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260강(사54:1-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년 2월 25일(목)
여자의 후손(창3:15), 특히 사라와 리브가의 후손 마리아로부터 메시아가 나타나고 그로부터 만민구원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는 이유에 대하여(사54:1-3)
창세기 제3장을 보면 사탄의 화신인 뱀의 유혹을 받고서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게 됩니다(창3:1-6).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사탄의 말을 따름으로써 하나님께 범죄를 하게 된 최초의 사건입니다(창3:11-13). 그 사건의 주인공인 하와가 그 문제를 어떻게 책임을 지며 장차 마무리하게 될까요? 원칙적으로, 그것은 영적인 문제이므로 욕심과 탐욕과 정욕의 지배를 받고 있는(창3:6) 육신적인 사람의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 해결의 방법을 창세기 제3장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하시고 있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3:15). 장차 여자의 후손이 이 세상에 나타나서 그 문제를 해결하신다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진짜 여자의 후손이 누구일까요? 그 아버지가 확실하게 하나님이신 마리아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그가 대속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회개하는 죄인들을 죄에서 해방시키십니다. 그리고 무덤 속에서 부활하심으로써 사탄이 장악하고 있는 사망의 권세가 깨어져버립니다(롬8:2).
메시아가 완전한 여자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나타나기 전에 창세기에서는 그 예표가 되고 있는 사건 두 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불임여성 사라와 리브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는 불임여성입니다. 그렇지만 89세의 노인 사라의 몸을 창조주 하나님께서 젊은 가임(可姙, 임신이 가능함)여성의 몸으로 만들어주십니다. 그리고 남편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아들 이삭을 낳아주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녀의 며느리인 리브가도 불임여성입니다. 그 남편 이삭이 아내의 임신을 위하여 하나님에게 20년간 기도를 합니다. 그러자 이삭이 리브가로부터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을 얻게 됩니다”(창11:30, 18:10-14, 21:1-7, 25:21-26).
사람의 능력으로는 사라와 리브가의 임신이 불가능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창조의 능력으로 약속의 아들이 대를 이어가도록 역사하십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대제사장 아론의 직계로 처녀 마리아가 나타납니다(눅1:5, 36). 그녀가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하고 출산한 아기가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눅1:37-38, 42-45, 2:5-7, 11). 구원자 메시아가 그렇게 완벽한 여자의 후손으로서 이 세상에 출생하신 것입니다(마1:18-25).
본문에서 이사야는 사라와 리브가의 경우를 되돌아보게 해주고 있습니다(사54:1). 그리고 완전한 여자의 후손인 메시아로 말미암아 유대교가 개혁이 되고 온 세상에 개방이 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사54:2). 끝으로, 자신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거듭난 자임을 믿으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서 온 세상에 퍼져나가는 성도들에 의하여 열방과 모든 족속들이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사54:3).
이제부터 각 구절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위와 같은 맥락에서 그 깊은 내용을 묵상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b) 이는 홀로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사54:1); 사라와 리브가 그리고 마리아의 예를 들어서 다시 살펴봅니다;
(1)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産苦, 출산의 고통)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사54:1a);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모든 불임여성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먼저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능하신 능력으로 자신을 잉태하고 출산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는 기도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더 깊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마치 불임여성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못하여 그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선민들과 성도들에게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을 메시아로부터 배워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2) “이는 홀로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사54:1b);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사례가 있습니다. 모세가 기록하고 있는 창세기의 내용에 들어 있습니다;
1)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불임여성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약속의 아들 이삭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89세인 사라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창조의 능력으로 그 일을 이루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삭이 태어납니다.
2) 마찬가지로 사라의 며느리 리브가에게서도 동일한 역사가 발생합니다. 이삭의 아내인 리브가는 결혼한지 20년 동안 자식생산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삭이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믿고서 기도하자 쌍둥이 아들을 얻게 됩니다. 그렇게 태어난 둘째 아들 야곱이 훗날 하나님의 대 족장 이스라엘이 되고 열두 아들을 낳습니다. 그들이 바로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들입니다. 그 후손 가운데 다윗 왕조가 나타나고 메시아의 어머니 마리아가 나타납니다.
3) 여기서 ‘홀로된 여인’은 ‘과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들을 생산한 여인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첫째, 사라와 리브가의 경우입니다. 그녀들은 모두 남편이 있지만 불임여성입니다. 그러다가 태를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식을 생산하게 됩니다. 둘째, 완벽하게 남편이 없이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들을 얻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이 유일하게 마리아입니다. 그녀는 남자를 알지 못하지만 성령님이 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메시아를 낳게 하신 것입니다(눅1:35).
