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이민자(손진길 소설)

시간 이민자7(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0. 7. 11. 04:06

시간 이민자7(손진길 소설)

 

신군부가 미국과 협상을 벌이면서 준 것은 무엇이고 받은 것은 무엇일까? 많은 정치학자들은 그 점이 궁금하여 치열하게 역사적인 사료들을 파헤치고 있다. 그 결과를 서울에서 2020년까지 이상우로 살다가 1980년대로 시간이민 온 김상진이 어렴풋이 알고 있다.

미국의 카터 정부나 레이건 정부가 동일하게 한국의 신군부에게서 얻고자 한 것이 세가지이다; 첫째가 박대통령이 은밀하게 추진하던 핵무기개발을 중단한다는 비핵화의 약속이다. 둘째가 미국의 전략무기를 대량 구매한다는 것이다. 셋째가 한국시장을 개방한다는 것이다.

그 세가지를 미국 쪽에 주면서 신군부가 얻고자 한 것은 향후 10년간 자신들이 한국을 통치할 수 있도록 인정을 해달라는 것이다. 1981년에 미국을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자신들이 원하고 있는 세가지 약속과 양보를 받아낸 레이건 대통령은 못이기는 체하면서 신군부의 한국통치에 대하여 미국이 패권국으로서 일종의 정통성을 부여한 것이다.

그와 같은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김상진은 미국 대통령 레이건이 1983년에 마치 선심을 베푸는 것처럼 한국을 방문하는 것을 보고 있으니 속으로 기가 찬다. 사실 미국의 속셈이 무엇인지 뻔하게 알고 있는 그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는 한반도에서 남북한 사이에 아웅산 폭발사건을 두고서 전쟁이라도 벌이게 되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미군이 참전해야만 하기 때문에 그것을 예방하고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국민들은 한국의 안보를 지켜주고 있는 미국에 대하여 매우 고맙게 여기고 있다.

당시는 정통성이 약한 신군부가 미국의 인정을 받아서 한국을 무력으로 통치하고 있는 시대이다. 그러니 한국백성들은 부지런히 일하여 수출이익을 많이 얻어서 미국의 무기를 대량으로 사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것이 마치 한국의 안보를 대신 지켜주고 있는 미국에 대한 의리이며 도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쥐구멍에도 볕이 들 날이 있을 것이다. 미국이 어째서 자신들의 패권을 지키고자 하며 그 패권으로 말미암아 어떠한 이익을 전세계적으로 얻고 있는지를 한국의 백성들이 알게 되는 날이 이르게 될 것이다. 만약 한국국민들이 패권국의 그 막대한 이익을 위하여 자신들이 어떻게 동원이 되고 있는지를 지정학적으로 깨닫게 된다면 그 다음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는 것일까?...

그때에는 한국의 정부가 좀더 당당하게 국민들을 위하여 미국과 마주앉아 협상을 진행할 수가 있는 것일까?... 김상진은 그때가 아마도 자신이 떠나온 2020년 이후가 아닐까 하고 짐작해본다.

미국이 자신들의 패권에 도전하고 있는 신흥공업국 중국과 치열한 경쟁관계에 들어가는 그때 한국이 다소 발언권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김상진은 울적한 기분이 조금 풀리는 것 같다.

1984년이 되자 1월달에 김상진이 다니고 있는 경제신문사에서 정기인사를 단행한다. 지난 3년간 김상진의 회사선배로 동고동락하던 정치부의 성기수 기자가 갑자기 신문사 사장의 비서로 발령이 난다. 이제는 김상진이 혼자서 국회를 출입하고 때로는 청와대까지 출입해야 할 형편이다.

그러자 회사에서 수습이 막 끝난 신참을 한사람 김상진에게 붙여준다. 그 이름이 길순종이다. 흔치 아니한 성씨라 김상진이 물어본다; “그 옛날 공화당의 정치인 길재호길전식 의원을 생각나게 하는 성씨이군. 그들 정치인 집안과 관련이 있는가?... “.

그저 희귀한 성씨라서 한번 물어본 것인데 길순종이 친절하게 대답한다; “우리 해평 길씨는 본래 경북 구미 해평이 본관이지요. 그래서 때로는 구미 선산이라고 하여 선산 길씨라고도 부릅니다. 하지만 전부 조상이 같지요. 전국적으로 길씨가 4만명도 안되니 모두가 일가로 지냅니다. 그러니 저의 집안은 그 두분과도 남이 아니지요… “.

김상진이 충분히 알아들었다. 그래서 다시는 길순종에게 족보를 묻지 아니하고 있다. 길순종이 나이가 30이 안되었기에 김상진이 그를 후배로 삼아 데리고 다닌다. 그러다가 김상진이 2월 중순에 시간이 나서 오래간만에 사장 비서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성기수 선배를 찾아간다.

