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이민자(손진길 소설)

시간 이민자4(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0. 7. 8. 09:41

시간 이민자4(손진길 소설)

 

2. 다시 만난 신군부 시대

 

김상진이 근무하고 있는 신문사는 서울에서 발행되고 있는 일간지 경제신문이다. 그러므로 행정부 경제부처에 출입하거나 전경련 등의 주요 경제단체를 출입하는 기자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사실 그 신문사에서는 사회면을 많이 취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경제부처는 아니지만 권력기관인 국회와 청와대를 출입하는 기자들이 제법 있다. 그 가운데 김상진이 19816월이 되자 입사한지 6개월이 지나 벌써 수습을 마치고 이제는 국회와 정부청사를 출입하는 선배기자를 보조하는 위치가 된다.

김상진의 선임자는 성기수 기자인데 명문대 경제학과 출신이며 입사한지 벌써 7년이라고 한다. 나이는 김상진보다 한살이 더 많은 1951년생이다. 성기수 기자는 군대를 의가사로 반년만에 제대하고 곧바로 경제신문사에 입사했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사회진출이 빠르다.

김상진이 성기수를 따라다니면서 살펴보니 그는 경제분야보다는 오히려 정치 쪽에 더 밝다. 사실 정치분야의 취재라고 하면 김상진의 이력이 더 대단하다. 왜냐하면 그는 방송사기자를 역임하면서 30년 세월 동안 정치분야를 주로 다룬 베테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2020년을 살고 있던 이상우의 이력이다. 지금 김상진이라는 새로운 신분으로 1980년대로 시간이민을 와서 살고 있는 자신의 처지로서는 그러한 이민 전의 이력을 남에게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김상진은 꼬박꼬박 성기수를 선배님이라고 부르면서 그를 열심히 따라다니며 보조하고 있다.

19817월이 되자 성기수와 함께 국회에 들린 김상진은 출입기자실 복도에서 의외의 인물을 만나게 된다. 김상진은 그자가 대학 교양과정부에서 만난 친구 송일섭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민 전 이상우의 기억이다. 그래서 김상진은 새삼 반갑기는 하지만 그러한 내색을 할 수가 없다.

송일섭이 어떻게 기자도 아닌데 30세의 나이에 국회에 나타나고 있는 것인가? 궁금하여 김상진이 슬쩍 그에게 접근하여 말을 걸어본다; “실례입니다마는 이곳 국회의 직원이십니까?... “. 말을 하면서 그의 패찰을 보니 공무원증이 맞다. 그리고 이름도 송일섭이다.

반갑기는 하지만 모른 척을 하고서 김상진이 그의 대답을 기다린다. 혹시나 했던 것이 역시나이다; “그렇습니다. 저는 늦게 국회에 시험을 쳐서 들어왔지요. 지금은 경제관계 위원회에서 조사관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댁은 신문사 기자인 모양이군요?…”.

그 말을 듣자 김상진이 얼른 대답한다; “, 저는 김상진이라고 합니다. 경제신문사기자로 일하는데 이번에 국회에 출입하는 성기수 기자의 조수로 따라 나왔지요. 송 조사관님의 인상이 제가 아는 친구분과 비슷하여 한번 말을 걸어본 것입니다.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송일섭이 기분 좋게 말한다; “제가 평범한 인상이라 그런지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자기 친구와 닮았다고들 말합니다. 괜찮습니다. 나중에 한가하시면 제 사무실에 들리셔서 차라도 한잔 하시지요. 반갑습니다. 김상진 기자님… “.

그렇게 그저 모르는 척 하면서 자신의 옛날 친구를 만나고 있는 김상진이다. 어쩔 수가 없지 않는가? 자신이 40년의 시간을 거슬러서 이민을 온 이상우라고 그에게 밝힐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2020년을 살고 있는 미래의 사람들에게 말해도 곧이 들을 사람이 극히 드문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다.

게다가 김상진은 작년 10월에 자신을 이곳으로 데리고 온 시간이민자 회사의 직원인 박창진의 주의사항을 명심하고 있다; “일체 이민지에서 사람들의 운명과 역사에 관여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과거의 자신과 마주치는 일도 가급적 피해야 합니다. 물론 새로운 가족관계를 형성해서도 안됩니다. 꼭 기억해주세요… “.

박창진의 말을 그대로 따르게 되면 마치 죽은 사람과 같다. 잘해야 도깨비와 같은 인생이다. 어떻게 역사에 참여하지 아니하고 사람이 살아갈 수가 있는가?... 하지만 그렇게 되면 불이익이 따르게 된다고 박창진이 주의를 단단히 주었기에 그의 말을 따르지 아니할 수가 없다.

