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268강(사55:11-1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9. 15. 16:16

이사야 강해 제268(55:11-1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34()

 

여호와의 입에서 나가는 말이 지금도 창조의 능력이 있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며 그 뜻을 행하는 길에 형통함을 주시고 있다는 말씀에 대하여(55:11-13)

 

하나님은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십니다(1:3, 6). 그러므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그 말씀에는 창조의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그 사실을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이 한 마디로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4:4).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이 모든 생명을 살리고 있는 근본적인 힘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메시아의 그 말씀은 일찍이 모세가 신명기에서 적고 있는 말씀과 동일합니다; “40 광야생활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일 하늘에서부터 만나를 내려주십니다. 그러면서 백성들이 한 가지 사실을 철저하게 깨닫도록 하십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만나를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만나를 내려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8:3).

지구상에서 인류와 가장 가까운 동물은 침팬지입니다. 유전학자들은 DNA가 상당히 많이 일치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침팬지와 인류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실험의 결과 과학자들이 밝혀낸 사실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이 손가락으로 무엇을 가리켜주고자 하면 침팬지는 그 손가락만 쳐다봅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 손가락이 아니라 그것이 가리키고 있는 대상을 쳐다봅니다”.

조금 풀이를 해보고자 합니다; 손가락으로 무엇을 가리키고 있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태어나서부터 배우며 학습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것은 사회적인 가장 기본적인 약속입니다. 그 약속에 의하여 사람은 손가락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가리키고 있는 대상물을 쳐다보게 됩니다. 그러나 침팬지의 사회에서는 그러한 약속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그 손가락만 쳐다보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약속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약속의 가장 기본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지금까지 모든 피조물들을 돌보시고 그 생명을 살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증언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12:26-27).

그러므로 성경말씀을 읽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엇을 가장 기본적으로 깨달아야만 할까요? 그것은 선지자들의 기록과 그리스도의 생애가 하나같이 지금도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있는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치 손가락처럼 가리키고 있다는 것입니다(24:44-49). 그러므로 그 손가락과 같은 말씀을 따라서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면 부활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남은 인생 가운데에서도 그 창조의 능력을 맛볼 수가 있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이사야가 본문에서 재미나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사야가 어떻게 설명을 하고 있는지 이제부터 각 구절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깊은 내용을 파악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묵상을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여호와의) 에서 나가는 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b) 내가 보낸 일형통함이니라”(55:11); 하나님의 말씀의 특징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여호와의) 에서 나가는 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55:11a);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수단이라고 이사야가 말하고 있습니다;

1)    그러므로 말씀이 발(, appear)해지는 목적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실행하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요한이 하나님말씀의 성육신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메시아가(1:14) 이 세상에 오시는 이유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이 땅에서 성취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6:38-39).

2)    그와 같은 이야기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메시아나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이며 수단입니다. 그것이 종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종들은 이 땅에서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3)    반대로, 종들이 주인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성취하고자 애를 쓴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은 창조의 질서와 법도를 어기고 있는 패역함이며 영적인 타락입니다. 하나님을 자신들의 현세적인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그것이 바로 우상문화입니다.

(2)  내가 보낸 일형통함이니라”(55:11b); 메시아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신실하게 살아갑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모두 완수하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힘껏 도와주십니다. 그것이 형통함의 비밀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하나님의 종이 주인께서 맡기신 일이 아니라 자신이 욕심을 내어 별도로 추구하고자 하는 일에 형통함을 바라며 간구하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일에 하나님의 형통함이 있을까요? 혹시 세상적인 눈으로 보자면 성공과 형통함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부끄럽고 허망할 뿐입니다.

  둘째로, “(a)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b) 산들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55:12); 하나님의 말씀을 온 세상에 전하고 있는 성도들의 앞길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다음과 같습니다;

(1)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인도함을 받을 것이요”(55:12a); 예를 들어, 해외시찰을 하는 경우에 있어서 단장으로 가는 경우와 일반단원으로 가는 경우에 차이가 있습니다;

1)    단장은 처음부터 팀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힘이 듭니다. 하지만 일반단원은 해외시찰이 즐겁고 평안합니다. 그래서 기쁘게 시찰을 마칠 수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이 주님께 머리가 되는 단장의 자리를 맡겨 드리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면 신앙생활이 처음부터 즐겁고 기쁘며 마음속 평안까지 누릴 수가 있습니다.