그때 두사람만 남아 있는 자리에서 성기수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상진아, 요즈음 국회분위기는 어때?... 지난 1월에 제1야당 유치송 총재가 연두기자회견에서 직선제 개헌을 주장하고 규제중인 정치인을 전면 해금하라고 촉구했지. 그리고 민한당 의원들은 제적당한 대학생을 전원 복교시키라고 요구하지 않았니?... “.

김상진이 즉시 대답한다; “며칠 전 21일에 한미간 합동군사훈련이 시작이 되었어요. 그 이름이 팀 스피리트인데 그것으로 정부여당은 일단 안보의 위기에서 벗어난 것으로 여기고 있지요. 그러니 이제는 자신감을 가지고 해금조치를 일부 할 것으로 보입니다… ”.

그 말을 듣자 성기수가 말한다; “나도 그렇게는 생각하고 있는데, 그 규모가 어느 정도될까?... “. 김상진이 그 점에 대해서는 미래지사이므로 함부로 대답할 수가 없다. 사실 김상진은 미래인 2020년에서 이곳 과거로 왔기에 그 내용을 벌써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발설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226일이 되자 전두환 대통령이 그에 대한 발표를 하고 있다; “김지하, 송건호 202명을 추가로 해금 조치한다”. 지난 19813월에 제5공화국이 시작되고 이제는 만 3년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국민화합과 민주화의 차원에서 서서히 정치인 규제를 풀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4월에 들어서자 6일날 황낙주, 이필선 등 해금정치인 20명이 제1야당인 민한당에 입당하고 있다. 바야흐로 야당의 힘이 강해지고 있다. 그러자 전두환 대통령이 6월에 갑자기 여당인 민정당의 지휘부를 군 출신 위주에서 상당히 민간인출신 위주로 바꾸고 있다. 그것은 내년에 있을 총선에 미리 대비하고자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당대표에 권익현 의원을 임명하고 사무총장에 이한동 의원을 발령하고 있다. 그것이 정치부 기자인 김상진이 보기에는 절묘한 인사로 보인다. 왜냐하면, 권익현은 본래 육사 11기 출신이지만 사회적으로 다른 경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권익현은 1974년에 대령으로 예편하여 삼성정밀에서 전무를 역임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그가 여당 총재인 전두환 대통령에 의하여  민정당의 새 대표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권익현 당대표가 내년의 총선을 위하여 재계의 협조를 은연중에 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한동 의원은 서울법대 출신으로 재학시절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판검사를 두루 거친 인물이다. 그에게 여당의 사무총장 자리를 맡긴 것은 민정당이 더 이상 군부의 정당이 아니라고 하는 의미를 크게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두환 대통령은 내년 총선에 대비하여 필승의 의지를 다지면서 미리 그 포석을 깔고 있다.

김상진은 그 정체가 이상우이다. 이상우는 2012년에 방송사기자생활에서 은퇴할 때까지 신물이 날 정도로 정계의 흐름을 살피고 분석한 베테랑이다. 그가 이제 시간이민을 와서 1984년 전반기에 발생하고 있는 정계의 흐름을 다시 취재하고 보니 그 감회가 남다르고 새로운 것이다.

한편 윤지혜는 남편과 함께 2020년에서 40년 전의 과거인 1980년으로 시간 이민을 와서 벌써 서울에서 4년째 살고 있다. 그녀가 남편 김상진과 살고 있는 동네가 2020년까지 그들이 살고 있던 안국동 저택과 크게 멀지가 아니하다. 이상우의 아내 윤성혜로 살고 있던 그녀가 1984년에는 벌써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낳아 기르고 있다.

그녀가 시간이민을 오기 전에 아들과 딸은 모두 성가를 하고 분가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 이상우와 호젓하게 안국동 집에서 살고 있었다. 이제 과거로 시간이민을 와서 다시 1984년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니 윤지혜는 불현듯 자신의 아들과 딸을 만나보고 싶다.

하지만 타임머신을 태워준 시간이민사의 직원 박창진의 말에 따르면, 윤지혜가 같은 1984년에 살고 있는 윤성혜의 가족을 만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보고 싶은 마음을 쉽게 접을 수가 없다.

