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이민자13(손진길 소설)
1987년 5월에 김상진은 주일이 되자 아내 윤지혜와 함께 반포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를 출발하여 자가용으로 서초동에 있는 사랑의교회에 주일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출발한다. 예배당 가까운 곳에는 주차할 공간이 없다. 그래서 김상진은 조금 먼 골목에 주차하고 있다.
그때 김상진은 참으로 반가운 사람을 그 골목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자신보다 먼저 그 골목 안쪽에 주차하고서 사랑의교회를 가고자 골목을 빠져나오는 젊은 부부가 있다. 그 남편이 되는 사람의 얼굴을 무심히 보게 되자 김상진이 순간 깜짝 놀란다.
그래서 주위에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도 모르고 크게 소리를 친다; “아니, 이게 누구야? 박선우 선생이 아니신가?... “. 그 말을 듣자 갑자기 지나가던 부부 가운데 남자가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김상진의 얼굴을 빤히 본다. 그 다음에 그도 크게 놀란다.
박선우가 맞다. 그래서 박선우가 역시 크게 말한다; “이거, 김상진 선생이 아니요? 우리가 헤어진 지 몇 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는 거요?... “. 순간 김상진이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한다; “7년만에 내가 박형을 다시 보게 되는 거지요?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
그 말을 듣자 박선우가 말한다; “나는 미국에 들어가서 결혼하고 공부도 했지요. 그리고 작년말에 아내와 함께 서울로 들어왔어요. 지금은 대치동에서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요. 주일예배는 이곳 사랑의교회에서 드리고 있지요… 그런데 김형은?... “.
김상진이 미소를 띄면서 말한다; “나는 모 경제신문사 기자로 지금까지 일하고 있어요. 그리고 종로의 안국동 집을 처분하고 이제는 반포의 주공아파트를 사서 이사를 했지요. 주일날은 이곳 사랑의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어요. 우리 이따 예배가 끝나면 차를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눕시다. 그리고 여기는 나의 아내인 윤지혜입니다… “.
그 말을 듣자 박선우가 말한다; “저는 부인을 알고 있습니다. 옛날 종로에 살 때 같은 교회에 다녔으니까요. 그렇지만 다시 만나보니 반갑습니다. 그리고 여기 내 아내의 이름을 홍혜련입니다. 재미교포입니다”.
윤지혜가 홍혜련과 인사를 한다. 윤지혜는 그 정체가 2020년까지 서울에서 살다가 과거로 시간이민을 온 윤성혜 여사이다. 그러므로 은연중에 나이가 많은 자신이 젊은 새댁을 대하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러한 정체를 철저하게 숨기고서 다소곳이 말한다; “반갑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오신 것을 환영해요. 저는 윤지혜라고 해요. 홍혜련씨, 우리 앞으로 친하게 지내도록 해요. 남편들이 좋은 친구사이랍니다. 호호호… “.
홍혜련 역시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DC에서 공부를 한 교포출신이다. 그래서 성격이 활달하다. 대뜸 윤지혜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말한다; “홍혜련입니다. 반가워요. 윤지혜씨 잘 부탁합니다. 호호호… “.
그 다음부터 두 여인은 남편들을 뒤에 두고서 앞장서서 예배당으로 들어선다. 그것을 보고서 김상진과 박선우가 하하라고 웃는다. 그때 박선우가 슬쩍 김상진에게 말한다; “내 아내는 나를 따라 한국에 들어왔지만 미국에서 오래 살았기에 여기에 친구가 없어요. 참 잘 되었어요. 우리 부부간에 자주 만납시다”.
그 말을 듣자 김상진이 얼른 대답한다; “박형, 예배가 끝나면 저쪽 골목에 있는 ‘아바이 순대’집에서 만납시다.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요… 그런데 부인이 순대국을 좋아하는지 모르겠군요?... “.
그 말을 들은 박선우가 대답한다; “저하고 식성이 비슷해요. 교민들이 오히려 한국의 전통음식을 더 좋아해요. 그러니 그렇게 합시다”. 그래서 4사람은 예배를 드린 후에 인근의 ‘아바이 순대’집에서 식사한다. 그 다음에 박선우가 대치동에 있는 자신의 작은 아파트로 김상진 부부를 초청한다.
김상진은 그 아파트로 들어가기 전에 가게에서 화장지와 하이타이 등을 사서 아내와 함께 들어선다. 집들이 선물인 셈이다. 그날 그 집에서 김상진이 오래간만에 만난 박선우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김상진이 먼저 박선우에게 미국에서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그의 대답이 상당히 길다.
