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267강(사55:8-1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년 3월 3일(목)
하나님의 생각과 의사결정의 특징에 대하여(사55:8-11)
본문에서 이사야는 사람의 생각 및 의사결정과 하나님의 생각 및 의사결정이 현저하게 다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사55:8). 그리고 어떻게 다른가 하는 그 차이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사55:9-11). 그 대강의 내용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고 계십니다. 이 세상 하늘 아래 만물과 만민을 모두 살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각은 한 없이 넓고 높습니다(사55:9ac).
(2) 천하의 피조물을 모두 살리고 돌보기 위해서 어떠한 선택을 하는 것이 옳은지 판단하시어 의사결정을 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길입니다(사55:9ab).
(3) 하늘에서 의사결정만 하고 끝내시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이 땅에서 그 계획을 실현하십니다. 그러므로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 땅에서 식물을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는 것과 같이(사55:10)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한 결과를 초래합니다(사55:11).
이상과 같은 내용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이제부터 각 구절을 하나씩 검토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깊은 의미에 대해서는 묵상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이는 내(여호와의) 생각이 너희(사람들)의 생각과 다르며, (b)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55:8);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창조의 질서를 말하고 있습니다;
(1) “이는 내(여호와의) 생각이 너희(사람들)의 생각과 다르며”(사55:8a); 생각의 차이는 어떻게 발생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어떤 시각과 입장에서 보고 있느냐의 차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의 입장에서 보고 있느냐 아니면 창조주의 입장에서 보고 있느냐에 따라서 당연히 그 생각은 근본적인 차이를 발생시키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55:8b); 누구나 생각을 정리하여 가장 좋은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합니다. 그리하면 갈 길이 정해집니다’
1) 하나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피조물을 감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피조물의 위치와 역할에 비추어 생각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모든 피조물을 살리고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것일까요? 사실 창조 당시부터 목표가 이미 설정이 되어 있으며 그것이 창조의 질서입니다. 따라서 피조물들이 그 길로 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진단하시고 처방을 하십니다.
2) 그렇지만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 길로 자발적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본능적으로 그리고 이기적으로 자신들의 길을 가고자 획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길과의 격차 때문에 많은 긴장과 갈등 그리고 역사적인 시행착오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한 마디로, 성경의 기록들입니다.
둘째로, “(a)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b)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55:9); 하나님은 높은 하늘에서 낮은 땅을 내려다 보고 계십니다. 그것은 마치 모세가 높은 느보 산봉우리에서 멀리 가나안 땅을 내려다 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신34:1-4). 그 결과 무엇을 깨달을 수가 있을까요?
(1)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사55:9a); 땅에 붙어서 살고 있는 사람의 의사결정은 결정적으로 그 볼 수 있는 땅의 한계 속에 갇히게 됩니다;
1)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다르십니다. 우주 바깥 그 높은 하늘에서 천하의 피조물을 모두 한 눈에 내려다 보십니다. 모두 보시고 전부의 입장을 헤아리면서 의사결정을 하십니다. 그 세계관의 차이가 완전히 차원이 다른 의사결정을 내리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또 하나 하나님과 사람과의 근본적인 차이를 여기서 생각해보아야만 합니다; 사람은 한시적인 유용성만을 지니고 있는 육신 속에 갇혀서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것도 시간적으로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한 방향으로만 진행하고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다르십니다. 시공간을 모두 초월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시공간을 모두 뛰어넘어서 의사결정을 하시며 갈 길을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3) 쉽게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꺼번에 통찰하시면서 현재의 피조물을 대하고 계십니다. 반면에,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랑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겨우 과거를 기억하면서 현재의 시점에서 자신의 미래까지 전부 알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2)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55:9b); 하나님의 생각이 사람의 생각보다 높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사람은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서 지표면에서 기고 있는 사람들을 전부 감찰하고 계시며 그 모두를 보시고서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고 계십니다. 저 피조물 모두를 살리고 구원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를 생각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2) 하지만 인간은 그것이 아닙니다. 피조된 물질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으므로 기본적으로 재화가 부족합니다. 그런데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면 자신의 식구를 돌보며 생존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그 다음 자신의 성취나 역사적인 위업을 달성하고자 하는 높은 이상은 소수의 권력자들과 많은 재능을 천부적으로 부여 받은 뛰어난 극소수 인물들의 고민거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셋째로, “(a)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b)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c)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c)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사55:10); 참으로 근사한 비유를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하고 있습니다;
(1)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돌아가지 아니하고”(사55:10a);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눈이 만약에 땅으로 내리지 아니하고 우주공간으로 흩어져버린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땅의 생명을 살리지 못하고 모두 죽이고 마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뜻은 그것이 아니라고 이사야가 말하고 있습니다.
