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이민자(손진길 소설)

시간 이민자10(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0. 7. 14. 03:46

시간 이민자10(손진길 소설)

 

김상진 기자는 1985212일 총선의 결과 제1야당이 민한당에서 신민당으로 바뀌게 되자 국회의 기자실을 자주 들리게 된다. 돌이켜보면, 총선을 앞두고 민한당에 합류했던 해금인사들이 새로 창당이 된 신민당으로 많이 빠져나갔다.

또한 총선결과를 보고 나서는 민한당 소속의원들이 이제는 제1야당이 된 신민당으로 줄줄이 빠져나가고 있다. 신군부의 치하에서 제2중대의 역할을 한 유치송 총재의 민한당보다는 국민의 지지가 큰 양 김씨의 신한민주당이 훨씬 낫다는 정치적 판단에 따른 이동이다.

그와 같은 변화를 취재하면서 김상진은 벌써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시금 두가지의 감회를 느끼지 아니할 수가 없다;

하나는, 국민의 직접투표에 의한 선출직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동냥 벼슬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먹을 것을 구하고 있는 걸인이 주인 아주머니의 눈치를 보듯이 정치인들은 한 표를 던져주는 국민들의 눈치를 보기 마련이다. 국민의 지지와 민주화 열망이 향하고 있는 정당으로 옮겨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또 하나는, 오늘날 민주화의 상징이 되고 있는 양 김씨를 만들어준 장본인이 바로 그동안 독재권력을 행사한 박 대통령과 그 뒤를 잇고 있는 신군부 세력이라는 것이다. 두사람은 자신들의 정치적인 능력과 실력 이상의 프리미엄을 반사적으로 얻고 있다. 국민들의 민주화의 열망을 그들이 용감하게 대변하기만 하면 그 프리미엄을 고스란히 계속 향유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사실을 피부로 느끼면서 국회를 자주 출입하다가 보니 하루는 김상진이 구내에서 송일섭과 마주치게 된다. 송일섭은 그동안 어뗳게 지낸 것일까?... 김상진이 궁금하여 물어본다; “송형,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12대 국회가 시작이 되어서 많이 바쁘시지요?... “.

그 말을 듣자 송일섭이 웃으면서 대답한다; “제가 그동안 인사이동을 자주 당했습니다. 지난 81년봄에 입사한 후 4년 남짓 만에 벌써 5번이나 근무지가 바뀌고 있어요. 김형, 시간이 있으시면 저의 입법조사관실로 가셔서 차를 한잔 하시지요… “.

김상진은 그 정체가 2020년에서 1980년으로 시간이민을 온 이상우이다. 이상우의 대학 1학년 때의 친구가 교양과정부에서 만난 송일섭이다. 그러므로 김상진은 국회에서 사무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송일섭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있다. 김상진이 기쁜 마음으로 그를 따라 경제관계위원회의 입법조사관실로 향하고 있다.

그날 커피를 마시면서 송일섭이 김상진에게 말한다; “김형, 나는 오래간만에 만난 김형이 마치 내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처럼 느껴집니다. 그것 참 이상한 일이지요?... “. 그 말을 듣자 김상진이 말한다; “나도 그렇습니다. 이심전심이군요. 하하하… “.

  그 말을 들은 송일섭이 주위에 다른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서 다음과 같이 말문을 연다; “나는 본래 지방의 중소도시 출신입니다. 서울에 있는 명문대학교에 합격하여 상경했지요. 4년간 과외선생을 하면서 공과대학을 졸업했어요. 그리고 좋은 직장을 얻어서 지방의 건설현장으로 내려갔지요. 그러나… “.

잠시 과거를 회상하는지 말을 멈추더니 송일섭이 천천히 이어서 말한다; “큰 공사의 현장에서 기술자들을 홀대하고 있는 회사환경에 의문을 느끼고 그만 퇴사하고 말았어요. 공대출신들이 현장에서 기술자로 일하고 있는데 그들의 인사와 경리 등 서무를 담당하고 있는 고교출신의 직원들이 마치 상관처럼 권세를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

 송일섭이 잠시 숨을 쉬고서 계속 설명한다; “그것을 회사에서는 기술자 통제라는 명분으로 계속 허용하고 있어요. 그렇게 기술자를 경시하는 관료제를 운영하고 있으니 한국의 기술발전은 요원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묘하게도 나는 그러한 한국기업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현장에서 경험하게 된 것이지요… “.

잠시 커피를 마시면서 뜸을 들이더니 송일섭이 이어서 말한다; “그 다음에 나는 완전히 전공을 바꾸어서 행정대학원으로 진학하고 4년간 행시공부를 하다가 운이 좋게도 이곳 입법부에서 사무관을 뽑는 입법고시에 합격했지요. 그래서 지난 1981년 봄에 개회가 된 제11대 국회부터 주로 경제관계 위원회에서 입법실무자로 근무하고 있어요. 그런데… “.

