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252강(사52:1-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9. 9. 19:35

이사야 강해 제252(52:1-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217()

 

우상문화에 찌든 예루살렘 성을 새로운 거룩한 성으로 만들자면 어찌하여야 하는가?(52:1-6)

 

52장에 들어서게 되면 선지자 이사야는 타락한 예루살렘 성과 선민들을 다시 거룩하게 만드는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를 시작합니다. 그는 먼저 제1-2절에서 선민들이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행해야만 하는 일 6가지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1절 후반부와 제3-6절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들을 구원해주시는 이유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그와 같은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이제부터 본문의 구절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b) 네 힘을 낼지어다. (c)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d) 이제부터 할례 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52:1); 이사야는 먼저 타락한 시온 성의 백성들이 다시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해서 스스로 어떠한 행동의 변화를 보여야만 하는지 선민들에게 그 세 가지 내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다음의 조치를 취해주실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1)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52:1a); 먼저 영적인 대 각성이 필요합니다. 무늬만 선민으로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도록 성도들의 영이 깨어나야만 합니다. 그 일을 위해서는 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그 정확한 뜻을 깨닫고 실천하고자 노력을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세계를 볼 수 있도록 영적인 눈을 열어달라고 기도하고 간구를 해야만 합니다.  

(2)  네 힘을 낼지어다”(52:1b); 메시아로 이 세상에 오시는 예수님이 제자들의 육신이 얼마나 영적인 삶을 살아가기에 연약한 존재인지 이미 잘 알고 계십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26:41).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내어서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애를 쓰게 되면 그 부족한 힘을 성령님께서 도와주실 수가 있습니다.

(3)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52:1c); 타락한 선민들이 살고 있는 예루살렘 성은 보기가 싫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민들이 먼저 그 옛날 그들의 조상 야곱처럼 거룩한 성도의 삶을 회복하라고 하십니다(35:1-5). 그것이 예루살렘 성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옷을 입은 신부처럼 보일 수 있는 방법입니다(52:1c, 62:4, 21:2).

(4)  이제부터 할례 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52:1d); 선민들이 위의 세 가지 개혁을 하여 성도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와주십시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을 거룩한 하나님의 도성으로 구별해주시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마음속 할례가 없는 자 곧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 그리고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고 있는 부정한 자는 그곳으로 출입조차 할 수 없도록 조치하십니다. 그러한 모습을 새 예루살렘 성에서 확실하게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21:26-27).

  둘째로, “(a) 너는 티끌을 털어버릴지어다. (b)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앉을지어다. (c)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스스로 풀지어다”(52:2); 선민들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취해야만 하는 조치가 세 가지 있습니다;

(1)  너는 티끌을 털어버릴지어다”(52:2a); 모세는 애굽을 탈출한 후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의 사위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무려 40년 동안이나 미디안 광야를 떠돌면서 양치기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호렙 산에서 불꽃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그때 세속의 때가 잔뜩 묻어 있는 모세를 보시고서 하나님이 지시하십니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3:5). 발에서 신을 벗는 행위가 바로 세상의 티끌을 털어버리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입니다.

(2)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앉을지어다”(52:2b); 신발을 벗고 모세가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으로 다가갑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듣기 위하여 몸을 굽힙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출애굽시킨 다음에 또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갑니다(24:12). 그곳에서 하나님 앞에 앉아 40일 동안 하나님말씀을 공부합니다(24:18). 그 내용이 거룩한 백성으로 제사장나라를 경영하게 하는 율법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 매주 안식일에 그 율법을 공부하고 그 뜻을 묵상하게 됩니다(17:28-30). 그와 같은 일을 다시 시행하라고 이사야가 여기서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앉을지어다”(52:2b)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스스로 풀지어다”(52:2c);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본래 종이 없습니다. 모두가 애굽 제국에서 노예와 같은 비참한 삶을 살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해방을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재산을 일구게 되자 히브리 종이나 이방인 종이 발생하고 있습니다(21:2, 25:44-46). 빚을 갚지 못하게 되면 그 몸을 종으로 팔게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방법론에 사로잡히게 된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노예해방의 뜻을 깊이 살피지 아니하고 종들을 많이 부리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서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지시하십니다; “진심으로 하나님 말씀의 뜻을 실천하고자 하면 노예부터 해방을 시키라는 것입니다(58:6). 그리하면 세상에 발목이 잡혀있는 선민들의 줄도 풀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52:2c).

