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이민자(손진길 소설)

시간 이민자16(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0. 7. 20. 18:34

시간 이민자16(손진길 소설)

 

19889월말에 김상진 차장은 편집회의에 참가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경제신문사 편집부장인 성기수 선배가 특별히 차장인 김상진 기자를 출석시키라고 직원을 시켜서 지시한 것이다. 그 이유는 그날 편집회의의 주제가 무겁기 때문이다; “10288서울올림픽이 끝나고 나면 정치권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그날 회의의 처음 분위기는 상당히 들뜬 것이다. 서울올림픽이 진행됨에 따라 세계인들이 경기 광경과 서울의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격찬을 아끼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서울올림픽은 대박인 것이다.

그러나 2020년까지 서울에서 살아본 경험을 지니고 있는 김상진의 견해는 그들과 다르다. 그래서 회의 도중에 김상진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서울올림픽개최가 가능했던 이유부터 짚어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도움 때문입니다”.

색다른 이야기가 나오자 좌중의 인물들이 조용하게 귀를 기울인다. 그러자 김상진이 설명한다; “미국의 의도는 다음 몇가지로 짐작이 됩니다; 첫째로, 1950년대초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을 미국이 도와서 이 정도로 잘사는 중진국으로 만들었다고 그들은 자본주의체제의 장점을 대외적으로 홍보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

그럴 것도 같다고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떡인다. 그들의 귀에 김상진의 설명이 계속 들려온다; “둘째로, 미국이 신군부가 지배하고 있는 한국에 올림픽 개최라고 하는 큰 선물을 주었으니 그 반대급부를 확실하게 이행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비핵화, 미국의 전략무기 구입, 한국의 시장개방 등입니다. 이제 서울올림픽이 끝나고 있으니 그것들을 확실하게 챙길 것입니다. 그리고… “.

또 무엇이 더 있다는 말인가?... ‘, 궁금해하는 일동에게 김상진의 설명이 계속된다; “셋째로, 서울올림픽이 끝나고 나면 한국은 미국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시장을 개방하고 많은 전략무기를 구매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땀 흘려 벌어들인 외화가 별로 남지 아니하게 되겠지요. 그러니 앞으로 경제성장은 둔화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

그 말을 듣자 편집부장인 성기수가 한마디를 한다; “김 차장, 그것은 너무 비관적인 견해가 아니요? 이번 서울올림픽의 성공으로 대한민국의 국가 브랜드의 가치가 상승하게 되고 그로 인하여 수출이 엄청 늘어날 것이니 그 반대의 효과가 더 큰 것이 아니겠어요?... “.

그 말을 들은 김상진이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분명히 그러한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제정치론적인 관점으로 보면, 미국은 잘 나가고 있는 나라에 올림픽을 유치하게 한 다음에 그 나라의 경제발전에 브레이크를 건 경우가 많아서 제가 그 점을 상기시켜 드리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 점을 염두에 두시고 너무 장밋빛 미래를 전망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신중하게 경제분석을 다루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

그 말을 듣자 많은 사람들이 그제서야 고개를 끄떡인다. 조심해서 나쁠 것이 없는 법이다. 그런데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한국경제가 벽에 부딪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동안 8년 동안이나 지속이 되고 있는 ‘3저현상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수출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그때서야 많은 사람들이 서울올림픽의 성공에 심취하여 한국이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린 것이 아닌가?... ‘고 자성의 소리를 지르고 있다. 그러한 때에 한국정부와 정치계에서는 다른 조치가 나타나고 있다. 그것을 김상진이 취재하느라고 바쁘다.

먼저 정부에서는 서울올림픽의 성공에 힘입어 새해 198911일부터 해외여행전면 자유화를 실시하고 있다. 이제는 돈만 있으면 누구나 세계여행에 나설 수가 있게 된 것이다. 국제화 세계화 시대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그때부터 국민들의 해외여행에 많은 돈을 사용하고 만다.

