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256강(사53:1-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9. 11. 01:14

이사야 강해 제256(53:1-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221(주일)

 

여호와의 종 메시아를 통하여 드러나는 하나님의 시각과 인간의 시각과의 차이 (53:1-3)

 

본문에서 이사야는 여호와의 종인 선지자나 메시아가 전하는 말씀을 선민들이 믿지를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53:1a). 그 이유는 선민들은 자신들이 전통적으로 믿고 있는 유대교의 가르침이 더 옳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여호와의 창조의 능력이 역사 가운데 발생하게 되면 어느 쪽이 진정한 하나님의 뜻인지를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53:1b).

특히 사람들이 여호와의 종으로 오시는 메시아의 구원사역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하나님의 것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제2절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여호와의 종인 메시아를 함부로 대접하고 멸시하며 배척하게 될 것입니다(53:3).

그와 같은 내용을 이사야가 어떻게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는지 각 구절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깊은 내용에 대해서는 묵상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a) 우리가 전한 것누가 믿었느냐? (b)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53:1); 선지자 이사야가 절규를 하고 있습니다. 평생 동안 하나님의 뜻을 말씀과 예언으로 동족들에게 전했지만 별로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장차 메시아가 선민사회에 오신다고 하더라도 그러할 것만 같습니다(53:1a)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요? 누가 옳은 것일까요?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창조의 능력으로 선지자들의 부르짖음과 메시아의 복음사역이 옳다는 사실을 반드시 증명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53:1b). 그러므로 의롭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의 판단에 달려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의로운 것이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른 신앙의 자세입니다.

둘째로, “(a) 그는 (하나님) 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 새싹)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b)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53:2); 여호와의 종으로 이 세상에 오시는 메시아에 대하여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중요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1)  그는 (하나님) 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 새싹)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53:2a);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 형태의 삶이 있습니다; 하나는 육신적인 삶입니다. 또 하나는 영적인 삶입니다.

1)    육신적인 삶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며 소원성취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적인 형통함과 현세적인 복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풍성하게 누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와 같은 육신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만족스러운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이방인 뿐만 아니라 선민들도 그와 같은 육신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2)    영적인 삶은 다릅니다. 이 세상에서 강한 자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네피림과 같은 용사로 태어나서 남을 힘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닙니다(6:4-5).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자신이 힘으로 전부 차지하고자 하는 삶이 결코 아닙니다(6:2-3). 영적인 삶은 하나님 앞에서 연한 새싹과 같이 순종할 줄 아는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는 인생을 말합니다(53:2a).

3)    그리고 영적인 삶은 이 세상에서 크게 성공하고 뿌리를 깊게 박아 자손대대로 복락을 누리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마른 땅과 같아서 영원한 생명을 잉태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의 가치관과 인생관 그리고 세계관의 뿌리를 하나님의 말씀에 두고자 합니다. 그리고 평생 동안 자신의 영적인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면서 장차 천국의 백성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이 세상에 뿌리를 박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천국에 그 뿌리를 깊이 내리고 살아가는 인생을 영적인 삶이라고 이사야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53:2a).

(2)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53:2b); 육신적인 삶은 세 가지의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1)    첫째,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자 합니다. 따라서 고운 모양을 지니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 외모관리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모릅니다.

2)    둘째, 세상적으로 크게 성공한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고자 합니다. 따라서 그 풍채가 좋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스펙’(Spec, 이력서 내용)도 무지하게 좋아야만 합니다.

3)    셋째, 잘 생긴 사람과 크게 성공한 사람 앞에 세상사람들은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흠모할 만한 사람은 세상의 우상’(idol)이 됩니다.

4)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여호와의 종인 선지자나 메시아에게서는 그와 같은 요소를 발견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53:2b).