(2)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사55:10b); 창조주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비와 눈이 땅으로 내려서 식물을 자라도록 하는 것입니다. 지표면의 딱딱한 흙 속에 빗물이 스며들면 부드러운 표토(表土, 지표면의 흙, top soil)가 형성이 됩니다. 그곳에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양분을 빨아올리게 됩니다. 그 결과 곡식이 생산이 되고 각종 식물의 소출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3)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사55:10c); 이사야가 예루살렘 유대인들의 발전된 농사법 하나를 여기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종을 내고 그것을 밭에 옮겨 심는 방법입니다;
1) 예를 들면, 묘판에 씨를 뿌립니다. 그리고 집중적으로 잘 관리합니다. 그러면 싹이 나고 모종이 생산이 됩니다. 그것을 밭에 옮겨 심는 것입니다. 그것은 밭에 씨를 바로 뿌리는 파종법보다는 훨씬 많은 소출을 가져오게 합니다.
2) 그렇게 모종을 가져다 심든지 아니면 밭에 씨를 바로 뿌리든지 간에 그 다음에는 물이 많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파종시기에 비가 많이 오기를 학수고대합니다. 그것이 늦은 봄과 초여름에 ‘이른 비’를 기다리고 있는 농부들의 마음입니다.
3) 참고로 요엘 선지자는 그 ‘이른 비’가 ‘의의 교사’로 오시는 메시아를 상징하고 있다고 시사하고 있습니다;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욜2:23).
(4)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사55:10d); 농부들은 자신들이 일년 농사를 열심히 지어서 식구들이 먹을 양식을 생산할 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선지자 이사야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적기에 비를 주셨기 때문에 지면의 흙이 부드러워져서 싹을 띄우고 식물이 자라날 수 있도록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비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내려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땅의 소출이 있게 하고 그 양식을 사람들이 먹고 살 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뜻과 은혜를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넷째로, “(a)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b)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사55:11); 놀랍게도 부지불식간에 이사야가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가 누구인지 그 정체성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사55:11a); 창조주 하나님이 적당한 때에 비를 땅에 내리셔서 식물이 자라나도록 함으로써 생물들이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양식을 제공해주십니다. 그와 같은 이치로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사람들에게 주시고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반드시 영적인 양식을 얻도록 해주십니다;
1)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그 말씀이 바로 생명의 양식입니다(마4:4). 그리고 그 말씀이 육신을 입고서 이 세상에 태어나시면 메시아가 됩니다. ‘말씀의 성육신’ 그것이 바로 메시아의 정체성임을 사도 요한이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2) 장차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이 땅에 오시는 메시아가 대언할 것이며 그 말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생애를 살아갈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예언하고 있는 이사야의 언급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사55:11a)라고 하겠습니다.
(2)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사55:11b); 메시아의 그 말씀사역이 바로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며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관건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메시아가 그 사명을 모두 완수할 수 있도록 형통함을 주실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본문에서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고 사람들은 그 아래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임을 먼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과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그 생각과 의사결정의 방법이 다르다고 설명을 합니다. 구체적으로, 사람은 땅 위에서 자기가 보고 있는 작은 것에 기초하여 생각하고 행동하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안전하게 확보하기 위하여 열심히 생각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자기민족의 번영을 위하여 헌신하고자 의사결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이 살아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르십니다. 하늘에서 땅의 피조물들을 모두 내려다 보십니다. 그리고 모두의 입장을 살피고 계십니다. 그 결과 피조물들이 창조의 질서를 제대로 따르고 있는지를 평가하시고 그들 모두를 고쳐서 사용하시고자 하십니다(사19:22). 요컨대, 하나님은 모든 생명을 돌보고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최종적으로 의사결정을 하시면 철저하게 피조세계에서 그 계획을 구현하십니다. 그 일환으로, 하늘에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메시아를 보내십니다. 그 메시아에 대하여 알기 쉽게 아브라함의 용어를 하나 사용하자면 ‘땅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창24:3).
이미 메시아가 예수님으로 이 땅에 오신지 2천년의 세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온 땅의 모든 생명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그만큼 많이 성취가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좁은 안목과 생각을 벗어나서 메시아처럼 아버지 하나님의 넓고도 높은 뜻을 이 땅에서 구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만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그렇게 실천할 수 있는 은혜가 충만한 성도들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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