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266강(사55:6-7)(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9. 15. 02:11

이사야 강해 제266(55:6-7)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32()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고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55:6-7)

 

본문은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문장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55:6-7).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흔히 매우 쉬운 내용의 글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저 한번 읽어보기만 해도 그 뜻을 전부 알 것만 같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쉬운 글로 보이는 문장 가운데 사실은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문장 가운데 사용이 되고 있는 용어들이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약간의 개념의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그러한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전달해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신앙생활에 엄청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평소에 잘 안다고 생각하고서 그냥 지나쳤던 대목을 새로운 안목으로 다시 보게 됩니다. 특히 본문의 내용이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사용이 되고 있는 용어와 구절의 뜻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어떠한 개념을 전달해주고 있는지를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그리하면 풍성한 말씀의 은혜를 얻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님들의 신앙생활에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해봅니다. 이제부터 그와 같은 기대를 가지고 본문을 다음과 같이 나누어서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55:6); 여기서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가까이 계실 때는 그 개념이 다음과 같이 다릅니다;

(1)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는 사람이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생의 때를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육신을 벗고 나면 너나없이 부활하여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 일만 남게 됩니다(5:29). 따라서 육신을 입고 있는 그 인생의 기간 동안에 여호와를 만나야만 합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들어야만 합니다;

1)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여호와를 만나고 그 말씀을 듣는 것이 좋습니다. 모세가 그러한 사람이며(34:10) 선지자 이사야나 에스겔이 그러한 사람들입니다(6:1-10, 2:1-9) . 그러하지 못할 경우에는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해주고 있는 선지자들의 말씀을 들어야만 합니다.

2)    그런데 말씀을 듣고 그 의미를 깨닫는데 그쳐서는 안됩니다.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동안에 그 말씀의 뜻을 실천해야만 합니다. 이사야는 장차 하나님말씀의 뜻을 정확하게 실천하는 모범을 보여주기 위하여 메시아가 유대인들의 땅에 오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메시아가 전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말씀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미리 동족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3)    메시아가 전하는 핵심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유대인들의 폐쇄적인 선민구원사상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개방된 만민구원사상을 하나님말씀의 뜻이라고 전할 것입니다. ② 메시아의 복음은 선민들의 정의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생명을 돌보고 살리고자 하시는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③ 하나님신앙은 현세구복적인 우상문화가 아니라 영생의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④ 종말로, 세상임금이 통치하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2)  가까이 계실 때는 주님이나 주님의 제자들이 사람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을 때입니다(3:20).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영접만 하면 됩니다. 만약에 마음의 문을 두드리다가 그냥 지나가고 계신다면 다시 방문하여 달라고 빨리 불러야만 합니다. 완전히 지나가버리시게 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때가 바로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영생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입니다.

둘째로,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55:7a); 여기에서는 악인불의한 자의 개념이 다르다고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1)  악인은 두 가지 길 가운데 왼쪽 길로 가고 있는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오른 쪽에는 창조주의 공의’(公義, righteousness)의 정신을 실천한 사람들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25:34-40). 그들이 영생’(永生, eternal life)을 얻는 자들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고 자신의 이익이나 자기 집단의 이익만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타인이나 타 집단을 해친 악한 자는 왼쪽으로 분류가 되고 맙니다. 그 왼쪽은 영벌’(永罰, 영원한 형벌, eternal punishment)에 처해지는 길입니다(25:41-46).

(2)  불의한 자는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의 생명을 살리고 돌보고자 하시는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아니한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태초부터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닮도록 인간을 창조하십니다(1:26-27).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가지고 모든 생명을 돌보고 관리를 하라고 청지기로 삼으십니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 곧 사익’(私益, 개인적인 이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저버리는 불의한 종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그 생각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교훈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

셋째로,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55:7b); 이 문장에서는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1)  여기서 여호와는 개인적인 만남을 전제로 하고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를 살펴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현신하셔서 헤브론에 살고 있는 아브라함을 방문하십니다(18:1-2). 그리고 식사를 하시면서 말씀을 나누십니다(18:8-15). 그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직접 만나십니다. 이사야는 특히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시게 되면 만민을 하나님께로 불러 모으시는 구원의 깃발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11:10).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메시아와 그 제자들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을 만나시고 그들을 돌이키고자 하십니다.

