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이민자(손진길 소설)

시간 이민자22(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0. 7. 28. 08:08

시간 이민자22(손진길 소설)

 

5. 민주투사 김영삼 대통령의 저력

 

김상진은 해외소식을 다루면서 재작년 1991년말에 소련이 사라지고 그 모든 권한을 국제연합의 결의에 따라 러시아연방이 대신하게 된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소비에트연방인 소련과 러시아민족이 중심이 된 연방국가인 러시아연방은 근본적으로 큰 차이를 하나 지니고 있다.

그것은 소련은 소비에트가 중심이 된 연방국가라는 의미이고 러시아연방은 러시아민족이 중심이 된 연방국가라는 것이다. 소비에트는 막스 레닌주의에 따라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켜서 구성이 되는 새로운 정치적 경제적인 특이한 시스템을 말하고 있다.

소비에트는 마치 1789년의 프랑스시민혁명의 정신처럼 민족을 뛰어넘는 이념적인 세계적 개방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어느 민족이거나 상관없이 공산주의 혁명노선을 따르고자 하면 그 식민지독립전쟁에 소련이 원조를 하게 된다.

그것이 1917년에 발생한 러시아혁명을 무효로 만들고자 하는 주변국들의 도전을 물리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역사적으로 18세기 후반 프랑스시민혁명 이후 발생하는 주변국들의 왕정복고요구를 물리치기 위하여 프랑스가 민족주의를 뛰어넘어 국제주의 시민혁명사상을 부르짖은 것과 같다.

그래서 소련의 독재자인 스탈린은 제국주의의 침략에 시달리고 있는 주변 식민지국가의 민족독립군들에게 군자금의 지원을 많이 했다. 세계 제2차 대전으로 말미암아 유럽의 제국주의국가들이 황폐하게 되자 스탈린은 재빨리 동구와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공산주의 정권을 세우도록 원조를 계속한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 대영제국의 뒤를 잇게 된 미국이 소련과 중공이 앞장서고 있는 공산진영에 대하여 1950년대부터 대전략 봉쇄정책을 펼친 것이다. 동시에 경제적 군사적인 체제경쟁을 시작한다. 그것이 기나긴 양진영의 냉전의 시대이다. 그 결과 산업생산력이 크게 뒤떨어지는 소련이 재정적으로 파탄이 나고 만 것이다.

1990년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소련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의 수가 결코 미국보다 적지가 않다. 오히려 그 수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핵무기를 전혀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소련은 경제가 파탄이 되고 1991년말에는 소련연방마저 지상에서 사라지고 만 것이다.

어쨌든 1990년대에 접어들자 소련의 경제가 파탄이 나고 주변국에 대한 원조가 끊기고 만다. 그러자 재빨리 동구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소련에서 떨어져 나가기를 시작하고 1991년에는 소련 연방내의 주변국들이 독립을 선언하게 된다.

그 뿐만이 아니다. 19916월이 되자 여전히 공산주의체제를 지니고 있는 다민족국가인 유고슬라비아와 체코슬로바키아 등에서 2차적인 민족독립이 발생하고 있다. 결국에는 유고슬라비아가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코소보, 마케도니아 등 7개의 국가로 쪼개어지고 만다.

그 뒤를 이어 1993년 정초에는 체코슬로바키아가 공업국인 서쪽의 체코와 농업국인 동쪽의 슬로바키아로 쪼개어지고 만다. 지역별 소득수준으로 보면 체코가 슬로바키아보다는 부유하다. 그러므로 슬로바키아가 독립을 하기는 했지만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것은 그 옛날 파키스탄이 인구는 많고 소득수준이 뒤떨어지는 동파키스탄을 떼어버린 경우와 흡사하다. 오늘날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지만 생활수준이 낮고 가난을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피도 눈물도 없다. 서로가 저 먼저 살겠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그러한 현상이 공산주의 국가가 아닌 곳에서도 1993년에 발생하고 있다. 그것이 5월에 발생하고 있는 동티모르의 독립운동이다.

