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이민자(손진길 소설)

시간 이민자3(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0. 7. 7. 10:12

시간 이민자3(손진길 소설)

 

박창진이 주고간 주민등록증을 살펴보니 이상우의 이름은 김상진으로, 그리고 윤성혜의 이름은 윤지혜로 바뀌어 있다. 그 새이름이 두사람은 마음에 든다. 그리고 안국동의 집은 같은 동네에 있는 다른 골목의 집이다. 별로 크지가 않아서 두사람이 신접살림을 하기에 적합하다.

김상진과 윤지혜는 29세와 27세의 젊은 용모를 다시 가지게 되어서 거울을 보면 기분이 좋다. 하지만 그들의 내적인 모습은 그것이 아니다. 그렇게 외모와 똑같이 젊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일종의 절충형이다. 그래서 40년의 과거로 이민을 왔지만 두사람의 몸은 각각 그 중간지점인 20년전의 몸과 같다. 따라서 49세와 47세의 몸인 것이다.

요컨대, 외모는 40년 전으로 젊어 있지만 신체 자체는 그 절반의 젊음만을 회복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2020년의 최신 의학기술로도 신체 자체는 그 정도로 젊게 만들 수밖에 없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두사람은 69세와 67세의 몸을 가지고 살고 있다가 이제 49세와 47세의 몸을 가지게 되었으니 그것을 흡족하게 여기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한국에서 69년과 67년을 살아온 경륜과 기억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그것이 큰 자산인 것이다. 한마디로, 히브리경전에서 말하고 있는 선지자나 선견자와 같은 입장이다. 따라서 두사람의 이민생활은 어떻게 생각하면 신이나는 것이다.

한편 1980103일의 서울 안국동에서 이제 김상진이 된 이상우와 윤지혜가 된 윤성혜가 겪고 있는 일상은 2020년의 그날과 크게 변함이 없다. 다만 큰 차이가 두가지 있기는 하다; 하나는, 그들 부부의 슬하에 아들과 딸이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정권이 다르다는 것이다. 2020년의 문재인 정권이 아니라 지금은 전두환 정권의 시절이다.  

사실 두사람은 7시간 가까이 타임머신을 타고 있으면서 첫째의 문제와 관련하여 벌써 박창진에게 물어보았다; “우리 부부가 40년전으로 돌아가게 되면 다시 자녀를 가질 수가 있는 것이요?... “. 대답이 부정적이다; “그것은 사람의 운명과 가족관계를 바꾸게 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항목입니다. 자녀가 생기지 아니할 것입니다”.

두번째 항목 곧 한국을 다스리고 있는 정권이 다르다고 하는 사실을 198010월달에 김상진과 윤지혜가 서울 안국동에서 살아가면서 크게 실감하고 있다. 그들이 새삼 체험하고 있는 내용이 다음과 같다;

첫째로, 5달 전인 19805월에 광주에서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마침내 한국의 신군부가 전면에 나서서 군사력으로 광주를 점령하고 만다. 그 결과 신군부가 득세하게 되고 그 앞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서는 정치인 및 재야인사들은 점차 입을 다물게 된다.

그것을 보고서 국가보위입법회의 상임위원장이라고 하는 일종의 치외법권적인 지위를 임시로 누리고 있던 전두환 장군이 19809월에 기어코 체육관선거를 통하여 한국의 제11대 대통령이 되고 만다.

둘째로, 하지만 신군부의 뜻대로 되지 아니하는 것이 한국경제의 추락이다. 1980년은 1960년대에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시행한 이후 처음으로 맞이하고 있는 마이너스 성장의 해이다.

어떤 비상한 대책이 없으면 경제추락이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그러므로 국민들은 정치적 민주화의 후퇴와 경제적 퇴보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과연 신군부의 정권은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모두가 숨을 죽이고 한국의 장래를 걱정하고 있다.

그와 같은 시대로 이민을 온 김상진윤지혜 부부는 202010월에 비하여 현저하게 암울한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하지만 단 한가지 기쁨이 있다. 그것은 정년퇴직을 하고 실업자로 지내고 있던 2020년이 아니라 이제는 무엇인가 새로운 일을 할 수가 있는 젊은 날의 1980년을 그들 부부가 다시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무슨 일을 다시 시작할 수가 있을까? 안국동의 작은 집에서 김상진과 윤지혜 부부는 그 일을 다각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그래서 한참 의논을 하던 중에 김상진이 자신의 견해 하나를 밝히고자 한다.