(2)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조건에 대하여 이미 앞부분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회개를 하고서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조금 더 설명을 해봅니다;

1)    여호와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을 전파하게 하면 그때부터 많은 백성들이 회개를 하고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11:11-12). 그렇게 회개하고서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들에게 여호와께서는 선민 이방인 구별을 하지 아니하시고 모두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55:7b, 65:2, 66:20-21).

2)    한 마디로,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긍휼을 얻을 수 있는 자는 선민구원사상을 고수하고 있는 유대인들이 아닙니다. 죄인이나 이방인이라고 하더라도 진심으로 그 동안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살아간 잘못을 회개하고서 여호와께 돌아오는 자는 누구든지 그 출신성분을 따지지 아니하고 긍휼함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55:7c); 이 문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1)  먼저 우리 하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공동체의 하나님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혼자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다고 하여 모든 일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교회공동체에 참여하여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해나가야만 합니다. 그 이유는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모시고 성도들이 교회의 지체로써 전도와 선교에 서로 협동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 역시 성도들이 공동체에서 함께 드릴 때에 성령님께서 더 크게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성도들은 인생 가운데 동역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2)  신앙생활이란 공동체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신앙생활 역시 공동체에서 받아들일만해야만 합니다. 물론 개인의 신앙생활이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인 하나님말씀의 이해나 설명이 전통적이고도 오랜 신앙공동체의 것과 서로 대조를 해보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쉽게는 신학적인 측면에도 비추어보아야만 합니다. 그리하여야 모가 난 것은 다듬어져 나가고 미흡한 것은 보완이 되어나갈 것입니다.

(3)  하나님말씀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 서로 견해가 날카롭게 대립이 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사야는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55:7c)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1)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공동체를 움직이고 계시는 우리 하나님께 모든 일을 맡기고 그 응답을 들을 줄 알아야만 합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위하여 어떻게 역사를 하실까요?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주실까요? 결론은 누가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28:18-20, 12:1-2). 그리고 역사 가운데 누가 옳다고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세워주시는가 하는 것입니다(1:17, 21:26-27).

2)    그와 같은 맥락에서 산헤드린 대 공회의 뛰어난 율법학자인 가말리엘의 말을 참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400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5:35-42).

3)    한 마디로, 상관하지 말고 버려두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도 사람들의 허물을 너그럽게 용서하시면서 잘못을 깨닫고 진심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는데 성도가 성도를 강하게 비판하고 내어쫓는 행위는 옳지가 못합니다. 여호와께 맡겨드리면 하나님께서 아시고 더 강하게 징계하실 것입니다(12:14-21). 요컨대, 지체가 머리이신 주님을 대신하여 지나치게 판단하고 비난하는 것은 너그러운 용서의 의미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본문의 내용을 몇 가지로 간추려 봅니다;

(1)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는 사람이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생의 때를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육신을 입고 있는 그 인생의 기간 동안에 여호와를 만나야만 합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들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 곧 현세 인생’(this life)의 중요성입니다.

(2)  가까이 계실 때는 주님이나 주님의 제자들이 사람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을 때입니다(3:20).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영접만 하면 됩니다.

(3)  악인은 두 갈래의 길 가운데 왼쪽 길로 가고 있는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고 자신의 이익이나 자기 집단의 이익만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타인이나 타 집단을 해친 악한 자는 하나님의 존전에서 왼쪽으로 분류가 되고 맙니다. 그 왼쪽은 영벌’(永罰, 영원한 형벌, eternal punishment)에 처해지는 길입니다(25:41-46).

(4)  불의한 자는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의 생명을 살리고 돌보고자 하시는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아니한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 곧 사익’(私益, 개인적인 이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저버리는 불의한 종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그 불의한 생각이 잘못된 것입니다.

(5)  하나님의 긍휼을 얻을 수 있는 자는 선민구원사상을 고수하고 있는 유대인들이 아닙니다. 죄인이나 이방인이라고 하더라도 진심으로 그 동안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살아간 잘못을 회개하고서 여호와께 돌아오는 자는 누구든지 그 출신성분을 따지지 아니하고 긍휼함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6)  이사야가 우리 하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공동체의 하나님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혼자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다고 하여 모든 일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교회공동체에 참여하여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해나가야만 합니다. 그 이유는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모시고 성도들이 교회의 지체로써 전도와 선교에 서로 협동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 역시 성도들이 공동체에서 함께 드릴 때에 성령님께서 더 크게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7)  아무쪼록 이사야가 전하고 있는 위와 같은 개념들을 잘 이해하시고 신앙생활에 더욱 정진하시기를 바랍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