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이민자(손진길 소설)

시간 이민자9(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0. 7. 13. 02:49

시간 이민자9(손진길 소설)

 

3. 다시 보게 되는 민주화의 열망

 

김상진은 1984820일에 신문사에 들러 유럽에 다녀본 보고서를 마무리한다. 그 내용이 두가지이다; 하나는, 영국 런던에서 개최가 된 언론인 세미나에 참석한 결과보고이다. 또 하나는, 유럽의 여러 선진국의 언론의 역할에 대하여 현지를 방문하여 자료를 얻고 그곳 언론인들의 견해를 취재하고 분석한 내용이다.

3주간 유럽여행을 하는 중에 김상진이 틈틈이 그러한 내용의 보고서 초안을 작성하고 있었기에 서울에 돌아오자 마자 그 다음날 바로 타이핑을 하고 신문사에 제출한 것이다. 그 다음에 그는 자신이 서울에 없었던 3주간에 한국에서 어떠한 일들이 발생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있다.

가장 관심이 가는 내용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내년 19852월에 실시가 되는 제12대 총선을 여당과 야당이 어떻게 준비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여당인 민정당에서는 군생활은 물론 대기업의 전무생활을 경험한 바가 있는 육사 11기 출신인 권익현을 당 대표로 하고 판검사를 두루 거친 이한동을 사무총장으로 삼아 내년도 총선에 대비하고 있다.

1야당인 민한당에서는 연초부터 정치제약을 받고 있는 인사들을 해금조치하라고 정부여당에 공세를 펴면서 추가로 해금이 되는 정치인들을 민한당으로 맞아들이기에 바쁘다. 그렇게 당세를 키워 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문제는 신군부의 강력한 제5공화국의 통치하에서도 국민들이 민주화요구를 계속하고 있으며 그 앞장을 양 김씨가 서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민주화요구는 간단한 것이다; 첫째, 정통성이 약한 신군부의 정권이 아니라 국민들의 손으로 직접 정통성이 있는 문민정부를 만들자는 것이다. 둘째, 당연히 대통령도 간접선거가 아니라 직접선거로 선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자신들의 민주화요구를 관철하기 위하여 신군부의 정권이 아니라 탄압을 받고 있는 양 김씨와 그들의 추종자 및 재야세력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므로 신군부가 세운 제5공화국 제11대 국회에 참여하고 있는 야당들의 입장이 참으로 곤란하다.  

따라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하여 민한당 총재인 유치송이 차례로 해금이 되고 있는 민주 정치인들을 설득하여 계속 영입하고 있다. 그렇지만 양 김씨와 재야로 향하고 있는 국민들의 시선을 민한당으로 향하게 하는데 있어서는 크게 효과가 없다.

그런데 신군부가 19805월에 발생한 광주의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차제에 민주정치인들과 재야인사들을 모두 정치적으로 규제하였지만 그 효력이 3년에 불과하다. 더 이상 철권정치가 어려운 것이다.

특히 광주사태 3주년을 기하여 전 야당총재인 김영삼이 단식투쟁에 나서자 그 여파가 대단한 것이다. 따라서 김대중은 감옥에서 풀려나 미국으로 신병치료차 들어가 버리고 69일에 23일간의 단식투쟁을 끝낸 김영삼은 서서히 산행을 하면서 나름대로 민주세력을 끌어 모으고 있다.

그와 같은 변화의 바람을 읽으면서 김상진이 열심히 국회와 청와대를 출입하고 있다. 물론 혼자서 취재에 나서는 것은 아니다. 길순종 기자와 함께 움직이고 있으며 때로는 사진기자가 동행하고 있다.

김상진은 자신이 이상우로서 방송사 기자로 일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시간이민을 와서 신문사기자로 일하고 있는 지금 한가지 크게 유리한 점이 있음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2020년까지 한국의 정치가 어떻게 변천하고 있는지를 그가 벌써 체험한 바가 있기에 한국정치의 흐름에 대하여 먼저 알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김영삼 전 총재의 민주산악회1983년 후반기에 출범하고 1984년에 결집이 된 세력이 소위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을 만들고 1985년에 신민당을 만들어 2월 총선에 임한 결과 제1야당이 되는 선거 돌풍을 몰고 온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에서 돌아오는 김대중의 세력이 힘을 합한 결과이다.