김상진이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부인에게 말한다; “박창진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남의 운명을 바꾸지 못하고 또한 역사를 바꾸는 일에 관여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경제적인 활동 곧 재물을 버는 일에 국한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 방면으로 한번 지혜를 모아보는 것이 어떨까요?... “.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윤지혜가 대답을 겸하여 질문한다; “좋습니다. 그러면 어디의 땅을 사게 되면 훗날을 기약할 수가 있을까요?... “. 김상진이 즉시 대답한다; “지금 한창 서울 강남의 중심부가 개발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변두리를 사는 것이 좋지요… “.

윤지혜가 다시 묻는다; “구체적으로 어디를 마음에 두고 있습니까?”. 그 말을 듣자 김상진이 싱긋 웃으면서 대답한다; “당연히 대치동 남쪽에 있는 일원동이거나 그 동편에 있는 가락동 그리고 더 동쪽에 있는 고덕동이나 명일동 쪽이 되겠지요… “.

김상진이 잠시 부인의 얼굴을 보더니 다음과 같이 부연설명을 한다; “내가 1970년대 초반 대학시절에 가나안 농군학교로 가기 위하여 고덕동과 명일동을 지나간 적이 있어요.  당시 그곳은 온통 밭이었어요. 그러니 땅값이 아직 싸다고 보아야지요… “.

그 말을 듣자 윤지혜가 고개를 크게 끄떡인다. 그래서 부부는 다음날 고덕동과 명일동 방면으로 가본다. 역시 김상진의 견해가 맞다. 그래서 그들 부부는 자신들이 가진 돈으로 넓은 밭을 그곳에 많이 장만할 수가 있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그 매물을 소개한 복덕방을 통하여 그 넓은 밭을 관리해줄 현지인을 소개받는다. 그 관리인이 그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천호준이다. 40대 후반인 천씨는 사람이 성실해 보인다. 그래서 김상진과 윤지혜 부부는 천씨에게  자신들이 구매한 넓은 밭을 전부 관리해 달라고 맡기고 있다.

일단 장기적인 투자는 끝났다. 이제는 서울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김상진이 자신에게 익숙한 기자일을 알아보고 있다. 그는 그 옛날 이상우가 아니다. 완전히 신분이 세탁되어 있다. 따라서 김상진이라는 새로운 신분으로 주요일간신문의 기자시험을 보고서 취업하게 된다.

김상진이 다시 초보기자가 되어 사회부문의 취재를 맡게 된다. 그는 여러 경찰서를 순회하면서 기사감을 찾고 있다. 그러던 그에게 1980년이 가기 전에 특종이 하나 포착이 되고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김상진 부부는 본래 기독교인이다. 양가의 어른들이 모두 교회의 장로와 권사들이었기에 그들 부부가 모태신앙을 가지고 있다. 환언하면, 뱃속에서부터 기독교인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 부부가 2020년에서 1980년으로 40년을 과거로 거슬러와서 소위 시간이민자가 되었다고 하지만 교회를 찾아가서 주일예배를 보고 또한 주일학교 교사로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29세의 김상진이 열심히 주일날 중고등부 학생들을 가르치는 성경선생으로 봉사하고 있을 때에 친구가 한사람 생기고 있다. 동년배인 박선우라고 하는 인물인데 그 자가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상당히 깊숙하게 관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상진은 다시 얻은 직업이 신문사기자이다 보니 때때로 박선우와 어울리면서 그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그래서 그런지 민주화세력이 자꾸만 약화가 되어 친구가 별로 없던 박선우가 김상진을 아주 동지처럼 여기고 잘 대해주고 있다.

때로는 박선우가 고급정보를 김상진에게 전해주기도 한다. 그 가운데 한번은 김상진이 잊을 수가 없는 이야기를 박선우가 말해준다; “여보게 김형, 나는 이제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절망을 느끼고 있어. 더 이상 내가 이곳 서울에서 버티고 있을 힘이 없어. 그래서 나는 이곳을 떠나 아예 미국으로 들어가고자 하네… “.

