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265강(사55:1-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년 3월 1일(화)
포도주와 젖과 양식을 얻는 방법, 그리고 영혼을 살리고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는 방법에 대하여(사55:1-5)
본문에서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목마른 자들이 먼저 물로 나아오듯이 무엇보다도 먼저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오십시오(사55:1).
(2)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또 들으면 원하는 포도주와 젖과 양식을 하나님으로부터 얻을 수가 있습니다(사55:2).
(3) 뿐만 아니라 다윗처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뜻을 정확하게 실천하게 되면 그 영혼이 살아나고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이끌 수 있는 인도자가 되며 하나님 말씀의 증거자가 될 수 있습니다(사55:3-4). 여기서 이사야는 다윗이 사울 왕을 암살함으로써 왕국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더 큰 것을 얻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삼상24:6-7, 26:9-12).
(4)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깨달아 다윗처럼 올바르게 실천을 하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많은 나라와 민족을 그 성도에게 보내어 양육시킬 것이며(요6:37-40) 마침내 그 복음사역을 통하여 성도를 영화롭게 하신다는 예언입니다(사52:13, 55:5).
그와 같은 내용을 이사야가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각 구절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메시아의 사역과 관련하여 그 깊은 의미를 파악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묵상을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b)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55:1);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을 선지자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대언하고 있습니다;
(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사55:1a); 생물은 식물과 동물로 분류합니다. 그 가운데 식물은 99%가 물로 되어 있습니다. 동물은 거의 70%가 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물을 마시지 못하게 되면 모든 생물은 죽고 맙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모든 생물들에게 공짜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섭리하시고 배려해주셨습니다. 단지 목이 마른 생물들은 물이 있는 곳으로 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하면 돈이 없더라도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신 그 물을 마시고 생명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2)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55:1b); 세상에는 크게 보아 두 가지 종류의 마실 것이 있습니다;
1) 하나는 천연적인 마실 물입니다.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이나 강물 그리고 지하수와 빗물 등이 그러합니다. 그 물을 마시고 생물들이 갈증을 달래고 있습니다.
2) 또 하나는 사람들이 노력을 하여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목축을 하거나 농사를 지어야만 얻을 수 있는 마실 것들이 그것입니다. 그것을 이사야가 여기서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여 ‘포도주와 젖’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 사실은 이사야가 순서를 꺼꾸로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 우선순위는 ‘젖과 포도주’이기 때문입니다. 젖은 완전식품이며 생존의 수단입니다. 어린 아기나 포유류 동물의 새끼가 모두 어미의 젖을 먹고서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젖과 같은 완전식품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하여 돈을 주고 사먹고 있습니다. 가축을 키워서 그 젖을 팔고 있는 자들이 소위 목축업자들입니다.
4) 그런데 젖과 달리 포도농사를 지어서 그 열매로 얻게 되는 포도주는 완전식품도 아니고 생존의 수단도 아닙니다. 그것은 문화생활을 위하여 마시는 것입니다. 적당히 취하여 생활의 여유를 누리고자 할 때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잔치자리에 없어서는 아니 되는 필수품입니다. 따라서 그 품질에 차이가 많으며 가격도 천차만별입니다.
5) 여기서 이사야는 더 중요한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것이 포도주와 젖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햇빛과 물과 공기를 주시지 아니하면 식물이 자라날 수가 없어 포도주를 생산할 수가 없으며 동물도 먹이를 구할 수가 없어 젖을 생산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햇빛과 물과 공기는 사람들이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의 삶을 위하여 공짜로 제공하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사야가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55:1b)고 여기서 이상한 문장을 사용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a)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b)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사55:2);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문장입니다;
(1)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사55:2a); 먼저 물질세계에 국한하여 해석을 해보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양식을 위하여 수고하는 경우와 양식과는 상관없이 그 무엇을 위하여 수고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에는 자신의 신념이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물질세상에서의 삶을 위해서는 양식을 구하는 시간 외에 이데올로기를 위해서나 기타 고상한 그 무엇을 위해서는 너무 많은 시간을 사용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2)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사55:2b); 그 이유를 한 마디로 답변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와서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듣고 창조주의 뜻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유한한 인생을 살기 위하여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100년 안팎의 고단한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창조주를 만나고 자신을 이 땅에 종으로 보내신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함입니다. 그 결과 그 영혼이 부활의 몸을 입고서 창조주 하나님께 돌아가서 영생을 얻고 하나님 자녀로 그 앞에 서기 위함입니다. 그 목적과 사명이 분명해지면 그때부터 참으로 좋은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즐겁고 기쁜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a)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b)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사55:3); 유한한 인생을 이 땅에서 살게 되는 하나님의 종들에게 주시는 창조주의 영원한 언약이 무엇일까요? 다윗의 행적에서 그것이 어떠한 내용인지를 살펴보라고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사55:3a); 사람들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창조주 하나님께 반드시 나아가야만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통해서 영생을 주십니다. 그냥 일방적으로 마음대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언약은 쌍방간에 이루어지는 약속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람이 인생 가운데 행동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일까요?
