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이민자(손진길 소설)

시간 이민자15(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0. 7. 19. 05:35

시간 이민자15(손진길 소설)

 

4. 직선제 개헌과 제6공화국 시대

 

경제신문사의 정치부 기자인 김상진은 시간 이민자이다. 흔히 이민자라고 하면 나라를 옮겨서 살아가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에 비해서 시간이민자는 시간을 옮겨서 살아가고 있다. 김상진과 윤지혜 부부처럼 2020년의 서울에서 1980년의 서울로 이민을 와서 그 신분을 바꾸어 다시 살아가는 경우가 시간이민자의 삶이다.

그 용어가 생소한 이유는 아주 극소수의 인물 만이 시간이민자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민자가 이 세상에서 겪고 있는 애환이 여러가지가 있다. 가장 큰 애로사항은 그 시간대에 자신의 본체가 역시 살아가고 있으므로 절대로 그 운명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만약 영향을 미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그때에는 본체의 운명이 바뀌기 때문에 그 본체에서 파생되고 있는 시간이민자의 운명 역시 바뀌게 되는 위험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같은 시간대를 따로 살아갈 뿐 서로 만나거나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도록 최대한 노력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사람인 이상 자신의 자녀와 부모형제를 보고 싶어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때에는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김상진과 윤지혜 부부처럼 최소한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사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 같은 동네에 살다가 서로 부딪치는 경우를 사전에 예방할 수가 있는 것이다.

시간이민자는 자신의 본체와 떨어져 살아야 할 뿐만 아니라 과거로 이민을 가서 살더라도 그 시대의 변화에 영향을 크게 미쳐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사회적 동물인 인간인지라 자신의 본체마저 달라진 시대의 변화에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시간이민자가 나중에 돌아갈 고향을 상실하게 되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그와 같은 위험한 게임만 하지 아니한다고 하면 시간이민자가 향유하게 되는 큰 장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미래의 시대를 먼저 살아보았기에 시대적인 흐름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미리 살아본 경험을 고스란히 머리속에 시간이민자가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따라서 기자나 예언가로 활동하는 경우 월등한 능력을 발휘할 수가 있다. 지금 이상우의 기억을 지니고 있는 김상진의 경우나 윤성혜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윤지혜의 경우가 그러한 것이다.  

그래서 김상진 기자가 경제신문사의 정치부기자로 일하면서 한국정치를 보는 눈이라는 칼럼을 연재하자 그것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 때문에 그 신문이 잘 팔려서 사장의 칭찬까지 받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윤지혜 여사는 아는 것이 많고 패션의 흐름을 잘 알고 있다고 하여 주위의 여성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다. 그 때문에 사장 부인인 성순혜 여사와도 친하게 되고 남편의 직장 선배인 성기수의 부인 임효린과도 친구가 되어서 잘 지니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윤지혜 여사는 하와이여행과 유럽여행을 다녀온 이후 영어회화공부에 열심이다. 그녀가 수년간 노력했더니 영어회화실력이 상당한 경지에 도달했다. 그래서 그녀가 두 해 전 1986년에 바빴다. 아시안게임에서 통역으로 봉사를 했기 때문이다.

이제 1988년 가을에는 더 바쁘다. 서울올림픽의 현장에서 외국의 참전선수들을 위하여 통역서비스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지혜만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재미교포이면서 남편인 박선우 박사를 따라 서울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 홍혜련도 그러하다.

1986년 제10회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통역으로 봉사한 경험이 있는 윤지혜가 이제 친구처럼 지내고 있는 홍혜련에게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함께 통역으로 일하자고 제안을 했다. 그 제안을 홍혜련이 흔쾌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그녀가 미국선수들을 위하여 선수촌과 게임현장에서 통역으로 일하고 있다.

윤지혜는 호주에서 온 선수들을 위하여 통역으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이미 86아시안게임 때 일을 해본 경험이 있어서 이제는 통역의 베테랑으로 대접을 받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86아시안게임을 먼저 치르고 88올림픽을 치룬 것이 서울올림픽의 성공을 일구어 내는 비결이라고 하겠다.  

