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이민자(손진길 소설)

시간 이민자14(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0. 7. 18. 07:01

시간 이민자14(손진길 소설)

 

김상진 기자는 정국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안목이 있다고 자신이 다니고 있는 경제신문사에서 정평이 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입사한지 6년만에 차장 대우를 받고 있다. 그리고 그가 작성하고 있는 정치논평이 인기가 있으며 영향력도 상당하다.

경제신문에 실리고 있는 김상진 차장의 정국을 보는 눈이라는 고정칼럼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김상진 차장이 일주일에 한번 정도 그 칼럼에 글을 쓰고 있는데 그것을 빠지지 아니하고 읽어보고 있는 상관이 신문사 내에 두 사람 있다.

한사람은 신문사에서 만난 성기수 선배이다. 그는 사장 비서실장 근무를 끝내고 이제는 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그가 김상진 차장의 정국을 보는 안목에 반해서 매주 고정적으로 정치칼럼에 글을 올리라고 강권한 것이다.

김상진의 입장에서는 그 칼럼에 글을 쓰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미래의 서울 2020년에서 과거인 1980년대의 서울로 시간이민을 온 이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한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니 1980년대 한국의 정국의 흐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또 한사람은 편집국장인 성기수 기자의 고모부이며 신문사의 사장인 방주일이다. 이제 60세가 넘은 방주일 사장은 자신의 은퇴를 생각하면서 젊은 후배들에게 관심을 많이 두고 있다. 앞으로 자신이 키운 경제신문을 그들이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하기 때문이다.

한국사람들은 먹고 사는 경제문제에 민감하지만 그 이상으로 정치적인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특히 신군부의 세력이 민주주의 세력과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는 1980년대 중반이니 시기적으로 더욱 그러한 것이다. 그와 같은 시절에 김상진 차장과 같은 인물이 고정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니 독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하루는 사장실에서 김상진 차장을 찾고 있다. 국회의 기자실을 다녀온 김상진이 급히 연락을 받고 사장실로 찾아간다. 방으로 들어서는 김차장을 보면서 방사장이 부드럽게 말한다; “차나 한잔 나누면서 정국의 흐름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내가 불렀어요… “.

그 말을 듣자 김상진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자리에 앉는다. 비서아가씨가 가까이 와서 김상진에게 커피와 녹차 가운데 무엇을 마실 것인지를 물어본다. 자신은 녹차가 좋다고 말했더니 두 잔을 가지고 온다. 방사장이 녹차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서 김상진이 일부러 동일한 것을 주문한 것이다.

뜨거운 차를 식혀가면서 천천히 마신다. 그 사이에 방사장이 김상진에게 묻는다; “금년 6월 중순에 들어오자 대규모로 반정부시위가 발생하고 있어요. 먼저 그 원인을 김차장은 어떻게 짚어보고 있나요?... “.

그렇게 물어보고 있는 이유는 지난 4월에 전두환 대통령이 호헌조치를 발표했는데 그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시위인지 아니면 또 다른 요인이 결부되어 있는지를 알고 싶어서 묻고 있는 것이다. 평생을 경제신문사를 키워오고 있는 원숙한 방사장의 질문이다.

그래서 김상진이 자신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차분하게 말한다; “전두환 대통령이 내년에 88서울올림픽이 있으므로 그에 대비하기 위하여 금년에 새 대통령을 조용하게 현행 헌법에 의거 체육관에서 간선으로 선출하는 것이 좋겠다고 선언한 그것이 직접적인 요인인 것은 틀림이 없지요. 하지만 저는 다른 요인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방사장이 궁금하여 즉시 질문한다; “다른 요인이 결부가 되고 있다고 하면 그것이 무엇이지요?... “. 김상진이 천천히 대답한다; “첫째로, 이번 시위에 적극 나서고 있는 자들은 역시 대학생들입니다. 그들이 그 어느 때보다 결사적으로 대정부시위에 나서고 있는 이유는 데모를 하던 자신들의 친구가 신군부 정권에 의하여 끌려가고 심지어는 고문을 당해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1월에 발생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대표적이지요. 그리고… “.