이제부터가 본론인 모양이다. 김상진은 모처럼 듣게 되는 국회의 입법실무자의 이야기인지라 경청한다. 그의 귀에 송일섭의 말이 들려온다; “공대출신이면서 행정대학원에 다녀서 그런지 저는 인사이동이 잦아요. 경제관계위원회를 2년 동안에 두 군데나 돌아다녔어요. 그 다음에는 국가의 일반직공무원인 제가 엉뚱하게도 별정직이 일하고 있는 국회사무총장의 비서실에서 근무를 했지요. 그리고… “.

 그 말을 듣자 김상진이 말한다; “그렇군요. 국회의 의장실과 부의장실 그리고 사무총장실에서는 별정직 공무원들이 주로 근무하고 있지요. 더구나 의원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은 전부 별정직이라서 의원들과 운명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고요. 맞습니다. 그래서… “.

김상진이 커피를 조금 마시고서 말한다; “우리 기자들은 알기 쉽게 임용시험에 합격한 일반직공무원은 국가의 제도 전속적이지만 높은 분의 신임에 따라 보직을 얻은 별정직은 개인 전속적이라고 구별하고 있지요. 그래야 이해가 쉬우니까요… “.

그 말을 듣자 송일섭이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떡인다. 그리고 이어서 말한다; “일반직이면서 별정직인 비서의 역할까지 한 다음 저는 기획부서를 거쳐서 지금은 다시 경제관계위원회에서 입법조사관으로 일하고 있어요. 한마디로,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4년간 많이 돌아다닌 셈이지요. 하하하… “.

그 말을 들은 김상진이 그가 이상우였을 때에 대학 1학년시절 교정에서 만난 친구 송일섭의 얼굴을 유심히 본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한다; “그래, 나는 문리대에 입학했지만 송일섭은 공대에 입학을 했지. 교양과정부에서는 교양과목을 함께 공부하고 기독학생회에서 같이 활동을 했지만 당시 전공이 달랐어… “.

그렇지만 공대의 전공을 과감하게 바꾸어 행정학과 법학을 다시 공부하고 입법관료로 생활하고 있는 송일섭의 패기가 엿보이고 있다. 그래서 김상진이 그의 얼굴을 계속 쳐다보고 있자 갑자기 송일섭이 싱긋 웃으면서 다른 이야기를 시작한다.

김상진이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이다; “나는 입법관료로 생활하면서 두가지를 생각하고 있어요. 첫째로, 국민들 뿐만 아니라 출입기자들까지 입법관료가 무엇을 하는지를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저 국가의 법을 다루고 있으니까 입법관료와 사법부의 관료들이 같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이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지요. 왜냐하면… “.

중요한 대목이라서 김상진이 귀를 기울이자 송일섭이 천천히 설명한다; “한마디로, 사법부에서는 입법부가 제정한 법을 행정부가 시행하는 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한 국민들을 개인적으로 구제하는 사후구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요. 따라서 법을 해석하고 그 적용이 올바르게 되었는지를 따지고 있어요. 하지만 입법관료는 달라요… “.

일반적으로 정치부 기자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입법관료는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의아하여 김상진이 경청한다. 그러자 송일섭의 말이 다음과 같다; “입법관료는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만약 그러한 법을 만들게 되면 국민들이 그 법을 실제로 수용할 수 있겠는가? 하는 바로 그 수용가능성을 현실적으로 먼저 따지고 있지요. 따라서… “.

이제부터가 송일섭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인 모양이다. 김상진이 숨도 쉬지 아니하고 듣고 있다; “입법실무자가 만약 부주의하게 한가지라도 놓쳐버리고 법을 만들게 되면 그 법의 적용을 받게 되는 국민들에게 있어서는 큰 혼란과 불이익이 발생하게 되지요. 그러므로 사전에 그러한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법제정에 철저를 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국민의 편에서 법이란 무엇인가를 늘 생각하고 있지요. 그와 달리… “.

잠시 숨을 돌리고 송일섭이 이어서 말한다; “사법부의 관료들은 달라요. 사법고시를 패스한 그들은 행정부가 법의 적용과정에 있어서 적법하고 공정했는지만 따지고 있어요. 그것도 개인적인 구제의 차원에서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입법관료의 책무에 비하여 사후적인 것이면서 개인적인 것이지요. 그렇지만 법의 피해를 직접 당하고 있는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사법부의 권한이 더 크게 느껴지고 있어요… “.

