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이민자(손진길 소설)

시간 이민자11(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0. 7. 15. 02:48

시간 이민자11(손진길 소설)

 

김상진은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경제신문사의 칼럼을 빌려서 한국민주주의의 미래라는 특집기사를 게재하고 있다. 그 자신이 서울에서 2020년까지 살다가 1980년대로 시간이민을 온 이상우 기자이기 때문에 김상진은 그 주제와 관련된 한국의 미래를 벌써 알고 있다.

그 정체가 시간이민자인 김상진이 자신의 기사 첫머리를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다; “1985212일 실시된 제12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하여 한가지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그것은 유권자들이 양 김씨가 주장하고 있는 민주주의로의 회귀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총선을 한달도 남기지 아니한 시점인 118일에 창당된 신한민주당이 놀랍게도 제1야당이 된 것이다”.

김상진 기자의 도도한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한 민심을 읽게 된 민한당 소속 의원들이 대거 신민당으로 이동함에 따라 이제는 신민당의 세력이 커지고 있다. 따라서 총선에서 신민당을 지지한 유권자와 민한당을 지지한 상당수 유권자의 바램이 모두 신민당에게로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변화에 기초하여 김상진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러한 변화가 있자 제1야당인 신민당이 당당하게 여당인 민정당에게 개헌의 자리로 나아올 것을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민정당은 자신들의 의석이 과반인 148석이나 되기에 소수정당인 야당의 주장에 끌려 다닐 필요가 없다고 이를 일축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국민의 뜻을 저버린 행동이다. 왜냐하면… “.

김상진 기자의 날카로운 지적이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 “총선에서 얻은 정당 별 지지율이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민정당이 35.2%이고 신민당이 29.3%이며 민한당이 19.7%이다. 그러므로 민한당 소속 의원을 상당수 흡수한 신민당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율은 단순계산으로 무려 40%나 되고 있는 것이다”.

김상진이 그의 특집 칼럼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하고 있다; “이제 민정당은 민의에 정비례하지 아니하고 있는 의석수만 자랑하지 말고 다수 국민의 뜻을 따라 문민정부의 탄생에 기여해야만 한다. 그러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다음 총선에서 민정당이 크게 패배하고 말 것이다”.

김상진 기자가 그의 칼럼에서 헌법개정의 골자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루속히 여당은 야당과 합의하여 직선제 대통령을 골자로 하는 개헌에 착수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임기도 다시 정해야 한다. 4년 연임으로 하든지 아니면 5년 단임으로 하든지 여야 합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와 같은 준엄한 국민들의 뜻을 계속 외면하게 되면 앞으로 큰 저항에 부딪히고 말 것이다”.  

그렇지만 김상진 기자의 주장은 별로 효과가 없다. 왜냐하면, 전두환 대통령과 여당인 민정당이 끝까지 제1야당인 신민당의 개헌논의에 응하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985년말의 정부예산안은 여당만으로 단독통과가 되고 만다. 그에 항의하여 신민당은 그해 1218일 정기국회 폐회연에도 참석하지 아니하고 있다.

1985221일에 한국의 재계에서 7위로 알려지고 있던 국제그룹이 파산하게 된다. 왕자표 고무신으로 시작하여 신발류와 기타 경공업제품의 생산으로 부산의 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던 국제그룹이 쓰러지자 국민들이 경공업의 쇠퇴를 크게 염려하고 있다.

그에 따라 국회 상공위원회에서는 19856월에 한국의 경공업제품이 동남아시장에 어떻게 진출하고 있으며 구미의 주요국에는 어떻게 수출되고 있는지를 실태 파악하고자 나선다. 그 위원회 해외시찰단을 수행하게 되는 입법조사관이 송일섭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김상진 기자가 그 시찰단에 포함되고 있다. 상공위원장의 말로는 경제신문사 차장급 기자를 한사람 데리고 가는 것이 홍보에 도움이 되겠다고 하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김상진은 정치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는 아니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속으로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아마도 내가 연초에 한국정치의 미래라는 특집을 다루면서 강하게 정부여당을 비판하고 있어서 그런 모양이다. 이것은 미운 놈에게 떡 하나를 더 준다고 하는 속셈이겠지… “.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김상진은 기분이 좋다. 왜냐하면, 친구인 송일섭 조사관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해외여행에 나서서 두 사람은 경비를 절감하기 위하여 같은 방을 사용하게 된다.