또 다른 요인이 있다는 말인가?... ‘, 궁금하여 방사장이 귀를 기울이자 김상진의 설명이 계속된다; “둘째로, 시민들이 대학생들의 반정부시위에 가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대학생이 고문을 당해서 죽었다고 하는 사실에도 격분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에는 지난 3월에 발생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과 같은 사회적인 이슈에 대하여 분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

잠시 숨을 쉬고서 김상진이 이어서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신군부는 집권의 정통성을 얻기 위하여 폭력배를 소탕하고 삼청교육을 실시했으며 더구나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과 같은 국제적인 행사를 치루기 위하여 부랑인들을 잡아 가두었습니다. 그들을 가혹하게 다룬 결과 형제복지원사건이 터져 나온 것이지요. 수백명이 구타를 당하고 죽었다고 하니 시민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

방사장이 경청하는 모습을 보고서 김상진이 마지막으로 중요한 한 대목을 말하고자 한다; “셋째로, 3김씨를 위시한 민주세력들이 대통령을 간선으로 선출한다고 하는 것은 더 이상 용납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제도는 사실 일당독재사회에서 주석이나 총통을 간편하게 뽑는 방법에 불과하지요. 민주사회에서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방식은 전세계적으로 국민들의 직접 비밀 선거입니다. 더구나… “.

김상진이 말을 하다가 잠시 뜸을 들이고 있다. 정말 중요한 대목이기 때문이다. 그가 천천히 말한다; “체육관선거를 하게 되면 신군부의 뜻대로 후계자가 결정되고 그자가 대통령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평생 대통령 한번 해보겠다고 민주화투쟁을 벌이고 있는 3김씨에게는 기회가 사라지고 말지요. 그러니 이번의 6월 반정부시위는 그 규모가 크고 결사적인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방주일 사장이 한가지를 더 묻는다; “그렇게 가두에서 서로 힘겨루기를 하게 되면 누가 이길까요? 물리적인 경찰력과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신군부가 이길까요? 아니면 학생과 민주세력이 이길까요?... “.

그 말을 들은 김상진이 미소를 띄면서 말한다; “대세는 전자가 아니고 후자입니다 그 이유가 세가지나 되지요. 첫째, 내년에 서울에서 올림픽이 개최되기에 강제적인 진압이 어렵지요. 둘째, 군을 동원하여 진압하게 되면 또다른 쿠데타를 만날 수가 있습니다. 셋째, 신군부의 지도자인 전두환 대통령이 금년말에 후임자가 결정되면 내년초에 물러나게 됩니다. 그러니 누가 퇴임하는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하겠습니까?... “.

김상진은 그 정체가 이상우이다. 서울에서 2020년까지 살아본 경험이 있는 자이다. 그러한 시간이민자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서 현재의 정국을 미래의 시선으로 풀어가고 있다. 그것도 인과관계를 짚어가면서 미래에 대한 합리적인 추론을 결부하여 쉽게 설명하고 있으니 방사장이 이해하기가 참으로 편하다.

그래서 방주일 사장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면서 말한다; “그래요, 김차장의 견해가 나의 생각과 별로 틀리지가 않아요. 나도 그렇게 금년의 정국이 흘러갈 것으로 보고 있어요. 그렇지만 나보다는 김차장의 논리전개가 아주 이해하기가 쉽고 그 설명이 명쾌하군요. 앞으로도 종종 부를 것이니 좋은 말씀 부탁합니다, 김 차장… “.

3년전인 19847월에 함께 유럽여행을 다녀온 이후 방주일 사장은 김상진을 많이 아끼고 있다. 젊은 사람이 나이에 걸맞지 아니하게 아는 것이 많고 그 식견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면 마치 비슷한 경륜을 지닌 친구를 만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 방사장이 자기도 모르게 김차장을 친근하게 대하고 있는 모양이다.

사실 그것은 방사장이 김상진이야 말로 미래에서 과거로 시간이민을 온 인물이라는 사실을 몰라서 그런 것이다. 나이로 따지면 그 정체가 이상우김상진이 더 오래 산 셈이다. 물론 1987년 현재의 시점으로 보자면 방사장이 연상이다. 하지만 미래의 시간대까지 살다가 온 이상우의 기억을 김상진이 모두 가지고 있으니 전체적으로 그 경륜이 더 높고 심오한 것이다.

김상진의 말 그대로 1987년 후반기의 정국이 다음과 같이 흘러가고 있다;

첫째로, 전두환 대통령이 과감하게 ’4.13호헌 선언을 하고서 일사천리로 민정당 대표인 노태우를 대통령 후보로 610일에 지명한다. 신군부가 이제는 자체내에서 권력승계를 준비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같은 날 610일 서울에서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발생하고 만다.

그대로 있다가는 신군부 인사들이 계속 돌아가면서 체육관선거를 통하여 대통령이 되고 한국의 최고권력을 완전히 장악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열망하고 있는 국민들이 대학생들의 반정부시위에 가담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직선제 대통령이 되는 것이 곧 한국의 민주화라고 굳게 믿고 있는 양 김씨가 그 앞장을 서고 있다.