그래서 윤지혜가 머뭇거리다가 결국은 자신이 살고 있던 그 골목을 찾아서 들어가본다. 이웃 골목인데 그곳으로 들어오는데 3년 이상이 걸린 셈이다. 그녀가 자신이 살던 저택의 대문을 살핀다. 그 문의 초인종을 누를 용기가 나지를 않는다; “만약에 나의 본체인 윤성혜를 이곳에서 만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

자신이 없다. 어떠한 상황이 발생할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가 조심스럽게 문틈으로 안을 살핀다. 그러자 마당에서 뛰놀고 있는 아들 이호진이 보인다. 속으로 그녀가 불러본다; “호진아, 어미가 여기 있다… “. 그때 현관을 열고서 딸아이를 안은 여인이 바깥으로 나온다. 한눈에 알 수가 있다. 윤성혜인 것이다.

화들짝 놀란 윤지혜가 얼른 대문간을 벗어나서 쏜살같이 이웃골목에 있는 자신의 작은 집으로 도망치고 만다. 가슴을 진정하려고 해도 방망이처럼 뛰고 있는 것을 쉽게 멈출 수가 없다. 그래서 속으로 생각한다; “잘 살고들 있으니, 그만 잊어버리자. 내가 오늘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그 골목 그 집으로 찾아간 것이야… “.

다음날 윤지혜는 종로에 있는 영어회화학원에 등록한다. 영어공부에 시간을 투자하고 학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안전할 것으로 생각이 되기 때문이다. ‘SDA학원에서는 영어회화를 잘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윤지혜는 그때부터 계속 영어공부에 매어 달리고 있다.

하지만 신문사 기자의 일이 바쁜 김상진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소형녹음기인 워커맨을 가지고 다니면서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 그러던 중에 하루는 사장 비서실에서 일하고 있는 성기수 선배가 그를 호출한다. 김상진이 무슨 일인가 궁금하여 즉시 윗층으로 올라가 본다.

성기수가 김상진을 보자 잠시 자리에 앉으라고 하면서 조용히 말한다; “상진아, 이번에 내가 사장님 내외분을 모시고 집사람과 함께 구라파로 출장을 가는데 네가 부인과 함께 나를 따라다니면서 좀 도와주어야 하겠다!... “.

이것이 무슨 뜬금이 없는 말인가?... ‘, 의아하여 김상진이 눈만 끔벅거리자 성기수가 슬쩍 웃으면서 친절하게 설명한다; “상진아, 사실은 우리 회사 방주일 사장님이 내 고모부이셔. 그리고 나의 고모인 성순혜 여사가 사장 부인이시지이번에 두 분이 부부동반으로 유럽에 가는데 우리 부부를 함께 가자고 말씀하셔그래서 내가 수행을 붙이자고 말했지… “.

처음 듣는 말이다. 그래서 김상진이 말한다; “무슨 말인지 이해는 되는데, 갑자기 듣는 말이라서 좀 당황스럽네성 선배님이 그렇게 든든한 배경이 있는 줄은 내가 전혀 몰랐는데… “. 그 말을 듣자 대뜸 성기수가 말한다; “상진아, 오해는 하지 말라구. 나도 당당하게 입사시험을 치르고 들어온 사람이니까!... 그리고 나도 상진이 네가 나온 그 명문대학출신이야… “.

그 말을 들은 김상진이 말한다; “내가 뭐 성선배가 자격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야. 아직 우리가 살고 있는 1984년은 해외여행이 그렇게 자유스럽지 아니한 시점인데 그러한 특혜를 우리 부부에게 준다고 하는 것이 신기해서 하는 말이지… “.

그러자 성기수가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한다; “그것은 지난 3년간 상진이 네가 회사에서 내 조수로 있으면서 성심성의껏 열심히 일했는데 내가 그 보답을 하나도 못해주어서 미안해서 그런 거야. 그러니 달리 생각하지 말고 우리 젊은 나이에 부부동반으로 유럽에 다녀오자구. 세상이 달라 보일 거야… “.

그 말을 듣자 김상진이 말한다; “성 선배, 고마워. 이렇게 마음을 써주다니내가 집사람에게 이야기하고서 그렇게 준비를 할께그러면 언제 출발하게 되는 거야?”. 성기수가 즉시 대답한다; “7월말이니까 아직 여유가 있어. 그러면… “.

성기수가 잠시 숨을 돌리고서 친절하게 말한다; “상진이 너는 그 동안에 부부로 여권을 만들도록 하고 내가 서류를 줄 테니까 필요한 비자를 받도록 하라구. 내가 여행스케줄을 줄 테니까… “. 그 말을 듣자 김상진이 말한다; “우리 부부는 여권을 가지고 있어. 그러니 필요한 나라에 대해서 비자만 받으면 되겠네… “.

성기수가 고개를 끄떡인다. 그들 부부는 이제 방 사장 부부를 모시고 성 선배 부부와 함께 유럽으로 가게 된다. 과연 그곳에서는 어떠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일까? 1984년 여름 그들의 여행이 어떠한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한국내에서는 어떠한 일들이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