그 말을 듣자 김상진은 그가 어째서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여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박형,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는 것으로 보이던데 어째서 이제는 그렇게 단념하고 있는가? 한국의 미래가 그렇게 어두운가?... “.

박선우가 한참 김상진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러더니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다; “내가 은밀하게 최근에 얻은 정보가 하나 있어. 그 내용은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것이야. 미국측은 광주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한국의 민주화세력과 전두환 대통령이 앞장서고 있는 신군부 가운데 진작부터 신군부의 손을 들어주었다고 하는 정보야… “.

김상진이 놀라서 묻는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 자유자본주의의 수호자라고 하는 미국이 어째서 박대통령에 이어서 한국의 신군부의 손을 다시 들어주고 있지? 그것 잘못된 정보가 아닌가?... “. 그 말을 듣자 박선우가 고개를 가로 젖는다.

그리고 그가 말한다; “정확한 정보일세. 그 상세한 내용인즉, 지난 5월달에 광주사태가 신군부의 작전으로 비참하게 막을 내리고 말자, 미국측은 소련측과 이미 협의를 끝내고 앞으로 10년 동안 한국의 신군부가 한국의 정치를 이끌어가도록 허용하기로 했다는 거야. 그 결과 지난 9월에 전두환 장군이 당당하게 대통령직을 맡게 된 것이지.그러니 앞으로 그렇게 한국의 역사가 진행될 것으로 나는 보고 있네… “.

김상진이 깜짝 놀란다. 그래서 급히 되묻는다; “여보게 박 선생, 그것이 정말인가? 그렇다면, 앞으로 10년 동안은 한국의 민주화를 부르짖던 대학가와 재야인사들이 모두 주눅이 들고 실패만을 맛보게 된다는 말이 아닌가? 그것이 과연 그럴까?... “.

완전히 믿지 못하고 있는 김상진을 뻔히 보더니 박선우가 딱 한마디만 한다; “앞으로 10년 세월을 서울에서 한번 살아보시게나. 그때에는 내 정보가 사실인지 아닌지 알게 될 것이야. 어쨌든 나는 희망이 없는 한국 땅을 떠나서 이제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정치적인 자유를 누리면서 살고자 하네. 그러니 부디 건강하게 잘 지내시게나… “.

사실 김상진이 교회에서 박선우와 알고 지낸지 그렇게 오래지는 아니하다. 그저 두 달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에 박선우가 김상진을 좋게 본 모양이다. 마치 1970년대의 대학가의 운동권 동지처럼 보고서 고급정보를 심심치 않게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일이 있고나서 그 다음주일부터 교회에서 박선우를 볼 수가 없다. 그래서 김상진이 수소문을 해보았더니 그의 말과 같이 노총각인 그가 그만 미국으로 들어가고 말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의 집안에 미국에서 살고 있는 아주 가까운 친척이 있는 모양이라고들 말하고 있다.

그때부터 사회부기자인 김상진이 미국의 군부와 정치인들이 어째서 한국의 민주화세력들보다 군부세력을 더 신뢰하고 또한 지지를 보내고 있는지 그 점을 깊이 생각하게 된다. 당시는 미국의 인권과 민주화 운동의 전도사라고 불리고 있는 카터 대통령의 집권시기이다.

그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미국의 우방이라고 하더라도 인권을 탄압하며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독재자가 집권하고 있는 경우에는 미국은 그 정권을 지지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 이유는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가 그들 독재자를 지지하여 미국이 얻는 이익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순진한 김상진 기자이다. 그런데 지금의 미국의 정책은 그의 신뢰를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깊이 생각한다; “어째서 미국이 한국의 신군부를 지지할 수밖에 없는가? 그들을 앞에 내세워서 한국을 통치하면 훨씬 편하고 쉽기 때문인가? 그들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게 되면 한국의 안보가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인가?... “.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아닌 것만 같다. 그래서 김상진은 1980년이 저물도록 그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는 이미 2020년까지 한국에서 살다가 1980년으로 시간이민을 온 인물이다. 자연히 체험적으로 그 다음 40년 동안의 한국역사와 국제관계를 상당히 많이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상진 그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 그 의문을 풀지 못한 채 김상진이 새해 1981년을 서울 안국동에서 맞이하고 만다. 이제 새해에는 어떠한 일들을 김상진과 윤지혜 부부가 마주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