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 제257강(사53:4-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년 2월 22일(월)
유일한 구원의 길, 우리 모두의 죄악을 여호와의 종 메시아에게 담당하게 하시다(사53:4-6)
본문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가정이 필요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수술의(手術醫, surgeon)가 되시고, 그리스도는 장기(臟器, organ) 제공자가 되시고 사람들은 이식(移植, transplant) 수술을 받아야만 하는 환자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이 세상에서 제멋대로 육신적인 삶을 영위하다가 그만 타락하고 부패하여 치명적인 장기의 손상을 입고 있는 환자와 같습니다. 시급하게 장기이식수술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모든 인류가 전부 타락하고 부패하여 버렸으므로 어디에서 깨끗하고 신선한 장기를 기증받을 수 있는 곳이 이 세상에서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새로운 육신을 만들고 계십니다.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어 모태에서 메시아로 태어나게 하십니다. 메시아는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처음부터 끝까지 영적인 삶을 살아가게 됨으로써 결코 타락하거나 부패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메시아의 장기로 환자인 사람들을 수술하고자 하십니다. 그 수술대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리스도가 자신의 몸과 피를 아낌없이 사람들을 살리고자 기증을 하고서 떠난 장소가 훗날 골고다 언덕이라고 하겠습니다(눅23:34, 42-43).
이제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수술을 받아야만 하는 환자임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수술대가 되고 있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자신을 하나님께 완전히 맡겨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마련하신 그 수술대 위에서 믿는 자의 부패한 장기가 신선한 그리스도의 것으로 교체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자신의 죽음으로 믿는 자들에게 주신 그 몸과 피로써(요6:51-59) 거듭난 인생들이 그 자리에서 태어나고 있습니다(요3:3-8, 12-15).
그와 같은 시각을 가지고 본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각 구절의 뜻을 살펴보고 그 다음에는 묵상을 통하여 더 깊은 의미를 아래와 같이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그는 실로 우리의 (육신적) 질고를 지고 우리의 (정신적) 슬픔을 당하였거늘, (b)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사람들로부터) 고난을 당한다 하였도다”(사53:4); 세상적인 인과응보의 법칙을 믿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충족이 되고 동시에 만민구원의 하나님의 뜻을 이루자면 메시아의 일생이 어떻게 진행되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1) “그는 실로 우리의 (육신적) 질고를 지고 우리의 (정신적) 슬픔을 당하였거늘”(사53:4a); 사람들은 평생을 살아가면서 육체적인 질병의 고통과 사랑하는 자를 떠나 보내야만 하는 정신적인 슬픔을 다 함께 맛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자로 이 세상에 오신다고 하는 메시아가 보통 인간과 똑같이 그와 같은 고통과 슬픔을 맛볼 것이라고 이사야가 여기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사53:4a). 그러므로 훗날의 사람들은 메시아도 사람의 정체성과 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셨기 때문에 별수없이 인간의 고통을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경험하시도록 되어 있다고 단정을 하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실상은 그것이 아니라고 여기서 말하고 있습니다; “메시아는 그러한 고통과 슬픔을 맛보지 아니해야만 하는 자이지만 인간을 대신하여 그 고통과 슬픔을 맛보고 있다는 것입니다”(사53:4a).
(2)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사람들로부터) 고난을 당한다 하였도다”(사53:4b); 고대사람들은 ‘인과응보’(因果應報,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게 된다는 것)의 법칙을 철저하게 믿고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선한 일을 행한 자는 하나님의 상을 받아 이 세상에서 복을 누리고, 반면에 악한 일을 행한 자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1) 예를 들어 욥기를 보면, 욥의 세 친구가 환난에 처해있는 욥에게 잘 생각해보라고 권면하고 있는 말씀이 바로 사회적인 ‘권선징악’(勸善懲惡, 선을 권장하고 악을 응징하는 것)과 하나님의 ‘인과응보의 법칙’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사람들이 알 수 없는 허물과 잘못이 욥에게 반드시 있기 때문에 눈이 밝으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환난과 고통을 주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 생각을 해보고 빨리 회개를 하고서 살길을 찾으라고 하는 권면입니다(욥4:7-9, 5:17, 8:4-8, 11:13-18, 22:4-5).
2) 그런데 여기서 이사야가 메시아의 최후와 관련하여 동일한 사람들의 시각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메시아의 생각과 교훈이 전통적으로 하나님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는 유대교의 교리와 다르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징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메시아의 잘못을 징계하기 위하여 사람들로부터 고난을 받게 하고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박도록 허용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사53:4b 의역).
