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이사야 강해 제249강(사51:15-1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9. 8. 15:17

이사야 강해 제249(51:15-1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214(주일)

 

바다의 움직임과 바닷물의 출렁거림을 가지고 이사야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매일 같은 시간에 바닷가에 나가보더라도 물결의 출렁임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바람의 세기에 따라서 그 물결의 출렁임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둘째,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천체의 움직임에 따라서 바닷물이 끌려가는 모습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지자 이사야는 본문에서 그 이유를 하나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해와 달의 위치가 시간에 따라 달라지고 있습니다. 지구가 해를 돌고 있으며 또한 달이 지구를 공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지구가 스스로 돌고 있기 때문에 자전과 공전에 따른 이중적인 변화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사람이 살고 있는 지구의 기후가 달라지고 바닷물결의 움직임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오늘날 천문기상학의 발전으로 그 변화를 상당히 설명하고 필요한 예측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구의 변화에 대하여 완전한 관찰과 설명 그리고 예측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류의 접근을 용인하지 아니하고 있는 부문이 많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아직까지 지구 바깥에 있는 행성에 사람의 발길이 직접 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지구내부에 있는 엄청난 양의 용암이 출렁이면서 표면으로 압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 외압을 지구의 표면이 언제까지 견딜 수가 있을까요? 계산이 나오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언제 터져 나올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저 과거의 역사적인 자료를 통계 처리하여 그 가능성만을 점치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지구과학과 천문기상학이 더욱 발전하여 설명과 예측이 모두 가능해지면 문제가 없게 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심각한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그 모든 움직임을 아직까지 인류가 통제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자연의 통제만이 아닙니다. 강대국들이 보유하고 있는 핵폭탄에 대해서도 완전한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핵전쟁의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습니다; “누가 핵무기 발사의 스위치를 누를 수 있는 그 권력자들의 손을 통제할 수가 있을까요?아직 완벽한 통제장치가 없습니다. 그저 최고권력자의 양심과 정치적인 판단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깊이 생각을 해보면, 가히 절망적입니다. 그래서 한 마디로 정리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구자연의 존속과 인류역사의 존속여부는 여전히 그 통제가 가능한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연섭리와 역사섭리에 대하여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피조세계를 관장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의도와 그 섭리의 이치에 대하여 탐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방법의 하나가 선지자들의 말씀에 겸허하게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새로운 물결, 새로운 백성, 새로운 창조에 대하여(51:15-16)

 

선지자 이사야는 본문 제15절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다의 움직임과 바닷물의 출렁거림을 지배하고 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대목은 자연의 움직임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다로 비유가 되고 있는 인류의 역사도 포함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인류의 역사라는 그 출렁임의 이치를 연구는 하고 있지만 모두 설명을 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자유방임의 상태로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그 속에는 내밀하게도 역사의 방향성이 어느 정도 탐지가 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철학자 헤겔은 --의 이론으로, 그리고 칼 마르크스와 같은 사상가는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이라는 과학적인 역사발전의 단계론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그것이 꼭 맞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인류역사발전의 단계를 달리 설명하고 있는 선지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에 의하여 피조세계가 만들어지고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세상이 경영되고 있다고 한다면, 그 종말 역시 하나님의 섭리 하에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역사섭리의 방향성에 대하여 선지자들이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대선지서 이사야가 그러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와 같은 시각에서 접근을 할 때 새로운 해석이 가능한 대목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견지에서 과연 어떠한 이야기를 이사야가 설명을 하며 예언을 하고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논술의 방법은 역시 본문의 두 구절을 상세히 분해하여 살펴보면서 그 깊은 내용을 다음과 같이 묵상을 통하여 도출해보는 것입니다;

첫째로, “(a)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 (b) 바다를 휘저어서 그 물결을 뒤흔들게 하는 자이니, (c)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51:15); 이사야가 하나님 여호와그리고 만군의 여호와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51:15a); 일찍이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설명해준 바와 같이 여호와의 뜻은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입니다(3:14). 그 말은 피조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있기 전에 먼저 계신 분이시며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이 대목은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살고 있는 그 자연과 역사에 대하여 말씀을 하신다는 내용입니다.

(2)  바다를 휘저어서 그 물결을 뒤흔들게 하는 자이니”(51:15b); 언뜻 보면,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창조하시고 그 흐름을 섭리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마치 바다를 휘저으며 바닷물을 출렁이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다음과 같은 다른 뜻이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바다와 같은 열방과 많은 백성들의 운명과 역사까지 그 흐름을 모두 관장하고 계신다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3)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the Lord Almighty, NIV)니라”(51:15c); 여기서 만군의 여호와는 절대권력과 주권을 가지신 창조주라는 의미입니다. 그 힘은 자연의 흐름과 인류의 역사를 동시에 변화시킬 수 있는 강제력을 말하고 있습니다;

1)    평소 자연의 흐름과 인류역사의 움직임이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대로 흘러가고 있을 때에는 강제력을 행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게 될 때에는 강력하게 개입을 하십니다. 창조의 질서에 순응을 하도록 그 궤도 위에 다시 올려놓는 것입니다.