박선우가 다음과 같이 말문을 연 것이다; “김형, 나는 미국에 들어가기 전에 신군부가 10년간 한국을 통치할 것이라고 예언했어요.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요. 그래서 나는 십년후를 대비하기 위하여 미국에서 공부를 하기로 했어요. 워싱턴DC에서 생활하면서 결혼도 하고 줄곧 대학원에서 공부를 했지요. 그것도 대통령학에 관한 공부였어요… “.
그 말을 듣자 김상진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말한다; “대통령학이라?... 나도 학부에서 정치학을 공부했지만 그것은 처음 듣는 학문이군요. 주로 무엇을 연구하는데요?... “. 박선우가 단 한마디로 대답한다;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자의 성장과정과 리더십의 특징에 대하여 비교연구하는 것이지요… “.
그것도 말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김상진이 고개를 끄떡이자 박선우가 이어서 말한다; “김형, 나는 한국의 신군부 통치가 십년이면 끝난다고 보고 있어요. 그 다음에는 줄줄이 민간인 출신 대통령들이 정권을 잡게 되는데 그 순서가 어떻게 되는지 그것이 궁금해요. 그래서 미국에서 대통령학을 공부했지요. 그 결과… “.
정치부 기자인 김상진은 구미가 당긴다. 그래서 경청한다. 그것을 보고서 박선우가 재미있게 설명한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의 성장과정과 그 지도력을 비교하여 연구하는 것에 대해서 나는 크게 관심이 없어요. 하지만 그들의 연구방법론에는 관심이 크지요. 그래서 그것을 배운 것이지요. 그 결과… “.
박선우가 이번에도 ‘그 결과’라고 말하면서 뜸을 들인다. 그래서 김상진이 말한다; “거, 말을 하다가 사람의 귀를 더 기울이게 하는 묘한 재주를 미국에서 터득했군요, 박형, 하하하… “. 박선우가 그 말을 듣더니 웃으면서 말한다; “나는 이래 보여도 대통령학의 전문가입니다. 그래서 강의료가 좀 비싸지요… 하하하… “.
그 다음에 박선우가 하는 설명이 다음과 같다; “3김씨 가운데 첫째로, 김영삼씨는 거제도 시골 출신인데 중학생 때부터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부방에 그렇게 써 붙여 놓은 인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27세에 최연소로 총선에 의하여 국회의원이 되었지요. 자신의 꿈은 그렇게 직선제 선거를 통하여 현실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
박선우가 잠시 숨을 쉬고서 이어 설명한다; “그는 직선제 선거만 하게 되면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판단하고 있지요. 또한 민간정치인 출신인 자신이 국민의 직접선거로 대통령이 되는 것이 바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성취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는 그 꿈을 결코 포기하지를 못하지요. 그래서 그는 그것만 바라보고 달려갈 사람입니다. 둘째로, 그와 비교할 때에 김대중씨는 좀 달라요… “.
‘무엇이 다르다는 것일까?’, 궁금하여 김상진이 귀를 기울인다. 그러자 박선우의 말이 들려온다; “김영삼씨가 앞만보고 달려가는 행동대장격이라고 한다면, 김대중씨는 젊어서 사업을 해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좌우를 살피고 또한 내심을 감추고서 행동하고 있지요. 그렇지만… “.
잠시 말을 멈추고 박선우가 김상진을 한번 보더니 말한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야심이 실로 대단합니다. 그래서 정치적인 명분보다는 항상 실리를 택하고 있지요. 따라서 김영삼씨가 먼저 행동으로 나서도록 하고서 자신은 숟가락만 슬쩍 그 밥상에 올려놓고 있지요… “.
박선우가 잠시 숨을 쉰 다음에 말한다; “과거지사만 보더라도 김대중씨는 1960년대 후반에 김영삼이 제창한 ‘40대 기수론’에 슬쩍 올라탔지요. 그리고 비상한 술책으로 이철승의 지지를 얻어 1차투표의 결과를 뒤집고 야당의 대통령후보가 되었지요. 그것이 모두 그러한 김대중씨의 성장배경과 정치적인 수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앞으로도 그는 그렇게 행동할 것입니다… “.
그 말을 듣자 김상진이 질문한다; “그렇다고 하면, 김종필씨는 어떠한가요?... “. 박선우가 즉시 대답한다; “제가 셋째로 말하고 싶은 것이 김종필씨에 관한 것이지요. 그는 재주가 많아요. 그 때문에 하나로만 밀어붙이는 힘이 약합니다. 따라서 참모와 재사로는 제격이지요. 하지만 제1인자가 되기에는 보스십과 리더십이 부족합니다. 게다가… “.