그것을 보고서 김상진이 웃으면서 말한다; “여보게 일섭이, 여행경비를 아끼는 것은 국가적으로 이익이겠지만 서양에 가게 되면 조심해야 한다. 호텔의 같은 방에 남자나 여자가 동성 간에 두사람이 묵게 되면 동성애자로 보기 때문이지.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송일섭이 역시 웃으면서 말한다; “그거야 부자나라인 그들의 생각이고우리는 혼자서 독방을 사용할 필요가 없지요. 아직 중진국에 불과한 우리 한국은 국비여행에 많은 돈을 쓸 수가 없어요. 기자 양반, 그렇게 알고 여행경비를 아낍시다. 양해를 하세요. 하하하… “.

김상진이 고개를 끄떡인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들렀을 때에 공항에 영접을 나온 참사관을 보더니 송일섭이 반색을 한다. 김상진도 속으로는 그를 보고서 깜짝 놀란다. 하지만 그는 내색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친구는 대학 때의 친구인 하강운이기 때문이다. 정외과출신인 그와는 김상진의 전신인 이상우가 동기동창인 것이다.

송일섭의 경우에는 하강운이 고교동창이면서 또한 같은 대학교에 진학한 친구이다. 그렇다고 하는 것을 김상진이 두사람의 대화를 통하여 듣게 된다; “, 이거 하강운이 아니냐? 일찍 외무고시에 합격하더니 벌써 참사관이구나. 여기서 만나게 되니 더 반갑다… “.

하강운 역시 반색하면서 대답한다; “송일섭, 오래간만이다. 네가 직접 수행해서 온다고 하여 내가 나왔다. 물론 내가 경제 참사관이니 상공위원님들의 영접을 나온 것이기도 하고… “.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김상진이 그 옆에 서있다.

그것을 보고서 송일섭이 김상진에게 말한다; “여기 경제 참사관이 바로 나의 고교 동창이고 대학교도 같지요. 하지만 하강운 참사관은 정외과 출신이고 나는 공대 출신이지요. 서로 인사하시지요. 강운아, 이분은 경제신문사 차장인 김상진 기자이셔… “.

그 말을 듣자 그때서야 김상진이 하강운에게 아는 척을 한다. 사실은 김상진은 그가 이상우였을 때에 하강운과는 대학 정외과에서 함께 공부한 동기동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초면인 것처럼 다시 인사를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시간이민자의 숙명인가 보다

주 인니 한국대사관에 들렀더니 상공위원들을 위한 무역관계 브리핑이 준비되어 있다. 경제 참사관인 하강운이 직접 자료를 배부하고 설명한다. 한국의 경공업이 인도네시아에 많이 진출하여 현지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한국의 경공업제품이 인도네시아에 많이 수출되고 있다. 문방구류, 의류, 섬유류, 신발류, 완구류 등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 인쇄를 대신해주거나 한국의 건설업체가 현지의 건설공사에도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

그와 같은 현상은 이웃나라 말레이지아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동남아 국가들이 한국의 투자를 선호하고 있는 이유에 대하여 하강운 참사관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태평양 전쟁 당시 동남아 국가들은 일제의 침략을 당했어요. 전후 일본은 한국전쟁에 군수품을 수출하면서 다시 경제개발에 성공했지요. 그래서… “.

잠시 숨을 쉬고서 하강운이 이어서 말한다; “일본의 투자와 수출이 동남아에 집중이 되고 있어요. 그것을 동남아 국가들이 우려하고 있지요. 그 이유는 그 옛날 군사지배에 이어 다시 경제지배가 발생할 것만 같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완충역할을 하기 위하여 그들은 한국의 투자와 상품을 선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이 되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상공위원들은 물론 송일섭이 고개를 끄떡인다. 김상진은 벌써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함께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김상진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지아 그리고 태국에서 서울로 매일 기사를 송부한다.