그렇지만 1988년 봄에 7년 임기가 끝나게 되는 전두환 대통령 이후를 겨냥한 1987년의 민주화 투쟁의 과정에서 양 김씨는 서로 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겠다고 나서서 야당이 크게 분열이 되고 만다. 그 결과 1987년 문민정부수립을 위한 개헌을 하겠다고 나선 여당 대통령 후보 노태우에게 양 김씨가 패하게 되는 역사가 발생하고 만다.

그러한 미래지사를 짐작하면서 김상진이 경제신문사의 정치부 기자로 뛰고 있으니 그 감이 빠른 것이다. 그래서 그는 별로 힘들이지 아니하고 뛰어난 기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것이 시간이민을 와서 얻게 된 중요한 이익의 하나라고 하겠다.

1984년이 가기 전에 김상진이 취재한 큰 일들이 다음과 같다;

첫째로, 김상진이 부인과 함께 730일 유럽으로 떠나기 전에 서울에서 한가지 취재를 한 것이 있다. 그것은 518일 광주 민주화운동 4주년을 맞이한 날에 외교구락부에서 발생한 민추협‘’민주화추진협의회의 출범이다.

김영삼 전 총재는 자신이 단식투쟁을 한 일년 후가 되는 그날 아직 미국에 머물고 있는 김대중을 대신하여 참석한 동교동계의 김녹영과 함께 이제는 야권연대에 나서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민추협을 통하여 새로운 야당을 만들고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반드시 한국의 민주화를 이루어 낼 것을 외치고 있다.

둘째로, 1130일에 이철승, 이민우, 노승환, 문익환84명이 3차로 해금이 된다. 그러자 민추협에서는 그들과 함께

1221일에 신한민주당을 창당하고자 의견을 모은다.

신당의 총재로는 양 김씨의 지지를 받고 있는 무난한 인물 이민우가 선택이 되고 있다. 실제로 신한민주당이 창당된 것은 다음해인 1985118일이다. 당 총재로는 김영삼이 적극 추천한 이민우이다.

미국에 머물고 있는 김대중은 내년 2월에 실시되는 총선 전에 한국으로 귀국할 예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명 호남의 대통령이라고 불리고 있는 김대중이니 그가 총선의 승리를 위하여 귀국하여 호남의 표심을 모으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상진은 이제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야권인사들의 움직임을  골고루 취재하기 위하여 세 군데를 뛰어 다니게 된다;

첫째가, 김영삼의 저택이 있는 상도동이다. 그곳에 야권인사들이 몰리고 있다.

둘째가, 일명 동교동계라고 불리고 있는 김대중의 참모들이다.

셋째가, 국회를 방문하여 제1야당인 민한당의 간부들을 취재하고 있다. 그렇게 세 군데나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는 중에 그만 1984년이 후딱 지나가고 만다.

한편, 김상진의 아내인 윤지혜는 유럽 여행을 같이 다녀온 성기자의 부인인 임효린은 물론이고 신문사 방사장의 부인인 성순혜와 친하게 어울리고 있다. 그들은 남편들이 신문사의 일에 바쁘기 때문에 마치 자유부인처럼 서울에서 행동하고 있다.

성순혜와 임효린은 모두 재력이 대단한 집안 출신들이라 그 씀씀이가 상당하다. 그런데 큰 재산이 없는 윤지혜를 두사람이 꼭 함께 데리고 다니기를 원하고 있다. 그 이유는 두사람이 가지지 못하고 있는 안목을 윤지혜가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윤지혜가 말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녀가 미래에서 왔기 때문이다. 2020년까지 서울에서 살아본 그녀인지라 유행의 흐름은 물론 한국의 정계와 재계의 흐름을 상당히 많이 알고 있다. 게다가 종교계의 변화까지 알고 있다.

그러하기에 자기도 모르게 윤지혜가 마치 선견자처럼 문화, 예술, 정치, 경제의 흐름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말할 때가 있다. 그것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기에 성순혜와 임효린이 윤지혜와 함께 다니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50대 중반인 성순혜 여사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다. 그래서 그녀가 때로는 교황에 대하여 두사람에게 말하고 있다. 지난 5월에 한국을 방문했던 교황 요한 바오르2세에 관하여 그녀가 여러 번 말하고 있다.

성순혜가 특별히 자부심을 가지고 말하는 내용이 다음과 같다; “한국에 천주교가 들어온지 벌써 200년이 지났어요. 200주년을 기념하여 지난 5월에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고요… “.