3저현상의 소멸로 수출은 어려워지고 있는데 해외여행을 자유화하였으니 그것은 축제 끝에 살림이 쪼들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 마당에 통일민주당에서는 198712월 대통령선거운동 막바지에 노태우 후보가 자신이 당선이 되면 1988년 올림픽을 무사히 치른 후에 국민투표를 통하여 중간평가를 받겠다고 공약한 내용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나선다.

자신의 공약에 따라 이제  노태우 대통령은 중간평가를 받아야한다고 김영삼 총재가 198915일 신년기자회견에서 주장한다. 그러나 평화민주당의 총재인 김대중의 생각은 그와 다르다; “만약 국민투표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이기게 되면 여소야대국회가 실시하고 있는 5공비리와 광주 민주화운동 무력진압에 대한 조사와 청문회가 무력화될 수가 있다”.

1야당의 총재인 김대중과 제2야당의 총재인 김영삼이 이견을 보이고 있다. 그러자 노태우 대통령이 3월이 되자 김대중 총재와 협의하여 중간평가실시를 폐기하고 만다. 그때부터 노태우 대통령은 여소야대정국을 헤쳐 나가는 방법으로 제1야당인 평화민주당과 손을 잡는 방법을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대중 총재의 속마음은 다르다. 그는 만약 중간평가를 실시하여 노태우 대통령이 이기는 경우 광주 민주화운동을 진압한 신군부에 대한 조사와 청문회가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을 피하고자 한 것이지 진심으로 노태우 정권을 돕고자 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당의 시도는 실패로 끝나게 된다.

하지만 여소야대 정국을 타개하기 위한 그 다음의 계책이 실시가 된다. 노태우 대통령에게는 책사가 있는데 그 이름이 박철언이다. 그는 처가의 조카뻘이 되는 검사인데 제5공화국 시절에는 청와대 정무 비서관이고 제6공화국에서는 안기부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노태우 대통령의 특사로 북방외교를 시작하면서 차츰 대중들에게 6공화국의 황태자라는 별명을 얻고 있다. 그가 노태우 대통령에게 김대중 총재 대신에 김영삼 총재와 김종필 총재를 끌어들여서 거대한 여당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일이 성공이 되면 노태우 대통령은 무난하게 5년간 한국을 이끌어 나갈 수가 있다. 그리고 박철언은 현직 대통령의 도움으로 차기 여당의 대통령후보 자리를 얻을 수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과연 그의 생각대로 한국의 정계가 움직이게 되는 것일까?

일단 하나는 성공하고 있다. 다음해 1990122일에 3당 합당이 성사가 되기 때문이다. 민정당 총재인 노태우 대통령과 통일민주당 총재인 김영삼 총재 그리고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 총재가 3당 합당을 선언하고 새로이 민주자유당을 만든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여소야대가 사라지고 노태우 대통령은 국회에서 안정적인 여당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그 내부에서는 차기 대통령 자리를 놓고서 박철언과 김영삼 사이에 암투가 시작이 되고 있다.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

그 결말을 시간이민자인 김상진이 벌써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일체 내색을 하지 아니하고 그저 1989년에 발생하고 있는 정치계의 움직임만을 취재하고 때로는 논평을 작성하고 있을 뿐이다. 그가 작성한 내용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198917일에 이웃나라 일본에서 가장 큰 초상이 난다. 87세의 천황 히로히토가 별세한 것이다. 일본의 역사를 잠깐 살펴보면, 1868년에 명치유신을 한 원로들이 쇼와 천황을 업어 들인다. 그 뒤를 1912년에 다이쇼 천황이 잇는다. 1926년에는 히로히토가 천황으로 즉위한다. 그가 일본세기에 따르면 124대 천황이 되는 셈이다.  

24세에 일본의 천황이 된 히로히토는 일본제국주의의 상징이다. 하지만 일본의 내각은 점령사령관인 맥아더에게 히로히토 천황만은 명예직으로 살려 달라고 읍소한다. 그것이 유일한 항복의 조건이다. 그 결과 살아남은 천황이 히로히토이다.

19461월에 인간선언을 한 히로히토이지만 일제시대에는 현인신으로 통했다. 그래서 조선사람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했으며 수많은 일제의 군인들이 천황폐하 만세’(덴노 헤이카 반자이)를 외치면서 가미가제 특공대로 목숨을 바쳤다.