(2)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사55:3b); 이사야의 시대는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시기 약 700년 전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동족들이 이해하기 쉽게 여호와 하나님과의 언약에 신실하여 그 상급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로 다윗 대왕의 사례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1) 이스라엘 왕국의 초대 왕인 사울의 미움을 받아 십 년 이상 도망자로 지낸 젊은 장군이 다윗입니다. 다윗의 피난처에 대한 첩보를 접하게 되면 사울 왕은 3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그를 잡아 죽이려고 나섭니다. 정적(政敵, 정치적인 대적자)을 확실하게 없애버리려는 것입니다. 왕인 자신보다 백성들로부터 인기가 더 있는 다윗을 도저히 살려둘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삼상18:6-9).
2) 그 가운데 두 번이나 다윗 앞에 좋은 기회가 포착이 됩니다. 그를 쫓다가 곤히 잠자고 있는 사울 왕을 암살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부관들은 다윗에게 무조건 사울 왕을 암살해버리자고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반대합니다. 그 이유는 “사울을 죽이고 왕국을 얻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를 해치지 아니하는 것이 여호와의 종의 올바른 마음가짐이다”(삼상24:6-7, 26:9-12)라는 것입니다.
3) 왕국을 얻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존중한 다윗입니다. 두 번이나 하나님이 그를 테스트하지만 다윗의 마음은 한결같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사울 왕의 작은 이스라엘 왕국이 아니라 다윗에게 광대한 이스라엘 제국을 선사하십니다(삼하8:1-14). 그 규모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모든 땅을 차지하는 것입니다(창15:18). 그리고 시편 150편 가운데 깨달음의 시 73편을 저술하여 수록하는 영광을 다윗에게 주십니다.
4)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던(삼상16:7, 행13:22) 다윗 대왕의 족보에 의붓아들로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이 올라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영광스럽게도 영생을 얻게 하는 복음서 제일 첫 머리에 아브라함과 더불어 다윗의 이름이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와 함께 등재가 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1:1). 그렇게 다윗의 이름과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게 되면 어떠한 상급과 영광을 얻게 되는지를 성도들에게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a) 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웠고, (b)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나니”(사55:4); 증거자가 되고 있는 ‘그’와 인도자 및 명령자가 되고 있는 ‘그’가 다음과 같이 다른 사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1) “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웠고”(사55:4a); 앞 절에서 이사야가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다윗 대왕이 그 생애로서 하나의 증거자가 되고 있습니다. 다윗 대왕의 생애를 묵상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언약을 어떻게 이행하시는가를 구체적으로 볼 수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2)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나니”(사55:4b); 그런데 만민을 구속하여 천국으로 인도하는 자 그리고 자신의 생애를 본받아 살도록 명령하는 자는 다윗 대왕이 아닙니다. 메시아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다섯째로, “(a)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b)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사55:5); 이 대목에 대하여 그리스도 예수님이 설명하신 말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사55:5a); 이사야는 여호와의 종으로 오시는 메시아와 그 제자로 살아가게 되는 성도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장차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위하여 여호와의 종들이 이 세상에서 복음사역을 감당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열방과 이방인들을 그들에게 보내어주실 것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양육을 하라는 것입니다(마28:18-20). 그리하면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나라가 땅끝까지 확장이 되어나갈 것입니다.
2) 그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그리스도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6:37-39).
(2)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사55:5b); 사람은 이 세상에서 잠시 머물다가 가는 존재입니다. 오늘 날 인류가 21세기의 첨단과학과 첨단의학을 자랑하고 있지만 그 수명이 120세를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짧은 인생을 살다가 영과 육이 분리가 되어 육체는 흙으로 그 영혼은 창조주에게로 돌아갈 따름입니다(전3:20-21). 그런데 사람들은 이 세상에 온 이유가 있습니다. 생명을 이 세상에 보내어서 사람으로 태어나서 유한한 삶을 살아가도록 섭리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사명부여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그 사명을 감당하는 것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간 성도는 장차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나님 자녀의 영광을 획득할 것입니다(요1:12-13, 롬8:14-19).
결론적으로,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평생을 신실하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곧 복음사역을 감당하면서 살아가게 되면 장차 어떠한 영광을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얻게 될까요? 무엇보다도 성도들이 얻게 될 그 영광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 구체적인 언약의 성취와 하나님 아들의 영광을 역사 가운데 생생하게 증거해주기 위하여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친히 자신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으로써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또한 인간의 상식으로는 믿을 수 없는 그 사실을 믿을 수 있도록 증거해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2천년 전의 그 사실을 오늘도 증거해주기 위하여 영적으로 성령님께서 성도들에게 내주하셔서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믿을 수 없는 그 사실을 믿고서 영적인 삶을 풍성하게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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