둘째로, “(a)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b)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c)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53:5); 이사야는 메시아가 자신의 죄악 때문에 징벌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메시아는 사람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하여 자신을 제물로 바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메시아가 사람들의 허물과 죄악을 치유하기 위하여 당하는 고난과 더불어 평화를 회복하기 위하여 당하게 되는 징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1)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사53:5a); 훗날 메시아는 십자가에서 그 시신이 땅으로 내려질 때에 로마병정에 의하여 창으로 옆구리를 찔리게 됩니다. 그때 피와 물이 쏟아져 나옵니다(요19:34).
1) 그같이 일회성인 찔림에 의하여 가벼운 사람들의 허물은 사함을 받게 됩니다. 반면에 사람들의 죄악은 무겁습니다. 그래서 사함의 방법이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2) 대속의 죄 사함의 길을 찾기 위하여 메시아가 공생애를 살아가면서 온갖 고초를 겪게 됩니다. 그리고 유대교지도자들로부터 정죄가 되고 로마총독에 의하여 심문을 받게 됩니다. 결국에는 십자가 극형에 처해지게 됩니다. 그 모든 육신적 정식적 고통으로 말미암아 메시아의 몸이 지치고 크게 상하게 됩니다. 그 모든 장기적인 고통과 상함이 바로 사람들의 죄악을 담당하게 되는 과정이라고 하겠습니다.
(2)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사53:5b); 메시아가 자신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 하나님 앞에 내어놓습니다(요1:29). 그 결과 어린양이 징계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그 양에게 죄 짐을 맡긴 백성들이 사함을 얻으며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롬5:1).
(3)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53:5c); 메시아가 십자가 처형장으로 끌려가기 전에 로마총독부에서 채찍을 맞게 됩니다. 등이 갈라지고 그곳에서 피가 흘려 내립니다(마27:26). 그 피가 땅에 떨어짐으로 말미암아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나음을 입습니다. 그 사실을 예언하고 있는 메시아의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6:53).
셋째로, “(a)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b)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6); 아버지를 버리고 재산을 받아서 도시로 떠나버린 탕자가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어떠한 절차가 필요할까요?
(1)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사53:6a); 창세기 제17장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사람이 완전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서 의사결정을 하여 살아가라고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실천하는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그 전능하신 능력으로 완전히 성취가 되도록 해주겠다는 것입니다”(창17:1). 그런데 세상사람들이 그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지 않습니다. 자기 스스로 지혜롭고 의롭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꾀와 능력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그릇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사람이 양을 치고 있는데 양들이 목자인 사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자기들이 옳다고 생각하여 제멋대로 초지를 찾아 멀리 떠나버리는 것과 같습니다(사53:6a).
(2)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6b); 탕자가 아버지를 찾아올 때에는 한 가지 절차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1) 그 절차는 자신의 잘못을 먼저 뉘우쳐야만 한다는 것입니다(눅15:18). 그 뉘우침의 결과가 이러합니다; “이제는 아들의 자격을 상실하였으므로 아버지 집의 종이 되어 살더라도 그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신분회복의 문제는 아버지의 처분에 따르겠다고 하는 마음가짐이 되어 있어야만 합니다”(눅15:19).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자에게 놀라운 하나님의 용서가 임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죄악을 메시아에게 대신 담당하게 하는 은혜가 영적으로 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사53:5b).
2) 그 대속의 사명을 지고서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죽을 수밖에 없는 중환자와 같은 사람들을 살리고자 스스로 마치 장기기증자처럼 수술대에 올라가십니다. 그곳이 바로 대속의 제물을 바치는 십자가입니다. 그리스도가 대속의 제물로 살과 피를 우리에게 주시는 그 장소에 우리는 반드시 나아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심정으로 그리스도의 심장과 피를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결론적으로,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깨닫고 그 앞에서 회개를 한 자가 성도이며 돌아온 탕자입니다. 그때부터 성도는 남은 인생을 자신이 주인이 되어서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가 몸과 피를 주심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고 있기에 그때부터 성도의 인생은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자기 인생의 주(인)님으로 모시고 그 종으로서 한평생 제자의 도를 행할 따름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리스도의 심장과 피를 이식 받아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의 남은 삶입니다. 아무쪼록 그리스도의 심장과 마음으로 남은 인생을 끝까지 살아가시는 귀한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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