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255강(사52:13-1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9. 10. 07:04

이사야 강해 제255(52:13-1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220()

 

세상을 세 번 놀라게 하는 여호와의 종 메시아, 그 높이와 깊이와 길이와 넓이에 대하여(52:13-15)

 

본문에서 이사야는 여호와의 종으로 이 세상에 오시는 메시아가 장차 세상을 세 번 놀라게 할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여호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완수하심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존귀하게 되심을 보고 온 세상이 놀라게 될 것이라는 언급입니다(52:13).

(2)  둘째,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그 모습이 사람들 보기에 심히 비참할 정도라는 것입니다(52:14).

(3)  셋째, 그러나 여호와의 종 메시아가 부르짖고 있는 그 교훈과 실천하고 있는 그 말씀은 모든 나라가 놀라고 세상임금들이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놀라운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백성을 구원하며 하나님나라를 건설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신다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나라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토해내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세상임금들은 그 통치권을 하나님께 내놓아야만 합니다.

  위와 같은 본문의 내용은 사도 바울의 글,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길이높이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3:18-19)는 말씀에서 제시하고 있는 네 가지의 차원 곧 높이와 깊이 그리고 길이와 넓이의 개념을 가지고 살펴보면 더 쉽게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사야가 본문에서 예언하고 있는 첫째 내용이 메시아의 높이에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둘째 내용이 그 깊이에 해당하고 셋째 내용이 그 길이와 넓이에 대한 예언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시각을 가지고 이제부터 각 구절을 해석해보고자 합니다. 풀이의 방법은 그 깊은 내용을 다음과 같이 묵상을 통하여 파악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a) 보라 내 종형통하리니, (b) (천사들에 의하여) 받들어 높이 들려서, (c) (하나님에 의하여)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52:13); 그리스도가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게 되자 여호와 하나님은 그를 무덤에서 부활시키고 승천시켜 하나님 보좌의 오른 쪽에 앉게 합니다(110:1-6, 2:32-36). 그것이 그리스도의 신분의 회복이며 창조주로서의 높이를 말하고 있습니다(1:1-4). 그와 같은 내용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1)  보라 내 종형통하리니”(52:13a); 보통 형통의 의미에 대하여, 계획한 것이 막힘이 없이 잘 성취가 되어 세상적인 성공을 가져오고 있다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 종의 형통은 그 의미가 좀 다릅니다. 주인이 맡긴 사명을 하나님 보시기에 잘 완수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적으로 보면, 실패일 수도 있습니다. 크고 화려한 승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사명감당을 크게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놀라운 상급을 주십니다.

(2)  “(천사들에 의하여) 받들어 높이 들려서”(52:13b); 하나님께서 사명감당을 잘한 메시아에게 주시는 첫째 상급이 무덤에서 부활시키고 승천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 일에는 천사들이 동원이 될 것입니다. 그에 대한 기록을 찾아 봅니다;

1)    먼저 그리스도의 부활의 소식을 천사가 전해주고 있습니다;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주우셨던 곳을 보라.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28:5-7).

2)    승천에 대한 소식도 천사가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 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1:9-11).

(3)  (하나님에 의하여)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52:13c); 하나님이 그리스도에게 주시는 두 번째의 상급은 어린양의 보좌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과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한 어린양은 그 공로로 피조물의 찬양을 하나님과 함께 받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사도 요한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5:11-13).

둘째로, “(a) 전에는 그의 모습(복음사역 중) 타인보다 상하였고, (b) 그의 모습(대속의 자리에서는) 사람들보다 상하였으므로, (c)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하여 (형통이 아닌 줄 알고) 놀랐거니와”(52:14); 메시아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이 세상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에 대하여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은 다음과 같이 비천한 자보다 더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 천국에서 높은 보좌를 얻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섬기는 종으로서의 삶이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한 마디로, 그리스도의 겸손과 인간이해의 깊이를 말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3:18-19, 2:5-11) ;