서울 올림픽은 1988917일에 개막이 되어 102일에 폐막식을 가진다. 장장 16일간의 대장정이다. 서울올림픽의 의의가 무엇일까? 기자인 김상진은 그 점을 간단하게 세가지로 자신이 연재하고 있는 신문의 칼럼에 적고 있다;

첫째, 분단국가에서 치루어진 희귀한 올림픽경기이다. 그러므로 서울올림픽을 통하여 세계인들이 자유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적인 분단의 벽을 넘어서서 이제는 하나로 나아가자고 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둘째, 한국이 북방외교에 나서는 계기가 되고 있다.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들이 대거 서울올림픽에 참가하고 있다. 그들이 자유자본주의국가인 한국이 경제개발에 성공하여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

따라서 한국과 외교관계를 맺고서 자국의 경제개발에 있어 한국의 도움을 받고 싶어한다. 특히 시기적으로 소련연방이 경제개발에 실패하고 위성국들이 독립하고 있는 상태이므로 한국으로서는 북방외교가 가능해지고 있는 것이다.

셋째, 88서울올림픽은 한국의 발전상을 전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고 있다. 한국전쟁에 참여한 유엔의 16개국만 하더라도 1950년대초에 전쟁으로 말미암아 처참하게 파괴가 된 서울만을 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서울올림픽경기 중계를 통하여 중진국으로 발전한 한국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그것이 큰 감격이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가치가 상승하고 있다. 그것이 한국제품과 문화의 수출에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특히 미국이 세계적으로 자신들이 앞장서고 있는 자유자본주의의 승리를 자랑하고 있다. 한국을 보더라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도입하여 성공적으로 경제개발을 한 결과 서울올림픽까지 개최하고 있다는 선전이다. 그러므로 공산주의 체제를 버리고 자본주의를 도입하여 경제발전을 이루라고 말하고 있다.

시간이민자인 김상진은 정치부기자이다. 그러므로 한국정치의 흐름과 국제정치의 변화를 주의 깊게 살피면서 정치칼럼을 쓰고 있다. 그러한 그의 안목으로 바라볼 때 1988년은 참으로 뉴스거리가 많은 해이다. 그가 칼럼에 쓰고 있는 기록만 하더라도 다음과 같이 다양하다;

첫째로, 김상진은 1988년 새해벽두에 소련연방의 서기장인 고르바초프가 선언한 '그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라고 하는 개방과 개혁정책을 중시하고 있다. 고르바초프가 소련의 개방과 개혁을 부르짖고 있는 이유는 그동안 순수공산주의 이론에 따라서 중앙 집권적인 계획경제를 실시하고 전국적인 배급체제를 유지한 결과 소련의 생산성이 급격하게 떨어져서 그만 국가부도의 위기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소련이 위성국들에게 원조를 해오고 있다. 그런데 소련 자체가 파산의 위기에 직면하자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는 동구의 위성국들이 먼저 떨어져 나가고 있다. 그 다음에는 소련연방에 들어 있던 소수민족들의 나라들이 독립하고 있다.

그 결과 1990년 10월에는 서독과 동독이 하나의 독일로 통일이 된다. 먼저 동독과 서독 간의 교류가 시작된다. 그 다음에는 베를린장벽이 무너진다. 마침내 경제적으로 파산상태의 동독이 1990년말에 연방을 해체하고 지방정부가 스스로 알아서 서독에 흡수가 되는 독일의 통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로, 직선제 개헌으로 당선된 노태우 후보가 1988225일에 제13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5공화국 간선제 헌법이 개정이 되었기에 노태우 대통령은 바야흐로 제6공화국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선언한다.

이제는 신군부의 정부가 아니라 문민정부의 시대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그 태생이 197912.12쿠데타에서 시작이 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19805월에는 광주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한 바가 있다.

그렇지만 여당인 민정당이 여전히 국회에서 다수당이므로 그 문제를 크게 따지지를 못하고 있다. 더구나 국민의 직선으로 직접 선출한 노태우 대통령이므로 그것으로 정통성을 얻은 것으로 보이고 있다.

