉽게 넘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야당 둘을 끌어들이는 것보다는 제일 큰 야당 하나를 끌어들이는 것이 교섭에 있어서 더 편한 것이다. 그렇지만 호남의 민심을 끌어 모으기 위하여 김대중 총재는 결코 광주 민주화운동을 탄압한 신군부의 제2인자인 노태우 대통령과 손을 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끝까지 야당으로 남고자 한다.

그렇다면 꿩 대신에 닭이다. 그래서 노태우 대통령은 측근들의 진언을 받아 들여서 두 마리의 닭을 여당으로 끌어들이고 만다.

셋째로, 그렇다면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총재와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 총재는 어떠한 속셈으로 민정당과 합당하고자 하는 것일까?

가장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과 그것을 현실적으로 실천하는 정치인 사이에 괴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총선에서 많은 표를 야당에게 몰아주면 자연히 여소야대가 되고 3김씨가 합의하여 한국의 민주화를 달성하며 그 저해세력들을 모조리 척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정치는 국민들의 생각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이 총선에서 지지해준 표심만으로 정국이 굴러가는 것이 아닌 것이다. 정당이 굴러가자면 정치자금이 있어야 하고 국회의원들이 적극적으로 조사활동을 펼치자면 자금이 필요하다. 그런데 야당은 인적 물적 자원의 부족에 언제나 시달리고 있다.

그와 같은 사정은 야 3당의 총재를 맡고 있는 3김씨의 공통적인 애로사항이다. 그 가운데 호남에 정치적인 지역기반을 두고 있는 김대중 총재의 경우에는 어떠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여당인 민정당과의 합당을 생각할 수가 없다. 민정당의 뿌리가 신군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남과 부산을 지역기반으로 하고 있는 김영삼 총재나 충청도의 맹주인 김종필 총재의 경우에는 융통성이 있다. 우선 야당운영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여당인 민정당과 합당을 추진하고 그 안에서 주도권을 장악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김영삼 총재의 경우에는 대통령 후보가 되고 대권을 쥐게 되면 그때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힘껏 정책으로 실현하면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신군부의 세력을 군부에서 뿌리뽑고 5공비리와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무력진압의 책임자를 처단하면 될 것이다.

김종필 총재의 경우에는 자신이 대권을 쥐게 될 확률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벌써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옛날처럼 여권의 실세로 처신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여권출신인 그는 어쩔 수 없이 야당의 총재가 되어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야당을 운영한다고 하는 것이 인적 물적으로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른다. 그러므로 그 무거운 짐을 빨리 벗어버리고 싶은 것이다.  

넷째로, 특히 김영삼 총재는 젊은 시절 20대 후반에 벌써 국회의원이 된 인물이다. 그러므로 정치경력에 있어서는 김대중 총재나 김종필 총재보다 훨씬 앞서고 있다. 그는 1960년대 후반에 소위 40대 기수론을 부르짖으면서 야당의 대통령후보가 되고자 했다.

하지만 자신보다 정치경력이 훨씬 뒤떨어지는 김대중 후보에 의하여 2차 결선투표에서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따라서 김영삼 총재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김대중 총재를 따돌려야만 한다.

그런데 제13대 총선의 곁과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이 제1야당이 되고 김영삼 자신의 통일민주당이 제2야당이 되고 말았다. 획기적인 변화가 없으면 다음 대선에서 자신이 불리하다. 그러므로 김영삼 총재의 선택은 노태우 대통령이 은밀하게 내밀고 있는 합당의 손을 잡는 것이다.

요컨대, 김영삼 총재는 오로지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민정당과 합당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기필코 3당이 합당하여 만든 민자당에서 대통령 후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섯째로, 김종필 총재는 5.16군사혁명을 주도한 인물이다. 육사 8기인 그는 쿠데타 계획을 수립했지만 동기들의 계급이 영관급에 불과했다. 국가권력을 잡자면 별자리가 필요하다. 따라서 처삼촌인 박정희를 업어 들인 것이다. 하지만 그때문에 영욕의 세월을 지내게 된다.

육사 2기 출신인 박정희의 용병술이 대단하여 쿠데타의 핵심세력인 육사 8기들이 그만 들러리가 되고 만 것이다. 그래서 김종필은 국무총리를 지내면서 여당의 권력서열 2위에 머물고 만다.

197910월에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였지만 권력은 신군부의 손에 넘어가고 만다. 김종필은 육사 11기 후배들에 의하여 정치규제를 당하고 나중에는 야권으로 밀려난 것이다. 김종필은 해금이 되자 신민주공화당을 만들어 정치활동을 재개하였지만 야당생활이 그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

특히 그의 출신지역과 지지기반이 충청도이므로 영남의 김영삼과 호남의 김대중에 비하여 열세이다. 그러므로 김종필 총재는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는 그 옛날 그가 누리던 여당 권력서열 2위에 만족하고자 한다.

이제 3당합당으로 그 길이 열리고 있다. 김영삼 총재가 여당 대통령 후보가 된다면 김종필 총재는 제2인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김종필 총재의 입에서는 남모르는 미소가 계속 어리고 있다고 하겠다.     

여섯째로, 국민들이 볼 때에는 여소야대의 정국을 버리고 야소여대의 정국을 인위적으로 만들고 있는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총재 그리고 김종필 총재의 행태는 일종의 배신행위이다. 그들을 심판하고 싶지만 그것은 총선과 대선 때에만 가능하다.