하지만 40년전의 친구를 만나게 되니 기분이 좋아진 김상진이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국회기자실에 들렀다가 시간이 나면 송일섭의 입법조사관실에 들러 차를 한잔 나누는 버릇이 생기고 있다. 그렇게 자주 만나게 되자 두사람은 동갑이라서 그런지 사회에서 만난 좋은 친구사이가 되고 있다.

그러다가 김상진이 우연히 송일섭으로부터 좋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김상진이 경제신문사의 기자인 것을 알고서 경제관계위원회에 조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송일섭이 기자인 김상진의 의견을 한번 물어본 것이다.

송일섭의 말이 다음과 같다; “요즈음 미국에서는 대외무역의 상대국에 대하여 보호무역의 철폐와 시장개방 등을 전세계적으로 요구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들의 요구에 불응하게 되면 미국의 통상법 제301조에 의거 불이익을 주겠다고 말하고 있어요… “.

잠시 말을 끊고서 송일섭이 김상진의 얼굴을 한번 쳐다본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나는 그것이 마치 대학원생이 국민학생과 일대일로 권투를 하자고 나서는 모양인 것만 같아서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데, 김형은 어떻게 생각해요?... “.

그 말을 듣자 김상진이 말한다; “그렇지요하지만 현실적으로 미국이 그렇게 나오니 미국에 수출을 많이 하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보통문제가 아니지요그 점에 대해서 우리 경제부 기자들도 나름대로 취재는 하고 있지만 뾰쪽한 해답이 없어 안타까운 심정이지요. 근본적으로 우리 경제가 미국을 맞상대할 정도로 빨리 성장하는 것이 상책이겠지요… “.  

그러한 회의적인 대답을 하면서도 김상진은 자신의 정체가 40년후인 2020년에서 과거로 시간이민을 온 자이기에 벌써 그 해답을 알고 있다. 21세기에 접어들어 한국이 전자산업을 선두로 하여 무서운 속도로 국제경쟁력을 키우기 시작한다. 그 결과 수개의 산업분야에 있어서는 미국이나 일본과 맞서서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김상진은 속 시원하게 그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다. 당시 1981년 상반기의 한국의 경제는 여전히 마이너스 성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그것이 한국의 재계는 물론 정권을 차지한 신군부의 고민이기도 하다.

그러한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기에 한국의 제11대 대통령에 취임한 전두환 장군이 1981년에 들어서자 미국을 공식방문한다. 그런데 미국의 정계에서 그 대접이 너무나 차갑다. 그래서 전 대통령 일행이 워싱턴DC가 있는 미국의 동부로 바로 가지를 못하고 로스앤젤레스가 있는 서부로 우선 들어가서 교민들부터 만나고 있는 처지이다.

그러한 미국정계의 냉대를 가리우기 위하여 미국을 방문하고 있는 전두환 대통령일행은 먼저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한국교민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모임부터 개최하고 있다고 대대적인 보도를 내보내고 있다. 그 다음에 전두환 대통령이 겨우 워싱턴 DC로 가서 198011월에 미국의 제40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된 공화당의 레이건 대통령을 만난 것이다.

그러한 불이익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미국의 대통령이 방문하지 아니하는 아프리카 오지의 나라들을 그곳의 풍토병인 말라리아에 대항하는 키니네를 복용하면서 1982년에 방문하고 있다. 한국의 수출을 도와 달라고 요청했더니 미국 쪽에서는 먼저 아프리카를 방문하고 그곳에서 수출의 활로를 찾아보라고 권유했기 때문이다.

정통성이 약한 전두환 정권은 어쩔 수가 없이 한국경제를 살리기 위하여 미국의 요구대로 그러한 오지 방문을 실천하고 있다. 한편, 19813월에는 개정된 헌법에 따라  역시 체육관에서 전두환 대통령을 다시금 간선으로 제12대 대통령으로 선출하는데 그 임기가 7년이며 단임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7년 임기를 제5공화국 헌법으로 보장받았기에 이제는 경제적 위기국면을 타개하기 위하여 행정부처와 재계에 분발을 촉구하고 있다. 그의 경제관계 가정교사가 당시 경제기획원 기획국장 출신인 김재익 경제수석이다. 그리고 정치가정교사는 국회의 전문위원 출신인 우병규 정무수석이다.

그런데 김상진과 송일섭이 암울한 1981년을 보내고 있는 중에 참으로 이상한 현상이 국외에서 발생하고 있다. 그것이 최초의 3저 현상이다. 갑자기 유가를 비롯한 국제적인 원자재가격이 하락하고 있다. 그리고 차관의 이자율이 떨어지고 있다. 더구나 미국의 달러화가 약해지면서 일본의 엔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비록 외생적인 여건의 변화이지만 한국의 수출확대를 위해서는 더할 수 없는 청신호이다. 한국의 수출 경쟁국인 일본은 엔고로 말미암아 한국과의 경쟁에서 크게 밀리고 있다. 한국의 수출산업은 첫째, 저유가 및 저가의 원자재 수입, 둘째, 저 금리, 셋째, 저 달러화의 도움으로 인하여 충분한 가격경쟁력을 얻고 있다.