2)    그리스도도 이 세상에서 복음사역을 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께 단장의 자리를 맡겨 드리고 있습니다(8:16, 28-29). 그리고 자신의 뜻이 아니라 주인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기에(6:38) 그 발걸음이 가볍고 끝까지 평안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비록 그리스도가 대속의 죽으심으로 무덤에 들어갈지라도 그 주인이신 영생의 하나님이 그를 부활시켜 구원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16:21, 17:22-23, 19:28, 20:18-19).

3)    그와 같은 맥락에서 사도 바울의 증거가 다음과 같습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8:16-18).

(2)  산들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55:12b);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문장입니다;

1)    첫째, 메시아가 하나님의 세상구원의 뜻을 복음으로 외치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정확하게 보여주기 위하여 대속의 죽으심을 당하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십니다(2:32-33, 1:17). 그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며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을 온 세상에 전파하게 됩니다. 그 결과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새 시대가 이 세상에 도래하게 됩니다. 장차 임하는 그러한 인류의 구원의 기쁨을 이사야가 여기서 산들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55:12b)라고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2)    둘째, 하나님의 구원은 인류의 구원에 머물지 아니하고 온 세상 모든 피조물의 구원을 뜻하고 있다고 해석이 됩니다. 복음의 축소판이라고 알려지고 있는 3:16절 말씀이 그러합니다. 그리고 로마서 제8장에서 사도 바울이 그 사실을 거듭 확인해주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8:19-22). 산과 언덕 그리고 나무들로 표현이 되고 있는 삼라만상(森羅萬象, 우주 내에 펼쳐져 있는 모든 현상과 만물들의 파노라마) 곧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기뻐하고 있다는 표현이 본문의 내용이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a) 잣나무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b)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55:13); 성도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영이 창조하시는 놀라운 기적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1)  잣나무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55:13a); 이사야는 메시아가 오셔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 세상에서 성취하게 되면 종말로 어떠한 세상이 전개가 될지 매우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1)    그래서 하나님께 많이 기도하였으며 그 응답을 얻어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종말론적인 예언이 다음과 같습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65:17-19).

2)    풀이를 해보자면,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하고 있는 새 예루살렘 성에서는 그 옛날 백성들의 울음과 부르짖음이 이제는 즐거움과 기쁨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그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시나무와 찔레가 백성들의 통곡이며 절규입니다. 잣나무와 화석류(myrtle, 도금양나무, 금빛 복숭아 열매, 에스더의 옛이름 하닷사가 이에 해당함, 2:7)는 하나님께서 변화시켜주시는 즐거움과 기쁨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2)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55:13b); 그와 같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가 종말로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 그리고 새 예루살렘 성의 창조만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그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본문에서 이사야가 증언하고 있습니다;

1)    그와 같은 변화는 창조주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는 영원한 표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그러한 창조의 능력이 지금도 끊어지지 아니하고 역사하게 됩니다.

2)    그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가 메시아의 시대에 특히 풍성합니다; “귀신이 쫓겨나고 각종 병자와 장애자들이 치유와 회복을 얻게 됩니다.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기적이 나타납니다. 무덤 속에서 죽은 나사로가 되살아 나옵니다. 소경과 귀머거리가 새로운 눈과 귀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천국의 말씀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더구나 그리스도가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 무덤 속에서 3일만에 부활합니다.

  결론적으로, 그와 같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이 성도들의 앞길에도 풍성하게 발생할 것임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 사실은 이사야 본문의 내용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성도들에게 임재하여 동행하시면 그와 같은 창조의 능력이 터져 나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은 그저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이신 주님으로 모시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열심히 복음사역에 임하면 됩니다. 그리하면 메시아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의 능력으로 그리스도를 살리시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셨듯이 동일한 역사가 성도님들에게 임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와 같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살아 생전에 풍성하게 맛보시는 인생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