2)    그러나 그러한 시도가 먹히지 아니할 정도로 완전히 부패하고 타락한 경우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 옛날 하늘에서 하나님께 대항을 하던 사탄의 세력과 땅에서 하나님 흉내를 내고 있는 유물론적인 제국의 논리가 그것입니다. 그들의 영향력 아래에서 끝끝내 사람들이 돌아서지를 않습니다.

3)    그때에는 종말론적 심판과 이 세상의 종말이 도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와 같은 비극이 이 세상에 찾아오고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가 나타날 것임을 이사야가 본문 다음 구절에서 이미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a) 내가 내 말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 (b) 이는 내가 하늘을 펴며, 의 기초를 정하며, (c)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말하기 위함이니라”(51:16);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파송하시고 보호하시는 이유를 이사야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과연 무엇으로부터 구원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정이 되어 있는 이 세상의 멸망으로부터 구원하여 새로운 세상에서 영생을 누리도록 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내가 내 말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51:16a); 하나님은 선지자의 입에 하나님의 말씀을 위탁하시고 세상사람들에게 전하도록 파송하십니다. 그런데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외칠 때에 백성들의 반응이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1)    그 동안 사람들은 자신들의 입장에게 편리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지켜왔는데 선지자가 외치고 있는 말씀은 그러한 편의적인 신앙체계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선지자가 선민들의 선민우월주의에 어긋나는 만민구원사상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세구복적인 이방인들의 우상문화와 전혀 다른 신앙 곧 우상을 버리고 창조주에게 돌아올 것이며 영생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라고 선지자가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러므로 하나님말씀의 뜻을 정확하게 전하고 있는 선지자는 선민뿐만 아니라 이방인으로부터도 환난과 핍박을 당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에 따라 하나님께서 그 능력의 손으로 덮어주시고 강력하게 보호해주시는 것입니다(51:16a).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은 선지자와 메시아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통하여 땅끝까지 전파가 될 것입니다(24:14). 그 다음에는 심판과 구원의 문제만이 남게 됩니다.

3)    구체적으로, 당사자의 선택에 따라 창조주 하나님을 자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섬기며 그 말씀의 뜻을 따라 살아간 자는 영생의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끝까지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하며 하나님을 버리고 한 평생 세상적인 이익과 복만을 추구한 자들은 영벌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5:29). 어떻게 그 일이 가능한 것일까요?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종말로 새로운 세상을 또 창조하시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합니다.

(2)  이는 내가 하늘을 펴며, 의 기초를 정하며”(51:16b); 여호와 하나님은 그 옛날 태초에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습니다(1:1-2). 이제는 종말로 새로운 세상을 다시 창조하십니다. 그 사실을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65:17).

(3)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말하기 위함이니라”(51:16c); 출애굽 당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19:5-6). 그들이 소위 선민들입니다. 그러나 그 선민들이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를 않습니다;

1)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고 그들을 위하여 죄 사함의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의 직분을 행해야만 하는데 선민들이 그 일을 전혀 시행하지 아니한 것입니다(19:6).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시다 못하여 갈릴리 변방의 선지자 요나에게 이방의 큰 도시 니느웨에 가서 그 일을 행하라고 명령하십니다(1:1-2).

2)    그러나 그가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행하면서 얼마나 이방인의 멸망을 끝까지 소원하고 있는지 모릅니다(3:1-3, 4:1-5, 12:39-41).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버리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새로이 선택하시고자 하십니다. 그 백성은 만민 가운데 하나님께서 흔드시는 메시아의 깃발을 보고 그 아래로 모여드는 자들입니다(11:5-12). 그들이 그리스도의 제자이며 새로운 성도들입니다.

3)    그들에 의하여 하나님의 뜻 곧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은 세상 끝까지 전파가 될 것입니다(24:14, 28:18-20). 그것이 선민사상과 현세구복사상을 넘어서는 새로운 물결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새로운 시온으로 이 땅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21:2-8). 그와 같은 내용을 이사야는 함축적으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말하기 위함이니라”(51:16c).

결론적으로, 본문은 참으로 간단한 두 절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이중적이며 심오합니다. 이 세상의 자연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51:15) 새로운 세상을 다시 창조하시겠다고 암시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51:16b). 그리고 인류의 역사도 타락한 상태로 그대로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새로운 시온과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창조하실 것이라고 공언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51:16c).

또한 장차 영생의 구원에 참여하는 하나님 백성의 수를 늘리기 위하여 구약시대의 선지자에 이어 신약시대에서는 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을 세상 끝까지 파송하실 것입니다(51:16c, 6:38-39, 17:18). 그리고 그들의 입에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을 위탁하실 것이며 가는 곳마다 그들을 강력하게 보호하실 것입니다(51:16a). 그와 같은 입체적인 내용을 이사야가 본문에 함축시키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성도들도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면서 끝까지 사명감당을 해야만 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와 같은 사명감당의 은혜가 여러 성도님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