셋째로, “(a)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없이 팔렸으니, (b) 돈 없이 속량되리라”(52:3);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에 개입하여 선민들을 구원해내실 수 있는 첫 번째 이유가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없이 팔렸으니”(52:3a); 노예는 돈을 주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예는 몸값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고대 중동사회에서 장정노예는 그 몸값이 은 30세겔입니다. 여자노예는 20세겔입니다. 그런데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을 떠나 영적으로 타락하여 세상에서 이방 신들을 섬기며 우상문화의 노예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돈을 받고 판 적이 없는데 그들이 스스로 값없이 세상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52:3a).

(2)  돈 없이 속량되리라”(52:3b);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하여 선언하십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의 백성을 돈을 주고 사오는 것이 아니라 돈을 주지 아니하고 한꺼번에 세상의 노예에서 해방시킬 것입니다(52:3b). 그 방법은 물론 세상의 악한 권력과 악한 영들이 행사하고 있는 죄와 사망의 권세를 모조리 깨어 부수어버리는 것입니다(12:31-32, 8:1-2). 그와 같은 영적인 출애굽의 해방이 다시 있을 것임을 선포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넷째로, “(a)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전에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에 거류하였고, (b) 앗수르인공연히 그들을 압박하였도다”(52:4); 선민들을 구원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인 이유 두 가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전에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에 거류하였고”(52:4a);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 제국에서 바로에게 돈을 주고 사오신 것이 아닙니다. 본래 주전 19세기에 야곱의 집안이 가나안 땅의 가뭄을 피하여 애굽 총리 요셉의 초청을 받아 애굽으로 이주한 것입니다(45:5-11, 46:6). 그러므로 애초에 자유민으로 애굽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자 히브리 인들을 탄압하는 왕조가 발생하여 그만 노예와 같은 비참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1:8-11). 그러므로 그것은 잘못된 세상권력의 횡포입니다. 이에 따라 하나님께서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언약의 백성을 노예에서 해방시키신 것입니다.

(2)  앗수르인공연히 그들을 압박하였도다”(52:4b); 히스기야 왕 때에 앗수르의 황제 산헤립이 대군을 이끌고 유다 왕국의 정복에 나섭니다(왕하18:13). 순식간에 지방의 주요 성읍들이 정벌을 당하고 왕과 귀족들이 왕도 예루살렘에 갇히게 되고 맙니다(왕하18:17). 많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앗수르 군대에 의하여 죽거나 잡혀가게 됩니다. 그것은 돈을 주고 노예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앗수르 황제가 공연히 침략하여 선민들을 압박(52:4b) 사례입니다. 그러므로 히스기야 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어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있는 앗수르의 병정 185천명을 하룻밤에 몰살시켜버리신 것입니다(왕하19:35).

다섯째로, “(a) 그러므로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까닭 없이 잡혀갔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하랴? (b)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토록 더럽히도다”(52:5); 선민들을 포로로 그리고 노예로 제멋대로 부려먹으면서 선민들의 신 여호와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는 세상의 지배자들의 잘못에 대하여 밝히고 있습니다;

(1)  그러므로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까닭 없이 잡혀갔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하랴?”(52:5a); 예루살렘 성전에 좌정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허락을 구하지도 아니하고 이방인들이 함부로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을 침범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 그 옛날 모세처럼 하나님께 두 팔을 들고서 부르짖게 되면 승리는 하나님 백성의 것입니다(17:11);

1)    그런데 여호와의 말씀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나서 제멋대로 살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문제입니다. 그들은 그 옛날 모세처럼 하나님을 의지하지를 않습니다. 한 마디로, 선민들이 성전으로 찾아와서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그 결과 이방강대국의 침략으로 선민들의 나라가 패전을 하고 그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끌려가고 있습니다.

2)    이제 하나님께서 어찌하실까요? 두 가지의 선택을 하실 것입니다; 첫째, 선민들이 뒤늦게라도 자신들의 불신앙을 회개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매어 달리면 출애굽의 역사가 다시 발생할 것입니다(2:23-25). 둘째, 이방인들이 함부로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게 되면 재앙이 그곳에 임하고 반사적인 이익을 얻어서 선민들의 자손들이 자유민이 될 것입니다(37:11-20, 35-36, 52:5).