전체 인도네시아와 비교하면 동티모르는 작은 지역이다. 하지만 그들은 석유매장량이 많다. 그런데 문제는 그곳이 저지대이기 때문에 그 지하의 석유는 인도네시아 다른 지역에서 흘러 들어온 것이 태반이다. 그러므로 원칙적으로는 그것을 개발하여 그 이익을 인도네시아가 재분배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주변의 강대국들이 그것을 원하지 아니하고 있다. 마치 걸프만의 쿠웨이트처럼 동티모르를 독립국가로 만들고 그곳에서 많은 석유를 생산하여 싼값으로 자국으로 가지고 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인도네시아 정부가 쉽게 동티모르의 독립운동을 승인할 수가 없다. 그러한 국제적인 분쟁이 1993년에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와 정반대의 움직임이 김영삼정부에 의하여 시도가 되고 있다. 은밀하게 북한의 김일성정권과의 대화를 추진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 진행과정을 신문사 기자인 김상진이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는 민주화추진자문단에서 그 필요성을 역설한 장본인이기에 당연히 관심이 지대한 것이다.

한편, 김상진은 풀뿌리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되자면 지방의회 의원들만 국민투표로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단체장도 직선제로 선출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자문단에서 그 빠른 시행과 제도의 정착을 주장했다.

그런데 1993년이 다 가도록 아직 김영삼정부가 확실하게 시행하지를 못하고 있다. 지방단체장을 국민들이 직접 선출하게 되면 그들의 권력기반이 막강해져서 상대적으로 중앙정부의 힘이 약화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야당 뿐만 아니라 정부여당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무조건 반대할 수만은 없기에 단체장 후보에 대한 정당추천을 법제화하여 정당을 통하여 지방단체장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원리적으로 정당정치가  발달하자면 중앙에서 인물을 키우는 것보다는 우선 지방에서부터 차근차근하게 정치적인 역량을 쌓도록 정치적 유망주를 키워 나가야 한다. 사실 그것이 정당의 역할이며 민주주의의 정착에 필수적인 인적요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크게 우려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지방의원에 이어 단체장까지 국민투표에 붙이게 되면 선거부정이 만연하게 될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문제를 극복하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치자금과 선거자금에 관한 법률을 우선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하지만 최고지도자인 대통령의 결심이 어느 정도로 확고하냐?에 따라서 정책실현의 여부가 결정되는 법이다. 그런데 김영삼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하다; “지방자치가 민주화의 초석이라는 신념에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철학에 따라 다음해 곧 19943월에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이 제정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 다음해인 19956월에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실시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다시 한번 바라보고 있는 김상진 기자는 새삼 감격스럽다.

19938월에 김상진은 또 한번 감격을 맛보게 된다. 그것은 문민정부인 김영삼정권이 중국에서 한국의 독립을 위하여 평생을 바치고 그곳에 묻힌 애국애족의 선열 5구의 시신을 상해에서 조국으로 들여온 것이다. 그 이름이 박은식, 신규식, 노백린, 김인전, 그리고 안태국이다.

그 가운데 박은식 선생은 독립운동가로 그리고 역사학자로 유명하다. 특히 그가 저술한 한국통사의 이름을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신규식 선생은 중국국민당을 이끌고 있는 손문과 교류하면서 중국내에 임시정부의 뿌리를 튼튼하게 내리도록 외교적인 기량을 발휘한 인물이다.

노백린 선생은 무관출신이다. 하와이에서 박용만과 함께 독립군을 창설하기도 했으며 상해 임정에서는 한때 참모총장과 국무총리를 맡기도 했다. 김인전 선생은 목사이며 상해임정에 자금지원을 원활하게 하고자 노력한 인물이다. 안태국 선생은 신민회 간부로 활동하다가 옥살이를 했다. 출옥한 후 상해임정으로 건너갔다가 그곳에서 병사하였다.

김상진이 새삼 임정요인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비록 임정의 독립군들이 태평양전쟁에 크게 공을 세우지 못하여 미국이 남한 땅에 군정을 실시하였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정부의 정통성은 민족적으로 상해임정에서부터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상진은 민주화추진자문단에 참여하면서도 한가지 회의의 눈으로 지켜본 안건이 있다. 그것이 고위공직자 재산등록에 관한 건이다. 자유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이 가능한 것일까? 그렇지만 19939월이 되자 일단 대한민국정부의 1급이상의 공무원들과 국영기업체의 임원들에 대하여 재산등록을 실시하고 있다.

