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이민자(손진길 소설)

시간 이민자8(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0. 7. 11. 21:48

시간 이민자8(손진길 소설)

 

1984730일 오후에 김상진은 아내 윤지혜와 함께 김포국제공항 국제선 출발구역인 2층으로 들어서고 있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성기수 부부가 신문사 사장인 방주일과 그 부인 성순혜 여사를 모시고 도착한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한다.

방사장과 부인 성 여사가 김상진과 윤지혜를 보면서 아는 체를 한다. 그들은 며칠 전 회사에서 김상진과 그의 아내인 윤지혜를 만난 적이 있기에 친근하게 대하고 있다. 성기수 부부의 배려로 김상진 부부가 사전에 방사장 부부를 회사에서 만난 적이 있는 것이다.

방사장은 비서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처조카인 성기수가 어째서 부하직원인 김상진을 그렇게 아끼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한번은 김상진 기자를 불러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그랬더니 아는 것이 무척 많은 친구이다. 나이가 33세라고 하는데 그 식견이 보통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평생을 언론계에서 일하고 있는 방사장 자신만큼 정치계의 깊은 속사정을 알고 있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그래서 방사장은 그때부터 김상진 기자와 나이차이를 떠나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고 있다.

방사장은 사실 그 내막을 모르고 있다. 김상진이 방송사의 정치부에서 평생 기자로 일하고 정년퇴직을 하였으며 2020년에서 1980년으로 시간이민을 와서 은밀하게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실제로 그들은 경륜이 비슷한 것이다.

방사장의 부인인 성순혜의 경우에는 젊은 윤지혜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굉장한 세련미가 엿보이고 있다. 어째서 31세에 불과한 여성이 그렇게 범상하지 아니한 지모와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그러한 아우라는 인생을 달관한 노년의 여성에게서 풍기는 것인데?...

그러한 묘한 끌림이 있어서 성순혜는 나이차이를 떠나서 윤지혜가 마음에 든다. 그래서 조카인 성기수의 아내 임효린을 대하는 것과 다름없이 윤지혜에게 잘 대하고 있다. 성순혜는 서울에서 손꼽히는 부잣집의 딸이다. 그녀의 조카 며느리인 임효린도 그러하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재벌가 출신이 아닌 평범한 젊은 여자 윤지혜에게서 범상하지 아니한 지성미와 품위가 느껴지고 있는 것일까? 성순혜는 그 점이 참으로 이상하면서도 매력적이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임효린보다는 윤지혜에게 마음이 더 끌리고 있는 것이다.

여행을 하는 동안 여자들 사이에서는 수다가 많다. 한국을 떠나서 유럽의 중심인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 도착을 하고부터 그녀들은 자유부인 3인방이 되어 참으로 유쾌하다. 50대 중반인 성순혜가 33세인 임효린 그리고 31세인 윤지혜와 더불어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누느라고 바쁘다.

그 모습을 보고서 애처가인 방주일 사장이 처조카인 성기수에게 한마디를 한다; “기수야, 내가 시간이 나면 너희 고모를 데리고 해외에 자주 나와야 하겠다. 그때에는 너희 부부와 상진이 부부를 함께 데리고 오도록 하마. 3여자가 저렇게 신이 나서 어울려 다니고 있으니 내가 다 살맛이 난다. 우울한 갱년기 치료에 얼마나 좋은 것이냐?... 하하하… “.

방사장도 잘사는 집안의 출신인가 보다. 그래서 부부동반 해외여행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한 말에 성기수가 맞장구를 치고 있다; “고모부, 그렇게 하세요. 저도 효린이가 오래간만에 친구를 만난듯이 깔깔대고 있는 것이 참 보기에 좋은데요. 그리고 상진이 부인이 참 행동이 세련되었네요. 고모가 친구처럼 대하고 좋아하고 있는 것 좀 보세요. 의외입니다… “.

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김상진이 유심히 아내 윤지혜성순혜와 어울리고 있는 모습을 본다. 그러더니 속으로 빙그레 웃으면서 중얼거린다; “오래간만에 비슷한 연륜을 가진 성선배의 고모를 만난 것이야그것 참, 이야기가 잘 통하겠구만… “.

재벌가의 딸인 임효린이 역시 부잣집으로 시집와서 살고 있다. 성기수의 집안이 그렇게 대단한 집안이다. 그런데 부하직원인 김상진의 아내 윤지혜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자신보다 더 아는 것이 많다. 상식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유행의 흐름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고 있다.