다음번의 총선은 19923월이고 대선은 199212월이다. 그때까지 이제 인위적으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게 된 민자당에 의하여 정국이 주도가 되고 3김씨가 추진하던 5공비리 특별조사위원회와 청문회가 중단이 되고 마는 것을 두 손을 놓고 지켜만 보게 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장외에서 대학생들과 재야세력들이 야3당이 힘있게 5공비리와 신군부 세력을 척결하라고 기두시위를 통하여 밀어주었는데 그것마저 불법화되고 만다. 과반수 여당을 가지게 된 노태우 정부가 가두시위에 대하여 강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혹자는 3당합당의 결과 한국의 민주주의는 후퇴를 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것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정치라고 하는 것은 이상적인 바램과 현실적인 수용능력 사이에서 타협이 되고 구체화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바라보자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아직 과도기라고 하겠다. 그것이 제6공화국 노태우 정권 아래에서의 3김씨의 한계라고 볼 수 있다. 그와 같은 내용의 정치칼럼을 쓰면서 김상진 차장은 일종의 안타까운 마음을 지니고 있다. 자신이 이미 경험하여 알고 있는 미래지사를 마음껏 글로 적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김상진 자신은 한사람의 시간이민자에 불과하다. 자신이 시간이민을 와서 살고 있는 1990년에 대하여 어떠한 역사의 변형을 초래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자신이 돌아가야만 하는 미래의 시간대 그 고향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 밖에 김상진 기자가 관심을 가지고 취재한 1990년의 사건들이 다음과 같다;

첫째로, 북예멘과 남예멘이 522일에 하나로 통일이 된다. 그리고 103일에는 동독과 서독이 하나의 독일연방으로 통일이 된다. 그로 말미암아 이제 분단의 비극을 경험하고 있는 유일한 민족이 한민족이다. 남한과 북한은 언제 통일이 될 것인가?

둘째로, 소련으로부터 작은 나라가 먼저 분리되고 있다. 6월에 몰도바가 독립을 선언하더니 7월에는 벨라루스가 독립을 선언하고 있다. 그것이 소련연방의 쇠퇴를 온세상에 알리는 신호탄이 되고 있다.

소련은 공산진영의 리더이다. 공산혁명이 1917년 러시아에서 가장 먼저 발생했으며 그때부터 러시아 혁명세력은 소비에트를 만들고 국제공산화에 앞장을 섰다. 그리고 제2차대전에 늦게 참전하면서 동구의 여러 나라를 공산화하고 원조를 제공해오고 있다.

그런데 소련이 자유 자본주의 진영의 리더인 미국과 세계 제2차대전 이후 오랜 세월 냉전시대에 체제경쟁을 계속하고 있다. 그것은 두가지의 무서운 경쟁관계이다; 하나는, 핵무장을 누가 더 많이 하느냐?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우주개발에 누가 앞서느냐? 하는 것이다.

핵무기 개발과 생산에 있어서는 양적으로 소련이 우세하지만 질적으로는 그러하지가 못하다. 우주개발에 있어서는 처음에 소련이 앞섰으나 나중에는 밀리고 있다. 산업생산력에서 소련이 미국에 비해서 크게 열세이기 때문이다.

과도한 체제경쟁의 결과 1980년대 후반기에 소련이 재정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그 결과 작은 나라들이 소련의 원조를 받지 못하게 되자 제살길을 찾아서 독립을 선언하고 나선다. 이제 소련은 어떻게 되고 마는 것일까?

과도하게 미국과 경쟁을 벌이다가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 형편에 처한 소련이 한국의 지원이 간절하여 1990930일에 국교를 맺고 있다. 그것이 과연 어느 정도의 도움이 될 것인가?

셋째로, 82일에 소위 걸프전쟁이 발발하고 있다. 이라크가 걸프만에 있는 작은 나라 쿠웨이트를 전격적으로 점령한 것이다. 강이 내륙에서 만이 있는 하류로 흘러내리듯이 땅속의 원유도 경사면을 타고서 강줄기를 따라 하류로 그리고 바다가 있는 만 쪽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그러므로 쿠웨이트에서 원유를 채취하게 되면 그것은 중류와 상류에 있는 이라크의 원유를 뽑아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구미의 투자를 받고 있는 쿠웨이트의 석유회사들이 엄청난 양의 원유를 매년 생산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이라크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있다. 가만히 앉아서 자신들의 원유를 도둑맞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결과 전격적으로 쿠웨이트를 기습하여 점령하고 만다. 쿠웨이트 석유회사에 투자하고 있는 구미의 강국들이 이라크에게 철군하라고 요구하지만 요지부동이다.

따라서 걸프만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816일에 미국이 해군력으로 쿠웨이트 일대의 해안을 봉쇄한다. 그러자 아랍진영이 위기를 느끼고 910일에 이라크와 이란이 국교를 재개하면서 구미의 열강들에게 공동대응을 하고자 한다. 과연 중동의 위기가 어떻게 해결이 될 것인가?

넷째로, 103일에 동서독이 하나로 통일이 되고 만다. 분단국가인 한국에서는 노태우 대통령이 1013일에 소위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선다. 3당 합당으로 큰 힘을 얻게 된 노태우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국정을 수행하면서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대규모로 범죄소탕을 지시한 것이다.

그것은 과거 신군부가 범죄자를 소탕하고 삼청교육을 대규모로 실시한 것과 비슷하다. 사회적인 안정을 도모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독일이 통일되고 있는데 한국은 여전히 국내문제의 해결에 발목이 묶여 있으니 그것이 딱한 실정이다.

그렇게 김상진이 바쁘게 취재를 하고 칼럼을 쓰고 있는 동안에 1990년이 지나가고 있다. 이제 1991년이 되면 어떤 일들이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