셋째로, “(a)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b) 간고(艱苦, 생활상의 어려움과 고통)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疾苦, 육체적인 괴로움과 고통)를 아는 자라. (c)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d)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53:3); 여호와의 종으로 이 세상에 오시는 메시아가 이 땅에서 겪게 되는 멸시, 배척, 간고, 질고, 외면, 천대 등 6가지의 고통을 이사야가 적나라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1)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53:3a); 선민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멸시하고 배척하게 됩니다;

1)    선민들은 메시아가 그들 사회에 오시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윗의 후계자로 오시는 메시아가 외세를 물리치고 이스라엘 제국을 재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면 이웃 이방인들이 모두 선민 이스라엘을 섬기는 종이 될 것입니다. 자연히 선민의 영광이 예루살렘에서 온 세상에 퍼져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선민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는 이유이며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으시는 방법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습니다.

2)    그런데 막상 선민사회에 오신 메시아는 정반대로 설교를 하고 행동을 합니다. 이방인들을 사랑하고 원수를 용서하며 함께 하나님의 구원을 받도록 선민들이 나서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나약한 메시지를 유대인들이 도저히 수용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가 아닙니다. 따라서 그의 가르침에 대하여 멸시를 하며 메시아 예수를 배척하고 맙니다(53:3a).

(2)  간고(艱苦, 생활상의 어려움과 고통)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疾苦, 육체적인 괴로움과 고통)를 아는 자라”(53:3b); 장차 메시아가 겪게 되는 생활고복음사역의 특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    먼저 예수님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는 변방 갈릴리 호수의 서쪽 산지 가난한 벽촌 나사렛 출신입니다. 그리고 직업이 목수입니다. 가난한 산골마을의 목수이기에 생계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나이 30세에 12 제자들과 함께 천하를 떠돌면서 공생애를 지냅니다.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뜻을 전하는 복음사역을 3년 반 동안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도여행이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재정적으로 쪼들릴 뿐만 아니라 유대교지도자들로부터의 박해가 심하기 때문입니다.

2)    그렇지만 예수님과 제자들의 복음사역의 현장에는 수많은 병자들과 장애자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메시아가 고쳐주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메시아는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긍휼을 베풀어주십니다. 사람들이 육체적으로 병이 들고 고통을 받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여기서 이사야가 “(메시아는) 질고(疾苦, 육체적인 괴로움과 고통)를 아는 자라”(53:3b)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3)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53:3c); 선민 유대인들이 나사렛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를 않습니다. 특히 유대교지도자들이 그러합니다;

1)    유대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이단으로 몰아서 산헤드린 대 공회에서 정죄를 하고 맙니다. 그리고 로마총독에게 이송하여 십자가 처형을 의뢰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유대백성들도 메시아를 외면하고 맙니다(27:20-25).

2)    그것은 메시아가 전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외면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선민구원과 현세적인 복을 챙기기에 바빴기 때문에 결코 이방인까지 포함하는 만민구원이나 천국에서의 영생을 추구하는 삶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이에 따라 자신들이 받아 들일 수 없는 신앙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전하고 있는 메시아 예수를 배척하고 죽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민들의 비극입니다. 그 대목을 이사야가 젊잖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53:3c).

(4)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53:3d); 선민들만 메시아를 배척한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들도 그러합니다. 똑같이 세상적인 형통과 성공을 추구하며 현세적인 구원의 복을 얻기를 희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우상문화적인 소원을 충족시켜주는 구원자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생명을 살리고 돌보기 위하여 자신의 희생을 무릅쓰라고 메시아가 가르치고 있으니 그 말씀을 수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하여 현실타당성이 없으며 이상주의자의 헛소리라고 취급을 하고 맙니다. 그 대목을 이사야가 이미 예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53:3d).

결론적으로, 메시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의 현세기복적인 신앙심과 육신적인 가치에 치중하고 있는 삶의 모습이 부끄럽게 노출이 되고 맙니다. 그것을 견딜 수가 없어서 선민 유대인들처럼 그리스도의 복음을 외면하고 배척해서는 안됩니다. 역사 가운데 창조주 하나님의 뜻이 메시아를 통해서 드러나고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성령님의 강림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로운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면서 여호와의 종으로서 한결같이 영적인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 핵심은 역시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리스도 예수님처럼 신실한 종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성령님께서 동행하시며 그 인생을 하나님 자녀의 자리에까지 이르게 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