그 결과 1981년의 한국경제는 전년 대비 마이너스 1.7%에서 출발하여 플러스  7.2%를 기록하게 된다. 그와 같은 기적을 바라보면서 송일섭 조사관이 속으로 말한다; “전두환 정권이 행운을 얻고 있구나.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수출여건의 굉장한 호조가 외생적으로 주어지다니아무튼 한국백성들에게 다행스러운 일이다… “.

하지만 말을 꺼내지 않아서 그렇지 김상진 기자는 그러한 일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벌써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기적이 발생하고 있는 현장에 다시 서게 되니 나름대로 감회가 새롭다.

그래서 1981 11월에 김상진이 부인인 윤지혜에게 말한다; “우리가 젊은 시절에 한번 경험했던 일을 이제 다시 지금의 환경으로 만나게 되니 새삼스럽네요. 그래도 올해 1981년에 한국경제가 되살아난 것은 다시 경험해보아도 참으로 행운이군요새삼 감격스럽습니다… “.

그 말을 듣자 윤지혜가 말한다; “그건 그래요. 시장을 가보아도 상인들이 활기가 없다가 요즘은 다시 생기가 돌고 있답니다. 소위 장바구니 경제가 좋은 거지요. 그러니 일단은 나라경제가 잘 돌아가고 경제성장이 계속되어야 하는 거예요. 그것이 국민의 지지를 얻게 되는 첩경이지요. 정치적인 정통성도 중요하지만 일단은 국민들이 먹고 사는데 도움이 되어야 진정으로 좋은 정권이지요… “.

그것도 말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김상진이 조용히 웃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적인 움직임에 민감한 김상진이 기자의 촉감으로 벌써 3가지 사실을 깊이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가 다시 만난 세상에서 재삼 경험하고 있는 1981년의 3가지 사건이 그의 마음속에 잔잔한 여운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첫째가, 19813월에 출범하고 있는 제5공화국의 체제이다. 국민투표에 의하여 제5공화국 헌법이 통과되고 7년 임기의 대통령으로 전두환 단일후보가 33일 체육관투표에서 간선으로 선출된다.

그리고 총선을 통하여 제11대 국회가 구성이 되고 있다. 1당이 민정당인데 276석 가운데 151석으로 과반수이다. 그리고 제1야당이 민한당이고 제2야당이 국민당이다. 하지만 그들을 언론에서 신군부의 제1중, 2중, 3중대라고 비하하여 부르고 있다.

그 의미는 국회가 전두환의 행정부를 감독하고 견제할 수 있는 권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래에서 입법부의 행색만 갖추어 주고 있는 시녀이며 하부구조에 불과하다는 비아냥인 것이다.

그렇지만 거년의 입법회의와 비교하면 훨씬 민주적인 시스템이다. 김상진은 그렇게 생각하고서 그 다음 제12대 총선을 지켜보고자 한다. 더구나 6년후가 되면 전두환 대통령의 임기가 만료될 것이고 제13대 대통령선거를 둘러싸고서 새로운 변화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가, 그해 5월에 여의도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풍운동이다. 지난해 5월에 신군부는 광주의 민주화 시민운동을 총칼로 무자비하게 진압하였다. 이제 그 1주년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므로 국민의 관심을 광주에서 서울 한복판으로 돌리고자 한다. 그 비상한 카드가 무엇일까?...

그 방면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인물이 전두환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는 허문도 정무비서관이다. 당시 언론통폐합이라는 칼을 그가 휘두르고 있기에 기자출신인 허문도를 언론사들이 두려워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방송공사(KBS)가 앞장서서 국풍 81행사를 여의도광장에서 개최하고 있다. 전국 8도의 전통적인 구경거리와 먹거리를 총동원하여 한마당의 축제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구경하느라고 국민들의 귀와 눈이 여의도광장으로 쏠리고 있다. 그 정치적인 효과가 생각보다 좋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허문도 비서관의 앞길이 환해지고 있는 것이다.  

셋째가, 1981930일 서독의 바덴바덴에서 열린 올림픽위원회 회의에서 선포가 된 88서울올림픽 개최에 대한 최종결정이다. 작년에 전두환 대통령이 1988년 제24회 하계올림픽을 서울에서 개최하자고 밀어붙일 때에는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러한 거대한 국제행사를 한국이 유치하게 된 것일까? 김상진은 그 스토리를 벌써 알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40년후의 미래에서 이민온 사람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시간이민자가 아닌 사람들은 서울올림픽 유치의 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주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