(1)  전에는 그의 모습(복음사역 중) 타인보다 상하였고”(52:14a);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모습이 그러합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변방 갈릴리 호숫가 그것도 가난한 산골 나사렛 출신입니다(2:22-23, 13:54-58). 젊은 시절 그의 직업은 목수입니다. 가난한 동네의 목수이므로 먹고 살기가 힘이 듭니다. 30세에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을 복음으로 전파하는 삶 이른바 공생애를 제자들과 함께 시작하지만(3:23) 그 떠돌이의 삶이 곤궁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12: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특히 선민만의 구원을 교리화하고 있는 전통적인 유대교와 그 주장이 다르기 때문에 종교지도자들로부터 많은 견제와 박해를 받게 됩니다(6:66, 11:48-54). 따라서 메시아의 몰골이 가난과 핍박에 찌들은 모습입니다.

(2)  그의 모습(대속의 자리에서는) 사람들보다 상하였으므로”(52:14b); 메시아의 고난의 절정은 골고다 언덕에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1)    전통적으로 속죄의 제물은 사람이 아니고 가축입니다. 그런데 메시아가 속죄의 제물이 되어 가축처럼 여김을 받고 있습니다.

2)    동족들로부터 여호와의 종인 메시아가 버림을 받게 됩니다. 로마총독에게 넘겨져서 십자가 처형이 됩니다. 많은 채찍을 맞고 가시관을 머리에 쓰고 그 옷이 찢겨집니다(53:5, 19:1-2, 23). 손과 발에 못이 박힙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속의 죽음을 맞이하고자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신 것입니다.

3)    그와 같은 모습을 이사야가 제53장에서 더욱 상세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53:7).

(3)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하여 (형통이 아닌 줄 알고) 놀랐거니와”(52:14c); 그리스도 예수님의 가난한 삶과 공생애의 모습 그리고 동족들에게 버림을 받고서 처형을 당하시는 모습만을 생각하게 되면 그것은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대 실패자의 생애입니다;

1)    그러므로 세상사람들은 메시아가 실패한 줄로 여기게 됩니다. 그것은 세상적으로 부귀영화를 누리고 제국을 건설하는 승리자의 형통한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    그러나 세상적으로 형통한 자가 아니고 고생만 하다가 실패로 막을 내린 메시아의 삶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평가를 달리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형통한 삶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3)    메시아는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모든 피조물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의 한 몸을 희생한 것입니다. 선민구원만을 주장하고 있는 유대교지도자들의 미움과 박해를 그 한 몸으로 견디어내신 것입니다.

4)    마침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의 처형이라는 고통과 치욕까지 감내하십니다. 그 결과 모든 사람들에게 만민구원의 은혜가 주어지고 영생구원의 길이 열리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메시아에게 승리자의 칭호를 주시고 하늘보좌에 앉을 수 있는 영광을 주십니다. 그것을 보고서 세상사람들은 깜짝 놀라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a) 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b) 왕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을 봉하리니, (c) 이는 그들이 아직 그들에게 전파되지 아니한 것볼 것이요, (d) 아직 듣지 못한 것깨달을 것임이라”(52:15); 그리스도가 만민에게 하나님의 뜻으로 전하고 있는 그 내용이 세상을 크게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만민구원과 모든 피조물의 구원은 메시아의 복음의 넓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태초에 천지만물과 인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선언은 메시아 복음의 길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1)  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52:15a); 사람들은 정치적인 공동체에서 태어나고 그 속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존재입니다.

1)    그 정치적인 공동체 가운데 가장 발달이 되어 있는 것이 국가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국가에 소속이 되어 있으며 그 속에서 안전을 느끼며 자아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를 사랑하고 충성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나라라고 하는 것은 세속적인 가치의 총화입니다.