둘째로, 경찰력으로는 도저히 격렬한 반정부 민주화시위를 막을 수가 없다. 이제는 전두환 대통령과 신군부가 군대를 동원하여 시위를 진압해야 할 차례이다. 그때 그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지고 만다. 자신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197912월부터 계산하면 벌써 7년 이상의 세월이 지났기 때문이다.

이제 군부에는 자신들의 동기나 전우애를 함께 나누고 있는 후배가 없다. 하나회의 사조직이 군부에 남아있지만 기수의 차이가 많이 나기에 그들의 속마음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잘못 그들을 동원하게 되면 권력은 한참 후배들에게 돌아가고 말 공산이 크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의 안위를 보장할 수가 없게 되고 만다.

그 결과 전두환 대통령과 그의 동기들이 결단을 내린다. 비록 모험적이기는 하지만 노태우 후보를 민주화의 영웅으로 만들어 정권을 쟁취하자는 것이다. 전격적으로 직선제개헌을 수용하게 되면 서로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욕심 때문에 양 김씨가 결별을 선언하고 동시에 출마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야당이 두개로 분열을 일으키게 되면 하나인 여당이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할 확률이 높다. 충분히 모험할 만한 가치가 있다. 승리할 가능성이 크기에 신군부의 핵심인 육사 11기 출신들이 그 비밀작전을 실시한다. 그 결과 놀랍게도 그 계책이 멋지게 성공하고 있다.

셋째로, 1987629일에 노태우 후보가 소위 6.29선언을 하면서 자신은 체육관 선거가 아니라 직선제선거를 통하여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한다. 이제는 직선제 개헌을 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극적인 선언을 하고서 마치 구국의 영웅처럼 노태우 후보가 국립묘지에 참배하고 민주화의 투사처럼 행동하기를 시작한다.

그에 발맞추어 전두환 대통령은 민정당 총재자리에서 물러나고 85일에 노태우 대표가 총재로 취임한다. 그들이 하고 있는 일들이 정말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역사 가운데 살아남기 위한 방책인 것일까? 그 여부를 추적하고 또한 훗날을 대비하기 위하여 대학생들이 전국적인 조직을 하나 만들고 있다. 그것이 819일 전국 95개 대학생 대표들이 충남대학교에 모여서 결성한 전대협곧 전국대학생 대표자협의회인 것이다.  

넷째로, 8월에 여당인 민정당과 야당인 통일민주당에서 선출한 8명의 대표들이 협상을 한 결과 개헌안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10월에 대통령직선제와 임기를 5년 단임으로 하는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공포가 된다. 그러한 와중에 서로 대통령 후보가 되겠다고 갈등을 일으킨 양 김씨가 9월에 갈라서고 만다.

그 결과 1216일에 실시가 된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양 김씨가 노태우 후보에게 참패를 당하고 마는 것이다. 겉으로 보면, 야권분열에 따른 어부지리로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굉장한 정치 공학적인 계산이 숨어있다. 치밀한 표계산과 양 김씨의 정치행태를 분석한 자료를 가지고 일대 모험을 감행한 결과 대선에서 신군부 세력이 승리한 것이다. 

한 마디로, 민주화를 부르짖고 있는 야당 정치인들과 재야 인사들은 아직도 정치의 수준이 주먹구구식이다. 그와 달리 정부여당은 치밀하고 조직적이다. 그러므로 야권이 패배를 당한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 점을 추적하는 것이 신문사의 정치부 차장인 김상진의 역할이다. 그런데 그는 그 사이 1987년에 국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두가지 사건을 취재하여 보도하고 있다. 참고로,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두가지 사건이 다음과 같다;

첫째는, 6월에 미국대통령 레이건이 서독의 베를린을 방문하여 이 장벽을 허무세요’(tear down this wall!)라는 명연설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9월에는 동독의 호네커 서기장이 처음으로 서독을 방문하고 있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 김상진은 벌써 미래의 대사건을 알고 있다. 1989년 11월에 베를린장벽이 실제로 허물어지고 마는 것이다.

둘째는, 11월에 대한항공 858편이 폭파를 당하고 승객 115명이 전원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하고 있다. 그 배후가 북한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것은 한국의 민주화와 상관없이 안보적인 위협이 북한에서 계속 오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민주한국이 어떻게 북한공산세력에 맞서야 하는가?하는 것이 여전히 남아 있는 가장 큰 숙제인 것이다.

그렇게 김상진이 취재를 하면서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사이에 1987년이 지나가고 있다. 이제 서울올림픽이 열리는 1988년은 어떠한 모습으로 김상진 부부에게 다가오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