현지 대사관의 자료를 참조하고 또한 상공위원들과 함께 현지의 실태를 파악한 내용을 기사로 작성하여 보내고 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송일섭이 한마디를 한다; “나만 부지런한 줄 알았더니, 김차장님도 마찬가지이군요. 역시 기자는 발로 뛰어야 되는 모양입니다… “.

그 말을 듣자 김상진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한다; “나야 기자이니 매일 이렇게 기사를 작성하여 본사에 넘기는 것이 버릇이 되어 있지요. 그렇지만 송형은 의원들을 수행하랴, 보고서를 작성하랴, 사진촬영을 하랴, 회의내용을 기록하랴 예산을 집행하랴, 도대체 한꺼번에 몇가지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참으로 국회직원들은 수행에 나서니 일이 많군요… “.

그 말을 들은 송일섭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그 말이 맞아요. 하지만 아직 공무원들이 해외에 나오는 기회가 많지 않으니 수행을 열심히 해야지요. 실제로 의원님들의 해외활동을 수행하게 되면 이렇게 일이 많아요. 하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국회직원이 의원들처럼 일종의 특혜를 누리는 것으로 보기도 하지요… “.

김상진이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직접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생각이 달라지네요. 나 같으면 그렇게 힘든 수행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송형은 즐겁게 그 일을 하고 있으니 적성에 맞는가 봅니다. 하하하… “.

송일섭은 김상진이 자신을 놀리는 것인 줄 알고 있다. 그래서 가슴을 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국회의원의 임기는 4년입니다. 재선이 되지 아니하면 낙동강 오리알이 되고 말지요. 하지만 일반직 공무원인 국회직원은 정년이 61세이지요. 그러니 여의도 국회에서 가장 오래 근무하게 되는 우리 국회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일해야지요… “.

김상진은 이번에 유럽방문이 두번째이다. 하지만 그는 2020년까지 이상우로서 한국에 살면서 유럽을 여러 번 방문했다. 그 모든 경우를 합하면 10번은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송일섭 앞에서는 그러한 내색을 하지 아니하고 있다.

그런데 옆에서 송일섭이 김상진에게 말한다; “나는 의원님들을 모시고 지난 11대 국회기간에도 유럽을 한번 방문했어요. 이제 두번째입니다”. 그 말을 듣자 김상진이 말한다; “나도 두번째입니다. 지난번에 사장님 부부를 모시고 한번 유럽여행을 했지요”.

의원들 가운데에 유럽여행이 처음인 분이 있다. 그래서 현지 대사관에서는 스케줄을 작성하면서 한국기업의 수출현황과 무역진흥공사의 역할 등을 파악하는 동시에 주요도시를 방문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다.

김상진은 이번 기회에 상공위원들과 함께 행동하면서 유럽에 진출하고 있는 한국의 기업은 물론 교민들에 대한 정보도 많이 얻고 있다. 현지 대사관과 KOTRA가 있으니 그러한 다양한 정보를 얻기에 편리한 것이다.

유럽의 주요국을 시찰하면서 김상진이 속으로 생각한다; “한국의 상품이 많이 유럽에 수출되고 있구나. 교민들의 진출도 활발하다. 확실히 한국의 1980년대는 뜻밖의 3저현상으로 국운이 다시 상승하고 있구나. 다행이다이제는 정치민주화만 성사가 되면 되겠구나… “.

김상진은 유럽의 일정이 끝나자 마지막 기사를 본사에 송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아직은 유럽 여러 나라에 있어서 한국은 1950년대 초기에 한국전쟁을 경험한 가난한 나라에서 겨우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나라에 불과하다. 한국이라는 국가이름의 가치가 그렇게 높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

김상진이 희망적인 메시지를 싣고 있다; “1960년대 중반부터 한국의 간호사, 광부, 태권도사범, 병아리 감별사 등이 서독을 거쳐서 유럽에 진출하여 한국의 이름을 알리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1988년 서울올림픽에 성공하여 한국의 가치를 높여야만 한다. 그것이 유럽에서 한국의 수출이 크게 증가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해외시찰을 마치고 김상진이 19857월 중순에 귀국한다. 이제 그는 서울에서 어떤 일을 경험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