잠시 말을 끊더니 송일섭이 알기 쉽게 말한다; “그러한 근본적인 차이를 모르고서 한번은 사법고시를 패스한 인력을 그대로 입법실무자로 활용하고자 신군부에서 시도한 적이 있어요. 그렇지만 국회에서 오래 입법실무자로 일한 사람들이 반대를 했어요… “.

김상진이 잘 모르고 있는 비사에 속한다. 그래서 경청을 한다. 송일섭의 설명이 들려온다; “구체적으로, 법을 보는 안목이 서로가 다른데 그렇게 함부로 편의상 인사를 하게 되면 안된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우리 입법실무자들이 그러한 차이를 많이 경험하고 있지요. 예를 들면… “.

송일섭이 숨을 고르고서 말한다; “행정부가 자신들이 원하는 법을 제안하고 있는 경우 대체로 행정편의를 먼저 생각하여 법안을 만들어 국회로 가지고 옵니다. 그것을 각 위원회에 소속이 되어 있는 입법실무자들이 먼저 검토하지요. 그 결과를 국회의 전문위원들이 검토보고서에 담아 각 위원회에서 낭독하도록 되어있어요. 검토보고서에서는 행정 편의적인 것보다는 국민수용성 여부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을 주로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

송일섭이 갑자기 말을 끊더니 천천히 김상진의 얼굴을 한참 쳐다본다. 그 다음에 진중하고도 은밀하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둘째로, 나는 경제관계위원회의 입법관료로 일하면서 요즈음 한가지 고민에 빠져 있어요. 그것은 우리나라의 법을 우리가 제정하고 개정하는데 있어서 다른 나라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묘한 국제관계의 힘의 작용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이지요… “.

그제서야 김상진이 한가지를 깨닫고 있다; “송일섭이 나를 불러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진실로 그가 은밀하게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것이구나. 그 내용이 과연 무엇일까?... “.

조용하지만 묵직한 울림으로 송일섭이 말한다; “우리는 지금 특허법을 개정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 경제관계위원회에서 그 법을 상정하여 심의하기도 전에 가장 힘이 센 나라가 한국의 특허청 입법실무자를 불러서 자기 나라에 들어와서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라고 지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 국회의 입법관료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요?... “.

그 말을 끝으로 송일섭은 더 이상 말이 없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있는 김상진 기자의 마음속에서는 큰 파문이 일고 있다. 2020년까지 서울에서 살아본 이상우가 1980년대로 시간이민을 와서 살고 있는 김상진 자신의 정체이다. 2020년에 한국정부가 겪고 있는 좌절감이 1980년대에 있어서는 더 크게 느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김상진이 다음과 같이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다; “언제가 되면 이러한 강대국의 내정간섭에서 우리 한국이 완전히 벗어날 수가 있을까?... 우리의 역사를 보면서 조상 탓만 했더니 이제는 그것이 아니구나… “.

정치부 기자인 김상진이 그날 입법관료인 송일섭의 말을 들으면서 스스로 얻고 있는 결론이 다음과 같다; “우리민족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남북간에 그리고 동서간에 서로 물어 뜯고 싸우고 있으니 이와 같은 외세의 개입과 간섭을 초래하고 있구나... 한국의 민주화의 수준이 자주, 자립, 자강에 도달해야만 비로소 한민족의 자존심을 지킬 수가 있는 것이야!... “.

지난 19852월에 총선이 있은 후 이제 제12국회가 구성되어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두가지의 큰 문제가 한국의 정치계에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하나는, 양 김씨가 급하게 창당한 신한민주당에 대하여 민주화를 희구하고 있는 국민들이 표를 던져서 제1야당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것은 이제 신군부의 정권이 아니라 민주적인 문민정권을 만들어 내라는 것이다.

대통령도 체육관에서 간선으로 뽑지를 말고 국민의 직접 비밀투표로 선출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신민당이 여당인 민정당에게 개헌특위를 만들어 민주헌법을 제정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하지만 전두환 대통령과 민정당은 아직 호응을 하지 아니하고 있다.

또 하나는, 대한민국을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이 민족을 통일하고 나아가서 외세의 개입을 막아내야 한다. 그러한 시대를 맞이하기 위하여 경제성장이 계속되어야 하고 미국의 군사력이 아니라 한국의 군사력으로 자주국방이 가능하게 되어야 한다. 그 문제를 어떻게 장기적으로 해결해 나갈 것인가?

김상진의 전신인 이상우는 평생을 정치부 기자로서 일하고 퇴직하여 2020년까지 서울에서 생활하면서도 그 날이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신한당과 민정당이 서로 개헌문제를 두고서 다투고 있는 시점이다. 그러니 그 마음이 더욱 답답할 수밖에 없다. 과연 모든 문제가 장차 어떻게 풀려나가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