4) 메시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시대가 활짝 열립니다. 그 결과 수 많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나타나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러한 시대를 바라보면서 이사야가 의미심장하게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홀로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사54:1b). 장차 육신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거듭난 성도들의 수가 더 많을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둘째로, “(a) 네 장막 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b)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희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사54:2); 하나님신앙을 어떠한 방법으로 온 세상에 넓힐 것인지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1) “네 장막 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사54:2a); 선민들의 유대교는 그 성전의 장막 터가 유대인들의 생활터전에 한정이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선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방인들에게 전하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이방인들은 모두 하나님을 모르고 살다가 여호와의 진노를 받아 멸망을 당하게 되는 족속들에 불과하다고 선민들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방인심판을 전제로 구축하고 있는 무서운 선민만의 구원사상입니다. 그렇다면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만 할까요? 그 좁은 유대인들의 터전 안에 들어와야만 합니다. 그리고 유대인과 똑 같은 모습으로 그 속에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것이 선민사상에 의한 유일한 이방인구원의 방법입니다.
2) 그런데 위에서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메시아사상은 그것이 아닙니다; 첫째, 하나님의 성전의 터를 세상 끝까지 넓히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의미하고 있는 그 성막의 덮개휘장을 모든 하늘을 가릴 수 있을 정도로 활짝 펴는 것입니다.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 것일까요?
3) 그리스도 예수님의 말씀으로 그 뜻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선민사상을 상징하고 있는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집니다. 그것을 그리스도가 자신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사건을 통하여 새로이 건설합니다(요2:19). 그 새로운 성전은 보이는 성전이 아닙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 성도들의 마음속에 건설이 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요4:21-24).
(2)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희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사54:2b); 성막을 지을 때에 지붕의 윗 덮개를 양쪽으로 당겨서 그 줄을 말뚝에 고정을 시킵니다. 그리하여야 성막을 보호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이사야가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희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사54:2b)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하나님의 성전을 세상 끝까지 확장할 수 있도록 너희들이 그 줄을 잡고서 세상 끝까지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선교지에 그 말뚝을 박고 성전의 지붕을 덮고 있는 그 줄을 고정시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자신의 선교지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를 양육하며 교회를 건설하라는 지상명령을 의미하고 있습니다(마28:18-20).
셋째로, “(a)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b)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사54:3); 하나님신앙을 온 세상에 전하는 성도들의 미래에 대하여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사54:3a);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는 백성 곧 ‘디아스포라’(scattered seeds)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그들의 사회로 들어가서 살다가 보면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것은 자손 때에 가서 그 나라가 복음화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사54:3a).
(2)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사54:3b); 이방인들이 하나님신앙을 가지게 되면 그 땅에 놀라운 변화가 발생합니다. 광야와 같이 황폐하고 메마른 그 땅에 생기가 돌고 사람이 살만한 땅으로 변하게 됩니다;
1) 실제로 역사 가운데 그와 같은 변화를 보게 됩니다. 19세기의 덴마크와 20세기의 이스라엘이 그러합니다; 덴마크는 바닷바람이 심한 곳입니다. 그곳을 농토와 목축지로 개발하자고 민족의 지도자 ‘그룬트비’ 목사(1783-1872)가 앞장을 섭니다. 루터파 목사인 그는 1840년대부터 “덴마크여 깨어라”고 대 각성 운동을 전개한 사람입니다. 덴마크 사람들은 그룬트비 목사와 함께 해변에 나무를 심어 해풍을 막습니다. 그 결과 덴마크는 풍요로운 농촌으로 살아납니다.
2) 20세기의 현대 이스라엘은 농업개발에 있어서 또 하나의 기적을 이룹니다. 광야를 개발하여 농업지역을 조성한 것입니다. 그 주역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활공동체인 ‘기브츠’입니다. 유대교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약 230개의 기브츠 운동이 그러한 기적을 연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제자와 성도들이 앞장을 서고 있는 복음사역의 현장에서는 얼마나 더 큰 열매와 변화가 나타날까요? 장차 상상을 초월하는 변화가 도래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역사를 의식합니다. 특히 뛰어난 인물일수록 후세의 역사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기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본문에서 이사야가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잉태하지 못하는 여인과 같은 자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믿으면 그 자손이 많아지며 온 세상에 생명의 기운이 넘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것이 메시아의 세상구원의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것도 좋지마는 더 위대한 꿈을 꾸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지금의 형편이 마치 불임의 여인과 같고 자신의 환경이 황폐하지만 그리스도처럼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그 나중이 형통할 것입니다. 그 자손들에 의하여 하나님나라가 확장이 되고 이 세상에 생명력이 넘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꿈을 꾸시고 거듭난 삶으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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