그 수가 무려 1,166명이다. 그 다음에는 4급 이상의 공무원에 대하여 재산등록을 실시할 방침이라고 한다. 김영삼 대통령은 부정부패를 원천적으로 그리고 제도적으로 방지하자면 고위공직자의 재산등록이 필수적이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강력하게 밀어 부치고 있다고 하겠다.

1993년도에 그러한 놀라운 민주개혁이 추진되는 것을 바라보고서 김상진은 자신이 참여하여 청와대에 건의한 나머지 안건들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된다.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네 가지이다; 첫째가, 신군부의 뿌리가 되고 있는 군부내의 사조직인 하나회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1993년에 가장 먼저 전격적으로 단행이 되고 만다.

둘째가, 금융실명제의 실시이다. 셋째가,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이다. 그것은 국가권력을 불법적으로 장악하고 민주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한 자들을 법정에 새우고자 하는 것이다. 넷째가, 북한의 김일성과 만나서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번영을 도모하는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민주화작업이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는 반면에 국가의 경제적인 위기가 찾아오고 있다. 그것은 국제화 세계화 시대가 전개되었다고 말하면서 해외관광을 진흥하였기에 그만 국민들이 외화를 많이 사용해버린 결과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1960년대초부터 한국은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1980년대에 풍요가 미덕인 시대를 자랑하고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이다. 그와 같은 경제적인 성공을 거둔 아시아의 소국들 곧 대만, 홍콩, 싱가폴과 더불어 한국을 속칭 4마리의 용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1980년이 되자 동남아의 나라들인 베트남, 태국,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 그리고 필리핀이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들을 일컬어서 5마리의 호랑이라고 부르고 있다. 4마리의 용과 5마리의 호랑이의 관계는 중진국이 된 4마리의 용이 5마리의 호랑이 국가들에게 자신들의 경공업공장을 대거 이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영삼 정권의 말기에 불행하게도 5마리의 호랑이 국가에서 부도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그 영향을 일본을 위시한 4마리의 용이 그대로 받고 있다. 그 가운데 마냥 호경기가 지속되는 것으로 예단하고서 경제적인 대비에 소홀했던 한국의 피해가 막심하다.

김상진은 김영삼 대통령의 민주화정치가 장단점이 있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고 있는 시간이민자이다. YS는 평생을 자신이 한국의 민주적인 대통령이 된다는 일념으로 살아온 정치인이다. 그리고 그는 대통령이 되면 한국의 정치적인 민주주의를 반드시 성취하겠다고 결심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불행하게도 어떻게 국가가 돈을 벌고 관리를 하는지를 모르고 지낸 인물이다. 그러므로 김영삼 대통령은 국가의 경제정책을 오로지 그가 신임하고 있는 비서관과 장관들에게 일임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런데 그들 경제정책의 관리자들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

김상진은 시간 이민자이기에 1997년에 한국이 부도위기에 내몰리고 많은 기업이 도산한 그 비극의 시대를 살아본 경험자이다. 그렇지만 1993년이 지나가게 되는 시점이 되자 그는 이제 3년이 지나면 그 비극의 해가 찾아올 것으로 생각되어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그는 어찌하면 되는가?...

아무리 1997년의 소위 IMF 사태가 한국민에게 뼈아픈 고통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일에 대담하게 뛰어들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당장은 마음이 편할지 몰라도 훗날의 역사가 달라져버릴 것으로 판단이 되기 때문이다.

김상진과 윤지혜 부부를 202010월에서 198010월의 서울로 시간이민을 보내면서 시간이민사의 직원인 박창진이 꼭 명심하라고 강조한 한 구절이 생각난다; “자신의 본체가 살고 있는 2020년 한국의 역사에 큰 변화를 가지고 오는 행위를 일체 행해서는 안됩니다. 만약 상당한 충격이 가해지게 되면 본체로 돌아가지 못하고 마는 비극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 또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199312월말에 김상진은 부인 윤지혜와 함께 반포 자신의 아파트에서 새해를 맞이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1997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미리 아파오고 있다. 이제 그들은 새해 1994년을 어떻게 보내고자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