분명히 윤지혜는 재벌가의 딸이 아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내로라 하는 명문가의 딸도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아는 것이 많을까? 그 참 이상하다고 생각이 된다. 특히 임효린 자신보다 고모인 성순혜 여사와 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잘 나누고 있다. 마치 동무처럼 보인다. 그것이 그녀는 신기한 것이다.

윤지혜는 말할 것도 없이 서울 안국동에서 2020년까지 살아본 적이 있는 윤성혜 여사이다. 그녀가 시간이민을 와서 윤지혜라는 새로운 신분으로 역시 안국동에서 살고 있다. 신분세탁을 했다고는 하지만 윤성혜로 살아온 경륜과 지식은 그대로 지니고 있으니 1984년의 재벌가 출신인 성순혜와 임효린이 그 식견과 지모를 당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여행을 하는 동안 김상진이 자주 아내 윤지혜를 슬쩍슬쩍 보고 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자신만이 아는 미소를 지으면서 생각하고 있다; “과거로 시간이민을 와서 살고 있으니 저렇게 좋은 점도 있구만남들이 모르는 것을 저토록 미리 알고 있으니 말이다!... “.

물론 윤지혜가 미래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행의 흐름과 새로운 시대적인 감각을 벌써 알고 있으니 한참 시대가 뒤떨어진 1980년대의 유행과 문화에 대해서는 자신의 일가견을 피력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 이야기가 성순혜 여사와 임효린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느껴지고 있는 것이리라

여자들이 3명이나 되니 방사장이 파리에 있는 유명한 백화점에 일부러 들린다. 선물을 사주기 위한 배려이다. 그런데 물건을 하나씩 고르고 계산대 앞에 오래 줄을 서게 된다. 서울에서는 계산대 앞에 줄을 서는 경우가 별로 없다. 계산을 하는 점원들이 워낙 일처리를 빠르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84년 당시의 파리 백화점의 풍경은 그것이 아니다. 점원들의 계산속도가 너무나 느리다. 게다가 고객들이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것을 심히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김상진이 생각한다; “이렇게 일처리가 느린데 어떻게 프랑스의 국민소득이 한국의 몇배가 되고 있는 것일까?... “.

김상진의 생각이 이어지고 있다; “그 참, 이러한 유럽의 나라들과 경쟁하면서 한국이 몇배로 못살고 있다고 하는 것이 사실은 기적에 속하는 일이구만!... 이거 한강의 기적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세느강의 기적에 대하여 연구를 깊이 해보아야 하겠구만… “.

그와 같은 현상은 이태리의 수도인 로마에서 더 많이 발견하게 된다. 백화점에서 고객들을 줄 세우고 계산대에서 천천히 계산하는 것은 파리와 똑같다. 그런데 문제는 쇼핑시간이 더욱 제한적이다. 왜냐하면 로마의 사람들은 점심식사 시간이 길어서 백화점의 문을 여는 시간이 더욱 짧은 것이다.

이태리 사람들은 인생을 즐긴다고 하면서 점심식사시간에 얼마나 음식을 많이 오래 먹는지 모른다. 김상진이 볼 때에는 한국인보다 두배 이상의 음식을 먹고 있는 대식가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목이 굵고 목소리가 크다. 그것이 성악을 하는데 있어서는 분명 유리한 것이리라

영국 런던과 서독의 베를린에 들렀을 때에는 시내 중심을 흐르고 있는 강물이 얼마나 혼탁한지 모르겠다. 테임즈 강물과 라인 강물이 서울의 한강보다 오염이 더 심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프랑스 파리의 세느 강은 깨끗한 편이다. 그래서 그들 일행은 다만 세느 강에서만 유람선을 타고서 좌측에 보이는 노트르담 성당을 구경했다.

유럽의 여러 도시를 관광했지만 역시 파리가 가장 인상적이다. 첫째, 미술관이 많다. 둘째, 베르사이유 궁전이 가장 볼만한다. 셋째, 날씨가 좋고 길거리에 나와있는 식사자리와 대화가 마음에 든다. 그래서 성기수 선배가 말한다; “역시 뉴욕보다는 파리가 더 품격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 방사장이 웃으면서 말한다; “기수야, 그래도 사람들은 이민자가 살기 좋은 도시로는 파리보다 미국의 뉴욕을 첫손가락으로 꼽고 있다. 세계의 모든 족속들이 모여서 살고 있는 도시가 뉴욕이지. 그리고 역시 세계의 경제적인 수도는 뉴욕이야. 뉴욕에서 잘 팔리는 물건은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고 있지… “.