(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토록 더럽히도다”(52:5b); 이스라엘 자손들이 전쟁포로에서 벗어나고 이방인들의 지배하에서 노예와 같이 비참한 삶을 살다가 해방을 맞이하게 되는 것은 모두 그들이 회개를 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불렀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은 반사적인 이익을 향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세상의 제국이 너무나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여(52:5b) 징벌을 받은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랑할 것이 도무지 없습니다.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할 뿐입니다. 참고로 그 옛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자손들이 차지하게 된 유래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9:4-6).

여섯째로, “(a) 그러므로 내 백성내 이름을 알리라. (b) 그러므로 그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나 인줄을 알리라. 내가 여기 있느니라”(52:6);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들을 지배하고 있는 세상의 권력자들을 징치(懲治, 징벌로 다스림)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해내시는 것입니다;

(1)  그러므로 내 백성내 이름을 알리라”(52:6a); 타락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반드시 기억해야만 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세상의 그 어떤 막강한 세력이나 영적인 실체보다도 더 두렵고 떨리는 분이 바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시다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1)    세상의 권력과 악한 영들은 사람들의 목숨과 육신만을 지배할 수 있을 뿐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 앞으로 사람들을 끌고 가면서 육신을 해치고 목숨을 빼앗는 것으로 위협하고 있습니다(8:2). 그러나 창조주 앞에 서게 되면 그 정도가 아닙니다. 목숨보다 더 귀한 영원한 생명이 문제가 됩니다.

2)    100년 안팎 한시적으로 사용하고 벗어버리는 육신이 아니라 영생을 누릴 수 있는 부활의 몸을 얻을 수 있느냐 아니냐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과 부활의 몸을 주실 수 있는 분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17:3). 그러므로 그 이름을 찬양합니다(52:6a).

3)    참고로, 사도 바울은 후자를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쫓아가고 있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3:10-12). 그러한 내용을 메시아로 오시는 예수님께서 한 마디로 정리하고 계십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10:28).

(2)  그러므로 그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나 인줄을 알리라. 내가 여기 있느니라”(52:6b); 타락한 선민들이 어떻게 살아가야만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부끄럽지 아니한 구원을 얻게 될까요? 지금까지 선지자 이사야가 동족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점에 대하여 상세하게 진술을 했습니다. 이제 이사야는 마지막으로 영적인 눈을 크게 뜨고서 먼 미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1)    선민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나라가 망하고 이방세상에서 노예와 같은 비참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그러나 먼 훗날에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회개를 하고서 하나님께 돌아오게 됩니다. 이사야는 그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때에는 지금 이사야가 기록하고 있는 이 글을 후손들이 찾아서 읽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2)    새로운 창조를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선민들에게 미리 그 일에 대하여 알려주십니다. 그 이유는 그 일이 바로 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성취하신 일이라는 사실을 뒤늦게라도 깨닫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48:5-7). 그렇게 두 팔을 벌리고 인내로써 기다리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할 뿐입니다(48:9, 16, 52:6b, 65:1-2, 10:20-21).

결론적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칭 선민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출애굽의 하나님, 광야의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타락을 하고 맙니다. 그 결과 그들의 나라가 망하고 이방 땅에서 노예와 같은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39:5-8). 그와 같은 미래를 이사야가 이미 내다보고서 그의 예언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여호와께서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는 악한 세상나라 곧 바벨론 제국을 멸하시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반사적인 해방의 이익을 주십니다(44;28, 45:1-6, 52:5). 그러나 여전히 이스라엘 자손들이 회개할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민들을 세상의 이방인들과 구태여 구별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아니하십니다. 따라서 그들의 땅에 메시아가 오시고 선민구원이 아니라 만민구원의 복음이 그곳에서 터져 나오게 됩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면, 본문 이사야의 예언은 선민의 울타리를 진작에 뛰어넘고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선민이 회개를 해야만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모르고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는 이방인들도 회개를 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복음이 일단 이방인 사회에 전파가 되고 나면 그때부터는 하나님의 뜻을 몰랐다고 하는 변명이 전혀 통하지를 아니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민의 후예들이거나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이거나 상관없이 이제는 누구나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옳게 바꾸어야만 합니다. 그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하여 이사야가 본문에서 열거를 하고 있습니다(52:1-2). 그 내용들을 다시 한번 음미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이사야의 글을 읽는 동안에 여전히 두 팔을 벌리고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을(52:5-6) 발견하게 되는 귀한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