그리고 그녀는 다음을 강조하고 있다; “교황이 직접 한국에서 순교자 103인을 성인으로 선포하는 시성식을 거행했어요. 역사적으로 한국인은 정식으로 신부가 들어오기 전에 벌써 한문으로 되어 있는 성경을 읽고 자생적으로 천주를 모시고 예배를 드린 특이한 민족이지요 그들은 정치적인 박해에도 굴하지 아니했어요… “.

그와 같은 이야기를 들은 윤지혜가 하루는 그 이야기를 남편 김상진에게 해준다. 그러자 김상진의 말이 다음과 같다; “성경을 읽고 스스로 자생적인 기독교인이 되듯이 한국사람들은 서양의 정치서적을 읽고서 한국에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한 사람들이지요. 그러니 한국민들의 민주주의 열망을 그 어떠한 세력도 꺾지를 못하는 것이지요… “.

김상진은 자기도 모르게 평생을 정치부 기자로 일한 자신의 생각을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 옛날 이상우라는 이름으로 오래 방송사의 정치부 기자로 일했다. 이제는 1980대로 시간이민을 와서 다시 신문사의 정치부 기자로 일하고 있다. 그가 한국의 현대사를 다시 취재하고 보니 분명히 큰 줄기가 그러한 것이다.

그런데 1984년말이 되자 윤지혜가 갑자기 병석에 눕고 있다. 김상진은 회사일이 바쁘지만 하루 휴가를 내고서 아내를 간호한다. 처음에는 단순한 겨울철 감기 몸살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다. 아내의 마음속에 치유하기 힘든 외로움과 상처가 있는 것이다.

회사까지 쉬고서 자신을 간호하고 있는 남편을 보더니 윤지혜가 말한다; “여보, 미안해요. 내가 아무리 마음을 다스리려고 해도 안되는 부분이 있어요. 그것은 같은 안국동 다음 골목에 나의 전신인 윤성혜가 살고 있고 또 내 아들과 딸이 자라나고 있다는 것이예요... “.

 잠시 숨을 쉰 다음에 그녀가 이어서 말한다;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전혀 다른 인물인 윤지혜로 그 옆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고역이예요. 차라리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서 살면 좀 나을지 모르겠어요… “.

그 말을 듣자 김상진이 그때서야 후유라고 한숨을 쉬면서 말한다; “ 여보, 나 역시 조마조마하답니다. 나의 전신인 이상우와 혹시 동네에서 마주치지 아니할까 하는 걱정이 있지요. 그러니 하루 종일 안국동에 머물고 있는 당신이야 오죽이나 그러겠어요. 그러니 우리 이곳을 떠나도록 합시다. 멀리 강남으로 이사를 가도록 하지요… ”.

그 말을 들은 윤지혜가 다소 정신을 차린다. 그러면서 동의한다; “좋아요. 좀 떨어져서 살면 걱정이 줄어들 거예요. 어차피 저는 아들과 딸이 잘 자라나서 직장인이 되고 자신들의 가정도 잘 꾸리게 되는 것을 벌써 알고 있잖아요. 그러니 어린 그들만 가까이에서 보지 않으면 되지요… “.

맞는 말이다. 그래서 김상진은 아내 윤지혜가 며칠 후에 병석에서 떨치고 일어나자 그 길로 강남에 있는 아파트를 알아보라고 말한다. 평생을 안국동에서 살아온 윤지혜가 강남으로 이사를 가려고 한다. 그녀가 며칠 강남의 복덕방을 다녀본 다음에 반포에 있는 작은 주공아파트를 하나 물색하여 가계약을 한다.

그 사이에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안국동의 주택을 처분하고 있다. 충분히 반포 주공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는 돈이 된다. 그래서 1985년 봄에 그들은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사의 일은 아내인 윤지혜의 몫이다. 왜냐하면, 김상진이 19852월에 엄청 바쁘기 때문이다.

212일 총선의 결과 민의가 드러난다. 민한당이 35석인데 비해 신한민주당67석을 얻고 있다. 1야당이 바뀐 것이다. 그러자 민한당의 소속의원들이 제1야당으로 자리를 옮기고자 한다. 어차피 국민의 지지와 더불어 민주화의 명분이 신한민주당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정치적인 지각변동이 생기자 전두환 정권의 여당인 민정당의 입장이 참으로 어려워지고 있다. 신군부의 말을 잘 듣던 민한당이 사라지고 이제는 양 김씨가 연대하고 있는 신한민주당과 타협하면서 정치를 펼쳐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신한민주당은 차제에 민주정부수립을 위한 직선제 개헌을 추진하고자 한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과연 정치적인 힘겨루기가 어떻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