2)    그런데 메시아는 그러한 세속적인 나라를 구원의 범주로 보지 않습니다. 국가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열방과 만민의 구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세속적인 힘이 미칠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가지는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속적인 나라들이 메시아의 광대한 말씀과 그 구원의 스케일에 놀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  왕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을 봉하리니”(52:15b);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12:31-32).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은 하나님나라를 건설하시는 수순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나라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임금들이 쫓겨나게 됩니다. 그와 같은 역사가 메시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펼쳐지게 될 것이니 자연히 왕들은 그들의 입을 다물 수밖에 없습니다(52:15b). 창조주께서 그 주권으로 행하시는 역사섭리에 대하여 피조물에 불과한 세상의 왕들이 감히 어떻게 입을 놀리며 함부로 저항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3)  이는 그들이 아직 그들에게 전파되지 아니한 것볼 것이요”(52:15c); 태초부터 하나님의 뜻은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입니다. 그러나 그 뜻은 하나님의 말씀해석에 있어서 사람들로부터 의도적으로 가리움을 받고 말았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받아 제사장나라를 건설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뜻을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1)    이스라엘 자손들이 상정하고 있는 구원의 모델은 언제나 출애굽기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이 되었으므로 구원의 대상입니다. 반면에 선민을 탄압하고 있던 애굽 제국은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군대는 홍해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몰살이 되고 맙니다.

2)    이스라엘 자손들은 애굽의 구원을 위하여(19:18-25) 자신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행해야 된다는 제사장나라로서의 책무를(19:5-6) 도무지 인정을 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변방 갈릴리의 선지자 요나를 이방도시 니느웨의 구원을 위하여 강압적으로 말씀의 사자로 선택하여 현지로 보내고 있습니다(1:2, 3:2). 하지만 별로 신통하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자 니느웨 왕과 백성들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는 모습을 보고서 선지자 요나가 견디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4:1-5).

3)    요나의 지론은 선민사상 그대로입니다. 이방도시 니느웨의 멸망을 위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를 전해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4:2). 그러므로 선민사회에 메시아가 오시게 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나님 말씀의 본래의 뜻을 다시 한번 대대적으로 드러내실 것입니다. 이사야는 그것을 이는 그들이 아직 그들에게 전파되지 아니한 것볼 것이요”(52:15c)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선민구원사상만을 추종했던 그들 이스라엘 자손들의 입장에서는 메시아의 만민구원사상이 생소한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4)  아직 듣지 못한 것깨달을 것임이라”(52:15d); 이사야는 보고 듣고 깨닫게 될 것이라고 순서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1)    메시아가 오시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 그리고 하나님의 직접통치가 무엇인지를 백성들에게 눈으로 보여줄 것이라는 언급입니다. 이사야의 예언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의 현장에서는 죄 사함의 은혜가 선포가 되고, 귀신이 쫓겨나며, 죽은 자가 무덤에서 되살아나는 놀라운 기적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 광경을 백성들이 자신들의 눈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특히 세 제자는 변화산상의 모습으로 천국까지 보게 됩니다(9:1-8).

2)    제자들과 백성들이 천국복음을 듣게 되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바리새파 공회원인 니모데모와 같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방문하여 거듭나는 방법과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설명을 직접 듣게 됩니다(3:1-12)

3)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에 들어가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3일만에 부활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다시 불러 모아 40일간 천국복음에 대하여 가르쳐주십니다(1:3). 그 결과 제자들은 히브리정경의 선지자의 예언이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을 통하여 어떻게 성취가 되고 있는가를 깨닫게 됩니다(24:44-48).

4)    그리고 그 깨달음대로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님의 임재가 있게 됩니다(24:49, 1:8, 2:1-4). 그와 같은 훗날의 일을 이사야가 여기서 아직 듣지 못한 것깨달을 것임이라”(52:15d)고 함축적으로 예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창조하신 피조물을 모두 사랑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처럼 의도적으로 선민과 이방인을 구별하고 구원에 있어서 차별하지를 아니하십니다. 그리고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구원의 자리로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그와 같은 뜻이 이미 하나님의 말씀 속에 담겨있습니다. 그러므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은 생소한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야는 선민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메시아의 복음이 마치 처음인 것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오랜 세월 선민구원사상과 현세적인 구원사상에 젖어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희생하게 되면 하나님은 그를 부활 승천시키시고 어린양의 보좌를 주실 것입니다. 그 영광은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8:18). 그러므로 이사야는 동족들에게 부디 메시아의 일생과 그 교훈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볼 수 있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형통한 인생의 길이라는 사실을 재삼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사야의 말과 같이 하나님 보시기에 형통한 인생을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