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는 김상진이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실은 당시 1984년뿐만이 아니고 2020년초가 되어서도 크게 변함이 없다.

하지만 김상진이 시간이민을 오기 전에 살아본 2020년의 3월에서 9월까지 7달 동안은 그것이 아니다. ‘코로나19’라고 하는 바이러스 전염병이 전세계에서 발병했는데 유독 미국의 뉴욕에서 환자가 많이 발생하고 치료를 제대로 못하여 사망자가 많은 것이다.

개인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시민들이 돈이 없어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고 죽어 나가고 있다. 미국은 본래 사회보장제도가 잘되어 있던 국가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기적인 개인주의에 병들고 말았다.

자유자본주의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를 당연시하고 만 것이다. 그 결과 사회보장제도가 크게 줄어들고 개인보험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따라서 코로나19라는 세계적인 전염병이 발생하자 미국에서 엄청난 비극을 초래하고 만다.

부자들은 개인보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있으므로 코로나19에 전염이 되어도 좋은 사립병원에서 즉시 치료를 받을 수가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부자가 아닌 시민들은  돈이 없어서 사립병원에 가지를 못하고 공립병원에서 병상이 나도록 계속 기다리고만 있다가 죽고 만다.

더욱 큰 불행은 미국에서 영주권이 없는 자 또는 불법 체류자들이다. 그들은 완벽하게 미국의 사회보장제도에서 제외가 되어 있으므로 공립병원의 대기자로도 들어가지를 못한다. 결국 미국에서 아무런 치료를 받을 수가 없어서 죽음을 기다리게 된다.

다행히 조국으로 돌아가서 치료를 받을 수가 있으면 그것은 천우신조이다. 그러하지 못한 가난한 나라의 출신은 그야말로 비극적인 최후를 뉴욕 등 미국의 대도시에서 맞이하고있다. 그 생각을 하면서 김상진은 성선배와 방사장의 대화가 일부는 맞고 일부는 맞지않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방사장은 유럽의 주요국을 관광하면서 영국에서 개최가 된 세미나에 며칠 참석한다. 그 세미나가 언론인들에게 중요하기 때문에 기자인 성기수김상진에게도 함께 참석하자고 권한다. 그 결과 부인들만 그사이 런던과 기타 가까운 도시를 돌아보고 있다.

김상진의 경우에는 1984년의 국제세미나에서 발표하고 있는 내용들이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2012년까지 방송사 기자로 일한 그이기에 그러한 내용들은 거의 알고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방사장과 성기자는 그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 두사람이 더 열심히 세미나의 내용을 청취하고 있다.

한편 김상진은 서울에 가면  필요하지 싶어서 세미나의 자료만은 잘 챙기고 있다. 훗날 귀국하게 되면 그것으로 보고서를 써서 제출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에서의 일정을 제외하고 보면 이번의 유럽 주요국 방문은 참으로 자유스럽고 좋은 일정이다.

김상진이 1984년 유럽의 서방 주요국을 방문하고서 받은 인상은 무엇보다도 흙을 볼 수가 없고 정원처럼 도시들이 잔디로 잘 가꾸어져 있다는 것이다. 다만 흙을 볼 수가 있는 곳은 반도국가이다. 특히 이탈리아스페인이 그러하다.

프랑스, 서독, 오스트리아, 영국, 벨기에 등을 방문한 다음에 이탈리아로 왔을 때에는 마치 한국에 절반쯤 온 것만 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 이유는 붉은 흙이 보이고 도로에 종이와 약간의 쓰레기가 널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그것이 고향의 정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더구나 스페인에 들렀을 때에는 더욱 한국과 같은 정서를 느끼게 된다. 그 이유가 두가지이다;

하나는, 머리카락이 검은 스페인 사람들이 상당히 동양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중동의 사라센이 스페인을 완전히 정복하고 수백 년간 다스리면서 혼혈인으로 만들어버린 결과로 보인다. 이탈리아에 있어서는 남부만 사라센이 점령하여 혼혈을 남겼지만 스페인은 완전히 정복한 것이다.

또 하나는, 스페인 사람들의 밤 문화가 한국인의 밤 문화 만큼이나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 밤 늦게까지 음주와 가무를 즐기는지 모른다. 물론 술집에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그래서 그 옛날 안익태 선생이 여생을 스페인에서 보낸 모양이다.

김상진 부부는 방사장 부부 및 성 기자 부부와 함께 3주간 유럽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다. 벌써 819일이다. 이제 그들은 한국에서 어떠한 일들을 만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