잠시 뜸을 들이더니 박선우가 결심한 듯이 말한다; “제가 지역감정을 건드리는 것은 아니지만 지지기반이라고 하는 것이 있어서 말씀을 드립니다. 김종필씨의 출신지역이 영남도 아니고 호남도 아니지요. 충청도 출신이니 역시 지지기반이 약합니다. 그러니 직선제 대선에서 그가 대통령이 되기는 힘들다고 보아야지요… “.
그 정도의 설명으로 김상진이 충분히 알아 들었다. 그러한 대통령학의 기초를 자신이 모르고서 기자생활을 한 것이 조금은 아쉽게 느껴지고 있다. 역시 미국 워싱턴DC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박선우를 만난 것이 다행이다.
그래서 솔직하게 김상진이 말한다; “박형, 고마워요. 미국에서 열심히 공부한 내용을 아주 간단하게 잘 설명을 해주니 내가 눈이 번쩍 뜨이는 것만 같아요. 역시 사람은 공부를 하고 연구를 많이 해야 전문가가 되는 것이지요. 아주 좋습니다. 하하하… “.
그 말을 들은 박선우가 말한다; “김형, 부족한 나의 설명을 그렇게 좋게 생각해주니 내가 다 고마워요. 나는 김형이 경제신문에 게재한 ‘한국의 미래’라고 하는 특집을 관심있게 읽었답니다. 한국의 정계를 보고 분석하는 눈이 대단하더군요. 그러니 이론적인 측면은 제가 말하고 앞으로 실제적인 측면은 김형이 내게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부탁합니다… “.
그렇게 두 사람이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옆방에서 윤지혜와 홍혜련이 더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윤지혜가 미국에서 자라난 홍혜련의 성장배경에 관한 이야기를 물었더니 그녀가 얼마나 신이 나서 설명을 하는지 모른다.
그 다음에 윤지혜는 홍혜련이 어떻게 워싱턴DC에서 박선우씨를 만났는지를 물었다. 그랬더니 홍혜련이 웃으면서 대답한다; “처음 한국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남편을 만났을 때에는 고생하는 노총각의 표시가 많이 나더라고요. 그렇지만 그가 조지 워싱턴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있는 것을 알고서는 깜짝 놀랐지요. 우연히 내가 캠퍼스에서 그와 마주친 것이지요… “.
윤지혜가 상상이 되는지 웃으면서 홍혜련을 쳐다보자 그녀가 계속 말한다; “남편도 저를 보고서는 반갑다고 인사를 하더라고요. 그저 스쳐가는 손님과 점원 사이가 아니라 특별히 저를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 저도 관심이 생겼지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교제를 시작했어요… 그리고… ”.
윤지혜가 관심을 표하면서 계속 귀를 기울이자 홍혜련이 이어서 말한다; “제가 남편과 결혼하고 경제적으로 뒷받침을 했더니 아주 열심히 공부하여 빨리 학위를 취득했어요. 그래서 저희 부부가 한국으로 들어온 거예요. 이곳 강남에는 가까운 친척들이 살고 있어서 제가 대치동에 자리를 잡자고 했지요”.
그 말을 듣자 윤지혜가 말한다; “남편이 정치학을 끝까지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귀국했으니 앞으로 할 일이 많겠군요. 어디에서 강의를 하게 되나요?... “. 홍혜련이 즉시 대답한다; “안 그래도 저의 숙부님이 수도권에서 모 대학의 재단일을 보고 계세요. 그래서 그 대학에서 지금 강의를 하고 있는데 곧 전임으로 발령이 날 거예요. 저도 이곳에서 계속 살게 되어서 좋아요… “.
윤지혜가 충분히 알아 들었다. 그래서 말한다; “참 잘 되었어요. 저의 남편도 정치부 기자인데 앞으로 정치학교수님과 자주 만나게 되었으니 서로 도움이 되겠어요. 우리들도 친하게 지내도록 합시다. 서로 집이 멀지 않고 같은 교회에 다니고 있으니 자주 보도록 합시다”.
그 말을 듣자 홍혜련이 웃으면서 말한다; “저도 이곳에 친척을 빼고서는 친구가 없었는데 잘 되었어요.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그리고 나이도 동갑이니 더 좋아요… “. 그날 그렇게 말하면서 윤지혜와 홍혜련이 좋은 친구가 되고 있다.
그렇게 1987년에는 김상진과 윤지혜 부부에게 좋은 친구가 생기고 있다. 한편, 그해 한국의 정치는 어떻게 소용돌이를 치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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