그러한 히로히토 천황이 죽고 그의 아들인 아키히토가 새로운 천황이 되고 있다. 그것을 바라보고서 김상진 기자는 일본사람을 다시 생각해본다. 일본사람들은 전설적인 만세일계를 부르짖으며 천황을 현인신으로 숭상하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우상을 섬기고 있다.

지금도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자들과 전사한 군인들을 모두 신으로 섬기며 신사를 참배하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일본제국시대의 영광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일관계는 장차 어떻게 되는 것일까?...

둘째로, 64일에 중국에서 천안문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덩샤오핑의 지도하에 1980년부터 대대적인 경제개발을 시작한 중국이다. 경제개발에 발맞추어 민주주의 체제를 도입하자는 대학생들의 시위를 중국의 공산당 정권이 군대를 동원하여 진압해버린 처참한 사건이다.

그 때문에 해외로 탈출한 자들이 여전히 중국의 민주화를 위하여 투쟁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과연 중국은 경제도 발전시키고 민주화도 달성할 수가 있을 것인가? 아니면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산업화를 하는 경우에 그 한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김상진은 이미 2020년까지 서울에서 살아본 경험을 지니고 있기에 그 해답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천안문 사건을 취재하고 있는 1989년에서는 그 앞날을 전망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미래상에 대하여 함부로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셋째로, 19893월말에 문익환 목사가 방북을 한다. 그때부터 공안정국이 조성된다. 그런데 71일에는 외국어대학교 여대생 임수경이 월북하여 평양에서 열리고 있는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여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허가한 적이 없는데 불법으로 평양에 들어가서 그 축전에 한국대학생 대표로 참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의 자격을 부여한 단체가 소위 전대협이다. 1989년 당시의 전대협 의장이 임종석인데 그는 한양대 출신이며 제3대 의장이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인 전대협은 1987년에 결성이 되었는데 초대의장이 고려대의 총학생회장인 이인영이다. 그리고 그 다음해 1988년의 의장이 역시 고려대의 총학생회장인 오영식이다.

그 가운데 2020년에 임종석과 이인영이 국가의 중책을 맡고 있는 것을 시간이민자인 김상진이 벌써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는 사건의 취재만 할 뿐 그 미래에 대해서는 입도 뻥끗하지 아니하고 있다. 그것은 철저한 금기사항이기 때문이다.

평양을 다녀온 임수경은 당국의 조사를 받게 된다. 그 결과는 98일에 안기부가 발표하고 있다. 그러한 일련의 사건을 조사하면서 노태우 정권의 공안정권은 힘을 얻고 있다. 그 반면에 전국의 대학가에서는 순수공산주의이론을 추종하는 파벌, 북한의 주체사상을 따르고자 하는 파벌, 비운동권으로 갈라져서 서로 다투고 있다.

넷째로, 1989119일과 10일에 베를린 장벽이 붕괴가 된다. 그때부터 동독과 서독은 자유왕래가 이루어지고 통화를 함께 사용하기로 한다. 일년 정도 동독과 서독이 서로 통일방안을 협의한 후에 하나의 합의를 만들어 낸다.

그것은 동독연방정부를 해체하고 지방에서 선거를 통하여 서독연방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러한 방식으로 서독이 동독의 모든 지방을 흡수하여 1990년말에 독일연방을 구성한다. 그 과정을 취재하고자 김상진이 현지를 방문한다.

그때 김상진이 서독 전독성 관리의 말을 한마디 들은 것을 오래 기억하고 있다; “세계에서 독일과 한국이 분단국가입니다. 우리들은 이제 통일합니다. 한민족도 빨리 통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들은 그 이산의 고통과 분단의 슬픔을 알고 있기에 한국과 북한의 통일을 진심으로 원하고 있습니다”.

한민족의 통일은 언제 오게 되는 것일까? 김상진은 서울에서 2020년까지 살다가 왔지만 아직 그것만은 모르고 있다. 그때가 과연 언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