한편 양 김이 단합하여 하나의 대통령후보를 내지 못하여 여당에게 패배를 당하였기에 김영삼과 김대중은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총선을 기다리고 있다. 총선에서 승리해야 비로소 노태우 정권을 견제하고 신군부를 심판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개정된 헌법에 따라 1988426일에 제13대 총선이 실시가 된다. 그 결과 민정당이 참패하고 야당이 과반수 의석을 얻게 된다.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대중의 평화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연합하여 국회에서 신군부와 제5공화국에 대한 심판에 나선다. 그것이 이름하여 여소야대 정국이다.

3당은 가장 먼저 7월에 들어서자 국회에서 정기승 대법원장의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킨다. 노태우 대통령이 천거한 인물이 대법원장으로 부적격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10월에는 지난 15년 동안 실시하지 못하고 있던 국정감사를 다시 실시한다.  

국회를 장악한 3야당의 힘은 막강하다.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킬 수가 있고 국정감사를 실시할 수가 있다. 또한 조사특별위원회를 만들고 청문회를 개최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광주학살, 일해재단 비리, 언론대학살 사건 등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한 특별위원회가 설치된다.

그 다음에는 1988102일에 서울올림픽이 끝나자 한달후인 112일부터 청문회를 시작하고 그것을 전국에 생중계한다. 신군부와 제5공화국의 비리가 청문회 과정에서 밝혀지고 있다. 가장 날카롭게 질문하여 상대방을 꼼작하지 못하게 한 노무현 의원과 이해찬 의원이 국민들에게 일약 청문회스타로 떠오르게 된다.

넷째로, 여소야대로 말미암아 전두환 전임 대통령이 곤경에 처하게 된다. 그는 육사 11기 동기이며 신군부의 제2인자인 노태우를 민주투사로 둔갑시켜서 직선제 대통령으로 만들자 자신의 영화가 계속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국가원로자문회의를 만들어 스스로 의장이 되어 상왕 노릇을 하고자 시도한다.

전두환의 생각으로는 그동안 신군부와 하나회의 조직에서 항상 자신의 뒤만 따라다닌 절친이면서 가장 충직한 부하가 바로 노태우이다. 노태우는 육사 11기 동기이지만 나이가 한 살 아래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대통령 자리를 물려주더라도 자신을 상왕으로 잘 섬길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그것이 큰 착각이다. 대권이라고 하는 것은 오로지 한사람에게만 전속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큰 산에 두 마리의 호랑이가 존재할 수가 없는 것과 같다. 대권이라고 하는 것은 부자간에도, 부부간에도, 형제 사이에도 결코 나누어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노태우는 측근의 조언에 따라 소위 5공 색깔 지우기에 나선다. 자신은 직선제 대통령이므로 체육관에서 선출이 된 전두환 대통령의 제5공화국과는 다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과감하게 차별화에 나선 것이다. 결국 전두환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을 비롯한 5공 비리 인사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만다.

그것을 보고서 전임 대통령 전두환은 자신의 오판을 깨닫고 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대통령도 전임이 되고 나면 그 권력이 현직 부장검사보다도 못하게 되고 만다. 흔히 전직 장관은 그 권력이 행정부의 현직 사무관보다도 못하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는 것이 냉혹한 현실인 것이다.

그래서 전임 전두환 대통령 부부는 198811월에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고 연희동 자택을 떠나서 멀리 강원도 설악산의 오지 백담사로 들어가고 만다. 독실한 불교신자라고는 하지만 그 추운 겨울 설악산 오지에서 엄청 고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조치를 취한 후에 노태우 대통령이 국민과 야당에 대한 설득에 나선다. 시국사범을 전원 석방할 것이니 그에 발맞추어 전임 전두환 대통령을 사면하고 5공비리조사를 연내에 끝마치자고 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1988년에 발생한 한국의 정치적인 변화를 다루면서 김상진 기자는 해외에서 발생한 가장 중요한 변화 하나를 함께 다루고 있다. 그것은 198811월에 미국에서 대통령선거의 결과 역시 공화당 출신인 조지 부시가 당선이 되었다는 것이다. 전임 레이건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하여 8년간이나 대통령 자리에 있었다.

이제 그의 후임자인 조지 부시 대통령은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의 새 대통령 조지 부시와 함께 한국의 제6공화국 대통령인 노태우가 1989년에 활약하게 된다. 한국의 정국은 과연 어떻게 풀려나가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양 김씨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